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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일 전


김영남 전 상임위원장 장례, 국장으로 엄수
김영남, 3대에 걸친 북한의 상징적 국가수반
권력 쓰지 않고 살아남은 '권력의 생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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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김용남 동지가
00:112025년 11월 3일 12시
00:15서구하였음을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에게 알린다
00:30북한에서 사실상 2인자로 통하는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지난 3일에 사망했습니다
00:45북한에서 워낙 대대선 손님이 김 씨 일가의 최측근으로 분류되고 2인자 자리까지 올랐었기 때문에
00:52우리로서도 굉장히 낯익은 인물인데
00:53김정은은 물론 중국, 베트남, 해외에서도 계속해서 애도를 표하고 있어요
00:59맞습니다 김영남이라는 사람이 북한의 2인자이기 때문에 사실은 대단한 권력이지 않습니까
01:05그렇기 때문에 북한 내부 그리고 또 이어서 중국, 북한에서도 애도를 계속하고 있는데요
01:13일단은 장례가 국장으로 치러졌습니다
01:15그래서 당, 정부, 무력기관, 간부까지 총집합을 했고요
01:21거기에다가 왕야진 주북 중국대사 그리고 레바밍 주북 베트남 대사도 빈소를 찾아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고 합니다
01:29그중에서 지난 4일 오전 1시, 새벽 1시에 주요 간부들과 함께
01:35김정은 위원장이 이 자리를 참석해서 조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01:41그리고 또 연결식에서 우리나라로 치면 국립묘지라고 볼 수 있는
01:46신미리 애국 열사릉에서 진행이 됐는데
01:49거기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김영남의 유해를 입구에서 직접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01:57저렇게 김정은이 벗어빨로 조문하면서 추모에 나선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02:02생전에 김영남이 그러면 얼마나 북한 내에서 대단한 인물인지 짐작해 볼 수 있는 영상이 있습니다
02:08영상 한번 볼까요
02:10인민을 제일로 사랑하시고 고생이라 고생은 다 겪으시며 인민의 자유로운 오보이시였습니다
02:24위대한 김정일 동지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심장 속에 영생하실 것입니다
02:35저게 뭐냐면요 시청자분들 좀 나설 수 있습니다
02:40그러니까 김정일의 장례식인데 그 추도사를 아들이 아니라 김영남 이 사람이 읽었다는 거예요
02:48그만큼 대단한 인물이다 이걸 보여주는 거예요
02:51네 저게 김정일 때만 그치는 게 아니라 김일성 사망 당시에도 김영남이 직접 추도사를 읽었습니다
02:57그러니까 이대에 걸쳐서 추도사를 읽은 그런 기록을 세운 거죠
03:03그만큼 북한에서 중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03:05한국에 알려진 건 일단 2018년 평창 때예요
03:09그때 북한 대표단을 끌고 우리나라에 와서 많이 알려졌는데
03:13그때 뿐만이 아닙니다
03:14우리나라의 진보 정권이라고 하는 시기에는 대통령을 모두 다 직접 만났어요
03:182000년에 김대중 대통령, 2007년에는 노무현 대통령 모두 만나서 직접 악수하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03:26그만큼 북한에서 외교적으로 얼굴을 담당하는 아주 중요한 사람인데
03:31보시다시피 1928년생인데 56년부터 사회생활을 했어요
03:36이거는 김일성의 혁명세대라는 거죠
03:39그렇게 활동을 하다가 가장 활동을 활발하게 한 게 1998년입니다
03:44김정일이 집권을 했지만 전면에 나서지 않고 외교 무대에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기 때문에
03:50그 자리를 김영남이 대체하도록 했습니다
03:53사실상 헌법적으로는 최고 위치를 자리를 한 거고
03:59그런 활동을 꾸준히 했었던 거죠
04:02그리고 사진으로도 위상이 증명이 되는데
04:05김영남 사진을 보면 가슴에 훈장을 굉장히 많이 달았어요
04:10해보면 한 12개에서 20개 정도가 되는데
04:12대형 훈장, 미니어처메달
04:14저렇게요?
