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네, 가수 고, 가수 송대관 씨입니다.
00:07오늘이 2월 7일이죠.
00:09날씨 참 추웠습니다.
00:11정확히 1년 전 하늘나라로 떠난 송대관 가수 이야기로 시작해보겠습니다.
00:18고인이요, 과거 독립유공자의 후손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00:26먼저 고인의 노래 한번 들어보죠.
00:30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모두 비켜라
00:40안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는
00:44쨍하고 또 돌아온단다
00:50뛰고 뛰고 뛰는 몸이라 괴롭지만
00:58힘겨운 나의 평생 푸른 것이고
01:03산뜻하게 맑은 날 돌아온단다
01:08쨍하고 햇들날 돌아온단다
01:16쨍하고 햇들날 돌아온단다
01:18이 히트곡을 남겼던 고 송대관 씨입니다.
01:24히트곡이 자동차의 현장
01:2637년에 데뷔를 했고
01:271975년
01:2875년
01:30해 뜰 날로
01:3210년 무명의
01:34가수를 벗어
01:36던지고 가수왕을
01:39차지했는데
01:40독립유공자
01:41송영근 선생의 손자로
01:43뒤늦게 밝혀졌습니다.
01:45할아버지가 세운 공으로 저를 내세우는 것 같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01:48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 가난에 시달렸지만 할아버지가
01:53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은 가난을 견디는 힘이 됐다.
01:57안지원 기자, 저도 오늘 한 언론의 기사를 보고 알았습니다.
02:01송대관 씨는 해뜰날이라는 노래로 가수왕에 올랐죠.
02:05무려 무명이 10년에 거쳤지만 왜 가수가 노래 제목 따라 인생이 갔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02:11해뜰날과 함께 스타덤에 올랐지만 그때만 해도 본인이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라는 걸
02:16밝히지 않았습니다. 언제 처음 알려졌냐.
02:19해뜰날과 스타덤에 오르고 무려 30년이 지난 2006년 그때 광복절 보신강 타종 행사에
02:25참석하면서 내가 사실은 독립유공자의 손자라는 걸 밝히게 된 겁니다.
02:30그러면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말씀드리면 1919년 그때는 3.1운동 다 기억하시죠?
02:36그때 살고 있는 지역에서 할아버지 송영근 선생이 직접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02:42수천 장을 나눠줬다는 겁니다.
02:44그 당시 증조할아버지가 만석군이셨습니다.
02:46금광까지 운영을 했었는데 일제시대에 이 모든 걸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02:51물론 이 해방 후에도 돌려받을 수는 없었죠.
02:54그래서 송대관 씨는 사실 아버지도 일찍 여의고 어려운 생활을 했었다고 해요.
02:59고기는 전혀 먹어본 적이 없고 달걀을 겨우 먹는 수준이었고 신물배달과 우유배달하면서 근근히
03:07살아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바르게 잘 살아왔었던 이유는 아까 앵커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 얘기였습니다.
03:11할아버지가 세운 공이었기에 내 공이라고 생각 안 해서 말 안 했을 뿐이지만 내가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라는 이 힘으로 절대로 가난했지만 비참하지는 않은 삶을 살아왔다는 겁니다.
03:21그렇게 꿋꿋이 살아온 끝에 해 뜰 날로 스타덤에 오르고 그 후에도 차표 한 장이나 네 박자 같은 숱한 히트곡을 남기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로 자리막이 됐던 겁니다.
03:35예 여기도 보면 1946년생이니까 2025년 지난해 작곡했으니까 아쉽게 팔순을 맞지 못했네요.
03:46좀 더 오랫동안 활동했으면 어땠을까 싶은데 임주혜 변호사 사실 이 해 뜰 날 가사만 들어봐도 요즘에 긍정적인 내용의 가사도 많지만 헬조선 이렇게 해서 사실 안 좋은 내용의 가사도 많은데
04:05이 해 뜰 날 들으면 신나고 아 정말 나도 내 인생에도 해 뜰 날 오겠지라는 긍정적인 생각 갖게 하는 그런 노래잖아요.
04:13국민 희망가입니다. 이 해 뜰 날은 1975년도에 발매가 됐습니다.
04:19당시 오일 쇼크도 있었고 대한민국의 상황 녹록지 않았습니다.
04:23해 뜰 날 송대관 씨가 직접 이 가사를 붙인 작사에 참여한 곡입니다.
04:29저도 이 1975년 뒤에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부터 이 해 뜰 날 가사는 저도 다 외워 부를 수 있을 만큼 국민적인 노래였는데요.
04:38많은 분들이 제일 좋아하는 가사가 이 부분일 것 같아요.
