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시간 전
육영수 여사 탄생 100주년, 기념 활동은?
육영수 여사, 꾸준히 회자되는 이유는?
1974년 광복절, 무슨 일이 벌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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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00:30올해가 무슨 해냐면요. 바로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퍼스트 레이디로 꼽히죠. 유경수 여사가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00:41그래서 홍정수 변호사, 곳곳에서 다양한 추모도 그리고 기념 움직임들이 일고 있어요.
00:46네, 맞습니다. 유경수 여사가 1925년 11월 29일에 태어났습니다.
00:52그래서 11월 29일에 충북 옥천의 관성회관에서 숙모제가 대대적으로 열렸었거든요.
01:0229일에 마찬가지로 또 유경수 여사 탄신 100주년 기념 음악회도 열렸고요.
01:08이뿐만 아니라 사진전이나 포토 에세이 출간까지 다양한 행사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열리고 있습니다.
01:14그렇군요. 이 부분을 한번 짚어봐야겠죠.
01:17이렇게 기념 행사가 탄생 100주년을 할 정도로 유경수 여사라는 인물이 왜 지금까지도 이렇게 꾸준히 회사가 되는 걸까요?
01:26네, 권위주의 정부에서 굉장히 딱딱한 정치체제가 운영되는 가운데 국민과 정부 사이, 권력 사이의 소통자 역할을 잘 해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01:39그래서 당시 사회적으로 약자였던 노동자라든지 농민 또 여성들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01:47그 인간미, 또 때에 따라서는 대통령에게 직원을 하는 어떤 강인함, 이런 것들이 많은 사람의 인상에 남아서 지금도 유경수 여사라는 인물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02:00박 작가님은 개인적으로 어떠세요? 역사학자시니까 유경수 여사를 딱 떠올렸을 때의 생각나는 이미지? 이런 건 어떤 게 있으세요?
02:08대통령이 뭔가 일을 해나갈 때 누군가 반대를 해야 되는데 정치인들이 눈치를 볼 때 안에서 직원을 할 수 있는 사람.
02:16소신 있는 사람.
02:16그래서 보통 당시에 많은 분들이 청와대 내의 야당이라는 평가를 했는데 그런 모습들이 초기 정치에 있어서 조금 뭔가 어려운 점들이 있었을 때 좀 풀어나갈 수 있는 매듭이 됐고 더불어서 정치는 또 굉장히 중요한 이미지의 의미를 갖고 있는데
02:33그 이미지를 잘 만들어줌으로써 그때 일어날 수 있었던 좀 껄끄러운 부분들을 풀어나갈 수 있는데 윤활류 역할을 하셨다라고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02:44이렇게 유경수 여사가 우리 박 작가님 마음속에도 이런 이미지를 갖게 된 이유가 사실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02:52왜냐하면 바로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그날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02:57그날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 때문이죠.
03:00아마도 이제 연세가 어느 정도 되신 분들이라면 그날의 충격 모두 생생하게 기억하실 겁니다.
03:08정보선 작가님 일단 비운의 총탄에 1974년에 숨졌던 그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겁니까?
03:15일단 사건이 벌어졌던 날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 남산국립극장에서 열렸던 기념식에
03:23당연히 대통령과 영부인이 참석을 했었는데
03:26일본인으로 위장한 문세광이 여기에 잠입하고
03:30그다음에 처음에는 입장하는 그 시기를 노렸었는데 경호원의 제지에 의해서 실패했고
03:36내부에 들어가서 대통령의 경축사가 진행되다 한 10분쯤 후에 연단으로 돌진하면서 총을 발사했고
03:44그 총탄에 유경수 여사께서 맞아서 돌아가셨습니다.
03:47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비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됐을 때 그 사람의 삶이 신화가 될 때가 존재하거든요.
03:53거기다가 유경수 여사의 삶은 신화가 되기에 충분한 지점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안겨줬고
04:00저게 또 생방송을 했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소크를 받았던 그 지점들이 있었습니다.
04:08그러면 당시 그때 저희가 보도 화면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04:11한번 영상 보고 이야기 더 나눠볼까요?
04:171974년 8월 15일 우리는 29번째 광복절을 맞이했습니다.
04:25그러한 바로 이 자리에서 김일성 앞잡이의 흉탄이 날랐습니다.
04:34흉탄에 맞은 대통령 영부인 유경수 여사님은
04:39회유를 비는 온 국민의 한결같은 소망도 헛되 그만 운명하셨습니다.
04:49정 작가님, 한번 당시 상황을 그래도 재구성을 한번 해볼까요?
