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오늘의 2위와 3위 주제입니다.
00:04김용건 씨죠.
00:06전원일기에서 최불암 씨, 김회장의 맏아들로 나왔던 김용건 씨.
00:11하지만 빈소를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00:14그 이유가 뭘까요?
00:16자세하게 짚어볼 텐데 전원일기의 가족들, 거의 대부분이 빈소를 찾았습니다.
00:23먼저 22년간 부인으로 출연했던 김혜자 씨의 목소리 들어보시죠.
00:30나 있잖아요. 이게 마지막이란 생각 안 들어요.
00:34죽으면 또 만날 거고 마지막이라고 그러지 마.
00:40생각하기에 따라서 마지막은 없어요.
00:44저 사람에 대한 추억도 많고 다 기억하면서 살 거예요.
00:49왜 마지막이야? 마지막 아니야.
00:53이제 곧 만나자고 하고 싶어요.
00:56내가 뭐 얼마나 오래 살겠어. 곧 만나요. 곧 만날 거예요.
01:01너무 그리운 사람이니까 곧 만날 거예요.
01:07곧 만날 거예요.
01:11전원일기 가족들, 금동희 씨 역할로 출연했던 이모 씨가 본인의 SNS에 올린 사진입니다.
01:20고 김수미, 일용 엄마 모습도 보이고요.
01:22큰아들 김용건 씨의 모습.
01:24또 일용이, 일용엄리 다 나오죠.
01:27노마 아버지, 이계인 씨의 얼굴까지 다 나와 있습니다.
01:30물론 여기에는 첫째 며느리였던 고두심 씨나, 첫째 아들 김용건 씨 나오네요.
01:37이렇게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김혜자 씨의 저 먹먹한 목소리를 들으니까 많은 분들이 슬퍼하실 것 같습니다.
01:46저는 사실 어제 많은 조문객들이 최보람 배우의 빈소를 다녀갔지만, 김혜자 배우의 저 마지막 인사가 어떻게 보면 가장 인상적이었고 가장 마음이
01:56아팠습니다.
01:57사실 법적인 배우자는 김민자 씨고 또 금술도 좋았다고 합니다.
02:01그런데 김혜자 씨, 최보람 씨를 국민 아버지로 불렸다면 김혜자 씨는 국민 어머니로 전원일기에서 22년간이나 무려 부부 생활을 같이 했죠.
02:10마치 김혜자 씨의 저 마지막 인사를 보니 전원일기로 다시 돌아가서 정말 양촌리 김혜장, 나의 22년간 남편이었던 분을 직접 보내는 것
02:20같은 그런 멍멍한 슬픔이 지극히 보여졌습니다.
02:25특히 저 사람이라고 표현을 하면서 저 사람에 대한 추억을 기억하며 살겠다, 곧 만나자 하는 말씀이 절절한 그리움을 더욱더 나타내서 국민
02:34아버지를 보내는 국민 어머니의 모습,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02:37김혜자 씨 뿐 아니라 양총리 가족들도 모두 빈소를 찾았습니다.
02:44제가 첫 데뷔하는 작품에서도 아버지를 하셨고 전원일기에서 22년간 아버지로 사셨기 때문에 제 개인적인 입장으로서는 가족이죠.
03:00평상시에도 늘 아버지, 아버지 했었고.
03:03전원일기 처음 이제 같이 이 사람하고 같이 캐스팅에 대해서 들어갔을 때
03:10저희한테 너무나 큰 상 같은 존재인 분이어서 배우의 상 이외에도 너무나 많은 걸 가르쳐주신 그런 큰 스승 같은 분입니다.
03:22아버지 이제 선생님이시니까 늘 감사했고 살면서 여러 가지를 많이 배웠고 저희한테 정말 너무 소중하고 귀한 분이셨는데 이제 다시 뵐 수
03:35없어서 너무 안타깝고
03:42전원일기의 저는 맞딸이거든요.
03:45정말 실감이 안 나고요.
03:50항상 이렇게 시간이 많이 좀 이렇게 흘러가도 어디쯤 방송국에 어디에 이렇게 계실 것 같은 그런 마음이 자꾸 드네요.
