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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시간 전


박정희·박태준, 58년 전 '영일만의 기적'
1968년 4월 1일 '포항제철 신화' 탄생
임직원 39명으로 시작…영일만의 기적 이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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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4월 1일, 사흘 뒤면 4월 1일 우리나라의 조선 자동차 건설업계의 기반을 닦아준 종합제철소가 탄생한 날입니다.
00:1258년 전 명일만의 기적을 만들어낸 두 사람의 모습을 화면으로 확인해 보시죠.
00:21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가동 1년 만에 수출과 경영합리화에 크게 이발이한 포항종합제철의 박태준 사장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달아주었습니다.
00:35박재희 대통령을 제철소가 이루어야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다는 그분의 인력과 기획과 의지에 의해서 우리 포항종합제철이 방성했고
00:54미안합니다.
00:58이런 폐니가 눈물부터 내려나 보나.
01:08앞서 삼성이나 또 SK, 현대차, 우리의 참 자랑스러운 기업들을 소개해드렸습니다만
01:15과거에는 공기업이었죠. 포항제철. 지금 이제 포스코가 됐습니다.
01:19김정일 특보 보면 벌써 58년 됐다고 합니다. 이 회사가 된 지.
01:24그러니까 이 철강. 우리나라에서 이 철강 모든 거의 모든 자동차부터 해서 많은 제품에 쓰이고 있지 않습니까?
01:32이걸 우리나라가 직접 만드는 거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01:35그렇습니다. 1960년대에 우리의 국민소득, 1인당 국민소득이 얼마였냐면 불과 170달러에 불과했습니다.
01:45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이 종합제철소를 짓겠다라는 꿈을 가졌던 것.
01:50이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을 현실로 만들겠다라는 생각에 다름 아니었을 텐데
01:56그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이 철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사막으로 딱 한 것밖에 없었습니다.
02:04그런데 포항에 그것도 이 허지 벌판에 새로운 종합제철소를 만들겠다라고 생각했다라는 것.
02:11이 자체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이렇게 얘기하고요.
02:15철이 산업의 쌀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02:20그만큼 가장 중공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제철소가 필요한데 이 제철소를 만들겠다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요.
02:28그래서 1976년도에 포항제철이 포항 3기를 만드는데 이 당시에 든 비용이 6200억입니다.
02:39제철소를 짓는 데 필요한 거니.
02:41이 돈이 무려 그 해 정부 예산, 한 해 정부 예산하고 맞먹는 금액이 필요할 정도였는데
02:48그 부분에 대해서도 집중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은 덕분에
02:53지금 포항제철이 69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매출 실적을 올릴 수 있는 그런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03:03포항제철을 만들고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그때 당시에 정치적 리더십과 기업들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03:12지금 우리나라에 발전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03:15과거에 박정희 전 대통령, 무한한 신뢰 속에 종합제철소 건설을 맡았던 박태준 전 회장.
03:24199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를 방문해서 임무 완수 보고를 올려 그게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03:33당시 화면 만나보시죠.
03:37대통령께서는 제2고로에 원화를 직접 넣으셔서 고로를 가동시켰는데
03:42고로에서 쇳물이 쏟아지는 순간 모든 종업원들은 우렁찬만세를 불렀습니다.
03:53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03:59어떤 고통을 당해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04:04자기의 한 몸 희생할 수 있는 힘을 많이 일을 할 수 있어
04:14아무 소리 말고 마다 각각
04:18일찍이 각각에서 근무하셨고
04:23또 빠짐 드린 대로
04:26저는 대임을 성공적으로 말소했습니다.
04:34예, 저렇게 과거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는 박태준 회장의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04:44종합제철소를 맡기면서 임자 뒤에 내가 있다. 소신껏 밀어붙여봐.
04:49하지만 그 이후에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지지 선언을 거부했던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04:54그랬더니 그 친구가 원래 그래, 냅둬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04:59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력의 어떤 힘을 비교하면
05:04생각하면 이런 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기는 합니다.
05:08그럼에도 믿어줬다는 게 눈길을 끄는군요.
05:11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씨의 관계는 사실 굉장히 깊은 관계입니다.
05:15박태준 씨가 원래 군인이었거든요.
05:17그런데 육사에서 공부를 할 때 박정희 대통령이 교관으로 하면서 두 사람이 스승과 제자 관계로 만났습니다.
05:24그리고 얼마나 아꼈냐면 만약에 5.16이 실패하면 박태준이 내 뒤를 봐주기 위해서 너를 참여시키지 않은 거야라는 얘기를 했을 정도로
05:33원래부터 각별한 사이라고 하고요.
05:36그런데 대한중석이라는 기업을 맡겨서 1년 만에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을 하게 됩니다.
05:42이때부터 박정희 대통령은 포철이라는 사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1년 예산에 맞먹을 정도의 돈을 쏟아부어야 만들 수 있는
05:51국가가 걸린 이 중대한 사업을 박태준 회장에게 맡기고 이 사업을 성공시킬 것을 끝까지 믿어줬습니다.