04:53네, 처음에 유경수 여사가 이렇게 있고 대통령이 경축식을 할 때
04:59처음에 문세강이 단상으로 나가면서 권총을 뽑았습니다.
05:03그런데 이제 권총,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전문적인 킬러로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05:07첫 발은 자기 허벅지에 그냥 발사가 됐고요.
05:105발이었죠.
05:102발째, 3발째, 4발째가 단상을 향해 날아갔는데
05:145발째가 약실에 남아있었어요.
05:18그러니까 마지막 탄환은 발사되지 않았다.
05:20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당시 들렸던 총성, 총알의 방향, 총알이 나는 탄환들은
05:265발, 6발, 7발 이렇게 많이 남아있는 지점들이 있었기 때문에
05:30지금까지 많이 회자됐던 여러 가지 음모론의 시작점이었습니다.
05:35저기 보시면 첫 발은 자기 왼쪽 허벅지, 왼쪽 안에 숨겨놓고 있다고 뽑는데
05:39이게 이제 방아쇠, 초보들이 하는 실수죠.
05:42그러니까 방아쇠를 잡은 채 뺐기 때문에 자기 허벅지에 첫 발이 스쳐 지나왔고요.
05:47두 번째 연단으로 돌진하면서 두 발, 세 발, 네 발, 다섯 발 이렇게 쏘게 됐는데
05:53한 발이 이제 불발, 마지막 발이 불발이 났는데
05:56불발이 난 탄환까지 하면 실제로 발사된 것은 네 발.
05:59그리고 자기 허벅지에 한 발을 쐈기 때문에
06:01실제 연단을 향해 날아간 총알은 세 발 정도가 돼야 되는데
06:05실제로 현장에서 들렸던 탄환이라든지 남아있던 탄환이라든지
06:11아니면 이제 총소리를 들었던 걸 확인을 해보면
06:14이제 네 발, 다섯 발 이상의 총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06:17많은 사람들이 이제 얘기들이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그런 지점이었죠.
06:23그런데 좀 궁금해요.
06:26그러니까 당시에 또 기록에 따르면 현장에서 총소리가 7발 정도, 7개가 울렸다고 하는데
06:33그런데 실제로 확인된 탄환은 5개뿐이다 이런 얘기들도 들리나 보죠?
06:39맞습니다. 그러니까 경호원이 이제 발사를 해서 합창단원이 사망했던 적이 있었는데
06:43그게 이제 한 발로 알려져 있었는데 또 여러 발이 발사된 거 아니냐라는 얘기들이 있었고
06:48현장 상황이 대단히 혼란스러웠고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지점
06:52그리고 이제 이후에 현장 보존이라든지 이런 지점에
06:55이제 사람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지점 때문에
06:57이제 현장이 또 치워져버렸던 지점들이 있거든요.
07:00그래서 이제 지금까지 얘기가 나왔는데
07:02확실한 거는 이제 발사된 건 이제 범인이 쏜 총알은 4발, 한 발은 남아있었고
07:07그리고 또 개인적으로 의문인 게
07:09사용했던 권총이 일본의 오사카이니 일본 파출소에서 훔친 권총, 리벌버 권총이거든요.
07:15리벌버는 이제 실린더가 돌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07:18불발이 날 확률이 좀 적어요. 자동 권총, 탄창으로 끼우는 방식은
07:22탄환이 한 발 한 발 나가기 때문에
07:24중간에 탄환이 딱 고장이 나거나 걸려버리면
07:28다음 탄환이 발사가 되지 않거든요.
07:30그리고 이제 슬라이드를 당긴다 그래도 탄환이 빠져나가지 않으면
07:33그냥 그 소위 얘기하는 잼이 걸린 상태로 멈추는데
07:36리벌버 권총은 이제 서부 영화에 나온 그 총이거든요.
07:39그러니까 실린더가 돌아가기 때문에 한 발이 발사가 안 되더라도
07:42이제 다음 발이 발사되거나 아니면 이제 실린더, 좀 익숙한 사람이면
07:46실린더를 손으로 돌려서 사격을 할 수 있거든요.
07:49그런데 마지막 발을 쏘지 못했거나 불발이 났다는 얘기는
07:52이제 범인도 익숙하지 않았고
07:54현장 상황이 굉장히 어수선했다.
07:56그리고 이제 현장의 이후에 현장 감식을 해야 되려면
07:58현장을 그대로 보존해야 되는데
08:00사람들이 거기에 대한 게 좀 없었기 때문에
08:02여러 가지 일들이 나왔던 시발점이 됐죠.
08:05자, 이 시발점.
08:07이날 이제 대통령을 겨냥했던 그 총구가 결국 이제 유경수 여사를 향했고
08:11유교사는 결국 사망하게 됐죠.
