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왕 회장의 간척 신화, 할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도 손자가 완성할 수 있어 보입니다.
00:08현대차 정의선 회장이 그룹의 미래를 위한 텃밭으로 전북 새만금을 택했습니다.
00:16정주영 회장이 주도한 간척 사업의 뿌리를 둔 바로 그곳인데, 전협포론가 정의선 회장이 새만금에 뭘 하겠다는 겁니까?
00:24현대차 그룹 요즘 중점 종목이 AI 로봇이잖아요. 바로 새만금을 그곳에 거점으로 삼고 무려 9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가 있습니다.
00:33새만금이라는 것에 굉장히 눈길을 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00:36현대차 그룹의 장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 우리나라 간척지 사업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죠.
00:43충남 서산 간척지에 상당히 공을 많이 들었고, 그 과정에서 공산하는 과정에서의 우여곡절 성공 에피소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00:52그리고 이렇게 간척지 사업을 하게 된 이유가 또 굉장히 눈길을 끄는데요.
00:57정주영 회장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00:5970년대에 농경지가 너무 부족한 현실을 보면서 좁은 국토를 한 뼘이라도 더 늘려서 물려주는 일,
01:07그리고 기업을 경영해서 고용을 창출하는 것도 보람있고 중요하다고 하면서
01:12그냥 기업만 경영한 것이 아니라 간척지 사업에 굉장히 집중했던 것이죠.
01:16그런 점에서 본다면 할아버지가 개척하려던 그 정신을 이어받아서
01:21손자가 새만금에서 새로운 미래 사업을 펼친다, 이런 해석이 나오고 있는데요.
01:26그저께가 바로 정혜선 회장의 할아버지인 정주영 회장의 25주기였습니다.
01:32날짜를 보나 장소를 보나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01:36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25년이 됐지만
01:39밖은 또 손자와 아침 식사를 함께 했었을 만큼
01:44자신을 각별히 아껴줬기 때문에 손자의 그리움은 여전합니다.
01:50할아버님의 신념과 모든 도전은 언제나 사람에서 시작됐습니다.
01:56할아버님께서는 사람의 가능성을 믿으셨고
02:00사람을 위한 혁신을 이루셨습니다.
02:02겨울에 눈이 오면 눈을 보고 또 봄에 꽃이 피면 꽃을 보고
02:09저에게 할아버님 앞에서 시를 지어서 낭독해보라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02:15오늘의 이 아름다운 음악을 할아버님께 바칩니다.
02:21본인이 일군 텃밭에 미래를 이렇게 건 손자를 보고
02:26참 대견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02:28서산 간척지야말로 정지영 회장의 해봤어?
02:33이 정신으로 밀어붙인 거 아닙니까?
02:35해봤어? 이 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02:38그러니까 정지영 회장의 창의성을 보여주는 곳이
02:41바로 서산 간척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02:4480년 즈음에 서산 앞바다의 간척사업에 착수를 하게 됐는데요.
02:49아시다시피 서해는 조수간만의 차가 굉장히 큽니다.
02:52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공법들로도 이곳에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는 거죠.
02:56인부들도 여기 물살이 너무 거세서
02:58아 여기 참 큰일 났는데 이런 이야기들을 했다고 합니다.
03:02이때 왕 회장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발의가 되게 됩니다.
03:07그러니까 울산에 폐유조선을 나중에 고철로 쓰려고 보관해뒀던 것이 있는데
03:16이것을 가져왔던 것이죠.
03:18그래서 물의 흐름을 늦추는데 물마귀 공사를 함으로써
03:22이른바 정지영 공법으로 탄생을 시키게 됩니다.
03:25그래서 그 사업에 있어서 기존의 공기를 35개월이나 단축시켜서
03:29공사합의를 크게 절감시키는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됐습니다.
03:34어떻게 보면 정말 불도저처럼 밀어붙인다는 생각이 들지만
03:37그러면서도 권위의식은 또 크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03:41보니까 30살 가까이 차이 나는 회사 직원.
03:45이제는 우리가 다 아는 그분과도 호영호재 이런 거 했다는 소리가 들리네요.
03:50그렇습니다.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하고의 일화인데
03:52그때 당시에 소련으로 갈 때 기내에서 인터뷰를 하다가
03:56정주영 회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한테 이렇게 인터뷰를 한 방송 사회만 하고 있으니까
04:02이명박 전 대통령이 형님 한 방송국에만 특정 주면 우리 다른 회사에 박살납니다.
04:08이렇게 하면서 26살 차이가 남해도 호영호재를 하는 걸로 봐서
04:12정말 고인의 소탄한 리더십이 있었다.
04:14이런 부분이 조명되는 것 같습니다.
04:15그렇군요. 저렇게 형님 박살납니다라는 일화까지 뒤늦게 알려진 건데
04:20왕 회장의 역사는 곧 실패의 역사라고 해도 사실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04:26신용으로 쌀 가게를 인수하면 쌀 배급제가 도입돼서 문을 또 닫아야 했고요.
04:31사채까지 얻어서 투자한 차 정비 공장은 화재로 빚더미에 앉아야 했죠.
