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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업원 또한 보위부 5과 소속!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중년 여성은 차영철의 어머니가 맞을까?

#이제만나러갑니다 #이만갑 #탈북 #고위급 #간부 #실종 #공작기지 #차영철 #납치 #귀족 #부자 #보위부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매주 일요일 밤 20시 50분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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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아버지 어머님은 이제 아버지가 처음 파견될 때 가명 차철로 파견.
00:06가명? 차철? 차철. 차철.
00:09어디로 가신 거예요?
00:10중국 심양에 파견돼서 심양에 파견돼서 그때 파견될 때 당시 국가안전보여부 312호씨 명칭이 아닌 조선대학무역회사라는 명칭으로 파견을 가졌습니다.
00:23그래서 그 무역회사 명칭과 함께 중국의 심양시 민정국하고 합작을 해서 고구려 찬음유안공사라는 회사를 만들었어요.
00:33만든 다음에 고구려 구입집 식당을 차렸습니다.
00:37고구려 구입집?
00:38식당을?
00:39중국의 기업정부 플랫폼 차차망호에 올라온 고구려 구입집에 대한 정보예요.
00:44제목 보면 심양고구려 외식유안공사 정확하게 위치와 식당명이 일치하죠.
00:50산입시기가 92년 12월 12일 맞죠. 영철씨가 말한 곳이고 주소를 보면 심양시 황고구 흥룡강과 5번지 굉장히 노른자 곳에 식당이 위치돼 있다.
01:02홍해순 부사장 차철 부회장 어제 가명이 차철이었잖아요.
01:06부부가 다 올라갔죠.
01:09그러니까요 이게 궁금한 게 그 중 구입집이라고 이렇게 나와 있는데 그때 북한 식당 없지 않았어요?
01:15그때 제가 알기로는 대한민국하고 중국하고 수교를 맺은 다음에 북한 당국이 그걸 대용하기 위해서
01:21첫 번째로 정보 당국 입장에서 파견된 식당이 바로 저희 부모님 식당이었습니다.
01:25처음이겠네요.
01:26네 초기 식당이고 북한 총용사관이 주재하고 있는 총용사관도 저희 부모님 식당을 자주 업무했던 식당이었습니다.
01:36이게 지금 보면 손님들도 오고 그러면 혹시 뭐 좀 자유로웠어요? 아니면 경직되게 밥 먹어야 되는 거예요?
01:44그때 당시는 엄청 자유 소통의 자유가 편안했습니다.
01:48사진 찍어도 됐습니까?
01:49사진도 찍을 수 있고 서로 같이 춤도 출 수 있고 노래도 부를 수 있고 한국 손님들이 거의 90%였는데요.
01:56한국 손님들이요?
01:59이게 거의 1호라는 거잖아요.
02:01그걸 아버님이 부회장이라는 직함으로 회사를 차리고 그것도 가명으로.
02:06이게 식당이 무서운 게요.
02:08한국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고 뭔가 얘기하게 되고
02:12새로운 뭐 이번에 L회사에서 뭐 관도체 뭘 여기다 공장을 차리는데
02:18뭐 가발 공간.
02:19맞아요 맞아요.
02:20이런 정보도 모을 수가 있어요.
02:21돈도 벌고.
02:22맞아요.
02:23공식화되어 있는 첩보 공간이네요.
02:25그렇죠.
02:261호 식당.
02:27저 심양에서 식당을 많이 가보긴 했는데 이거 가보신 적 있습니까 여기?
02:31저는 가봤습니다.
02:32역시.
02:33우리 이영준 선생님.
02:35그 현직 기자 시절에 그 언론사 소속으로 이제
02:40이 지역의 심양에 그때 가게 된 이유는
02:43그 당시 북한이 이제 식량난 때문에
02:46되게 어려움에 이제 접어들 때요.
02:48제가 갔던 게 96년 7월이니까.
02:50문안의 행군 들어갈 때거든요.
02:52북한 식량 실태를 좀 살펴보자 해가지고 갔다가
02:56선양에서 이제 북한 식당이 아주 괜찮다는 그 현지 가이더 얘기를 듣고
03:01이 고구려 고위집을 갔죠.
03:03이름도 특이하잖아요.
03:04그리고 이 간판이 지금도 아주 오래 전이지만 간판이 인상 깊어서 기억이 납니다.
03:10간체로 한자로 이제 그 여자 같은 경우에도 간체로 이렇게 쓰잖아요.
03:15고을 여자도.
03:16그런 간판이 생각나고.
03:18그다음에 보통 이 북한 식당이 요즘은 되게 빌딩 안에 뭐 1층이나 지하에 있는데
03:24독립 건물이었던 것 같아요.
