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손동식 선생님께서는 이제 잡혀서 끌려가십니다. 그런 다음에 함경북도 무산군의 한 광산에 끌려가서 노동자로 이제 일을 하시게 됐는데 왜냐하면 북한 입장에서
00:09봤을 때는 자기와 싸운 적군 포로잖아요. 그래서 최하층도 아니라 그냥 사회계층 바깥에 이제 그런 계층으로 살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00:20그런데 손명화 씨 같은 경우는 아버지가 어렴풋이 남조선 출신이었다는 걸 알고 계셨지만 국군 포로 출신이라는 건 모르고 자라셨다고 해요.
00:29왜냐하면 방금 말씀드린 같이 국군 포로였다는 것이 공론화되면 정치범 가족이잖아요.
00:35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가 의도적으로 자녀분들에겐 내가 국군 포로 출신이었다는 말씀을 의도적으로 안 하셨다고 합니다.
00:43아버지가 국군 포로 출신이라는 걸 언제 알게 되셨어요?
00:46인민학교 때는 몰랐고 중학교 올라가서 사로총에 가입할 때 선생님이 이제처럼 쟤는 아무리 공부 잘하고 재능이 있어도 사회 나가면 아무것도 할
00:59수 없는데 참 아깝다.
01:01그런데 그 말을 어느 학생 우리 학급이 46명이 됐는데 그 말을 담임선생이 누구한테 다 던졌는데
01:09몇 살 때쯤이에요?
01:10거기 열리 살 때 그래서 그 애가 이제처럼 그때부터 저는 왕따죠.
01:16걔가 이제처럼 야 너 아버지야 계래구이라며 너네 아버지 계래구이라며 너 계래구이라며 너 계래구이라며 너 공부를 잘해 뭐라니
01:23하며 왕따를 그때부터 저는 왕따를 받았어요.
01:28아무리 내가 발버둥해도 여기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걸 그때부터 버림받았죠.
01:34버림받는 인생을 살았죠.
01:35그래서 제가 집에 들어와서 그때 당시 아버지한테 아버지 아버지 계래구인이냐고 물어봤더니
01:43아버지가 침묵을 지키더라고요.
01:46아무 말씀 안 하고 그 다음 또다시 아버지 계래구인이냐고 아무 말씀이 없더라고요.
01:52얼마나 안타깝겠어요.
01:53그때 저는 사실은 그 어린 나이지만은 내가 아버지 아버지를 잘못 만나 태어났거나 하는 그 서름 그 원망을 아버지인 데서 그때부터
02:06가졌죠.
02:10부모에게서 가장 마음 아픈 게 뭐겠어요 자녀들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할 때 아니에요.
02:15그리고 사실 우리도 한 번씩 경험했겠습니다만 이렇게 살기 좋은 대한민국에서도 사춘기 되면요.
02:21아이 때 그냥 이유 없이 부모님들한테 왜 나 낳았냐고 막 이렇게 소리 지를 때도 있는데
02:27이게 지금 북한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얼마나 그 심한 차별이 있었겠어요.
02:31당연히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겠죠.
02:33제가 학교 다닐 때 이제 국군포로 자녀가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국군포로예요.
02:38할아버지가 국군포로인데도 거기서는 놀림 뭐 이렇게 괴래군 자식 뭐 이렇게 놀리진 않습니다.
02:44솔직히 근데 놀리는 것보다 그냥 무시하고 따돌리는 거죠.
02:47아예 살 없는 사람으로 그렇죠.
02:49그러니까 국군포로라는 집안 자체는 일단은 그들이 뭐 육체적으로는 전량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02:56정신적으로는 아직 대한민국을 그리워하고 고향을 그리워할 수 있잖아요.
03:00그렇기 때문에 특별 감시 대상이거든요.
03:02저희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03:05제가 뭐 국군포로 내 자녀인지 모르거든요.
03:07일반적으로 솔직히 모릅니다.
03:09여기다 뭐 쓰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근데 법감내 자식들이 학교에 나와서
03:13퍼뜨리는 거예요.
03:14자 국군포로 내 자식이 돼.
