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시간 전
사저 준비 과정서 가세연 측에 매입 비용 빌려
"'10억 보장' 구두로 약속" vs "약속한 적 없어"
朴 측 "이제 와서 인세수익 뺀 채권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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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트랜스크립트
00:00박근혜 전 대통령 대구사도를 두고 유튜브 가로세로연구소 측과 박 전 대통령 측이 여전히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00:13박 전 대통령이 퇴거 위기에 처하자 일각에선 이 모금을 해서 집을 되찾아줘야 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데 관련된 발언 들어보겠습니다.
00:23박근혜 전 대통령
00:29힘들 때마다 저의 정치적 고향이자 마음의 고향인 달성으로 돌아갈 날을 생각하며 견뎌냈습니다.
00:4324년 전인 1998년 낯선 이곳 달성에 왔을 때 처음부터 저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보듬어 주신 분들이 바로 이곳의 여러분들입니다.
00:582022년 2월 17일
01:06지금으로부터 한 4년 전쯤 됐습니다.
01:08이 대구에 있는 이 사자를 25억 원에 매입했는데 그 돈이 어디서 나왔느냐.
01:14가로서 연구소에 김세희 대표 22억 원을 빌려줬고 강용석 변호사가 3억 원을 구워줘서 이렇게 25억 원에 주택을 매입했는데 당시에 취득세 유영하 의원이 3억 원을 내줬고 그 이후에 2022년 4월 22일 그러니까 두 달 뒤에 15억 원은 갚았습니다.
01:34그러니까 25억 원 중에 15억 원을 갚았으니까 10억 원이 남아있는데 이 10억 원을 왜 안 갚느냐라면서 김세희 씨가 이 대구 사자에 대해서 가압률을 건 것입니다.
01:46맞습니다.
01:47자 그러면 장위미 대변인 가압률을 풀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01:51그러면 공탁을 해야 됩니다.
01:52그래서 그 상응하는 뭐 그 가압률가 된 부분에 대해서 이의의 별도의 절차를 거쳐야 되는데 지금 그러기 전에는 아마 본안에서 이 가 처분을 한 부분에 대해서
02:03이 본안이 있어야 되거든요.
02:06제소 명령을 통해서 본안이 있으면 거기서 다툴 것으로 보이는데 핵심은 그런 것 같습니다.
02:11최초의 25억 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대구 사자의 이 매입금으로 쓰였고 그중에 15억 원만 갚아서 10억 원의 채무가 남아있다라는 게 현재 김세희 씨의 주장인데요.
02:25여기에 대해서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은 그 부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가세연이 발간인으로 해서 냈던 지지자들이 편지를 보내고 지지의 응원 메시지를 냈던 책이 있습니다.
02:36그 책에 수익금으로 충당한다고 하지 않았냐.
02:3910억 원에 대해서는 채무를 사실상 갚지 않아도 된다라고 구두를 약속했는데 왜 이제 와서 갚으라고 하느냐.
02:46그리고 구두 약속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가세연 이름으로 냈던 책에서 충분히 충당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돈을 달라고 하느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02:55더 나아가서 사실 가세연이 그 당시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서 스튜디오를 끓일 정도로 어떻게 보면 보수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데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심점으로 역할을 했습니다.
03:07그래서 슈퍼챗도 상당히 수익을 많이 올렸는데 이제 와서 박 전 대통령에게 돈을 내라고 하는 건 너무 비정한 거 아니냐라는 또 이런 의문이 남습니다.
03:16송용훈 전 대변인. 그러니까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서는 책을 발간했을 때 인세라는 게 있잖아요.
03:22책이 몇십만 부 팔렸다고 하면 거기에 대한 인세가 들어오니까 그 인세를 지금 우리가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서 가져간 게 없으니 그 돈은 가로세로 연구소로 들어갔지 않겠느냐.
03:34그럼 그 당시에 책 팔았던 돈 그다음에 여러 가지 후원들 이런 걸로 10억 원 이미 변제된 것.
03:41거의 다 변제된 걸로 봐야 하지 않느냐라는 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주장인데 그 주장이 받아지려면 무슨 계약서 같은 게 있어야 되는 겁니까?
03:49일단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의 설명으로 미루어 보면 계약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요.
03:55당시에 구두합의가 있었다는 취지로 설명을 하고 있거든요.
03:59그러니까 박근혜 대통령 측 변호사의 말은 25억을 빌려줄 당시에 실제로는 25억을 빌렸다기보다는
04:0510억 원은 옥중 서신을 모은 책인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라고 하는 책을 내면 10억 원 정도는 충당이 가능하니 그 부분은 책을 판매한 수익으로 보전하겠다라고 하는 구두합의가 있었다는 겁니다.