04:15네, 혼재합니다
04:16그 공식 행사에서는 대부분 이걸 착용을 했고
04:19특히 외교나 국빙 방문, 대회 개막식 등에
04:22저렇게 훈장을 가득한 모습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04:26중요한 순간마다 최고 지도자 곁을 지켰고요
04:29지금 김정은과 귀속말을 하는 것을 보면
04:31공식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최고 지도자에게 뭔가 직접 조언을 하고
04:36이야기를 할 수 있는 최고 지도자 가장 곁에서
04:39어떤 비공식적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을 할 수가 있습니다
04:45팀장만 개수만 봐도 어마어마한데
04:46오늘 저희가 몰랐던 이야기 더해서
04:49이 김영남이라는 인물을 얘기해 보려는 이유는
04:53이 인물을 통해서 북한 권력의 한번 이면을 저희가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04:57그래서 김영남 전 상임위원장과 아주 특별한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저희 한 분 모셨습니다
05:03태용호 전 의원님 모셨습니다
05:04어서 오십시오
05:05네, 안녕하세요
05:06친분이 있다고 제가 소개를 드렸는데
05:09일단 김영남 전 위원장과 개인적으로 어떤 친분이 있으신 거예요?
05:12제가 12살 때 북한에서 평양외국학원 영어과에 입학했거든요
05:17그런데 저희 학급에 김영남 위원장의 막내 아들 김동호가 있었습니다
05:23그런데 그 학교는 북한에서 일명 간부치바 애들만 다니는 이런 학교에
05:29저는 평범한 서민집 출신으로서 갔거든요
05:32그래서 그때부터 인열림에 적어서 중학교
05:36또 대학에 가서도 또 하나급이었고
05:38후에 북한 외교부에서도 같이 근무했고
05:41또 김영남 위원장의 막내들 김동호가
05:46저와 저의 집사람을 만날 수 있게 중매 서준
05:50아, 그렇군요
05:51네, 그러니까 아이 때부터 쭉 자라다 나니까
05:54이제 제가 이제 선을 볼 때
05:57자기 여자친구가 있었어요, 그때
06:00그러니까 자기 여자친구에 친구가 있는데 한번 봐라
06:04그래서 이제 맞선을 보고 이제 결혼한 그런 중매 역할까지 했죠
06:08그러니까 중매를 서준 가까운 또 친구의 아버지
06:11아버지요
06:12그래서 12살 때부터 제가 저 집에 자주 놀라갔어요
06:15놀라갔는데
06:17북한은 우리처럼 직장에 그때 당시까지만 해도 급식이 없었습니다
06:22그러니까 간부들이 다 차를 타고 집에 와서 식사하고
06:25또 다시 직장으로 나가고 이렇게 했는데
06:28점심 식사 시간이면 들어와서
06:30또 제일 막내 아들이니까 막내 아들 동무들이 왔다면
06:34와서 우리 교과서도 보고
06:37학습장도 보면서 공부 잘하는가 농담도 하고
06:40같이 놀아도 주고 그런 모습이 생각납니다
06:43또 외교관으로 되셨을 때 당시에 아까 국제부장이었나요?
06:47국제부장 하다가 제가 외교부에 입부했을 때에는 외교부장이었죠
06:51저희 상관이었죠
06:52그래서 유럽에서 대표단이 오면 제가 들어가서 통역도 했는데
06:56그때면 아 뭐 이렇게 조그마하던데 벌써 들어와서 자기 통역한다고
07:02아주 좋아서 그러던 그런 모습이 생각납니다
07:05그러니까 우리로 치면 외교부에 이제 외교관이 되셨을 때
07:07외교부 장관으로 지났던 사람이고
07:09장관했죠
07:10또 중매를 져준 친구의 가끔은 또 아버지셨던 거네요
07:13자 이렇게 김영남이라는 인물을 통해서요
07:15우리가 한번 이 사람이 그러면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까지
07:193대에 걸쳐서 어떻게 생존을 할 수 있었냐
07:24그리고 어떻게 권력의 최측근이 되었냐
07:26그 비결을 한번 알아보려고 합니다
07:28첫 번째
07:3010년을 내다본 정치 초옥이라고 뜨는데
07:34아까 조금 전에 그 카드가 돌아간 걸 보면은
07:36두 여인이 나옵니다
07:38이 사람이 누구고 무슨 관련이 있는 거예요?