04:41안 되는 일 없다나 노력하면 쨍하고 해 뜰 날 결국 돌아온다나
04:46요즘 젊은이들에게도 또 힘든 일이 있는 분들에게도 희망가라는 표현이 정말 딱 맞는 곡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04:53그렇습니다. 이 송대관 씨 하면 평생 단짝 친구 태진아 씨가 있죠.
05:00과거 방송에 나와서 이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05:04지금은 아버지는 라이벌이라고 생각하고 계신다.
05:07아빠는 큰아빠를 한 번도 라이벌이라고 생각을 못해봐요.
05:10나보다 노래도 더 잘하시고 나보다 히트곡도 더 많고 나보다 가수왕도 다 뭔지 하셨어.
05:16큰아빠 4박자로 가수왕 하셨을 때 아빠가 업었잖아 큰아빠가.
05:21업었었지.
05:21무대에서 가요계 전체를 통틀어서 업어요 그런 모습이.
05:26동료 가수를 이렇게 업어주고.
05:27그래서 아빠가 업어서 키운 가수.
05:31업어서 키울 때 그 얘기가 또 이렇게.
05:33앞에 와서 엎드리면서 형 업혀 업혀 업혀 그러더라고.
05:37엄청 편히 업혔어요.
05:38시상식장에 나를 업고 나갔다고 나를 업어 키웠다고.
05:42싸가지 없는 소리라.
05:44남들 보면 진짜 그런 줄 알아요.
05:46저 때 당시 안지종 기자 업어 키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돌아가신 뒤에는 태진아 씨가 평생 라이벌로 생각한 적은 없다라고 했었다면서요.
06:00네 맞습니다. 실제로는 7살 정도 어리고요.
06:03하지만 두 사람은 누구보다도 라이벌 구도를 형성을 했습니다.
06:06이게 왜 그랬냐면 과거 나훈아 남진 라이벌 구도 이후에 트로트 시장 최고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이 같이 서로에게 이렇게 장난스럽게 말을 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냈던 거였죠.
06:19그래서 지난해 2월 송대관에서 숨졌는데 사실 그해 5월 두 사람이 함께 공연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06:27그런데 그거를 결국 하지 못했었죠.
06:29과거 송대관 씨가 불미스러운 일에 휩싸여가지고 오랜만에 활동을 재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가 이제 가요 무대를 취재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06:38그때 송대관 씨가 자기 방에 없는 거예요.
06:40그런데 보니까 송대, 태진아 씨의 방에 가 있었습니다.
06:43왜냐하면 오랜만에 무대 위에 서고 대중 앞에 서는 송대관 씨의 마음이 굉장히 작아져 있었는데 그런 송대관 씨의 마음을 다독여주기 위해서 태진아 씨가 곁에 주고 계속 용기를 붙들어주고 있었던 거죠.
06:54그만큼 그 사람은 친형제 이상의 우애를 이어왔습니다.
06:58안중 기자 마지막 그때 취재했었던 인터뷰했었던 얘기가 생각나는데 인생이 4박자가 아니라 8박자다 이런 얘기를 했었다죠?
07:06참 공교롭습니다.
07:07지난해 2월 돌아가셨는데 그 직전에 이제 신곡을 내셔서 제가 관련해서 인터뷰를 했었어요.
07:12그때 신곡 제목이 지갑이 형님이었는데 이게 어떤 내용이냐면 지갑아 활짝 활짝 열려라 그런 얘기였어요.
07:18굉장히 해악적인데 너무 요즘 쥔 사람들이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지고 있다.
07:24이럴 때는 가진 사람들이 더 베풀어서 모든 사람이 잘 사는 삶을 만들어야 된다.
07:29어찌 보면 2000년대의 해 뜰 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런 노래였습니다.
07:32이 노래를 열심히 알리고 싶은 시점에 갑작스럽게 돌아가게 된 건데 그때 저한테 한 이해가 그거였습니다.
07:38자신이 50대 때 4박자 노래를 발표했는데 삶이 살아보니까 결코 4박자 정도로 그치지 않더라.
07:46최소한 8박자 정도 되는 것 같다.
07:48그러니까 어떠한 고난이 오더라도 쉽게 꺾이지 말고 한 박자, 한 박자.
07:53이게 한 발짝, 두 발짝 더 나아가는 것처럼 나아가다 보면 인생이 어느 순간에 더 나은 지점에 와 있더라.
07:59이런 얘기를 했었는데 그렇게 권장하던 송대관 씨가 갑작스럽게 이렇게 비보를 정했기 때문에 지난 2월에 많은 이들이 슬픔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08:10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08:12참 안타깝습니다.
08:13하지만 여러 또 경로를 통해서 음악을 또 접해보면 송대관 씨가 곁에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08:19참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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