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70년대 통키타 세대 대표주자 가수 송창식 씨.
00:08껄껄 허허 웃는 웃음에 숨겨졌던 가슴 아픈 가정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00:151975년 발표됐던 송창식 작사 작곡의 히트곡 먼저 들어보시겠습니다.
00:52지금 잠시 이 얘기를 가정사 얘기하기 전에 저 외불로 저것도 금지곡이었죠.
00:57금지곡이었습니다. 저것도 정확한 이유가 있습니다.
01:00왜냐하면 그 당시에 두발 자유가 아니었죠.
01:03장발 단속, 치마 길이 단속들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 잡혔을 때 청년들이 도망을 가죠.
01:10그때 뒤에서 경찰들이 거기 서라고 호르라기를 불 때 왜 불러, 왜 불러, 가는 사람 왜 불러 이런 식으로 쓰일 수
01:17있다는 거죠.
01:18실제로 그런 장면에 이 노래를 붙이는 상황도 있었기 때문에 금지곡이 됐고요.
01:22그 외에도 송창식 씨의 노래, 대표적으로 고래 사냥도 금지곡이 됐었는데 그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01:27열심히 일해야 사는 사람들이 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 동해바다로 지금 놀 시간이 아니다.
01:33그래서 금지곡이 됐던 정말 그 시대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01:38예, 역사의 한 페이지인 것 같습니다.
01:41자, 임재인 변호사.
01:42아버지는 6.2여 전쟁 참전 중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때 집을 떠나셨다.
01:47할아버지 삼촌 집에서 더부살이하다 보니까 사람끼리 사랑하는 법을 잘 모른다.
01:53마음이 차갑지는 않은데 행동이 차갑게 되더라. 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01:57어린 시절 정말 쉽지 않았다라고 여러 방송에서도 추억을 하시기도 했었어요.
02:03여동생과 함께 아는 집이란 아는 집, 친척짐이란 친척짐은 전전하면서 다 밥 한 끼를 얻어먹어본 적이 있다.
02:11이런 가슴 아픈 이야기라기도 했는데요.
02:14송창식 씨가 1947년생입니다.
02:16그때 사실 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02:20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런 만큼 부모가 없는 상황에서 친척짐을 전전하며 또 이웃집을 전전하며 정말 힘든 생활을 했다.
02:29이런 부분들이 여러 번 말씀하셨거든요.
02:31공부도 굉장히 잘하셨는데 학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서.
02:35예고를 다녔다고 하죠.
02:36그렇죠.
02:37서울예고 성학과에 합격을 하고 정말 우수한 성적으로 수업을 듣고 있었지만
02:42실기 시험을 볼 수가 없어서 낙제를 하기도 했었고 학교를 다니지 못한 적도 있었고
02:48정말 학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서 학업을 이어갈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라는 얘기를 하시면서
02:53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저절로 드는 그런 어린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02:58사실 이렇게 마음이 차갑진 않은데 행동이 차갑다.
03:03사랑하는 법을 잘 모른다라고 했지만 안지용 기자.
03:06처형에 아이 두 명을 입양을 했었다고요.
03:10송창식 씨에게는 슬아의 자녀가 셋이 있는데 아내와 낳은 건 한 명이고
03:15두 명 같은 경우 쌍둥이, 아내의 쌍둥이 언니의 두 자녀를 입양을 한 겁니다.
03:21당시 쌍둥이 언니가 미국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미국에서 그 당시 허락하지 않던
03:25불법 인공수정으로 낳았기 때문에 미국에서 정식 국민으로 등록할 수 없었던 거죠.
03:30그래서 한국으로 데려왔고 이 한국 그 당시에 또 미국으로 입양 가는 경우가 많이 있었죠.
03:36그렇게 다시 미국으로 가는 과정을 밟으려고 했는데 이게 여의치 않았던 겁니다.
03:41그 시간 동안 송창식 씨 부부가 이 두 아이를 맡아줬었는데 그때 또 떨어지지 않을 만큼 아이와 깊은 정이 들어서 또
03:49품게 됐다는 거죠.
03:50가슴으로 낳은 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송창식 씨가 어릴 적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지만
03:55적어도 아이들에게만큼은 레리 사랑을 통해서 이렇게 다시 가슴으로 낳은 아이까지 품게 됐던 것으로 보입니다.
04:02사실 송창식 씨가 노래를 왕성하게 부르던 시절에는 정혁진 변호사님이 열심히 노래를 많이 들으셨을 텐데
04:08세시봉에 들어가 세시봉이라는 다방도 있었고 음악 카페도 있었고
04:13이 송창식 씨가 그 세시봉에 들어간 것도 결국은 밥을 좀 줘서 밥을 얻어먹기 위해서 노래 카페에 들어갔다라는 얘기를 하더군요.
04:22글쎄요. 저 세시봉 멤버들 중에서 제가 다 좋아하고 다 존경하는 그런 분들이지만
04:27그래도 노래 가창력이나 그 음악성은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04:32주관적으로 송창식 씨가 제일 뛰어났다라고 생각을 하고요.
04:36제가 중학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이럴 때 송창식 씨는 어마어마한 그런 인기 대스타였습니다.
04:43그런데 저기 보면 인상이 얼마나 좋습니까.
04:46그래서 저는 굉장히 서글서글하시고 그다음에 많이 베풀고 그런 것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04:51저런 안타깝고 그런 사연이 있는 분인 줄 몰랐어요.
04:57저는 마음이 차갑지 않은데 행동이 차가웠다라고 하는 저 송창식 씨 본인의 말씀을 저는 지금도 인정을 못하겠어요.
05:04굉장히 아주 따뜻한 행동을 많이 보이실 것 같은데 그래도 본인 기준에서는 더 따뜻하고 싶은데
05:11그런데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 잘 안 된다 이런 정도로 생각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고요.
05:17어쨌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 가수 중에 하나로 송창식 씨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05:23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05:24원래는 팔순이라고 합니다.
05:26아버지는 참전용사였고 어머니는 집을 나가서 사실 눈치밥을 많이 얻어먹었었겠죠.
05:32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대스타가 됐고 끝까지 많은 관객들과 지금도 함께하고 계십니다.
05:40앞으로도 많은 활동 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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