07:40북한의 김일성이 장가를 두 번 갑니다
07:45첫 번째 부인은 만주에서 빨산할 때 하던 부인이 49년대에 죽습니다
07:51그 부인의 아들이 바로 김정일이죠
07:53그리고 두 번째 부인은 6.25 전쟁 과정에 만나서
07:576.25 전쟁 후에 결혼하는데
07:59문제는 60년대부터 70년대 초까지
08:03북한의 실권은 김일성과 그 부인인 김성애
08:07두 번째 부인이죠
08:09김성애가 쥐고 있었습니다
08:11그래서 그때는 김성애의 전성시대에 권력의 정점이 있었고
08:16북한 내에서 김성애의 공식 직함은
08:19조선민주여성동맹위원장입니다
08:22그러니까 북한 여성들을 다 쥐고 있는 그런 자리에 있었죠
08:26어느 정도 실권이 있었는가 하면
08:29북한에서 간부로 내가 발탁돼서 인사 검증을 할 때
08:34첫 번째 절차가 동네에 가서 이민반장의 동의가 있어야 간부로 발탁될 수 있어요
08:41이민반장이 그 집 와이프가 정말 엉망이다
08:46맨날 옆집 사람하고 싸우고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지도 않고
08:50이렇게 나쁜 그런 증언을 하면 간부가 못돼요
08:54그런 시스템을 누가 만들었느냐
08:56바로 김일성의 둘째 모였던 김성애가 만들었죠
09:00그런데 70년대 초에 북한에서 이렇게 막 김성애가 뜨면서
09:04자기 동생들을 군대와 당에 이어지게 다 여고
09:08김일성이가 또 예뻐하니까
09:10그렇죠
09:11그래서 모든 중앙기관들에서 김일성의 혁명활동 사상연구실을 다시 꾸립니다
09:17거기에 마지막 관에다가 뭘 꾸리는가 하면
09:20여맹관 여성동맹중앙인의 여맹관이라는 걸 꾸리는데
09:24그건 실제 말하면 김성애가 위원장이니까 그걸 꾸리는 거예요
09:28그런데 당국제부에서도 여맹관을 꾸리는데
09:31김용남이 나타나서 그 여맹관 사진은 다 김성애 사진입니다
09:36김성애가 어디에 가서 이렇게 사진 찍는 거죠
09:38그런데 김용남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09:41저 사진들 다 내려라
09:43그렇죠 이거 왜 여기다 이런 거 권해야 내려라
09:45이렇게 말하니까 옆에 사람들이 깜짝 놀라
09:49이거 당국제부장이 이렇게 이야기하면
09:52당연히 김일성 커미티인데 당국제부가
09:55김일성한테 보고되면 이거 어떻게 되는 거야
09:57저 목 날아날 건데 다 부들부들 떨었어요
09:59그런데 내리라고 본인이 강하게 주장합니다
10:02그러니까 오래 못 가겠구나 했는데
10:05며칠이 지나도록 그 자리에 계속 앉아있어요
10:08왜 김일성이 가만히 있지? 김일성이 침묵합니다
10:12그제서야 사람들이 그러면 왜 김성애에게 다 권력이 집중됐냐
10:19김성애 아들이 바로 김평일입니다
10:22그래서 향후 김일성 다음에 후계시대는 김평일로 가는 거 아니야?
10:27라고 김평일 쪽 김성애 김평일 쪽에 줄을 섰는데
10:31그때 제일 먼저 촉 있게 아니야
10:34흐름은 여기다라고 짚은 사람이 바로 저 김영남이었죠
10:38그래서 그때 당시 북한에서 김영남 하면
10:41정치의 흐름을 10년 남보다 먼저 읽는
10:45그런 대단히 촉 있는 정치 지도자다
10:48뭐 이렇게 소문이 났고
10:50그런데 재미난 건요
10:52항상 이 권력의 향배를 대단히 빨리 보고 어디에 서느냐
10:57승자의 편에 먼저 서는
11:00이 대단한 정치적 강박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11:03우리 정치의 용어로는 풍향계라고 그러잖아요 그렇죠?