04:21그러면 박근혜 대통령 측의 입장은 애초에 채무 자체가 15억이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04:26그래서 이 집을 사고 2개월 뒤에 돈을 갚을 때도 15억을 갚았다라는 설명인 겁니다.
04:32그리고 설령 그러한 합의가 법원에서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 책의 저자 아닙니까?
04:40그럼 당연히 인세 수입이 있어야겠죠.
04:42그리고 실제로 책을 출간한 이후에 일정 기간 동안은 어느 정도 판매가 되었는지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정보가 전달이 되었던 것 같아요.
04:51언론 보도를 보면.
04:52그러면 그 부분에서 최소한 이미 6억 원에서 7억 원 정도의 인세 수입은 발생했을 것이고 사실은 상당 기간 책이 판매됐기 때문에 그 금액이 더 늘어나 있을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이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의 설명입니다.
05:05네. 2024년이죠. 책을 발간했을 당시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오랜만에 대중들 앞에 섰던 적이 있습니다.
05:16그 당시 영상 준비했습니다.
05:17루머라는 것은 어느 시대에도 다 있었죠.
05:24그런데 제게 주로 제기된 것은 성적인 것과 관련된 것이었어요.
05:32그건 아마 제가 미혼이고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05:39힘들지 않았고 억울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그건 정말 거짓말이겠죠.
05:48가까이 있던 사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국민께 실망을 드렸던 거 이거는 참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06:01세월호 7시간 된 여러 가지 루머들이 많았었죠.
06:05거기에 대한 소회를 밝히면서 책 출판과 관련된 기자회견을 했던 당시의 모습을 보셨는데
06:12김기영 대변인.
06:13박근혜 전 대통령이 태어난 곳은 대구로 알고 있습니다.
06:17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하면 떠오르는 곳.
06:19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살았던 서울 신당동 자택이 있습니다.
06:241958년 박지만 씨는 여기서 태어났다고 하더군요.
06:27그리고 나서 1963년에 청와대로 들어가서 십 몇 년을 함께 살죠.
06:32그리고 나서 어머니 아버지가 흉탄에 돌아가시고 난 뒤에 1979년에 그 파란만장했던 신당동 자택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06:43그 이후에 성북동과 장충동을 거쳐서 삼성동에 살고 있었습니다.
06:49그리고 이제 대통령이 돼서 다시 청와대로 들어가죠.
06:51하지만 탄핵이 되고 여러 가지 변호사 비용 등을 감당하기 위해서 삼성동 사절을 매각하고 집도 없었던 당시에
07:02어쨌든 가로세로 연구소 측의 도움 등으로 대구 달성군으로 이사를 갔는데
07:09어떻게 보면 이 집만 보더라도 박 전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세월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07:18아무래도 이제 부모님이 흉탄에 의해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07:22또 본인이 결혼을 안 해서 혼자인 몸 아닙니까?
07:26그런 상태에서 신당동에 왔다가 그 이후에 정치를 하게 되면서 달성군과 연을 맺게 됐죠.
07:33그런데 이번에 보면 25억 원을 저는 사실 가세현 쪽에서 사람들, 지지자들로 하여금해서
07:41저는 꽂아줬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07:45그런데 어떻게 보면 빌려줬다는 거 아닙니까?
07:47그런데 그 당시에 우리가 알고 있는 저 화면에서도 나오지만 삼성동이 있고요.
07:51삼성동에 있는 사저가 있었고 또 하나 뭐가 있냐면 내곡동에도 사저가 있었습니다.
07:57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저 관련해서 벌금이 180억 원, 추징금이 35억 원이 나온 게 있습니다.
08:06그렇기 때문에 오갈 데가 없었거든요.
08:09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도소에서 나왔지만 오갈 데가 없기 때문에 좀 도와주자.
08:16그런 차원에서 가세현에서도 좋은 선의로 한 것 같습니다.
08:19그런데 추징금 이런 걸 갚기 위해서 결국은 본인이 살던 강남 삼성동에 자택도 팔아야 했고
08:26내곡동 사전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경매로 처분됐다는 얘기가 있고요.
08:30그래서 너무 어려움을 겪었죠.
08:32전직 대통령, 물론 예우는 박탈됐습니다만
08:35전직 대통령으로 집 한 칸, 본인이 살고 있는 방 한 칸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
08:40이런 얘기들이 나오더군요.
