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최불암 선생님이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권유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는 일화 유명하죠.
00:09그런데 정주영 회장이 직접 최불암 씨에게 연기를 가르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00:14연기를 어떻게 가르쳤을까요?
00:16과연 과거에 인연이 있었던 현대가 인사들도 빈소를 찾았습니다.
00:33건강관리를 좀 더 잘하셔서 좀 더 사셨으면 생각하는데
00:40이렇게 돌아가시니까 아주 마음이 쓸쓸합니다.
00:43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00:49정몽준 이사장도 참 많이 연세가 드셨네요.
00:53정규진 의사님, 아니 정주영 회장이 연기를 가르쳤다?
00:58누구한테 누구한테 연기를 가르치는지 모르겠는데
01:01이게 낫 빼는 법하고 지게 매는 법을 알려줬다고 합니다.
01:06연기를 가르쳤다기보다는요.
01:09그 연기 극 중에서 농부의 역할을 가르쳤다.
01:13이렇게 봐야 되는 게 일단은 수사반장을 제일 좋아하셨던 분은 누구냐.
01:18박정희 대통령이었어요.
01:19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은 전원일기는 보지 못하셨습니다.
01:22왜 그러냐면 전원일기는 1980년부터 시작됐거든요.
01:26그러니까 돌아가신 다음에 이제 전원일기가 방영이 됐는데 이 전원일기를 제일 좋아하셨던 분 중에 하나가 정주영 회장이었어요.
01:35왜냐하면 최불암 선생님은 이렇게 굉장히 소탈하고 그다음에 농촌에서 이렇게 쭉 자라온 그런 분같이 보이지만 원래 최불암은 인천에서 태어나가지고요.
01:45서울에서 쭉 자라오신 그런 분입니다.
01:47그러니까 농사일을 해본 적이 없는 분이에요.
01:50그런데 정주영 회장은 강원도에서 태어나서 젊었을 때는 어렸을 때는 그야말로 이렇게 지게 지고 다니고 농사 짓고 그랬던 분 아니었습니까?
01:59쌀까마 지고.
02:00그런데 정주영 회장이 딱 보시기에 최불암 선생이 전원일기에서 연기를 하는데 지게 지는 게 이게 영 그게 아니라는 이야기죠.
02:09그거 어렵죠.
02:10그다음에 낯질하는 것도 영 어설펐다는 이야기예요.
02:14그러니까 정주영 회장이 최불암 선생한테 전화하셔가지고 그렇게 하는 거 아니다.
02:19지게는 이렇게 아마 불러가지고 청운동 자택으로 여러 번 초대도 하고 그랬다고 하니까 지게는 아마 지게까지 이렇게 준비해놓고 그러지 않으셨으니까 낯질은
02:29이렇게 하는 거다.
02:29이거를 직접 가르쳐주셨다는 이야기인 거고 정주영 회장이 얼마나 이 전원일기에 빠져 있었냐면 내가 직접 이 전원일기에 출연하겠다 해가지고 한 20,
02:4030분 분량을 비워놓기까지 했다는 거예요.
02:42아니, 배우로?
02:43배우로.
02:43배우로.
02:44배우로.
02:44그래서 이제 마치 농부에 지나가는 농부나 이런 까메오같이 제 생각에는 그때 정주영 회장님이 전원일기에 출연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02:55저도 기업에서 근무해봤지만 기업의 비서실에서는요.
02:59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 그렇게 생각해가지고 지금 같으면 생각이 바뀌었을 텐데 어떻게 대재벌그룹의 회장님이 저런 전원일기에 농부로 출연하느냐 안 된다.
03:09적극적으로 반대해서 무산됐다라고 했는데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1980년대에 최불암 선생과 같이 출연한 정주영 회장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얼마나
03:21좋았을까 아쉬움도 좀 남습니다.
03:23그러게요. 최불암 선생님은 1992년 치러졌던 14대 총선에서 정주영 회장이 이끌던 국민당에서 비례대표로 배지를 달게 됩니다.