11:06권력의 향배를 가장 빨리 알고
11:08김평일 옛날 김정일한테 섰다
11:10그렇죠
11:11이 권력의 흐름을 그렇게 쉽게 읽지를 못하거든요
11:16그래서 김성애 때도 많은 간부들과 자식들이
11:20김평일과 김성애에 한대졌어요
11:22어느 정도는 가면
11:241976년도에 우리나라에서 판문점 도끼 사건이 일어납니다
11:28생각나시겠는지 모르겠는데
11:31그런데 그때 김평일이가 김일성 종합대학 학생이었습니다
11:34그런데 본인이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
11:37나는 인민군대에 탄원한다고 군대 나가겠다고 해요
11:40그러니까 전국에 100여개 대학생들이 몽땅 다
11:44김평일 동지를 따라서 인민군대로 다 군대 나간
11:47이 정도로 나라가 흔들리는 겁니다
11:49그런데 그 전에 벌써 아니야
11:52미래는 김정일이다라는 걸 내다본 사람이고
11:55아니나 다를까
11:561980년대에 들어와서 김종일 체제가 공고화되니
12:01김성애 시대가 물러나고
12:04김용남이 예측인 것처럼 김정숙 시대가 나오는 겁니다
12:08그래서 서선의 어머니는 항일의 여성 영웅 김정숙이다
12:13이걸 김용남은 10년 전에 얘기한 거죠
12:17정치 초기다 암다르다
12:18미래를 내다보는 선관에 있다 이런 설명을 해주셨는데
12:21그것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려울 수도 있죠
12:23두 번째 생존 비결 저희가 한번 살펴봤습니다
12:26우는 모습이 나오는데
12:28이미지 정치에 달인 키워드가 나왔습니다
12:31영상이 하나 준비되어 있네요
12:32올라가 준비되어 있네요
12:35어서 오십시오
12:36반갑습니다
12:37현재 힘드시지 않았습니까
12:39어렵습니다
12:40아니, 평창올림픽에 와서 저렇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었는데
12:45당시 많은 분들이 기억을 하실 거 같은데
12:49그러니까 평창올림픽에 와서 저렇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었는데
13:00당시 많은 분들이 기억을 하실 것 같은데
13:02이게 이미지 정치라는 분석이 나와요?
13:05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북측 단장 대표로 김용남이 온 겁니다.
13:11그래서 남북 공동무대라고 남쪽, 북쪽 연예인들이 공연을 하는 장면이에요.
13:16그런데 그 장면 중에서도 통일이여 오라라는 워딩이 나왔을 때 눈물을 흘렸단 말이죠.
13:23그래서 그 당시에 북한의 이미지가 어땠냐면 북한은 피도 눈물도 없는 로켓맨,
13:29계속 로켓 실험 발사나 하고 이런 사람들이라고 했는데
13:32저렇게 눈물을, 할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딱 보여주면서
13:35그래도 저기 사람 사는 데구나, 이런 이미지를 좀 주고요.
13:40동시에 이제 김정은 당국이 대화로 나오겠구나,
13:43이런 좀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렇게 볼 수 있는데
13:47사람들이 진짜 저게 진짜 슬퍼서 운 거 맞아? 이미지 아닌가?
13:51이런 좀 논란이, 의문이 있었습니다.
13:53그럼 김용남은 누구보다 잘 아시니까 저게 다 계획된 눈물이라고 나오고 있어요.
13:56당연히 계획된 눈물이죠.
13:58저 사진 외에도 평창올림픽 때 남북 공동팀이 들어올 때
14:03김용남 적극대 위원장의 손을 높이들면서 막 이렇게 하는 장면도 나왔어요.
14:10그래서 김용남은 어느 순간에 어떤 모습을 내가 연출을 해야
14:14로켓티맨이라는 김정은의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14:18국제사회에 이제 곧 대화로 복귀할 것이다.