04:36하지만 절대 포기란 없었습니다.
04:41우리는 우리가 생활에 나가는 데 모든 분야에 있어서 다 어려운 게 있지 쉬운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04:49그 어려운 것은 우리가 다 극복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04:53어디 하나 한국의 자동차.
04:55우리의 자동차가 대개 시장을 휩쓰는 날이 온다고.
04:59나는 확신합니다.
05:02저 목소리 생생한 분들 많으실 것 같아요.
05:05그런데 김현진 변호사님.
05:07그렇다고 해도 조선소도 없는 나라에서 어떻게 맨몸으로 말 잘해서 차관을 턱 다 옵니까?
05:14그리고 대미 통상 협상에 있어서 정말 우리의 유효한 카드 중 하나가 된 조선업 말이죠.
05:19이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05:21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정주용 회장이 조선업을 좀 부응시켜봐라.
05:26이런 미션을 받았다고 해요.
05:28그런데 주변에서 포기하라고 했고 또 이게 돈이 있어야 되는 거니까 미국과 일본에 차관 협조를 했지만 계속 거절을 받았다고 합니다.
05:38그러자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서 이거 참 어렵겠는데요라고 했더니 자리에 함께 배석했던 김학렬 부총리를 향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앞으로 이 정주용
05:47회장 도와주지 말게 이렇게 엄포를 놨다는 거예요.
05:50그래서 그 이후에 다시 마음을 다잡은 정주용 회장이 영국으로 가서 은행과 차관 협상을 벌이는데 이 자리에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인사가
06:00있었던 모양입니다.
06:02영국의 조선 컨설팅 회사의 롱바텀 회장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이분을 향해서 지갑을 열었습니다.
06:08지갑을 열어서 돈을 꺼내준 것이 아니라 5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서 흔들어 보였다는 거예요.
06:14지금 보시다시피 거북선이 있죠. 대한민국은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서서 이렇게 철갑선을 만들었던 나라다.
06:23우리가 산업화에 300년 뒤졌을 뿐이지 만약에 차관에 협조만 해준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성과를 낼 수 있다.
06:30이렇게 설득을 했다는 거죠. 그렇게 해서 차관을 유치하게 됐고 그래서 1972년에 울산 조선소 기공식을 마련하게 됐던 것입니다.
06:40조선소 기공식 이후에 찾아보니까 딱 11년 만에 현대중공업이 그 건조량 기준으로 조선사업 부문에서 세계 1위에 등극을 했었더라고요.
06:50이제는 이 차관을 또 거절했었던 미국이 우리나라에 마스가까지 요청을 하고 있고요.
06:57매일 아침 밥상머리 교육을 했던 왕 회장 아마 이걸 가르치고 싶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07:06민망일을 앞서가는 걸 갖다 지금서부터는 쫓아가는 건지 아니라 그 사람들이 가는 시점에 우리는 동승하는 거예요.
07:13크고 앞서갔다 이래서 우리가 좌절할 필요가 없어요.
07:17모든 기업인은 이런 거예요.
07:19기업은 사업에 손해를 봤다거나 이래서 실패했다고 생각할 것이 없어요.
07:27실제로 전혀 변호가 정재웅 회장이 새벽 5시마다 자식들을 집으로 불러 모아서 함께 아침을 들면서 한 밥상머리 교육 상당히 유명하잖아요.
07:38그런데 정의선 회장 같은 경우는 손자인데 너무 예뻐해서 특별히 3년간 데리고 살았어요.
07:44그렇습니다. 정의선 회장이 직접 밝힌 바 있죠.
07:46할아버지가 고교 3년 동안 같이 살면서 특히 아침을 같이 먹으면서 많은 교육을 해줬다라고 밝혔습니다.
07:52겸손한 태도라든가 세상을 잃는 눈을 이 자리에서 배웠다고 직접 밝힌 바가 있는데요.
07:58정지영 창업체가 얼마나 손자를 예뻐했냐.
08:01정의선이라는 손자가 1995년 결혼한 이후에도 아침밥을 할아버지랑 같이 먹었다고 하니 그 사랑이 얼마나 각별했는지 짐작할 만합니다.
08:10그리고 이 종로구 청운동 자택이 결국은 정의선 회장에게 나중에 증여가 됐는데요.
08:16이 집은 단순히 건물이 아니라 현대차 그룹에 있어서는 가업이라든가 집안의 역사를 상징하는 그런 곳이기도 합니다.
08:26정지영 회장도 38년이나 이곳에서 살았고 평소에도 집자락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아들에게 물려줬을 때 정몽구 회장한테 준 것도 결국은 손자 정의선
08:36씨에게 증여될 것을 연배 뒀던 거 아니냐.
08:39이런 해석이 나온다고 합니다.
08:41그리고 그 시점도 굉장히 재미있는데요.
08:43집이 증여되고 3일 이후에 당시에 현재 차 대표로 지금의 정의선 회장이 선임됐으니까
08:50이 날짜에 맞춰서 해석을 해보면 가업도 물려주고 집안의 정신도 계승한다.
08:56이런 해석이 나온 바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