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일단 쇠시봉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봐야 될 것 같은데요. 쇠시봉을 그룹명으로 아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물론 그룹명으로 지금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00:09그런데요. 근원을 살펴보면 1960년대 서울 무교동에서 위치한 유명한 음악 감상실의 이름으로부터 시작을 합니다. 그런데 단순한 음악 감상실을 떠올리시면 안 되고요.
00:22이곳은 시낭송회 그리고 대학생의 밤 같은 아마추어들의 무대가 펼쳐지던 복합문화공간이었어요. 지금으로 치면 복합문화공간이라는 뜻이 장소가 굉장히 많잖아요. 시초라고 생각하시면 될
00:36것 같습니다.
00:37그래서 당시 예술의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하나 둘 이곳에 모이면서 어느새 스타의 산실처럼 성장해버린 곳인데요.
00:45그중에서도 당시 유행했던 게 바로 이 통기타, 이 통기타 연주 아니겠습니까?
00:52쇠시봉 공연장에요. 당시에 정말 날고 기던 전국의 통기타 유망주들이 다 모였는데 이때 이장희, 조영남, 윤영주 씨 등이 쇠시봉 무대에 서기도
01:02했었고요.
01:03또 막내 김세환 씨가 쇠시봉에서는 사실 노래는 한 적은 없지만 이들의 무대를 보기 위해서 쇠시봉을 자주 찾았어요.
01:11훗날 학교 행사에서 윤영주 씨를 만나 굉장히 자연스럽게 교류를 시작하게 됐다고 합니다.
01:18그리고 이들을 이렇게 쇠시봉이라는 이름으로 묶어준, 모이게 한 사람이 있습니다.
01:24바로 원조 국민 MC 이상벽 씨인데 사실 이상벽 씨가 당시에 대학생의 밤이라는 코너에 MC를 맡고 있었어요.
01:33여기 올라와서 만담해도 되고 노래해도 되고 이런.
01:38그런데 이거를 통해서 이런 분들, 이장희 씨, 송창기 씨, 조영남 씨, 이장희 씨 이렇게 좀 교류를 시작하게 됐는데
01:45어떻게 특별히 그 어떤 날이 있었어요?
01:48뭐냐. 한 날 펑크가 난 거예요. 누가 오지 않은 거야.
01:51여기다가 누구를 세우지? 하고 보던 이상벽 씨의 이 매의 눈에 한 명이 딱 들어왔으니
01:57이게 송창식 씨입니다. 송창식 씨가 그런데 자존심이 세서 이렇게 노래하란다고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02:03그래서 이상벽 씨가 바로 이걸로 쇠시봉 무대에 쓰면 이걸 주지 이러면서 꼬셨다고 하는데
02:10그게 뭘까요?
02:12이걸 주지? 저는 뭐 기타 같은 거 하나.
02:15좋은 거 준다고 하지 않아요?
02:16저는 저 얘기를 알기 때문에.
02:18아, 아시나요?
02:20그리고 송창식 씨가 저 때 맨날 배고프게 다녔거든요.
02:23네, 맞아요.
02:25밥 사준다고 하셨나?
02:26네, 맞습니다. 바로 밥이었습니다.
02:29이상벽 씨가 세시봉 무대에 서면 밥을 준다. 밥을 줘.
02:33이렇게 얘기해서 이 자존심 강한 송창식 씨가 승낙했다는 웃지 못할 이런 해프닝 시대상이 읽히죠.
02:41이상벽 씨는 이렇게 세시봉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할 때마다 사실 늘 그 공연을 MC를 봤어요.
02:49진행을 했어요.
02:50그러면서 마치 어떤 세시봉의 한 그냥 정해진 멤버 같은 세시봉의 대장격.
02:58나이는 송창식 씨, 이장희 씨, 윤형주 씨랑 같지만 대장격처럼 그런 역할을 하면서 이 세시봉이 더 굳건해졌습니다.
03:07그런데 정말 대단하신 것 같은 게 보니까 60년대 무교동에 의치한 음악 감상실에서 만나서 지금까지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03:16이게 비결이 뭘까요?
03:17이렇게 긴 우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역시 이 중심에 세시봉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03:24세시봉으로 인연을 맺은 이들이 음악적 교류를 통해서 시간이 흘러도 이 형제처럼 아주 돈독한 사이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03:31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살다 보면 이 파도가 덮칠 때가 있잖아요.
03:36그때까지도 서로에게 손을 기꺼이 내밀어주는 이런 사이로 발전을 했다고 해요.
03:42한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들어보시죠.
03:45손님들이 곡도 만들어주고 또 녹음 날짜가 잡히면 기타도 쳐주고 화음도 넣어주고
03:56그 어떤 땐 나는 먼저 학교 나가고 얘는 늦게 나가는데 내 옷을 입고 나온 거야 내 옷 갈아입고 집을 벗어두고
04:05그러면 무교동 세시봉 앞이나 어디서 만나면 내 옷 입고 있어.
04:09어? 너 그거 내 옷 아니야? 그러면 또 갖다 주면 되잖아.
04:13어떻게 50년 동안 이 관계가 이어질 수 있느냐라고 하는 거에 대해서
04:21어떤 우리는 세시봉 공동체적인 어떤 그런 모임이었다. 만남이었다.
04:29있으면 잘 수가 없으면 모자라면 못 쓰고 그리고 서로에 필요한 것을 공급해 줬다.
04:38음악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보태보자면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04:43당시에는 통행 금지가 있었잖아요.
04:45그래서 같이 있다가 한 사람의 집에 모두 다 같이 집에 들어갈 때가 있었다고 해요.
04:50그러면 윤영주 씨가 먼저
04:52가팡을 둘러낸 그 어깨가 아름다워
04:57이 정도 노래를 딱 부르면 김세환 씨가 그 노래 딱 듣더니
05:00이거 내가 부르는 게 낫겠다. 내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05:05이렇게 딱 이렇게 얘기를 한다고 해요.
05:07그러면 아주 또 기꺼이 윤영주 씨가 이 곡을 내어주기도 했었다라고 하는데요.
05:13게다가 곡을 주기만 한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05:15녹음할 때 기타도 쳐주고 화음도 넣어주면서
05:18서로의 음악에 아주 자연스럽게 계속해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거죠.
05:24심지어 돈이 없어도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05:26경제적인 상황까지 기꺼이 도와주는 그런 사이로 발전을 해나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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