플레이어로 건너뛰기본문으로 건너뛰기
  • 22시간 전


임현식 "어머니는 평생 남편 기다려"
음악교사 어머니 영향…바이올린·피아노 배워
임현식 "나를 만든 건 어머니"

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채널A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인용 보도 시, 아래와 같이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뉴스TOP10]

카테고리

🗞
뉴스
트랜스크립트
00:01예, 올해로 연기 시작한 지 57년, 순돌이 아빠 임현식 씨 3초 연기, 즉흥 연기.
00:08아주 다양한 연기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죠.
00:12임현식 씨가 아버지 얘기, 어머니 얘기를 했습니다.
00:16관련된 발언 먼저 확인하겠습니다.
00:20촬영장에 한번 어머니 가실래요? 나 혼자니까 그러면 어머니가 따라오신다고.
00:28근데 여기 이 근처에 와서 찍고 여쭤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안 보이는 거예요.
00:33아주 만족해하고 일로 이사를 고시겠다는 거예요.
00:38바이올린 중학교 2학년 때 시작했는데 우리 어머니가 시키는 것만은 나는 못하는 거예요.
00:45나는 그냥 놀기 좋아하고 어머니 지갑이 즉 내 지갑이었으니까.
00:51어제 한 방송에 나와서요 이렇게 얘기했어요. 여섯 살 때 육 이 오 전쟁이 났는데 아버지가 신문 기자였나 봐요. 그때 당시에.
01:00취재차 북한으로 아버지가 가셨는데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있을 때 좀 만나볼까 아버지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살아는 계실까라고
01:09생각해서 수소문을 해 봤는데.
01:11아버지가 이미 북한에 올라가서 재혼을 했고 슬아의 삼남 일녀가 있었다.
01:17그래서 나는 도저히 결혼을 한 아버지를 만날 자신이 없어서 못 올라갔다. 이렇게 얘기했네요.
01:23네. 임현식 씨 같은 경우에는 지금 연세가 있으시긴 하지만 어머니 얘기를 정말 많이 했던 배우 중에 한 명입니다.
01:31어머니의 사랑을 그만큼 많이 받았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재혼을 하지 않으셨어요.
01:38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생사를 확인했을 때 너무 기뻤는데 알고 보니 북에서 가족이 새로 꾸려졌던 거죠.
01:47그게 굉장히 본인 상실감이 컸을 겁니다. 아버지를 데려올 수도 없고 본인이 옆에 갈 수도 없고 이런 상황이잖아요.
01:55그래서 어머니한테 처음엔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해요.
01:59그러다가 결국엔 그래도 생산을 알려야 하니까 사진을 보여주면서 지금 어머니 아버지가 이런 상황이라고 했을 때 또 어머니는 임현식 씨 아들
02:09생각을 한 거죠.
02:10어떤 생각을 하셨냐면 만약에 나중에 통일이 돼서 자유롭게 우리가 넘나들고 만났을 때 네가 이 가족들을 어떻게 다 건사할 수 있겠니라면서
02:20오히려 아들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02:22그래도 건사를 해야 된다고 얘기를 한 거죠. 동생이니까.
02:26네. 그렇죠.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거고 아무래도 어머니는 그래도 아버지를 좀 그리워했었던 마음이 컸을 것 같습니다.
02:33그리고 임현식 씨가 어머니와의 추억이 정말 많아요. 임현식 씨는 나이가 꽤 많은 그 나이대에도 바이올린을 할 줄 알고요.
02:43그리고 이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지금 양주에 있는 양주에 지금 살고 계신데 거기서 젖소를 꽤 많이 키웠었다고 해요.
02:53그런데 지금은 키우지 않고 계십니다.
02:55그런데 그것도 어머니가 키우자고 해서 키웠던 건데 당시에 그 젖소에 우유를 짜서 같이 팔기도 했고 이랬던 일화가 있었습니다.
03:04건강에 안 좋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많이 회복한 것 같습니다.
03:08오랫동안 왕성하게 활동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