03:26그 당시에.
03:27독립 건물로 이렇게 돼 있고 간판이 이렇게 세련된 건 아니고
03:31우리 왜 여기 보면 뭐 너왓집처럼 만들어가지고 뭐
03:35교회에 있는 그런 집 같은 건물이었는데
03:39가서 일단 음식이 맛있었던 기억이 나고요.
03:42냉면도 뭐 이렇게 시커먼 이런 면으로 해가지고
03:46식냉면 식으로 해서 팔았고
03:48그다음에 김치 맛있었고요.
03:50그다음에 일하는 분들이
03:52그때는 지금처럼 뭐 노래하고 춤추고 뭐 악기 연주하고 이러는 거는 전혀 없었어요.
03:57그냥 남색으로 이렇게 투피스로 이렇게 정장하고
04:01여기에 이제 김일성 달고
04:05그리고 엄청 친절했던 기억이 나요.
04:08저희가 가서 이렇게 대화할 때도
04:10그때 뭐 이제 그 우리 차 선생님 어머님이 거기서 뭐 일을 하셨다 이러는데
04:16그 그분이 그분인 걸로 특정은 할 수 없지만
04:19그 종업원들이 20대 정도 되는 종업원들이 몇 명 있었고
04:23카운터를 보는 분은 되게 미모가 있는
04:26그냥 다른 옷으로 이렇게 정장을 입으신 분이 있었고
04:29근데 뭐 북한 식당이 되게 그렇긴 하거든요.
04:32이렇게 좀 배 나오고 이렇게 괄괄한 남자 지배인 같은 사장이 있고
04:37그렇죠.
04:38홀 매니저 식으로 이제 계신 분들 카운터도 보고 이러는 여성분이 한 분이 한 분이 한 40대 중반되는 우아한 분이 있고
04:44이제 그 20대 직원들을 지휘하고 이렇게 주문 같은 거 이렇게 조정해주고
04:50이러는 그 기억이 납니다.
04:52우와 어머니였을 때 이석겠네요.
04:54그때 사진을 찍어졌더라면 지금 벌써 시간.
04:57자 이제 부모님은 중국에서 최초의 이제 그 북한 식당까지 차려요.
05:03그러면 우리 영철 씨는 어떻게 따라가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되는 거예요?
05:06네 저는 1993년도에 이제 부모님이 계시는 중국에 유학을 가게 됩니다.
05:13근데 저 누나가 있잖아요.
05:15누나당 같이 원래 갈 수 있는 조건인데도
05:18북한 체제는 원래 가족 한 명은 꼭 북에 놔둬야 되는 그런 현실이 이제 저희는 맞게 됩니다.
05:24다 못 가는 거예요?
05:25다 못 가고
05:26그래서 아들인 저를 이제 중국의 아버지 어머니 옆에 유학을 할 수 있게.
05:32그러니까 이 정도 파워가 있는데도 아이 둘 중에 하나만 데려갈 수 있었다.
05:36그렇죠.
05:37그래서 사실은 한 명은 평양 본국의 인질로 사실은 북한이 잡고 있는 셈이죠.
05:42그렇죠.
05:43당시에 영철 씨 어머니가 그 아버지가 세운 그 식당에서 총 지배인을 하고 있었어요.
05:49그래서 아까 95년 96년 이영동 센터장님이 이 식당에 갔었을 때
05:55맛있었겠다고 그러나
05:56한 미모의 여성분이 홀 지배인 역할을 하면서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06:01그분이 영철 씨 어머니의 가능성이 굉장히 큽니다.
06:04왜냐하면 어머니가 사실은 그 이전에는 출판사에서 근무를 하셨는데
06:09아버지와 같이 중국에 가시면서 어머니의 소속도 보위부로 옮기셨다고요.
06:13그런데 이제 당시 어머니가 식당의 홀이나 총 지배인 역할만 한 건 아니고
06:19사실은 어느 손님이 왔는지 진짜 조청해서 온 사람들인지 아닌지
06:24손님의 구성 출신 국가 그리고 이 손님들의 어떤 좌석 배치 심지어 결제 동선까지를
06:33주도 면밀하게 감시하고 체크하는 일종의 어떤 연성 공작 영화를 어머니도 수행을 하셨다고 하죠.
06:40그리고 그때 같이 이제 한 2, 30대 여정업원들도 실제로는 보위부가 선발한 오포과 여성들이었다고요.
06:50그러니까 사실은 식당이고 외화벌이를 하지만 동시에 대외 공작도 함께 이루어지던 그런 장관이었던 거죠.
06:59오~~
07:00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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