03:34사실 원래는 정 회장을 도우러 갔는데 갑자기 사회자가 최불암 씨를 모시겠습니다 해서 무대에 올라갔는데 최불암이 정치한데 라고 하면서 정치를 시작하게
03:47됐다.
03:47라고 과거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황당한 일인데요. 옛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나 봅니다.
03:53요즘에는 그런 일은 없을 것 같긴 한데.
03:55정주영 회장이 이렇게 최불암 선생님을 눈독 들인 이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인기도 상당했고 각종 주요 명예직을 맡을 정도로 영향력이 상당했기
04:08때문일 겁니다.
04:11수많은 인기 연극 영화인들의 자리를 같이한 이날의 시상식에서 연극 부문에는 이순재, 최불암, 김민자, 김성옥, 강보자, 사무자 등에게 주어졌습니다.
04:24서울 광화문 세무소에서는 인기 전여인 최불암 씨를 일일 명예소장으로 근무해서 납세와 세무 행정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높이고 납세자를 위한 성실한
04:35봉사자로서 공정한 업무를 수행하기로 다짐했습니다.
04:38어떻게 언어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고 누구의 의무가 감정의 동시에 제공해 다가옵니다.
04:48동지들이 모두 다른 곳에서 이것을 쳐다보고 있을 겁니다.
04:56그네들과 이 진급을 나눌 수도 없는 것이.
05:02수사반장 동료들을 떠올리면서 저렇게 얘기를 하셨었군요.
05:06자, 조현선 보장. 92년도는 정말 대단하네요.
05:11정말 스타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워즈 같습니다.
05:14당시에 국회에 입성했던 배우들, 코미디언, 이순재 선생님, 최불암 선생님, 이주일 선생님, 강부자 선생님은 지금 살아계십니다.
05:23그 당시에 많은 스타분들께서 국회에 입성하게 됐죠.
05:2714대 국회였는데 당시 최불안 선생님의 경우에는 지금 현재로는 비례의원이라고 하죠.
05:34전국구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05:37그 당시 통일국민당이라고 해서 정주연 전 명예회장이 만든 정당이었죠.
05:42그 전국구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하게 되었고요.
05:45이순재 선생님의 경우에는 신한국당이었습니다.
05:48지금의 국민의힘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죠.
05:51신한국당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를 해서 당선이 되었습니다.
05:55강부자 선생님의 경우에는 아직 고인은 아니지만 강부자 선생님의 경우에는 통일국민당의 전국구 의원을 승계를 했었고요.
06:02이주일 선생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국회에 입성해서 활동을 했습니다.
06:08당시 최불안 선생님의 경우에는 전원일기 배우로서의 활동도 병행을 했다고 해요.
06:13사실 지금 같았으면 국회의원이 본업을 함께하는 경우가 없다고 할 수가 있겠죠.
06:18현재 규정 산업도 여러 가지 제약이 되는 부분이 많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06:22그럼에도 그 당시에는 그러한 규정이 없다 보니 최불안 선생님의 경우에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업무와 함께 전원일기도 함께 출연을 했고요.
06:32임기 중에 그 부분에 대해서 문제가 제기되자 전원일기 출연을 그만두는 그러한 사연도 있었다고 합니다.
06:39빈소를 찾은 인물 중에 의외의 인물이 있습니다.
06:41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인데 1940년생 최불안 선생님과 동갑내기였습니다.
06:49영상을 만나보시죠.
06:51최불안 선생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06:55나하고는 중학교 때 한반에서 내 짝을 했었다고.
06:59나하고 비교적 자주 만나서 얘기를 많이 했는데
07:03사람이 굉장히 온화하고 사실은 애정이 깊은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에요.
07:13한 반 짝꿍이었답니다.
07:15중학교 때 두 사람이, 두 분이 이런 인연이 있을 수 있을까요?
07:20애정이 깊은 사람, 온화했던 사람으로 기억을 했습니다.
07:24오늘 이낙연 전 총리도 빈소를 찾았는데요.
