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영상 보니까 저도 얼마 전에 결혼했던 기억이 나는데 아니 진짜 이 소연 씨 사실 부모님 없이 혼자 탈북한 걸 알고
00:06있는데 아까 그 손잡고 같이 나오셨는데 그분은 또 어떤 분이세요?
00:11네 그분은 또 아 이게 저희 아버지예요 제가 임한갑 첫 출연 때 얘기를 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얘기를 했잖아요 그래서 아버지가
00:24돌아가신 줄 알고 어렸을 때 헤어지고 나서 없다고 항상 생각을 했었어요
00:29근데 아버지가 정확히 제가 2019년도에 나왔고 6개월 뒤에 국정원에서 연락이 와서 아버지가 오셨다고 전화가 오신 거예요
00:41돌아가셨다는 아버지가?
00:43맞아요 근데 문제가 뭐냐면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니까 계속적으로 아빠 생일 때마다 제사를 지내드렸어요 중국에서
00:50그래서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살아서 나타난 거죠 정말 큰 기적이긴 한데
00:57그래서 대한민국에서 또 이렇게 아버지까지 만나게 된 그런 축복을 또 받게 됐었습니다
01:04아버지가 진짜 돌아가셨다 살아서 오신 거는 아니인지 알아요 근데 이런 기적적인 일이 벌어졌다는 거죠
01:10맞아요
01:11이게 얼마나 신기한 얘기인지
01:14그러니까 생각을 해보세요 어린 딸이 제사까지 지냈다는 건 그만큼 긴 시간 동안 연락이 끊겼었다는 이야기잖아요
01:20당연히 돌아가셨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는 건데 그것도 다시 만난 것도 기적인데 팔복을 해서
01:27남한에서 두 분이 만난다? 이건 정말 엄청난 이야깃거리인 것 같아요
01:32도대체 아버님이 어떤 일이 있었길래 14년 동안이나 연락이 안 되다가 대한민국에 오시게 됐는지
01:39저희가 직접 이 자리에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01:44우리 수현 씨 아버님 들어와주세요
01:46수현 씨 아버님 들어와주세요
02:09그게 난 미안했다.
02:12이 땅에 와주셔서 고맙고
02:14소원에게 행복하게 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02:23반갑습니다.
02:24한경북도 재뻘근에서 온 김정철이라고 합니다.
02:28아이고 반갑습니다.
02:30이렇게 멀쩡히 살아계시네요.
02:32그래서 제가 아버지를 14년 만에 만나게 됐습니다.
02:3714년 동안이나 연락이 안 됐더라.
02:41세상에 이런 일이다.
02:43지금 약간 떨리시죠?
02:45긴장하셨습니다.
02:47지금 긴장하셨습니다.
02:49보이부 앞에 있어서.
02:52아버님 보이부는 사람들이 싫어해요?
02:57제일 무서운 걸로 알고 있어요.
02:59그래요?
03:00진짜로요?
03:01저희 섭외 요청 왔을 때
03:03아버님 보이부 있다고 해서 안 넣으신다고 했어요.
03:06진짜?
03:07진짜로 안 넣으신다고 했어요.
03:09아닙니다 저.
03:11아버님 괜찮아요.
03:125대1이에요.
03:14저희가 이제 쪽수가 더 많아요.
03:16사실 소유 씨에게도 어떻게 보면 좀 선물 같은 일이지만
03:20유성 씨한테는 정말 기적적으로 장애인 어른이 오신 거잖아요.
03:25생기신 거잖아요.
03:26어떠세요?
03:27근데 저희가 이제 많은 친구들 탈북민들이 결혼하는 거 보면 많이들 얘기하세요.
03:33양쪽 부모님이 있는 부모님은 진짜 축복 받은 아이들이에요.
03:39정말 많이들 없으신데 정말 축복을 저희가 많이 받았고
03:42사실 제가 이제 뭐 장애인 어른이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님 진짜 대단하신 거예요.
03:48왜요?
03:48아버님이 열두 번을 탈북을 시도하셔서 성공하셨고
03:52열두 번이요?
03:54열두 번.
03:56사실 한 번만 하더라도 목숨을 그거 더 내야 되는데
03:59열두 번이면 뭐 목숨이 여러 개가 아니잖아요.
04:03그래서 제가 우리 유성 씨의 장애인 어른 소연 씨의 아버님 김정철 선생님의 어린 시절을 좀 조사해 왔습니다.
04:12근데 범상치가 아는 스토리가 있어요.
04:14지금부터 하나하나씩 좀 들려드리겠습니다.
04:16여기 옆에 계신 우리 김정철 선생님은 함경북도 샛별군의 노동자지구
04:21쉽게 말해서 탕광촌. 탕광촌에서 이 4형제 중에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04:27그래서 어머니 빼고는 다 남자였는데
04:30누구도 이제 입당을 꿈꾸기가 어려운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난 거죠.
04:35근데 그 사연이 있어요.
04:36왜냐면 김정철 선생님의 할아버지 때 그 마을에서
04:40대한민국 국군을 북한군으로 오해해서 식사를 이제 대접한 일이었어요.
04:45윤기호인데?
04:45네.
04:46그게 할아버지에서 아버지에서 이제 우리 김 선생님 형제들한테까지
04:51연좌제를 이어준 거예요.
04:52아, 없었다고?
04:53그것도 개인이 아니라 그 마을이 해준건데도?
04:56그렇죠.
04:56그래서 군에 입대할 수도 없는 상황.
04:58그러니까 무조건 대대로 3대가 계속 이제 탕광해서만.
05:02탕광일을 해야 하는 운명 속에서 어린 시절을 이제 보내셨던 거죠.
05:06학교 졸업하면 꼼짝없이 아버님도 탕광으로 가야 할 상황인데
05:11그때 이제 뜻하지 않는 변수가 생겼다고 합니다.
05:13어떤 일이 생겼어요?
05:14네.
05:15아, 그때 제가 졸업할 때 평양 이제 13세 세계 청년학 출전을 하게 됐어요.
05:23아, 그렇죠.
05:23대학생들 모이고 그랬던 출전을 했었고요.
05:26네.
05:26근데 저희들이 그 강복거리 건설이라는 걸 가게 됐거든요.
05:30수도 건설으로.
05:31네.
05:32네.
05:32수도 건설에 올라가가지고 한 6개월 동안 일을 하며 이따가 숲진이 걸렸어요.
05:38그럴 때.
05:38하도 일하다 보니까 환경도 안 좋고.
05:41네.
05:41그러니까 평양시 쪽에는 보게 되면 이게 무리가 시원치 않아요.
05:46우리 이쪽 북쪽보다.
05:48이제 무리 안 좋다.
05:48네.
05:50숲진이 걸렸는데 교체를 해야 되는데 교체를 안 해주는 거예요.
05:55그걸로 환경이 또 오죽했겠습니까?
05:57네.
05:57그래서 중도에서 매치 데리고 도망을 친 거죠.
06:01아.
06:02그럼 치료를 못 받고 도망을 가셨다고요?
06:05네네.
06:05그게 왜 치료받으면 되죠?
06:07치료라는 게 그때 당시는 치료가 할 수가 없었어요.
06:10병원이 있을 거 아니에요? 의무대.
06:12의무대에도 거기는 큰 사람들이 다친 경우가 그때에는 치료하는 걸로 돼 있어가지고
06:18저희들 같은 거는 뭐 치료받을 수가 없거든요.
06:21일반 노동자는 아예 병원에서 받아주지도 않는가.
06:2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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