14:22라는 이미지를 어느 순간에 연출하는 걸 대단히 잘 알고 있는 그런 인물이죠.
14:27그렇군요. 김용남의 그런데요.
14:29평창 여기 와서의 또 이미지 정치로 분석되는 장면이 또 있다고 하네요.
14:33한번 영상 한번 볼까요?
14:44저게 왜 그러냐면 저도 이제 영상으로 지켜보고 있었는데
14:48과연 자기보다 나이 어린 백두혈통이 김여정한테 상석을 양보할 거냐
14:52이걸 두고 여러 가지 해석들이 나왔었어요.
14:55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양보를 했습니다.
14:58당시에 북한의 헌법상 국가 수반이에요.
15:01그러니까 의전 서열로는 가장 높아요.
15:03그런데 상석을 뒤따라오는 김여정에게 양보했습니다.
15:08말씀하셨듯이 지휘 막론하고 백두혈통에게 충성하는 북한의 모습을 보여줬다.
15:12첫 번째는 그렇게 해석이 됐고
15:13두 번째는 단순한 예의의 제스처가 아니라 의전적 권력 교환을 연출한 거예요.
15:19원로의 외교관이 이제 젊고 참신한 새로운 여성 지도자, 여성 정치인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줬다.
15:28이것은 정교한 이미지 정치의 연출이다라고 해석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15:34말씀하셨듯이 김정은의 로켓맨의 강한 이미지에서 저 노회한 외교관이 온화한 미소로 상석을 양보했을 때
15:42김여정 역시 웃음에 화답하잖아요.
15:44그럼 북한의 어떤 험악한 이미지에서
15:46이 사람도 이렇게 미소도 짓고 양보도 할 수 있구나
15:49그런 이미지를 연출한 모습이었다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15:54그러면 이런 이미지 정치도 있지만 여기에 더해서 생존 비결이 하나 더 준비되어 있습니다.
15:59마지막 생존 비결을 한번 볼까요?
16:02저렇게 차렷한 자세의 김용란 사진 뒤에 대를 이은 충성심 키워드가 나왔는데
16:07영상 한번 보도록 하죠.
16:09자, 이건데요.
16:12이게 지난해 7월에 공개된 겁니다.
16:15보면은 저희 96세의 김용란이 뒤에 있는데
16:19굉장히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입니다.
16:23이후 음악회까지 저렇게 지팡이를 들고 참석을 하고
16:26부축을 받으며 걸어가는데
16:29저 때 태용호 의원님, 김용란이 귀도 지금 잘 안 들리는 상태였다고 그러는데
16:34보면은 김정은 옆에서 한치의 흐트름 없이 정말 꼿꼿하게 서 있네요.
16:41저게 어떻게 보면 충성심이랄까요?
16:42이게 온몸에 배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16:44당연히 배여 있는데
16:46예를 들면 김정은이가 처음 북한 사회에서 지도자로 등극했을 때 2012년도입니다.
16:53그때 김정은 나이는 28살에 불과한 정말 북한 사람들이 시각으로 봐도 애숭이 지도자거든요.
16:59그러면 행사장에 나오면 제일 먼저 국가 소열의 2위가 김용남이니
17:05김용남부터 간부들이 쭉 도열해 있습니다.
17:08그런데 할아버지가 자기 손잡볼되는 지도자가 나타났는데
17:12저렇게 키가 커요, 김정보다 꼿꼿한 저런 지도자
17:16김용남이 제일 앞에서 머리 숙여서 폴더 인사를 합니다.
17:21그러니까 북한 사람들이 보건대는 비록 젊은 지도자지만
17:24저렇게 원로가 엎드려서 폴더 인사할 정도는 우리도 다 그렇게 해야 되겠다.
17:30바로 이 의전에서의 몸가짐을 김용남이가 딱 정립해 줍니다.
17:34바로?
17:35그렇죠. 그런데 결국 후회 뒤에서도 나오겠지만
17:38장석대 같은 분은 그렇게 안 했거든요.
17:41그러니까 딱 대조가 되는 겁니다.