08:14그렇다면 이 대한민국 영부인을 사망하게 한 이 범인은 누구였을까?
08:20바로 요시히 유키오는 누구인가?
08:24그러니까 일본인.
08:25이 사람인가요?
08:26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일본인이 아닙니다.
08:29제1교포 2세고
08:30아까 벌써 이름이 많이 언급됐는데요.
08:33문세광이라는 이름을 가진 제1교포 2세입니다.
08:37즉 우리나라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은데
08:40문세광이라는 자가 왜 요시히 유키오라는 이름을 썼는지
08:47조금 살펴보게 되면 문세광이 일본에서 총기를
08:52오사카에 있는 고주 파출소에 가서 권총이랑 탄환을 훔치게 되거든요.
08:58그리고 이 권총을 가지고 한국에 입국을 해서
09:03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려는 그런 지령을 받고
09:07그거를 행동에 옮기려다 보니까
09:09한국 국적자로 입국을 해서 그 행사에 초청인으로 가기는 굉장히 어려우니
09:15일본인의 신분을 가장해서 들어와야 되겠다고 이제 마음을 먹은 것 같습니다.
09:20맞습니다.
09:21그래서 요시히 마키코라는 당시에 문세광의 여자친구라고 합니다.
09:27그러니까 이제 유부녀였던 것 같은데
09:29하여튼 요시히 마키코의 남편을 가장해서
09:34요시히 유키오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됐고
09:37요시히 유키오의 여권 그리고 요시히 유키오의 이름으로 된 초청장을 발급받아서
09:44이제 행사장에 이제 난입을 하게 된 거죠.
09:47그래서 8.15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하기 위해서
09:518월 6일 날 그 여권을 가지고 입국을 한 것이고
09:55그 장충동 국립극장에 가서 박정희 대통령 저격 시도를 했는데
10:01불행히도 유경수 여사가 이제 그 권총에 맞아서 사망을 하게 된 것이고
10:07문세광은 현장에서 이제 체포가 된 것입니다.
10:11그러니까 감염까지 썼다는 얘기예요 결국에.
10:13그럼 궁금해집니다.
10:14이 문세광 왜 총을 들게 된 것일까?
10:18그러니까 감염까지 써보면서 총을 든 이유가 뭐였을까?
10:22바로 이 영상의 그 이유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10:251973년 8월에 발생했던 김대중 납치 사건은
10:35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묵시적 승인이 있었다는 판단이 나왔습니다.
10:40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사건은 당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 씨의 지시에 의해 실행됐으며
10:47사건 발생 이후 중앙정보부가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다는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10:52아니 이거 김대중 납치 사건인데 이게 무슨 상관이에요?
10:58네 지금 이제 그 방송에서 보셨던 것처럼 1974년 8월 8일 날 김대중 납치 사건이 있었는데
11:04이 문제가 일본에 있던 우리나라 야당 정치인을 우리나라 중앙정보부 요인들이 데려오려고 했던
11:11또 때에 따라서는 살해하려고 했던 사건입니다.
11:14그러니까 이게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었고요.
11:21이 73년이 바로 1년 전에 유신헌법이 통과돼서 유신체제가 시작된 시기였기 때문에
11:27한국이 독재로 가고 있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던 거죠.
11:31이때 일본 내에 있었던 많은 동포, 교포들이 흔들림이 있었는데
11:35그중에 흔들렸던 인물이 바로 문세광이었던 거죠.
11:38처음에는 민난 쪽에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한국의 독재에 대한 관심을 갖고
11:42또 공산주의와 관련된 모택동 어록이라든지 이런 책을 읽게 되면서
11:47거기에 심취하게 되는 가운데 조청년의 회유에 빠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1:53그런 가운데 여러 가지 지원 속에서 예를 들어 당시 북한하고 일본을 왔다 갔다 했던
11:59만경봉호를 들어가서 거기에서 뭔가 지령도 받았다.
12:04이런 것들이 나중에 재판문에 나오기도 하는데요.
12:07이런 것들을 통해서 한국의 독재 그리고 김대중 납치 사건과 같은
12:10불이한 일을 저질렀던 박정희를 암살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12:18실제로 이것을 사전에 뭔가 모의하는 것처럼 총영사관의 여기에 대한 어떤 항의,
12:22한국의 주일 총영사관의 항의 문건을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12:27이런 가운데 어떻게 보면 이 일을 실제로 자기가 맡아서 해결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12:34일본인으로 위장을 하고 그리고 한국에 들어가서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시도하게 되었다라고 알려져 있고요.
