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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개월 전


8~9개월 만삭에 탄생한 이미자의 명곡은?
이미자, 동백아가씨 '만삭 녹음' 일화 재조명
동백아가씨 인기에…'임신 녹음' 유행 현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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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박수 칠 때 떠나라 이런 말이 있죠.
00:05쉽고 간단한 말을 갖지만 실천에 옮기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00:101년 전 이 말을 실천해서 감동을 안겨줬던 가요계의 거장 이미자 씨가 또 한 번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00:19과거 녹음 1화가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는데 먼저 과거에 불렀던 노래부터 듣고 시작하겠습니다.
00:30여덟울렁이 생각마 여덟울렁이 생각마 여덟울렁이
00:36숨이 열었다는 줄은 첫사랑을 몰라주세요
00:42저건 데뷔곡이고요. 열아홉순정.
00:50진짜 이미자 씨를 스타덤에 올려줬던 노래는 바로 동백아가시죠.
00:54그런데 그 동백아가씨의 탄생 비화가 있습니다.
00:581964년 한여름에 녹음을 했는데 스카라 극장 지금은 없어졌죠.
01:05스카라 극장 종로에 있는 그 목욕탕 건물 2층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01:10그런데 그게 대박이 나면서 1년 만에 100만 장의 판매를 했고요.
01:161990년까지 2천 곡이 넘는 곡을 만들고 발표를 해서 기네스북에 올랐을 정도라고 합니다.
01:23안지종 기자, 사실 몸도 가누기 힘든 그런 만삭에서 저런 노래를 불렀다는 게 참 대단합니다.
01:32네, 맞습니다. 동백아가씨 하면 단순히 한 가수의 히트곡이 아니라
01:36대한민국 질곡의 역사의 한 조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01:40굉장히 대표적인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노래를 할 수 있죠.
01:43이 노래를 불렀을 때 이미자씨의 나이가 불과 23살이었습니다.
01:48만삭의 몸으로 녹음을 했는데 워낙 큰 성공을 거두다 보니까
01:51당시 가요계에는 임신한 상태로 노래를 내면 대박이 난다더라.
01:57또 있어요?
01:57실제로 소문이 돌았다고 하는데 물론 그거에 대해서 입증된 바는 없지만
02:02적어도 이미자씨가 워낙 인기가 높다 보니까 지금까지 나왔다고 하고요.
02:07실제로 그 당시 이미자씨가 어느 정도 인기를 누렸냐면요.
02:09저 노래가 1년 만에 저 노래가 담긴 앨범이 100만 장, 밀리언셀러를 기록을 했고요.
02:14그 당시 원래 회당 2천 원에 불과했던 극장쇼 출연료가 단숨에 20배 넘게 폭등했다는 거죠.
02:21실제로 지난해 인퇴 선언 이후에 제가 이미자씨와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02:26그때 한번 물어봤습니다.
02:27본인을 한마디로 정의해달라고 했을 때 저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동백 아가씨라고 얘기를 했고요.
02:34그러면 왜 이제는 마이크를 내려놓냐고 얘기를 했을 때
02:37동백 아가씨를 내가 예전만큼은 못 부르는 것 같다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02:42누구나 들어도 지난 연말에도 잠깐 또 TV의 모습을 보였는데
02:45충분히 노래를 잘 부르고 있는데
02:47대가의 눈에는 내가 예전만큼 동백 아가씨를 소화 못하는 게 아닌가라고 아쉬움이 들었기 때문에
02:53그런 큰 결단을 내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02:55이 동백 아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애창곡으로 알려져 있죠.
03:00이미자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03:03월남전, 베트남전 위문공연단으로 참석해서
03:08당시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03:10당시 영상 잠깐 보시죠.
03:12특히 비둘기 부대의 단가처럼 된 동백 아가씨의 이미자양이 등장하자
03:18장병들은 미칠 듯한 환호성을 지르고
03:21이양은 일절을 부르고 얼굴을 이양성에 가먹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03:27최선영 평론가
03:45사실 이미자씨의 노래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많이 금지곡으로 지정이 됐었습니다만
03:53이렇게 또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같이 있는
03:56저희가 영상을 흑백 영상을 찾았어요.