17:42아니 김용남도 손잡볼되는 지도자인데 지도자니까 저렇게 앞에서 인사하는데
17:50이렇게 되는 거죠.
17:52그러니까 지금도 저 화면에 나오지만
17:54저 나이에서서도 저렇게 흐트림 없이
17:56꼿꼿한 자세로 김정은에게 예의를 표하는 거죠.
18:00그런데 저런 충성심, 몸에 배 있는 충성심이 다가 또 아니라고 그래요.
18:04그러니까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서 굉장히 청렴하게 살았다는 얘기도 전해지네요.
18:09대단히 북한 체제에서 정말 생전 체제형 그런 인물인데요.
18:14가장 중요한 건 저런 자리에 오래 있으면 당연히 여러 가지 교람도범하고
18:20가호도범에서 비판받아서 오르내리 북한에서는 혁명화, 부침을 겪게 돼 있는데
18:26저 김용남 위원장은 단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어요.
18:30이유는 뭐냐면 첫째 권력을 줘도 권력을 저 사람 쓰지 않습니다.
18:35인사권을 안 써요, 저 사람이.
18:36외교 부장이면 전 세계 해외 공간에 있는 외교관들, 직원들을 다 임명 권한이 있지만
18:42단 한 명도 자기가 누구 대사를 시켜, 누구 참사시켜 이렇게 가입 안 하고
18:47두 번째는 저 사람이 북한에서 청렴결백으로 소문하였습니다.
18:52아무리 돈봉 투져도 받지 않고
18:54그래서 일반 사람들은 외교부 안에서도 돈이 다 통하는 데 이 사건에서
19:00저 사람한테는 가져다 줘도 필요 없다.
19:03이게 다 보편화된 인식이고
19:05그다음에 세 번째로서는 여자들을 가까이 안 합니다.
19:09네 번째로서는 술을 못 해요.
19:12아, 술도 안 해요?
19:12네, 와인 그저 한두 잔 정도 하지 술을 안 합니다.
19:17그래서 저렇게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에 걸쳐서 권력소의 2위에 있었지만
19:23측근은 안 해요.
19:25측근이 되면 술도 마시고 이렇게 지도자하고 같이 놀아도 주는데
19:29그런 걸 못 하기 때문에 측근은 안 했지만
19:32그래도 3대에 걸쳐서 권력소의 2위는 계속 유지한 인물입니다.
19:36그렇군요.
19:37이렇게 어쩌면 좀 처절한 생존력을 바탕으로 권력소의 2위로
19:4197세로 사망하기 전까지 김 씨 일가 측근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19:47김영란과 다르게 잔혹한 숙청을 당한 인물들도 존재를 합니다.
19:53그러면 숙청을 피해가지 못한 인물 첫 번째 한번 보도록 하죠.
19:57이 사람입니다.
19:59비운의 형제 김정남인데
20:01이 사람의 생전 육성 인터뷰가 최근에 공개됐습니다.
20:05영상 한번 볼까요?
20:06엄청난 사고를 제가 해봤으니 아무래도 부친의 노예움을 차지 안 하겠으니까
20:14하지만 그게 뭐 저한테 결정적인
20:21부친의 노예움을 차지 안 하겠습니까?
20:25저는 항상 동생이 북한 주민들을 더 잘 살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20:36저는 동생이 저의 진심을 받아들일 수 있는 도량이 있는 사람으로 믿습니다.
20:45자, 독일 어떤 인터뷰요? 언제 나온 겁니까?
20:50네, 저기 2011년 마카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인데요.
20:53김정남이랑 굉장히 친하게 된 일본 기자가 있습니다.
20:56보미 요지라고 도쿄신문 기자인데
20:58그 기자랑 인터뷰를 하는 거예요.
21:00그래서 자신이 지금 상황, 이런 것들에 대해서 자세히 7시간 동안이나
21:05단독 인터뷰를 했던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21:08그렇군요.
21:08그러면 혹시 북한 주민들은요.
21:11당시에 김정남의 존재나 혹시 그의 죽음을 좀 알았을까요?