12:43이 과정에서 본명으로 간다면 당연히 아까 총영사관의 뭔가 문건도 보내고 함으로써
12:48한국에서 볼 때는 들어오지 못하게 할 거다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12:52그러면 변성명을 하고 그래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들어가서 현장에서 활동을 하고
12:58실제로 그 암살 시도를 할 때 한국말보다는 거의 일본말을 써서
13:03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저 사람은 일본인이고 때에 따라서는 고위층 인물이겠구나라는
13:10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을 많이 하거든요.
13:13이런 것들을 통해서 74년에 들어왔다라는 걸 볼 수가 있는데요.
13:171965년에 한일 국교 교섭이 시작된 이후로 사실은 이 김대중 납치사건은 한일 간에 굉장히 첨예한
13:24한국으로 볼 때는 약간 굉장히 일본 측의 공세에 방어하는 체제였었는데
13:31그 부분도 여기에 또 영향을 끼친 부분도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3:35결국은 그런 분노, 어떻게 보면 충동 이런 것도 뒤섞인 상태에서
13:40문세광이 선택한 그 방향은 대한민국 초유의 영부인이 피살됐다.
13:46이런 비극까지 이어지게 되는 거죠.
13:48그렇다면 이 문세광이라는 인물에게 당시 내려졌던 처벌은 뭐였을까요?
13:528.15 사건에 범인 민족의 대적 문세광이 재판을 받았습니다.
14:01내란 목적 살인과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 등 6가지 주목으로 된 문세광에 대한
14:08검찰의 공소 사실을 재판부는 모두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14:13결국은 4개월 만에 사형을, 구형을 봤는데
14:18홍정수 변호사님, 아까 그 나왔던 것 중에 눈에 띄는 게 제목에 반공법 위반이 있네요.
14:23맞습니다. 공교롭게도 최근에 국민들께서도 요새는 내란죄나 이적죄 이런 것들이 익숙한 단어가 됐는데
14:31국가보안법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법인데
14:34마지막에 나오는 반공법 위반, 반공법은 지금은 없어진 법입니다.
14:39앞에 나오는 내란 목적 살인, 그리고 국가보안법 위반은
14:44국가의 위해를 끼친다는 목적이 분명해야 처벌할 수 있는 법이거든요.
14:49그런데 당시에는 반공법이라고 해서 그런 목적 여하를 불문하고
14:54공산주의를 찬양하고 고무하거나 반국가 단체와 접촉을 하거나
15:01이적활동, 이런 전반적인 이적활동에 대해서 처벌을 할 수 있는 반공법을 규정하고 있었거든요.
15:08그래서 문세강이 가장 크게 적용을 받은 법이 이 반공법 위반으로 보이고요.
15:14아까 우리 학생님께서 말씀해 주셨지만 조총련의 문세강이 회유된 것이 아니냐.
15:20조총련은 이제 다들 아시겠지만 일본에서 북한 국적을 가진 교포들이 만든 친북단체지 않습니까?
15:27그러니까 반공법이 적용이 돼서 반국가 단체와의 접촉부터 해서
15:32반국가 단체 활동에 대한 그런 죄를 적용을 받은 것인데
15:38그 문세강을 그때 보면 김호영이라는 조총련의 간부의 회유를 받았다고 하는데
15:44간부가 여러 가지 말을 하게 되는데 지령을 내리면서
15:50그 무기를 해외에서 가져가야 이런 범죄를 좀 더 용이하게 하고
15:56추적을 안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문세강이 실제로 홍콩이나 몇 개국을 다니면서
16:02이 무기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16:04그런데 결국에는 다 실패하게 되죠.
16:06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일본 오사카에 있는 파출소에 가서 권총을 탈환하지 않습니까?
16:13이런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도 조총련 간부의 지령을 받은 것으로 보이고
16:18또 이 조총련 간부는 다소 황당한 발언을 하는데요.
16:23박 대통령을 이토 히로붐에 비유하고 문세강을 안중근 열사에 비유를 합니다.
16:30따라서 문세강이 당신한테 지령을 내리면서 박 대통령을 살해하게 되면
16:36당신은 안중근의 그런 약간 국민 영웅적인 지위를 가질 수 있다.
16:42이런 식으로 회유를 한 것으로 보이고요.
16:45그리고 또 김호영이라는 자가 약간 사례 지령을 내리면서
16:50약간 시적인 표현을 하게 되는데 이것도 말이 재미있습니다.
16:54잔잔한 수면에 달빛이 내리듯이 밤하늘에 이슬이 내리듯이 당겨라.
16:59이런 식의 발언을 했거든요.