03:16이렇게 퍼지면서 입소문이 도는 거예요.
03:18그래서 저희 아버님도 그 애하고 친하지 말라.
03:21왜 그러냐니까.
03:23감시 대상인데 우리가 친해봤자 좋지 않다는 거예요.
03:26그건 뭐 북한 사회가 뻔하게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03:29구조상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03:30그 감시 대상 내 집안과 굳이 친하게 지내면 안 된다.
03:33이런 거죠.
03:35저는 그때 당시 너무나 충격을 받아서 집에서 막 가출했어요.
03:40가출해가지고 집에 안 들어오면 엄마가 또 쫓아다니며 나를 잡으러 다니고
03:46그래가지고 집에 들어가면은 엄마가 아버지한테
03:50왜 남자 손이 손에서 와가지고 나를 만나서 자식을 낳냐.
03:56저 영감이 빨리 썩어줘야 되지.
03:59그 영감이 죽어야 너네가 그래도 좀 어떻게
04:02사이 나가서 조금 좀 어떻게 햇빛 보지 않겠냐.
04:07이렇게 엄마가 아버지를 막 구박하고 했어요.
04:10그렇게 되니까 아버지는 입 다물고 살아야 될 삶을 살았고
04:16그때부터는 아버지는 아버지하고 엄마하고 우리 자식마저도
04:21아버지랑 하나 집에 들어가면 막 왕따를 주지 않아요.
04:24그러니까 그 아버지 그 삶을 돌이켜보면 저는 정말 억장이 무너지죠.
04:31진짜 맘 아픈데 그냥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04:33진심이 끼어 있는 말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04:36그렇죠. 자식들이 사회나 가면 오빠들이 군대도 못 가요.
04:41그러니까 북한은 남자라고 생기면 다 군대 가야 되지 않으세요.
04:4610년씩.
04:46근데 오빠들은 군대로 안 내보냈었어요.
04:50오빠들은 군대로 안 내보내고 속도전 돌격대하고
04:52나남건설대 건설대 그 부분에다가 남자들은
04:56옅고 오빠들은 거기로 보냈는데
04:58거기 가서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05:02이렇게 됐으니까
05:03그 다음에 여자들은 대학에도 못 가고 아무것도 못 가고
05:08뭐 이거 꿈을 꿀 수가 없는데 미래에서
05:10아버지 따라 그냥 연자재
05:12탕광강산에 가서 일해야 되죠.
05:14그러니까 우리한테는 꿈 행복 이런 게 생각조차도 하면 안 되는
05:22지옥이다 지옥이다.
05:23이게 14살이 되고 알게 된 거예요.
05:25그러니까. 말하자면 한참 꿈을 갖게 되는 나이에요.
05:28뭔가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는 나이잖아요.
05:30소명 선생님께서는 그럼 어떤 꿈을 가지고 계셨습니까?
05:33저는 학교 때 그래도 예술 부문에 아버지가 하모니카를 엄청 잘 부렀어요.
05:39그리고 아버지 노래도 잘했고
05:40그래서 저는 노래도 잘했고
05:43그 다음에는 해금이 있잖아요.
05:45해금은 제가 연주를 잘했어요.
05:48그래서 우리 때는 예술단들에서 이렇게 학교에 와서 뽑아갔어요.
05:53사람들은.
05:53그래서 그때 만수대 예술단에서 뽑으러 왔는데 저는 탈락.
05:57그 다음에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 해금 독주로
06:01도라지.
06:03도라지.
06:03북한이 노래를 해서 제가 전국 3등을 했는데 홍쿨에서.
06:08전국에서.
06:09그래도 저는 갈 곳이 없고
06:12그 다음에 거기에서 아 내 희망 꿈을
06:15아버지가 나한테 올라가지 못하려면
06:17쳐다보지도 말고
06:19어쩌겠냐.
06:21접어라.
06:21접어라.
06:22아버지가 나한테 막 빌더라고.
06:23그래서 내가 그때로부터
06:25예술이라는 두 글자를 잊어먹고 살자고
06:29내가 마음을 다 내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