21:16해외에 나와 있는 분들은 TV에 계속 나왔으니까 해외에 나와 있던 사람들은 다 알았을 겁니다.
21:21아마 북한 사람이 7만 명 정도가 해외에서 TV를 봤기 때문에 다 알 거고
21:27그러나 북한 내부에 들어가서 일반 북한 백성들은 저렇게 김정일에게 김정남이라는 맏아들이 있다는 걸 모르죠.
21:36모른다. 주민들은 잘 몰랐다는 건데
21:38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김정남을 죽인 게 기정사실화되고 있어요.
21:42왜 죽였다고 보십니까?
21:43백두열동 컴플렉스죠.
21:46김정남은 김정일의 장남이고 공식 혼해자에서 나온 첫 번째 아들입니다.
21:51그러니까 사실 공식적으로는 김정은보다 이른바 혈통서열이 높았어요.
21:55자신과 피를 나는 형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권력체제의 어떤 균열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겼고
22:02백두열동의 신성함이 북한 정권의 핵심인데 피를 나는 형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김정은에게는 상당히 불편했을 겁니다.
22:10이 숙청인물 첫 번째 인물이 혈통 관련 문제였다고 하면 두 번째 인물 한번 살펴보도록 하죠.
22:16두 번째 숙청인물 권력의 재물 장성택이 뜹니다.
22:21그러니까 고모부였던 장성택인데 우리 태의원님도 장성택 지방과 좀 특별한 인연이 있으시다면서요.
22:27제가 스웨덴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할 때 장성택의 딸 장금성이가 거기서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22:35그런데 중학교를 다니다가 이제 방학되면 평양에 들어가서 한 2개월 정도 휴가하고 오고
22:42그럴 때면 장금성이가 살던 집을 저희들이 가서 일주일에 한 번씩 잔디도 깎고 집안도 청소하고
22:49그래서 사람 사는 집처럼 계속 관리하고 이런 역할을 하고
22:53또 장성택과 또 그의 부인 김경희가 딸을 보고 싶으면 이제 수시로 스웨덴도 옵니다.
23:01그래서 대단히 이제 장성택이 한 번 스웨덴에 왔다가 노르웨이로 건너가는데
23:06노르웨이로 건너가면서 다른 나라의 여권, 더미니카 여권을 쓰고 노르웨이 갔다가 체포돼서
23:12그 나라 감옥에까지 갔던 그런 일도 있었습니다.
23:16이렇게 딸을 또 유학까지 보내면서 어떻게 보면 유학을 보낼 정도면 굉장히 승승장구했던 거예요. 장성택이.
23:21그런데 숙청이 된 이후 바로 이런 장면들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옵니다.
23:25영상 한번 볼까요?
23:252010년에 김정은이 후계자로 정면에 등장을 했을 때 저렇게 열광적인 환호가 나오고요.
23:33그런데 장성택 옆에서 마지못해 일어서서 박수를 건성건성 쳤다 이런 영상들이 포착이 되는 겁니다.
23:42게다가 조금 저렇게 옆에서 박수를 치는데 저게 좀 건성건성 치는 거 아니냐라는 주장들이 나왔었고
23:50또 팔걸이에 기대고 앉아있는 장면도 저희가 잠시 뒤에 보여드릴 텐데
23:56좀 자세가 불량하다라는 지적들 저렇게요.
24:02좀 옆으로 삐딱하게 뭔가 서 있죠.
24:05그러니까 저런 공개석상에서 저런 장면들이 계속해서 포착이 되니까
24:08이게 최고 존엄함에서 좀 불경한 거 아니냐 이런 지적들이 나왔다는 거예요.
24:12박세영 교수.
24:13그 장성택의 짝다리 박수 타이밍이 늦은 건 시선처리 이런 행동이 실제로 불충의 상징으로 보일 수가 있는 게
24:22앞서 말씀하셨듯이 다른 사람들은 과장된 제스처로 박수를 치고 심지어 울면서 연호하잖아요.
24:27저렇게 톤도 넣고 있고요.
24:28그렇습니다.