17:01이게 굉장히 약간 몽환적인 말이기도 한데
17:04문세강이 이런 범죄를 사주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회유를 하는 과정에서
17:09이런 말들을 한 것으로 보이고요.
17:11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문세강이 이런 지령을 받고
17:15어떠한 지시에 의해서 이런 행위를 했는지에 따라서 범죄가 밝혀졌겠지만
17:19일단 그 당시에 박정희 대통령이 아닌 유경수 여사께서
17:25살해당함을 해서 훨씬 더 중한 처벌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17:29그런데 문세강의 자백 과정에서 조금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숨어 있는 게 있다고요.
17:34네, 소설가인 저한테 딱 맞는 질문인데요.
17:38김기춘 씨가 예전에 여러 인터뷰에서 했던 얘기가
17:428월 15일에 문세강이 체포되고 나서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아서
17:46본인이 당시 투입이 됐었는데
17:48본인이 투입이 돼서 문세강을 프레디릭 포사이즈가 쓴
17:52자칼의 날에 나오는 자칼이라는 이름의 킬러에 비유를 했다.
17:56그러니까 약간 추켜세운 거죠.
17:58거기 보면 소설 내용은 저도 읽어봤었는데
18:00프랑스의 샤를드골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18:04알제리를 독립시키려고 하니까
18:06오랫동안 알제리에 주둔하고 있던 군부대 장교들
18:10그리고 정치인들의 일부가 OAS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18:15샤를드골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하는데
18:18여기 고용된 킬러가 바로 자칼이거든요.
18:20이 자칼이 여러 가지 장치, 총알이라든지 무기를 하는 과정이
18:25너무 리얼하게 만들어져 있었고 되게 재밌었는데
18:28여기 결국은 암살에 실패하긴 하지만
18:30되게 인상적인 캐릭터로 남거든요.
18:32그리고 당시에도 영화를 만들어졌고
18:33얼마 전에도 영화를 리메이크 돼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18:37그런 자칼에 비유하면서 추켜세우니까
18:40문세강은 사진이나 영상 보시면 알듯이
18:43죄인처럼 보이지 않잖아요.
18:45이렇게 본인이 계속 확신범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18:47본인의 추켜세우니까 거기에 그대로 넘어가서 범행을 자백했다고 나오지만
18:52사실은 이미 한 5시간 후부터 자백을 했던 그런 내용들이 있습니다.
18:57그런데 이쯤에서 한번 짚어볼 게 있어요.
19:01우리가 알고 있었던 그날의 이야기를 쭉 정리를 해봤지만
19:04짧게 짚어보면 이것과 조금 다른 증언, 다른 의혹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19:10두 개의 새로운 의혹이 불거지는 건데
19:13먼저 당시에 현장 감식을 지휘했던 서울시 경찰국 이건우 감식계좌
19:20이 사람이 강력하게 제기한 의혹이 하나 있습니다.
19:22보면 사라진 탄두, 이건 무슨 얘기죠?
19:26네, 이렇게 큰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당연히 수사본부가 꾸려지게 되는데요.
19:31그때 수사본부는 검찰이 지휘를 하지만
19:34중앙정보부, 그다음에 지금 서울시경의 감식계도 같이 참여를 합니다.
19:38당연히 총알이 날아갔기 때문에 탄피라든지 탄은 이런 것들은 차단했는데
19:44문제는 탄두가 필요한데
19:46그러니까 그 탄두를 확인을 해야 탄피하고 연결을 해서
19:50이게 누구 총에서 발사된 총알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
19:53그게 다 사라져버린 거예요.
19:56그러니까 총알이 피탄 자국은 있는데 거기서 탄두가 발견이 안 되니까
20:01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하지, 왜 무슨 일이지? 라고 했더니
20:05마침 극장에서 관리하고 있었던 소도구 주임이라는 분이 와서
20:08그거 찾아도 없을 겁니다.
20:11어저께 중앙정보부에서 요원들이 와서
20:13그걸 다 뭔가를 쓸어서 가져갔습니다.
20:16싹 쓸어갔다?
20:17네, 그러니까 현장 보존이 안 된 거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을 것 같고요.
20:22그래서 이 문세관과 관련된 문서는 사실은 한동안 공개되지 않다가
20:292005년에 공개가 됐습니다.
20:32그런데 공개된 내용에서 공식적인 문서에서는
20:35문세관이 뭐라고 얘기를 했냐면 앞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20:381탄은 허벅지, 2탄은 왼쪽 연단, 박정희 대통령이 있는 쪽이고
20:42그다음에 3탄은 불발, 꽂혀 있었고요.
20:44그다음에 4탄이 유경수 여사를 관통을 하게 되고요.
