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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도 포기하며 군 생활에 매진한 은경!
제대 후 만나고 싶던 가족을 볼 수 없었다?!

#이제만나러갑니다 #북한 #인신매매 #지옥 #탈출 #여군 #가족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매주 일요일 밤 20시 50분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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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북한에서는 남자들도 사실 당원 되기가 쉽지가 않잖아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당원이 됐냐 일단 아빠의 그 멋진 항상 장교복을 입고 부대
00:12생활을 하시고 어릴 때 그 모습이 남았고 나도 꼭 앞으로 크면은 아빠처럼 멋있는 여장군이 장교 생활하면 군복도 입고 너무 그
00:21꿈이었거든요.
00:22그래서 일단 학교 생활도 11년제 우물교육이라고 하잖아요. 학교 생활 정말 열심히 잘했고 나름대로 학교에서 간부로 졸업을 했었고요. 그러다 보니 또
00:37제 꿈이 여군으로 가는 게 꿈이었고 담임 선생님이 적극적인 추천을 해주셔서 제가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00:46차병으로 입대한 거죠? 운전병으로 제가 입대를 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입대를 해서 군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은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직성 자동차
01:01운전은 양성서였습니다.
01:02예 거기서 저는 3년 동안 양성 기술을 받고.
01:07교육을 받고 나면은 6 해군군으로나 배치를 해요. 9군데에 배치를 하거든요.
01:12어디 가는 거예요? 저는 해군으로 가게 됐어요. 왜 그래? 제가 희망하는 곳이 해군이었는데 일단은 해군복이 너무 예쁘잖아.
01:216 해군군을 보면은 해군은 너무 깔끔하고 하얀 그 청순하고 깔끔한 그 군복.
01:28에라봉.
01:29네. 이왕이면 그래도 나 해군에서 좀 생활하고 싶다는 그런 꿈이 있고 바람이 있어가지고.
01:38네. 들어봐서 목소리를 들으면 아시겠지만 전형적인 군대에서 훈련할 상은 아니죠?
01:44그렇죠. 아닌 것 같아요.
01:46제가 사전에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은경 씨는 훈련보다는 다른 업무를 주로 차출돼서 맡았다고 합니다.
01:52송글씨 재주가 좋았습니다.
01:56고운 덕분에 선전대에서 글씨 쓰는 일이 많았다라고 하고요.
02:01선전부.
02:02두 번째는 목소리 들으면 알겠지만 노래를 또 곱게 잘했다고요.
02:05노래 잘할 것 같아요.
02:06깻골새 목소리야.
02:08그렇죠. 그걸 알아본 중대 사관이 중대별, 부대별로 가끔씩 북한군들 모여서 장키 자랑도 하고 흥을 돋우기 위해서 즉석에서 막 무대에 공연이
02:17펼쳐지잖아요.
02:18그때마다 이소대 오은경을 선창자로.
02:21항상 선창을 하는 역할.
02:25이렇게 훈련보다 노래를 더 많이 한 유형이고요.
02:30유형이고요.
02:31좀 들어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02:32아니에요.
02:32잘 못해.
02:33그거 뭐예요?
02:34응, 꼬치라네 하는 노래인데.
02:36여성.
02:37여성은 꼬치라네 생활의 꼬치라네.
02:43와우.
02:44이분은 무슨 분야인데 이거.
02:45목소리가 청순하네.
02:47이렇게 선전대에서 장기를 활용했고 7년간 성실하게 군 생활을 하셨더라고요.
02:53만기 제대 몇 달을 앞두고 사실은 누구나 될 수 없고 반면 누구나 꿈꾸던 일을 이뤘습니다.
03:01뭐냐면 당원이 되는데 선고.
03:04당원이 되는데 선고.
03:06어려운 거.
03:07이게 쉽지 않죠.
03:08쉽지 않죠.
03:09당원이 되면 주변에서 시선이 좀 많이 달라져요?
03:12좀 그렇죠.