24:29그런데 그거와 비교해보면 너무나 장성택의 제스처가 눈에 띄게 다른 거죠.
24:34단순히 실수가 아니라 사상적 일탈이구나라고 해석을 하는 게 북한 사회입니다.
24:39왜냐하면 북한에서 이런 주민들의 행동이나 제스처는 단지 한 개인의 어떤 타고난 무엇이 아니라
24:46권력 충성도의 언어로 작동을 하기 때문인데요.
24:50따라서 장성택이 이건 최고 지도자에게 불충한다라는 낙인이 찍힐 수가 있습니다.
24:56장성택은 김정은의 고모부이기 이전에 유년기 시절에 사실상 보호자 역할을 했었잖아요.
25:03스위스에서 본인의 신분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장성택 부부가 사실상 후견인 역할을 했습니다.
25:08그래서 김정은도 장성택에게 굉장히 의지를 한 고모부였단 말이에요.
25:12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이 절대 권력이 됐고 그러다 보니까 김정은에게도 뭐랄까 본능적으로
25:19위계의 어떤 정신, 위계 인식의 균열 같은 게 있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25:25그래서 오히려 어릴 때 그런 친밀했던 고모부의 모습이
25:28내가 절대 권력이 됐는데 날 여전히 어린아이로 보내 라는 인식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25:35어떻게 보면 권력의 최정점에 있던 인물이 그것도 고모부가 숙청이 된 거예요.
25:39그럼 북한 사회에서는 이걸 굉장히 저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것 같거든요.
25:43당연히 충격적이었죠.
25:45그때 당시 며칠 동안은 북한에서 사람들이 일을 못했습니다.
25:48지어 장마당에 가면요.
25:50장에서 사람들이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모여서 다 장성택이 이야기만 합니다.
25:55왜냐하면 이 장성택이 수정될 때는 대단히 북한이 이례적으로 행동합니다.
26:01노동신문 아야 한계 면에 장성택이 죄행, 죄목을 구체적으로 실는데
26:06북한 사람들이 신문을 읽으면서 아니 김일성의 사위가 또 김정일의 매형이잖아요.
26:13이런 인물이었다고?
26:16별의별 내용이 다 나와요.
26:17마약을 쓰고 해 나가면 까지노 다니고 여성인이 많았고
26:21그러니까 북한 사람들이 당연히 북한의 롤 모델이 되었어야 할 김일성의 사위가
26:28이런 인물이 지금까지 김일성의 사위였다니 사람들이 너무 충격이어서 말을 못했죠.
26:33장성택이 저렇게 처형될 때 마지막에 북한 군인들이 이렇게 목을 누르잖아요.
26:37이것도 어떤 의미가 있다면서요.
26:39북한이 그때 당시 거의 매일 연이어서 장성택에 대한 보도를 했는데
26:45그때는 시간을 다투었습니다.
26:47왜냐하면 장성택 그 계파 일당을 다 처리하지 못했거든요.
26:52그러면 장성택은 이제 끝났다 죽었다라는 걸 빨리 사회에 알려서
26:57그런 일당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이렇게 눌러야 되는데
27:02그 눌르기 위한 가장 상징적인 사진이 저렇게
27:05비록 장성택이 김정은의 거모부지만
27:08저 평범한 군 장교가 목을 내리 누르지 않습니까?
27:12이 정도로 이제는 끝났으니까
27:13이제는 더 장성택에 기대지 마라.
27:17이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27:18태현이 짧게 여쭤보면 우리가 김영남 얘기를 하니까
27:21김정은, 제2의 김영남은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할까요?
27:24글쎄요. 지금까지 김정은 옆에서 가장 오래 생존하고 있고
27:29측근에서 지금 있는 것이 조영원이라든가
27:33이런 몇몇이 보이는데 조금 더 두고 봐야 되겠습니다.
27:38김정은 체제가 지금 13년째인데
27:40북한에서는 13년 정도 무탈했다고 해서
27:44그것이 결국은 영원한 생존을 담보하는 건 아니거든요.
27:48지금까지 세 분과 함께 북한의 2인자와 숙청에 대해서
27:51한번 몰랐던 이야기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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