08:41저희가 좀 안타까운 건 뭐냐면
08:43그때 많은 국민들이 가세현 관련해서 관련된 영상을 보고
08:48슈퍼챗을 주고 후원하게 된 이유는
08:51가세현이 분명히 선의를 가지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보금자리를 준비해 줬다.
08:57그런 차원에서 한 거거든요.
08:59한 예를 들자면 2021년부터
09:022018년부터 2021년 11월까지 가세현에서
09:09이른바 슈퍼챗으로만 번 수익이 24억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09:16그러니까 결국 이거는 가세현을 보고 그런 게 아니라
09:18박근혜 전 대통령을 좀 보고 그렇게 많이 보아주고 슈퍼챗도 보내줬을 텐데
09:24지금 이렇게 법적으로 하는 부분이 좀 많이 안타깝습니다.
09:27안타깝습니다.
09:28서울 신당동 자택.
09:30어머니 아버지를 잃고 신당동으로 돌아왔던
09:33그 어렸을 때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상 준비했습니다.
09:37청와대 이사를 온 뒤에 우리들이 놀 장소는 더 넓어지고
09:44아름답게 꾸면 곳이 많이 생겼습니다.
09:47언니와 저와 지만이 셋이서 틈만 나면
09:50마음 놓고 놀 수 있게 됐어요.
09:54고 박정희 대통령의 두 영예는 16년간 살던 청와대를 떠나
09:59신당동 옛집으로 이사했습니다.
10:01두 영예는 청와대 직원들의 전송을 받으며 이곳을 떠났습니다.
10:05서울 신당동 이 집은 고 박 대통령 일가족이
10:091958년 5월부터 3년 3개월간 살던 집으로
10:12유자녀들은 아버지가 나라의 최고 책임자가 돼서
10:16함께 이 집을 떠난 지 18년 만에
10:18양친을 모두 여인 채 외롭게 돌아온 것입니다.
10:24외롭게 돌아왔던 1979년의 서울 신당동의 모습을 보셨는데
10:29조영상 부대변인 저 당시에 결국은 엄마 아버지가 안 계시고
10:33친척들도 그때 박근혜 전 대통령을 외면했다는 얘기가 있고
10:38그래서 동생들을 가장 큰 영예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먹여살렸다.
10:46밥도 해주고 청소도 다 하고 이런 얘기가 있더군요.
10:50그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10:52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사실상 청와대에서 함께 가족들과 함께 줄곧 살다가
10:57아버님 아버님을 흉탄에 잃고 난 다음에 청와대에서 나와서
11:03신당동 자택에서 살 수밖에 없지 않았겠습니까?
11:06그 당시에는 사실상 가장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요.
11:10동생들에 대한 각종 뒤치다거리라고 하면
11:12그런 것들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처지였을 겁니다.
11:16어떻게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인생에서는 가장 힘들고 고달픈
11:19그러한 순간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11:21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기억들에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는
11:25그런 기억만으로도 아마 신당동 자택의 기억은
11:28마냥 나쁘지만 않았을 것이다 라는 생각도 들고
11:31신당동 자택에 살고 난 이후에는
11:34그 이후에는 어떻게 보면 정치적으로 그런 정치인으로 다시 한번 제기하는
11:37두각을 나타내는 그런 시기도 맞이하지 않겠습니까?
11:40저 때 이후에는 오랫동안 칩거에 들어갔었죠.
11:44정치인 박근혜로 이회창 전 총재를 지지하면서
11:47대구에 출마하기 전까지 저희는 한 18년 정도로 보는데
11:51그때까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철저하게 야인으로 살아왔다고 하더군요.
11:56그렇죠. 그때까지는 대외적인 활동을 자제하고
11:59어떻게 보면 정치인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12:02결과적으로 봤을 때는 많은 국민들이 그 당시에
12:04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치인으로서 활동하기를 기대했던
12:07그런 부분도 있었고 결과적으로 당시 이회창 대표 시절에
12:12정치인으로서 무대에 서게 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죠.
12:17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저택에서 자택에 살긴 했지만
12:20그런 모든 자택에 살는 곳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삶이 녹아있는
12:24그런 부분이 아닌가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12:25제가 한 10년 전쯤에 저기 신당동 자택에 취재를 갔었던 적이 있었는데
12:32그 앞에 저 나무들이 큰 나무들이 계속 자라고 있었어서
12:35저게 문화재로 지정된지 저도 그때 알았습니다만
12:39저 당시 사실 저 집에 들어가 살았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12:42그 당시에는 잠시 했었는데 결국 이게 문화재였기 때문에
12:45그렇게는 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12:47이 문제가 좀 잘 해결돼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집에
12:51이 집 문제 때문에 골치를 날리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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