04:04맏딸, 장녀 역할을 맡았던 배우 엄유신 씨인데 극 중에서 이름은 영옥이었습니다.
04:11김영옥.
04:12큰아들 김용건 씨의 이름은 사실 다 그냥 맏아들 이렇게만 했었지만 극 중의 이름은 김용진이었고요.
04:20사실 영남아빠로 더 많이 불리지 않았습니까?
04:25네, 맞습니다.
04:26그런데 모두 아버지 같았다고 얘기를 하는데요.
04:28조금 전 영상으로 만나보신 엄유신 씨가 1951년생, 최불암 씨와 불과 11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고요.
04:35그리고 큰아들이었던 김용건 씨랑은 6살 차이입니다.
04:38즉, 왜 이렇게 최불암 씨가 노역을 일찍 했을까 생각을 해보면 본인에게 주어진 소명을 항상 최선을 다해서 해왔기 때문에
04:46그다음부터 너무 그 역할을 잘해서 노역이 많이 들어왔다는 거죠.
04:49전원일기 처음 시작했을 때 최불암 씨의 나이는 불과 40살이었는데
04:53워낙 본인이 아버지를 일찍 여의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이 사랑이 어떤 걸 잘 몰랐다고 합니다.
04:59그래서 주변을 많이 살피고 그 모습을 더 잘 보여주려고 노력을 했는데
05:03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연기를 넘어서 진짜 선생님이자 아버지로서 모시게 됐다 얘기를 했고요.
05:11또 하나 중요한 거, 작품 속에서뿐만 아닙니다.
05:14유인촌 씨가 이런 얘기를 합니다.
05:15고인을 추억하면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하는데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05:21내 등 뒤에 있는 창문을 열면 행복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항상 최불암 씨로부터 들었다고 합니다.
05:27이렇게 평소에도 뼈에 새기는 얘기를 많이 해 주셨기 때문에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그분을 대하고 또 모셔왔다는 거죠.
05:34이렇게 양촌리 가족들이 모두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있는데
05:40이 맏아들, 영남 아빠 김용건 씨가 빈소의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05:47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백일섭 씨가 대신 얘기를 해 줬습니다.
05:52김용건에게 먼저 전화가 왔다.
05:54집안의 큰 경사를 앞두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05:58그래서 내가 오지 말라고 만류했다.
06:01자, 이현중 의원님.
06:02이게 결국은 김용건 씨의 아들 배우 하정우 씨가 다음 달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데
06:08예전에는 사실 경사를 앞두고 애사나 이런 데는 가지 않는다라는
06:14이 뭐라고 해야 될까요?
06:16미신이라고 해야 될까요?
06:17뭐 그런 것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좀 없어들이긴 했습니다만
06:20그거를 좀 염두에 든 것 같습니다.
06:23그래도 저도 이제 어르신들이 보면 집안에 어떤 경사가 있거나
06:28또 자녀가 태어난다든지 이랬을 때는 상가를 이제 가지 마라.
06:33이렇게 말씀하세요.
06:34아무래도 이게 미신이라고 하지만
06:36또 우리가 전통적으로 이해해오던 뭔가 어떤 좀 테두리를 두는 그런 것 같습니다.
06:43특히 그럴 때는 이제 소금 같은 거를 미리 버린다든지
06:46뭐 이런 식으로 해서 이제 어떤 이 뭐 잡귀들을 좀 물리친다든지
06:50뭐 이런 것인데 아무래도 이제 지금 김용건 씨가 이제 아들인
06:54이 결혼이 이제 아마 한 달 앞으로 다가와는 것 같아요.
06:57이제 그러다 보니 집안에 이제 경사가 있는데
07:00이렇게 애사에 와서 하는 게 이제 이게 좀 관례성 적절하지 않다.
07:05그다음에 김용건 씨도 뭐 꽤 아마 마음이 좀 아플 겁니다.
07:09왜냐하면 22년이라는 세월을 사실 이제 함께 했고
07:13또 이제 그 이후에도 계속 이제 교류를 한 분이기 때문에
07:16이제 백일섭 씨 같은 경우도 같은 형제처럼 지내온 분이기 때문에
07:19이제 아마 본인도 무척 이제 가고 싶었을 거예요.