20:48그다음에 5탄이 연단 뒤 태극기를 맞았다고 했지만
20:51이 감식계장님의 말씀에 따르면 4탄만 발견됐고
20:55위치도 연단 태극기 천장으로 조금은 달랐다.
20:59쉽게 얘기해서 마지막 5탄을 쏠 때는 쏜 게 아니라
21:01넘어진 상황에서 그냥 하늘에 됐다고 쏜 거니까
21:04그것을 앞에서 태극기에서 발견될 것과 연결하는 것은
21:08곤란하다는 주장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1:13그런데 홍정석 변호사님, 당시에 유경수 여사의 머리 방향,
21:16이걸 두고도 여러 가지 얘기들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21:19네, 맞습니다. 화면을 보시면서 설명을 드리면
21:24지금 문세강은 연단의 왼쪽에서 뛰어나오면서 총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21:34그리고 유경수 여사는 연단의 오른쪽에 앉아 있었거든요.
21:39그러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총이 발사된 거기 때문에
21:43물리법칙에 의하면 머리가 당연히 왼쪽으로 기울여야
21:49되는데 지금 화면에 보시면 머리가 심하게
21:54오른쪽으로 기울여져 있습니다.
21:56그래서 이것도 굉장히 큰 논란을 낳았는데
21:58그래서 과연 문세강이 쏜 총에 맞은 것이 맞느냐
22:03아니면 다른 총에 맞았을 가능성도 있다.
22:07이런 오해까지 사면서 여러 가지 의혹이 나온 거거든요.
22:10그런데 시청자분들 여러 영화나 이런 것들 보시면 총에 맞으면 사실 총에 발사되는 반대 방향으로 반드시 머리가 꺾이는 경우가 또 많지 않다는 것도 볼 수가 있거든요.
22:22그런데 당시에는 워낙에 총기 사고 같은 것들이 드문 경우이기 때문에 그런 물리법칙에 따라서 머리 방향이 반대이기 때문에 그런 의혹도 나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22:31그런데 또 다른 의혹도 또 제기가 됐어요.
22:34물론 저희가 다 의혹 수준이고 밝혀진 바는 없다는 점 짚어드리지만
22:38문세강이 타고 온 차량이 위장 번호판을 단 고급 승용차 이거라는 건데 이거는 왜 문제였던 거예요?
22:48당시 현장을 감식했던 역시 서울시경의 이건우 계장님의 주장에 따르면
22:53그때 문세강이 타고 왔던 차가 굉장히 고급스러웠기 때문에
22:57당시 경호실이나 경찰이 어떻게 보면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고 식장 안으로 들여보냈다는 거죠.
23:02그렇기 때문에 이 고급 승용차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해서 등록사업소에다가 연락을 해서
23:09이 차량의 소유가 누구인가를 물어봤는데 미등록 차량이다라고 나왔다고 합니다.
23:15그렇다면 여기서 추정할 수 있는 게 문세강 혼자서 이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23:20누군가 공범이 있을 거다 이렇게 얘기를 했던 주장이 있었는데요.
23:25그런데 최근에 조사에 따르면 이 차량은 사실은 호텔 측에서 운영하고
23:32연락 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호텔의 VIP를 모시기 위한 렌터카였습니다.
23:38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주장했던 미등록 차량이라기보다는
23:43그때는 아마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놓쳤던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고요.
23:48어떻게 보면 당시 문세강으로 볼 때는
23:50자신이 조금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것처럼 하기 위해서
23:54굉장히 많은 큰 돈을 뿌리면서 비싼 차를 불러달라고 얘기를 했는데
23:58마침 그 차가 구해지게 됐고 그러다 보니까
24:02국립극장에 도착했을 때부터 사실은 검문을 했었어야 되는데
24:06그 검문 자체가 그 74년에 3.1절 때
24:10경호실이 한 번 발칵 뒤집힌 부분들이
24:13검문을 너무 엄격하게 해서 민원이 많았다고 합니다.
24:16그래서 이번에는 건물을 느긋하게 했던 것들이 문제가 됐었고요.
24:21그리고 문세강은 끊임없이 나는 일본 대사를 만나러 왔는데
24:24그 사람 좀 찾아달라고 얘기를 하는데
24:27그 사람이 고급 승용차에서 내리니까
24:29이 사람은 우리가 건드리지 않아도 될 사람인 것 같다.