03:59이렇게 에뛴 모습에 이미자씨와 박정희 전 대통령 같이 있는데
04:03보니까 얼굴에 묻은 거 떼주기도 하고 굉장히 친근한 모습을 보였었어요.
04:09사실 저때 이미자씨가 어렸지만 사실 거의 준국민 가수급으로 사랑받는 시기였으니까
04:18사실 파월 장병들이 고향의 목소리 들을 때 얼마나 이미자씨를 보고 싶어 했겠어요.
04:22그런데 사실 많은 연예인들이 거의 위험하니까 안 가려고 했는데
04:25대통령께서 이미자씨 꼭 가야 한다 그렇게 좀 와서 위문을 해줘야 한다 했는데
04:30흔쾌하게 갔다 와서 박 대통령 만나서 나 잘 다녔습니다 얘기하고
04:34또 파덕광부 간호사 모임에서 공연도 했고 그런 적도 있었거든요.
04:38그러니까 굉장히 박정희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이미자씨의 노래를 선호했지만
04:43또 이미자씨가 갖고 있는 사회적 영향력이라든가 파급력을 또 생각해서
04:47우리 국민들이 해외 나가 있거나 할 때는 좀 그런 부탁들을 했던 것 같은데
04:51이미자씨가 또 그런 걸 흔쾌하게 또 받아들임으로써
04:54사실상 그것도 애국의 길이 아닐 것 같습니다.
04:55그렇죠.
04:56그런 측면에서 많은 화제를 났던 게 다시 재조명되는 것 같습니다.
04:59가수 이미자씨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남다른 연 또 있습니다.
05:03영상으로 만나보시죠.
05:12두형아 내 동생아 너 있는 곳 어디냐
05:23너를 잃은 부모님은 참 못 들고 온단다
05:38자 두형이 두형이의 얼굴을 보고 계십니다.
05:45유괴 아동이었습니다.
05:49그러니까 결국은 이미자씨가 저 아이를 찾기 위해 노래를 부른 겁니까?
05:53실명을 넣어서?
05:54네 그렇습니다.
05:55저희 두형이라는 이름이 실제 이름이고요.
05:58조두형이라는 4세 아동이었습니다.
06:01당시 서울시 마포구에서 유괴된 아이였고요.
06:05이 두형이를 찾기 위해서 사방팔방 노력을 했지만 결국에는 제1호 미죄사건으로 남은 사건입니다.
06:12이미자씨는 당시에 1962년에 이 유괴사건이 발생을 했고요.
06:161963년에 두형이를 돌려줘요라는 노래로 불렀고 또 이 당시에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은 두형이만 돌려주면 관대하게 처분하겠다.
06:27이렇게 해서 박정희 대통령과 이미자씨가 함께 두형이 찾기에 사방팔방 나섰던 적이 있습니다.
06:33그런데 찾았어요?
06:34아닙니다. 사실 미죄사건으로 나와서 슬픈 소식으로 슬픈 결말로 남았습니다.
06:40아쉽네요. 찾았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지금 컸으면 몇 살쯤 됐을까요?
06:4560대가 됐을 텐데요.
06:47자 김진욱 특보 보면 참 이미자씨 우리 국민 배우 안성기씨 또 국민 어르신 이순재 배우
06:56또 이렇게 국민 가수 이미자씨 등등을 보면 역대 여러 정권과도 다 잘 지내면서 많은 대통령과도 친분을 가져왔던 것 같더라고요.
07:08그렇습니다. 이분들이 어떤 정권과의 친분보다는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07:13그런 사랑들을 바탕으로 해서 많은 정부의 관계 인사들도 이분들을 좋아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07:24특별하게 어느 정부에서 선호받는 연예인이 아니라
07:28정치색이 있는 건 아니고
07:29그렇습니다. 이분들이 국민 모두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07:34그리고 그 사랑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고 하합하는 그런 역할들을 담당해 왔었기 때문에
07:42정권에서도 이런 분들을 좋아하고 이분들의 어떤 역할들
07:47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평가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07:51네. YS와 또 DJ와 함께 사진을 찍었던 모습
07:56또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만났던 모습 등등이 사진으로 보니까 조금 더 새로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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