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제 조카 딸은 열여섯에 처음 혼인했습니다.
00:06허나 반년도 지나지 않아 지아비를 잃었지요.
00:12그 뒤로 긴 세월을 과보로 살았습니다.
00:16남들 손가락질 한 번 받지 않고 제 살림도 반듯하게 지켜왔지요.
00:23이 정여인이 선산 묘지기의 집에서 미리 마련해간 소주에 비상을 타 마시고 자결을 했다.
00:35이 관어의 기록에는 이렇게 쓰여 있던데 사실이오?
00:41예, 그러하옵니다.
00:44그런데 왜 하필 선산까지 간 것이오?
00:47마음이 괴로울 때면 종종 죽은 아비의 산소를 찾곤 했습니다.
00:53아비에게 마지막으로 한 잔 올린 뒤 그 남은 술로 그러한 듯 싶습니다.
00:59그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이 있어?
01:03없습니다.
01:05묘지기도 하필 그날 남은 본가에서 머물렀다고 합니다.
01:10술병과 잔이 산소 앞에 있어서 저희도 그리 짐작할 뿐입니다.
01:14이 정여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한 까닭이 있었어?
01:19십수년을 홀로 지내면서 쌓인 서러움 때문일 것입니다.
01:24아니, 그 열세 해를 견딘 사람이 어찌하여 하필 그날 무너진 게요?
01:31열세 해를 견뎠다고 외로움까지 사라지겠습니까?
01:35제가 젊은 나이의 지하비를 잃고도 다른 사내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아이입니다.
01:41이웃에서도 저만한 연료가 없다고 했고, 저희 집안도 그 아이를 자람으로 여겼습니다.
01:56열세 해를 버틴 여인이 하필 그날 무너졌고, 아무도 보지 못한 곳에서 스스로 독을 마셨다.
02:04그런데 이 모든 것이 짐작이란?
02:10옥 안에 적힌 자결은 대체 누구의 말로 입증된 것인가?
02:15비부치를 잃은 것도 원통한데, 죽은 아이의 원원이 역병을 불러왔다느니,
02:22우리가 연료문을 청하지 않아 한을 키웠다느니, 온 고을 사람들이 우리 집안에 손가락질을 하고 있습니다.
02:30연료문을 내려 우리 아이의 서름을 풀어주시옵소서.
02:37이 내 석연치 않은 것이 해소가 되면 전하께 직접 연료문을 세워달라 청하겠소.
02:49정여인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요?
02:53죽기 이틀 전 이 집에 잠시 머물다 간 게 마지막입니다.
02:58그 뒤로 선산의 묘지기에게서 그 아이가 죽었다는 전가를 받았습니다.
03:04정여인이 죽기 전에 자주 만나거나 속마음을 털어놓던 사람은 없었소?
03:11없었습니다. 그 아이는 죽어서도 정씨 가문의 과부였습니다.
03:19이 살아서는 죽은 지하비를 지키고, 죽어서는 정씨 집안의 이름을 지킨다.
03:40이 집 약과가 아주 제법이요.
03:45한양에서도 이런 맛을 보기는 어려운데.
03:50이 약과에는 조청이 들어있으니 단맛이 나는 까닭이라도 있지.
03:57열쇠를 견딘 사람이 하필 그날 목숨을 끊었다는데.
04:02그대들의 말에는 정작 그날이어야 했던 까닭이 없어서 하는 말이다.
04:13정대봉은 죽음을 보지도 못했다면서 누구보다 확신에 차 자결이라 말했다.
04:22이 조이는 죽은 조카 딸을 열렬어 치켜세우면서도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정렬을 청하였다.
04:31정우갑은 엉이의 눈물만 닦아줄 뿐은 처음부터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다.
04:39셋 모두 슬픔은 말했으나 정여인이 어째서 죽었는지는 짐작뿐이었다.
04:47만약 정여인이 이들의 말대로 정말 자결을 했다면 왜 하필 그날이었을까?