07:23그렇지만 또 이런 또 이 미신이나 이런 것들을 또 뭐 섣불리 물리치기에는
07:28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또 간습이라는 게 힘도 있기 때문에
07:32아마 그런 사정으로 불가피하게 못 가시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07:36사실 그 최불암 씨는 과거 김용건 씨가 늦둥이를 아주 어린 자녀가 있죠.
07:44늦둥이 출산을 했을 때 사람들이 여러 가지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볼 때도
07:50자주 전화를 해서 위로를 전했다고 합니다.
07:54그 목소리 김용건 씨의 목소리를 들어보시죠.
07:58말이 온둔생활이지 대인기피증이 생기더라고 만나는 게 두렵더라고.
08:02맞아 맞아.
08:03근데 이제 친구들이 많이 힘을 실어준 거야.
08:06그리고 뭐 최불암 선배는 수시로 전화해서
08:08야 우리 친구들이 많이 부러간다.
08:10이제 말씀을 그렇게 하시니까 날 위로 안 하라고.
08:13이제 시간이 약이라고.
08:15시간이 이렇게 가니까 조금 묻혀지더라고.
08:18나도 조금 담담해지고.
08:22사실 안지용 기자 누군가가 누구에게 비난을 받고 이렇게 하면
08:27내가 괜히 전화했을 때 위로가 될까?
08:31아니면 또 내가 또 구설에 휩싸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08:34최불암 선생님은 위로를 했다는 거 아닙니까?
08:38오늘 김용건 씨하고 통화를 했더니 뭐라고 하던가요?
08:41사실 전화를 안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08:44워낙 관련해서 많은 얘기가 나오는데 전화를 받았고 굉장히 솔직하게 얘기를 했습니다.
08:48아까 백일섭 씨도 얘기한 것처럼 이 개인 씨와 함께 누구보다도 가까이 지낸 사이였죠.
08:53그래서 대중에게는 30일 날 별세 소식이 알려졌지만 29일 날 돌아간 직후에
08:59곧바로 김용건 씨는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09:02그래서 부랴부랴 조문을 갈 준비를 하고 다음 날 아침에 가려고 했는데
09:06그다음에 통화와 여러 가지 상황이 아까 백일섭 씨가 말씀하신 그 내용입니다.
09:10본인은 백일섭 씨는 만류했다는 거죠.
09:12그때부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건데
09:14이 상황에서 자기가 누구보다도 그 곁을, 즉 빈소를 지켜야 되는데
09:19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 본인의 스스로도 안타깝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09:23그러면 왜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느냐 하면 이런 얘기를 합니다.
09:27그런 얘기를 보고 미신이다, 갇혀 있는 답답한 소리를 하고 있다라는 얘기를 듣고 있고
09:31그 얘기도 본인도 충분히 수궁이 간다는 거죠.
09:34그런데 큰아들의 결혼식을 앞둔 상황에서 본인 역시 여러 가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솔직하게 털어놨고요.
09:40그래서 결혼식을 마친 후에는 곧바로 묘소를 찾아가서 못다한 얘기를 길게 나눌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09:48그리고 과거 이 최불암 씨와의 인연에 대한 얘기를 좀 들려달라고 했는데
09:53불과 6살 차이였지만 단 한 번도 선배님이라고 불러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09:58너무나도 형 같고 아버지 같은 분이어서 항상 불아미형, 불아미형이라고 얘기를 해왔고
10:03몇 달 전까지 전화를 통화를 하려고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서 정말로 몸 상태 좋지 않구나 싶어서 마음이 안타까웠다고 하죠.
10:11전원일기에서는 특히 한 장면을 얘기를 했는데 해질역에 논두렁에서 담배란드 태우면서 수확물을 바라보는 그 모습이
10:18정말로 모든 자녀를 먹여 살리는 아버지의 모습이야말로 저런 모습이 아니었구나 싶어서
10:24자신 역시 불과 6살 차이지만 정말 아버지는 못해 있는 마음으로 항상 최불암 씨를 대해왔다고 회상했습니다.
10:32김용근 씨 마음은 최불암 선생님 옆에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10:38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을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