07:27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07:30일부러 허름한 옷을 입고 내가 국민들에게 위화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
07:34좋은 옷 입고 반짝반짝 빛나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하고 사셨다.
07:39안주영 기자.
07:41내가 반짝반짝 빛나는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07:44이렇게 얘기했다고.
07:45그래서 마지막 작품은 연기가 아니라 한국인의 밥상이었습니다.
07:50본인이 전국을 돌면서 서민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다는 거고요.
07:55사실 그 다음 총선에서는 낙선을 했죠.
07:59그때 시민이 잔치자한테 그런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08:02나 당신 연기 보고 싶어서 안 찍었어.
08:05라고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08:06이제는 정치하지 말고 배우 최부름으로 돌아와서 연기해달라고 얘기를 듣고
08:11본인이 뜻한 바가 있었다는 거죠.
08:12그때부터는 정말 정치 쪽은 돌아보지 않고 배우로만 살았습니다.
08:16그러면서 스스로를 광대라고 얘기했는데 광대라는 표현이 조금은 낯설 수는 있지만
08:21본인이 생각하는 국민에게 웃음과 울음을 주는 존재로서는
08:25최부름 씨가 자신의 소명을 분명히 다한 것으로 보입니다.
08:28정 교사님.
08:29최부름 씨가 짧지만 정치 생활을 했잖아요.
08:33동료 의원들은 장관 나오면 장관, 장관이라고 부르지 않고
08:38자기는 장관님이라고 불렀다는 거예요.
08:40뭐 연세가 적지 않았을 텐데.
08:42그런데 다른 의원들이 장관님이 뭐야.
08:45장관이라고 불러야지.
08:46이렇게 얘기했다는 거예요.
08:48그리고 한참 선배라서 그랬던 건데.
08:50그리고 또 다른 일화 또 볼까요.
08:54극회의원도 한번 관둘까 고민했었는데.
08:57이제 국민당이 해체되면서.
08:59김영삼 대통령의 정당과 합해지는 과정에서 그만둘까 고민하고 있는데 국민이 당신을 의회에 세운 거다.
09:07국민 또 거역하겠느냐 이렇게 얘기해서 설득을 해서 결국 건너갔다고 얘기하더라고요.
09:12저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최부름 선생님 말씀이 맞다고 생각을 합니다.
09:16나이를 떠나서 나이가 어리더라도 장관한테 장관님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09:22왜냐하면 장관들은 의원들한테 의원이라고 부릅니까?
09:25다 의원님이라고 하잖아요.
09:27서로 올려주는 게 맞는 거 아닌가?
09:29국회의원 선출했다고 해서 장관한테 나이 많은 사람한테 장관이 이렇게 해도 된다는 건가?
09:35저는 좀 이상하다는 그런 생각이 들고요.
09:38그다음에 이제 김종인 위원장하고는 굉장히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09:42왜냐하면 중학교, 고등학교 동기동창이었어요.
09:45중앙중학교, 중앙고등학교.
09:47그런데 또 개인적인 인연도 많이 있는 게 김종인 위원장은 원래 서울에서 중학교 다니지 않고요.
09:54광주에서 중학교 다니다가 전화갔고요.
09:57그다음에 최부름 선생님도 인천에서 중학교 다니다가 어머니가 명동에 은석 만드니까
10:02그때 따라와서 중학교를 같이, 그러니까 지방에서 올라온 그런 그것도 있고
10:08최부름 선생님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지만 김종인 위원장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거든요.
10:14그다음에 국회의원, 14대 국회의원 하지 않았습니까? 비례대표였어요.
10:17같이 했군요.
10:18그때 김종인 위원장도 14대 때 비례대표 국회의원이었습니다.
10:22그러니까 굉장히 많은 그런 인연을 가지고 있었던 두 분이었던 거고
10:27그렇기 때문에 김종인 위원장이 더 마음이 아프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10:31참 많은 분들이 빈소를 다녀가고 있습니다.
10:3511월 2일 날 가래인에 있다고 하니까요.
10:40또 많은 분들, 조문하실 분들은 찾아가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