05:59그래서 정치적으로 어떤 얘기가 있어도 사실 박태준 회장이 여기에 대해서 특별히 말을 하지 않았거든요.
06:05그럴 때도 박정희 대통령이 끝까지 보호해 주면서 박태준 회장이 마음껏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모든 걸 도와주었습니다.
06:13그래서 92년 10월 3일 개천절 광양 사설비 중공실을 치렀던 박태준의 국민유지를 방문해서
06:20박정희 영전 앞에서 임무 완수 보고를 올렸는데요.
06:23이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회장 같은 어깨범위 산업화의 영웅들 때문에 우리나라 여기까지 왔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06:32눈물을 흘렸던 그런 아주 한국 산업화의 수련한 대단원 같은 장면이었다고 하겠습니다.
06:38저 과거에 저런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었던 것인데 저분들은 지금 다 대한민국에 없습니다.
06:48다 돌아가셨습니다.
06:50박태준 회장의 든든한 백은 박정희 전 대통령만 있었던 건 아니라고 합니다.
06:55삼성의 이병철 회장도 박태준 회장을 몹시 아꼈다고 합니다.
07:00지금 투샷으로 보시는 것처럼 이병철 회장과 박태준 회장의 과거 모습.
07:05나이차가 17살 나는데도 그때 정권지 대변인이 굉장히 우정이 깊었다고 그러네요.
07:10나이차는 17살인데요.
07:12두 사람 간의 인연은 따로 있습니다.
07:14일본 와세대 대학을 같이 졸업한 동문이라는 거죠.
07:20그런데 이병철 회장이 얼마나 박태준 회장을 아꼈느냐.
07:23본인의 호가 호암이에요.
07:25그런데 박태준 회장에게 청암이라는 호를 따로 지어줬다고 하고
07:30삼성중공업 초대 사장의 박태준 회장에게 자리를 제안했었는데 그때 당시에 일화도 재밌습니다.
07:38박태준 회장이 내가 국민으로서 일했고 또 포항제철에서 국가의 일을 계속해왔었는데
07:45사기업에 가서 영리 추구하는 데 얼마나 도움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겠느냐.
07:50그래서 고사를 했다고 합니다.
07:53그런데 이병철 회장이 박태준 회장의 능력을 굉장히 높이 평가해서 자기의 고민,
07:57경영상의 고민이 있었을 때는 박태준 회장을 항상 불러서 자기의 고민이 이거니까
08:03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의견을 자주 물어봤다는 거예요.
08:06그때마다 상당히 좋은 조언을 해줘서 이병철 회장이 돌아가시는 그날까지도
08:12박태준 회장을 굉장히 후배지만 존경하고 의견을 높이 샀다는 후문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08:19삼고철을, 삼공중공업 초대 사장으로 모시기 위해 삼고철을 했는데
08:23결국 끝내 그 뜻은 이루지 못했었고요.
08:26박태준 리더십을 조명해보면 포철 임무 완수 후에 빈손으로 퇴직을 했고
08:31DJP 연대를 통해서 JP,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에 자민연 총재도 했었고
08:40총리도, 국무총리도 했었죠.
08:42또 36년간 산 자택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기도 했었습니다.
08:47김중석 후보, 사실 지금 보면 친명, 반명 등등으로 싸우고
08:53조국 혁신당과의 합당이 무산되고 이렇게 사실 통합이 잘 안 되고
08:58또 국민인도 마찬가지예요. 한동운 게 쳐내고 등등의 여러 가지
09:01분열상으로 정치가 어떻게 보면 점철되어 있는데
09:05과거에는 3당 합당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만 합당, 또 DJP 연대
09:10이런 것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왜 그게 안 되는 거예요?
09:14글쎄요. 과거에는 조금 더 정치의 낭만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09:19당시에 많은 산업화를 대표하는 세력과 또 민주화를 대표하는 세력 간의 경쟁
09:27그리고 그 갈등이 존재했었습니다.
09:30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통합을 위해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09:34함께 나아가야 된다라는 그런 목표에는 동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09:39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가장 결정적인 게 DJP 연대라는 것을 만들었던 거 아닙니까?
09:49이 과정 속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박태준 회장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09:56그리고 똑같이 당시에 신한국당의 이해창 총재도 박태준 회장에게 함께하자라는 제안을 합니다.
10:02그때 박태준 회장이 신한국당의 이해창 총재의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10:10동서의 화합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화합 이런 목표를 가지고
10:16김대중 대통령과 손을 잡고 특히 DJP 연대를 만들면서 참 있는 총재까지 이루는
10:23그래서 당시의 어떤 국민 통합이 어떻게 보면 구호로서뿐만 아니라
10:28실질적인 통합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계기점이 되었던 게 아니냐
10:34이런 평가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38포스코 창립 이야기 해봤고 박태준 리더십
10:41왜 지금은 정치권에는 이런 모습이 보이고 있지 않느냐
10:44한번 조명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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