24:34조사하지 않아도 될 사람인 것 같다라고 하면서
24:36식장 안으로 들어가서 일을 일으키게 되었다라고 밝혀져서
24:41당대의 어떤 조금 안타까움과 또 미심쩍 어떤 부분들이
24:45그렇게 얘기가 되었습니다만
24:47또 최근에는 이런 것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어서
24:50그 내용들의 어떤 실체가 조금은 더 뚜렷해지고 있지 않나
24:54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24:56아직까지 여러 의혹 단계고
24:58그 단계를 저희가 짚어드리는 거지만
25:01한 가지 분명한 거는요.
25:03문세강이 남긴 죽음 앞에서의 후회입니다.
25:06사형 집행전에 그가 남긴 마지막 유언을요.
25:11한번 직접 확인해 볼게요.
25:12제가 대신해서 읽어드리면 이런 겁니다.
25:15나는 바보였습니다.
25:17참으로 박 대통령과 유교사에 대해서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25:21나는 일본에서 그들에게 속았습니다.
25:24유교사와 죽은 사람 곁에서 같이 살고 싶습니다.
25:28그러니까 암살범인 문세강 마저도
25:31마지막 순간을 후회하게 만든 게 유경수 여사였다는 겁니다.
25:36그러면 유교사가 대체 어떤 삶을 살았길래
25:39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어떻게 보면
25:42국민들이 유경수 여사를 여전히 그리워하는지
25:44유교사의 생애를 한번 저희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25:47그 전에 특별한 사진을 저희 한 자 입수했어요.
25:50바로 정명석 작가님이 제공해 주신 사진인데
25:52이게 어떤 사진이에요?
25:54이게 유경수 여사가 결혼 전에 옥천여중에서
25:57잠깐 가사과목을 가르쳤다고 하더라고요.
26:00그리고 저희 어머니 조장숙 여사께서 옥천여중 출신이거든요.
26:04그래서 이미 이전부터 옥천 얘기를 들었을 때
26:08옥천여중에서 1년에 한두 번씩 유경수 여사가 와서
26:12다과회를 열어서 학생들과 선생님을 만나서
26:16여러 가지 얘기를 나눴다라는 얘기를 들었고
26:18그래서 제가 어머니한테 사진 있으세요 하니까
26:21저 사진을 보여주셨습니다.
26:23당시 재학생들이랑 같이 찍은 사진인데
26:25뒤에 건물 보시면 건물이 좀 특이하죠.
26:28한옥으로 된 건물이었다고 하더라고요.
26:30그리고 석가래가 큰 게 교실에 있었고
26:33그다음에 아궁이도 있었고
26:34옛날 교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고
26:36저는 이걸 보면서 느낀 게 사람들이 보통 출시하거나 성공하면
26:39자신이 지났던 과거를 잊어버리고 현재와 미래에 매달리는데
26:43유경수 여사께서는 옥천여중 그리고 나중에 옥천여가 생길 때까지
26:48계속 옥천을 찾아와서 사람들을 만났다는 점을 보면
26:51현재와 과거를 굉장히 중시했던 분
26:53그리고 어머니한테 얘기를 들어보면
26:55굉장히 단아하고 현모양처 같은 모습을 보여서
26:58인상이 깊었다라고 저한테 여러 차례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27:02이제 유경수 여사의 최근에 공개된 또 다른 사진들이 화제입니다.
27:06한번 볼까요?
27:08보면 유경수 여사가 여러 여성들과 함께
27:12무언가를 정성스럽게 만들고 있는 모습인데
27:14이거는 어떤 사진이에요?
27:16저 사진은 양지 회원들과 장병들에게 전달할
27:21위문대를 만들기 위해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27:26양지회는 유경수 여사가 1960년대에
27:29부녀자들의 굉장히 인권이 좀 약간 어렵지 않았습니까?
27:34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개선하기 위해서 만든 단체인데
27:37소외계층을 위무한다든지 한센병 환자를 지원한다든지
27:43여성 환경운동을 하는 이런 활동을 한 단체입니다.
27:46이렇듯 유경수 여사는 굉장히 여러 가지 선행활동이나
27:51자선활동을 자발적으로 본인이 주도해서
27:54아는 것을 해온 것으로 알려지게 되는데요.
27:57그래서 유경수 여사가 서거하셨을 때
28:00월남전, 찬전, 상위 군경들까지도
28:03몸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조문을 오기 위해서
28:06굉장히 노력한 모습을 보면
28:08유경수 여사가 생전에 얼마나 많은 좋은 활동을 했는지를
28:13볼 수 있는 단편적인 모습으로 보입니다.
28:15지금 소록도에서 유경수 여사 모습 저희 보여드리고 있는데
28:19다음 사진도 하나 살펴보도록 하죠.
28:22이거는 이제 그 유명한 유경수 여사 특활비 장부 이거고요.