03:13보는 시선이 많이 차이가 나죠.
03:14쟤는 당원이래, 그래요?
03:16너무 부럽죠.
03:18저희 담임소생님도 진짜 우세운 분인데.
03:20내가 못하던 것을 네가 그래 이뤄줘서 고맙다.
03:25아니 뭐 이렇게 어려워요 당원이.
03:27휴가 같은 거는 좀 다녔어요?
03:29휴가는 제가 일부러 신청을 안 했어요.
03:31왜왜왜왜.
03:32왜냐하면 가정 형편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03:34아버지가 홀로 동생을 키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03:39그래서 분명히 내가 있는 상황에도 더 좋아질 수는 없겠다.
03:45그래서 제가 일부러 휴가 신청도 안 하고.
03:48그냥 군 생활에만 열심히 했죠.
03:51열심히 돕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03:52그러다 보니까 입당을 좀 빨리 했던 것 같아요.
03:55사실 저희는 박펜트 이해는 잘 안 갑니다만 어찌됐건 오은경 씨 입장에서는 어릴 때 꿈꿨던 여군도 됐고 당증까지 얻게 됐어요.
04:04제대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 정말 설레고 기대가 가득 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04:08당연하죠.
04:09일단은 집으로 오는 걸음이 너무 좋았죠.
04:12정말 내가 자랑스럽게 이렇게 당증을 아빠 앞에 똑같이 동일한 아빠도 당원이지만 나 열심히 해서 이렇게 당원이 됐어요 하는 그거를 빨리
04:21보이고 싶고.
04:22특히 저희 동생이 너무 마음이 걸렸었어요.
04:26그래서 동생을 빨리 만나서 사랑을 해주고 같이 부둥켜서 그렇게 하고 싶은 간절을 했는데
04:33집에 오는 그날에 정말 청천별로 같은 소리에 동생이 중국으로 탈북을 했다.
04:41동생이 중국으로 탈북을 했다.
04:45아버지가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04:49그날 저녁 아버지를 통해서 그날 밤은 거의 자지만 없다고 그냥 울었어요.
04:54하루 밤 정도 울었는데 아빠하고 이렇게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게
04:59이 가정에 동생이 없다는 자리가 저는 너무 믿기지 않는 거예요.
05:03여동생? 몇 살 어려요?
05:05다섯 살 어려요. 저보다.
05:06네. 그래서 아버지가 해경이가 그동안 7년 동안 거의 아빠를 먹여 살렸다.
05:15아버지가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05:18다섯 살이나 어린 동생이면 열 일곱에 군대를 갔잖아요.
05:21네. 그때가 열두 살.
05:23그럼 열두 살짜리가.
05:24열두 살부터 학교 못 다닌 거죠.
05:25학교 못 다니고 장사를 다 하면 생계를 유지했다고 하더라고요.
05:35달리기 장사부터 해서 어린 나이에 음식하는 걸 배워서 꽃집이 장마당.
05:41언성에도 보면 꽃집이 장마당이 있더라고요.
05:43아마 언니가 제대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1년 전부터 했대요.
05:48아버지 보고.
05:49그래서 언니가 좋아하는 신발이랑 식이랑 선물 주게 돼.
05:53사는 거를 어느 순간 그것도 다 팔고.
05:56장사를 망하면서 애가 팔복을 하게 된 거죠.
06:00아니 그럼 장사했다는 게 지금 중2 중3 우리 애들 또래 14살 15살 16살에.
06:07그 해가 보니까 19살 되는 해인데 19살까지 애가 그 수년간 7년이라는 세월을 그냥 장사로 저희 아버지는 너무 장교 생활만 하신
06:17분이니까 너무 거짓이 하셨어요.
06:20그러다 보니 그냥 직장 생활만 하고 뭐 아무 네 그러다 보니까 동생이 거의 뭐 집안 생활 아빠를 먹여 살리고 했죠.
06:30감사합니다.
06:30감사합니다.
06:30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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