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또는 일부러 엄마랑 연락을 끊다가
00:02어느 순간 엄마가 연락이 온 거로 제가 받았어요.
00:06엄마가 좀 이해하는 태도였어요.
00:08잘 지내냐.
00:10그래서 그 말 딱 듣자마자
00:13엄마도 이제 마음이 바뀌었구나.
00:15엄마 지금 힘든데 양무가 이렇게 많이 포킹을 해서 숨어 다녔다.
00:20그리고 지금도 막 벽돌로 많이 까가지고 말이 맞아서
00:23나오고 싶다. 탈출하고 싶다.
00:25어떻게 되는 게 벽돈이니까?
00:27나 좀 도와줘.
00:29엄마가 요청을 해오신 거예요.
00:31그 중남자들 밑에서 너무 고생하잖아요.
00:33계속 그렇게 있어요? 아니면 어떻게 돼요?
00:35그래서 나와가지고 많은 사장님들의 인맥을 좀 알고 있어서
00:39그냥 나와. 내가 엄마 일자리 소개시켜줄게 하고
00:42엄마를 데리고 나와서 제가 아는 그 식당 사장님 통해 통해가지고
00:46거기 주방에서 일하는 그 주방 이목?
00:49그런 쪽을 좀 취직시켜줬구나.
00:52아니 이게 지금 어린애가 할 예일이 아니잖아요 지금.
00:55가장이에요.
00:57오빠 교도소 빼오는 돈.
00:59돈 버네.
01:00이게 지금 벌어봤자 몇 프로를 벌겠어 거기서.
01:02엄마 빼네.
01:03나이가 그러니까 지금 20살이 되나 마나 이 나이인데
01:07아버지 생활비 대줘.
01:08오빠 빼야 돼.
01:10엄마 또 구출해 와야 돼.
01:12엄마가 또 이렇게 일하는 그 과정에서 너무너무 그러니까 일만 하고
01:18그때그때 병원을 안 가다 보니까 좀 큰 병을 좀 얻으셨어요.
01:23그래서 그 같이 일하신 사장님이 야 엄마가 이젠 일 못하고 쉬셔야겠다.
01:29그래서 병원 가보니까 진짜 그런 상태까지 딱 이루어져서 너무 고생하신 거예요.
01:34아빠 그 양아빠분 집에서 너무 많고 그때부터 또 엄마를 이렇게 월세방 얻어주고
01:38제가 또 엄마를 생계비까지 지원해 주고 그러니까 북한에도 도와주고 엄마도 이렇게 모시면서 그때 식당 일을 변행하면서 일을 해왔었어요.
01:48대단하네요.
01:51엄마가 좀 많이 좀 좋아지긴 했는데 엄마가 일단 제가 아침부터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미안한 거예요.
02:00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이런 생각이 좀 드셨고 그냥 차라리 내가 죽더라도 한국에 가겠다 이렇게 결심을 한 거예요.
02:18그렇기는 하지만 이제 중국에서의 삶이라는 게 약간 불안하잖아요. 신분이 없으니까.
02:23그렇다면 한 번쯤은 중국에 이제 들어갔으니까 한국 소식도 이제 접하게 됐을 거고 여기까지 왔는데 중국에 온 것처럼 엄마랑 같이 한국에 한번 가볼까? 이런 생각 할 수도 있잖아요.
02:33그러니까 저는 엄마가 그냥 한국에 가면 행복하게 좀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만 했었는데 엄마가 한국에 오는 과정에 너무너무 고생해가지고 그 병이 악화가 됐어요.
02:44그래서 중부에서 한국에 오는 과정에서 네 방콩에서 전화를 받고 엄마가 그러시는 거예요.
02:49그냥 차라리 너 옆에서 죽을 걸 내가 왜 굳이 이렇게 잘 살아보겠다 한국까지 왔는지 너 얼굴도 못 보고 왠지 죽을 것 같다는 그런 메시지를 저한테 주는 거예요.
02:59그래서 전화를 바로 끊고 내가 한국 가야 되겠다.
03:02우와 네 내가 가야겠다 이런 마음을 먹게 된 거죠.
03:06그러니까 이게 모든 걸 다 내려놓고 가야 되는 거예요? 대한민국에 오려면.
03:11자 그럼 100% 그냥 엄마를 위해서 오는 걸 결정한 겁니까? 한국에 오는 건?
03:16엄마도 있었고요.
03:1850%는 그때 당시 제가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그때 임신 4개월 차였어요.
03:24아 남자친구.
03:25네 그래서 만약에 내가 진짜 나중에라도 운이 안 좋아서 북송에 가면 이 아이랑 생이별 하겠구나.
03:32그렇죠.
03:33네 그런 마음 반반 해가지고 내가 이 아이한테는 안전한 안전한 나라를 주자 이런 마음에 반반으로 이렇게 탈북 결정을 확실하게 하게 된 거죠.
03:45그럼 애기 아빠랑은?
03:47그냥 편지하는데 나 간다.
03:49헤어졌어요.
03:50이게.
03:51나 간다.
03:52잘 있어.
03:53어리기도 했고.
03:54교제한 지 몇 달 안 됐는데요?
03:561, 2년 됐었는데 그냥 내가 갈 게 잘 있어 하고 애는 내가 잘 키울게.
04:02어떻게 보면 어머님은 한국에 가셨고 진희 씨는 혼자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고 거기에 임신까지 하게 되셨는데
04:12어린 나이에 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이 드는데 그때 신경을 좀 어땠어요?
04:17저는 애기 가진 게 좋았어요.
04:19왜냐하면 좀 많이 외로웠어요.
04:2215살에 탈북을 해서 혼자서 내 인생을 살아가야 된다는 마음에 뭔가 옆에 내 자식 내 가족이라는 게 너무너무 부리워서 그때 당시 임신한 그 자체가 너무 좋았고 탈북하면서도 이 아이가 정말 건강하게 대한민국까지 왔으면 좋겠다 이런 걸 계속 기도하며 왔어요.
04:39제가 그때 임신 4개월 때 출발을 하면서 엄마한테 간단히 얘기는 안 했어요.
04:45사장님이 엄마한테 얘기도 안 하고?
04:47왜냐하면 엄마는 그때 당시 제가 임신한 걸 알았고 오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 보니까 또다시 딸이 임신한 상태로 산을 넘고 강을 넘는다.
04:56이거는 엄마라서의 허락이 불가능한 상태였거든요.
05:00그래서 그냥 무작정 출발하고 태국에 도착해서 나도 태국에 왔어.
05:06그냥 전달식으로 제가 임신한 이 아이가 한국에 와야 되지만 오로지 이 아이를 살린다는 이 마음으로 달구했습니다.
05:14많은 탈북민 분들이 한국에 오신 분들은 생이별을 당하고 오지 않습니다.
05:20근데 저도 이제 오프닝부터 시작을 해가지고 지금 촬영하면서도 계속 제가 보이는 쪽이 지금 북쪽이에요.
05:26황해도 저희 고향이거든요.
05:28아 고향이에요?
05:29고향 땅을 바라보면서 방송한다는 것 자체가 저도 좀 아까부터 가슴이 좀 이상한데
05:34여기서 불과 제가 살고 있는 오산보다도 저희 어머님 고향이 더 가깝거든요.
05:40그래서 저도 어머님 생각이 자꾸 들어가지고 많은 탈북민 분들이 그렇겠지만 저도 조금 마음이 좀 그렇네요.
05:48여기서 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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