04:54십 수년간 정절을 지켜온 정여인.
04:58그녀는 어쩌다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된 걸까요?
05:02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역병을 불러올 만큼 깊은 한을 품게 한 것일까요?
05:09날마다 이렇게 약수를 빌어다가 바치면 뭐하나.
05:13알아놓은 명갑은 언제 일어날지 낑새도 보이지 않는데.
05:18나라에서 연료비를 내려서 원통함을 풀어줘야 이 고생이 끝날 것 같은데.
05:24아이고 연료비 무신.
05:27죽기 직전 그 여인의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던 사내가 있던 걸 모르는감.
05:33집에 사내가 드나들었어.
05:37죽은 정여인은 과부라고 들었니?
05:40남편 잃고 난 후에는 줄곧 혼자 살았는데.
05:44근래에는 지 집 드나들듯 드나들었던 사내가 있었었죠.
05:48뭐 채택주라던가 두 사람이 혼이 난다는 말도 돌았으니까요.
05:56그 집 안에서도 두 사람 사이를 알고 있었고.
05:59아휴 이렇게 좁은 동네에서 우리도 다 아는 일을 지 핏줄들이 몰랐겠습니까?
06:07없었습니다.
06:08다른 사내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아이입니다.
06:12난 모른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이 없네.
06:20자네 채택출하는 자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볼게.
06:23난 정치 집안이 삼킨 말을 들으러 가봐야겠네.
06:27아 예.
06:28비켜가.
06:31뭐야?
06:32이게 어디 밖에 없니?
06:35놀랍게도 정여인에게는 혼인을 약속한 사내가 있었고.
06:39정씨 일가 역시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06:44정씨 일가는 어째서 최택주의 존재를 감추려 했던 걸까요?
06:49혹시 최택주라는 사내를 아시오?
06:56어디서 그 이름을 들으셨습니까?
06:59그 사내가 정여인의 집을 수시로 드나들었고
07:02본인까지 약속했다는 증언이 나왔어.
07:05그것은?
07:06지난번엔 다른 사내에겐 눈길조차 준 적이 없다더니
07:10대체 무엇을 감추려는게요?
07:16죽은 아이의 지옥까지 들쳐 무엇 하겠습니까?
07:21산 사람이 제 삶을 찾아 개가를 하려는 것이
07:25어찌 큰 치욕이요.
07:27나으리 사대부 가문에서 과부가 개가를 깨하는 것이
07:31치욕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07:34아휴 글쎄요 시다.
07:36이 내보기에는 멀쩡히 살아있던 여인이
07:39하룻밤새 싸내란 시신이 되어버린 것이 더 참혹하다 생각해요.
07:45최택준아 처음부터 그 아이의 재문을 노리고 접근한 자입니다.
07:50그리 판단한 근거가 무엇이오?
07:57살뜰한 척 비위를 맞추더니
07:59끝내 아이의 재물을 챙겨 달아났습니다.
08:04어?
08:05정 여인이 자결한 것이 그 연이오?
08:09그렇습니다.
08:10최택재에게 버림받은 수치심을 견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08:18처음에는 참으로 살뜰한 사내인 줄 알았습니다.
08:22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08:24모든 것이 계획된 일이었습니다.
08:29나와 함께 떠납시다.
08:32이곳을 벗어나면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어.
08:43최택준은 우리 가문의 재물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08:51최택준은 함께 떠날 자금을 마련한다는 핑계로
08:55조카 딸의 재물을 빼돌렸습니다.
08:59내 이것들을 팔아 자금을 마련해오겠소.
09:04해가 뜨기 전에 올테니 여기서 기다리시오.
09:14최택준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09:16아이만 홀로 버려졌습니다.
09:21열세 해 동안 지켜온 정절도
09:24그 아이가 살아온 세월도
09:26한순간에 무너진 겁니다.
09:30그 놈 때문에.
09:32결국 그 아이는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09:37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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