28:26그렇습니다. 특활비가 요즘은 굉장히 부정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여지는데
28:32사실은 그때 이제 유경수 여사의 활동비를 받으면
28:35그걸 비서관이 하나하나 가계부처럼 다 기록을 했다고 하고요.
28:40그 기록된 내용들을 보면 놀라운 게
28:42유경수 여사의 평소 상황들을 보면
28:46요즘 외국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은데
28:50그 중에 하나가 한복이잖아요.
28:51그렇죠.
28:52그런데 이제 유경수 여사의 패션 한복이
28:55당시 한국에서 굉장히 인기가 있었고
28:57외국에서도 관심을 받았었는데
28:59저 한복을 옷감을 떠다가
29:02잘 아는 양장점에 맡겨서
29:05직접 만들어 입은 한복들입니다.
29:08직접 만들어서요.
29:09네. 그래서 그 특활비 내부 안에
29:11옷감을 샀던 기록들이 남아있고요.
29:14그리고 또 이 장부에서 눈에 띄는 장면들이 바로 뭐냐면
29:18이 옷을 사는 것뿐만 아니라
29:20유경수 여사가 평소에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때
29:23뭔가 그런 비용들이 필요하면
29:26자신의 특활비에서 그걸 비서관을 통해서 전달을 했는데
29:29여기에서도 좀 배려를 했던 부분들이
29:32이 현금을 보내게 되면
29:34당연히 청와대로 넘어오는 현금은
29:38아주 빳빳한 세종일 텐데
29:39위화감을 갖지 말라고 일부러 헌 돈으로
29:43쓰던 돈으로 보내서 좀 부담을 덜 가지라는
29:46그런 마음씀씀이를 여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29:49그런데 이제 유경수 여사가
29:51또 국민들에게만 사랑을 받은 건 또 아닙니다.
29:55부부간의 또 정도 각별했는데
29:57그 순간이 담긴 사진들도 또 저희가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30:02자, 이 사진인데 박 작가님 이건 어떤 사진이죠?
30:05네. 좀처럼 보기 힘든 사진인데요.
30:08대통령 내외가 청와대 내부를 산책하고 있는데
30:12흥미로운 건 잘 보시면 저 사진이
30:15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입니다.
30:17그렇네요.
30:18그래서 유경수 여사가 대통령을 사진을 찍고
30:21또 박 대통령이 유경수 여사를 사진을 찍고 하는 모습을 통해서
30:25두 분이 어떤 사이, 어떤 관계였는지를 볼 수가 있고요.
30:30또 한편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30:32박정희 대통령이 피아노를 치실 줄 알거든요.
30:34피아노를 치면 거기에 맞춰서 노래도 부르고
30:38지금 이렇게요?
30:40네, 맞습니다.
30:41그래서 특히 이제 황성예터를 이제 연주를 하면 거기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30:46또 탁구를 치는 저런 모습들을 통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정말 아주 좋았구나라는
30:51것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30:52사실 이제 저런 부분들이 어떤 것들하고 연결이 되냐면
30:56음모론하고 그래서 뭐 정권을 위해서
30:58어떤 큰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까라는
31:00그런 음모론하고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라는
31:04것들을 보여주는 또 증거가 되기도 하죠.
31:06지금 이건 또 초상화를 그려주는 모습까지 보여드리고 있는데
31:12유경수 여사의 생존 육성에서도요.
31:15이제 부부의 애정이 또 드러나기도 합니다.
31:17들어볼까요?
31:19본인 하루 혼인을 하게 된 동기가요.
31:23재력과 재물과 권력이 있는 분이고요.
31:28또는 민원이 아니고요.
31:31무뚝뚝한 분이라고 알려져 있고
31:34무선 분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31:36가족끼리 앉아서 얘기를 하다가
31:38우리가 또 농담을 좀 잘해요.
31:40그래서 농담을 이렇게 하면
31:42웃으실 적에 어린 애 같으셔요.
31:46하지만 이제 이런 애정은요.
31:49유경수 여사만 또 넘쳤던 건 아닙니다.
31:51박정희 대통령이 여사를 얼마나 의지했는지
31:53한번 보여드리는 영상이 있습니다.
31:56보면 이제 연구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죠.
32:00이게 청와대 정문 앞까지 부달하니까
32:04박정희 대통령 저렇게 떠나가는 차량 뒤를 붙잡고
32:09오열하는 모습까지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32:14또 더불어서 박정희 대통령의 유경수 여사를 향한
32:17마음이 들은 영상 하나 더 준비했습니다.
32:20책임을 지시는 것도 있어요.
32:23세 분과 함께 또 유경수 여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
32:468월의 그날까지 한번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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