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서서 기뻐하기도 했지만 숨겨진 아픔도 많은 삶이었다고 합니다.
00:08누구냐. 1991년에 귀순한 북한의 유도 영웅 이창수 씨가 별세했습니다.
00:15북한 선수들은 경기에 지면 아우지에 끌려간다 이런 흉흉한 소문이 있었는데 이 소문에 당사자기도 하셨습니다.
00:24난 진짜 뭐 나라에 충성한다고 열심히 했는데 과연 학교였다고 해서 탕광 보내니까 배신감 탕광 가기 전에 사상투쟁이 지문을 하는데 우리 팀이 촌명이 넘어요 통영 팀이 고위 올라가서 내 비판을 해야 되고 내가 팔 년 동안 일등이었는데 그 삼등도 못하는 것들이 웃고 앉아있더라고요 그래서 마지막에 생각했던 게 야이 가자 나라에서.
00:50탕광에 갔다고 아우지인지 어디 탕광에 가서 상탐 좀 많이 먹고 왔다고 나중에 들었지만 설마 했죠.
00:59경기 지고 진건 진거고 나름대로 체설을 다했는데.
01:05그러니까 별세 소식이 들린 겁니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01:08진심으로 유도를 사랑했던 분 아들 이문진 씨가 아버지를 회상하면서 한 말인데요.
01:16사실 이전 코치 전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01:19고위는요. 8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는 등 북한 유도 대표팀 주축으로 활약을 했습니다.
01:26그런데요. 90년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선수에게 패했다라는 이유로 강제 노역을 하게 되면서 일종의 조국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다라고 합니다.
01:36그래서 91년 스페인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가 독일에서 탈북한 뒤에 한국으로 귀순했습니다.
01:44그런데 이때 이창수 씨의 깜짝 망명이요.
01:48얼마나 큰일이었냐면 당시 남북한 체육회담이 진행되고 있었거든요.
01:52이게 이분 때문에 무산이 됐습니다.
01:55그 정도로 북한이 충격을 크게 받았던 건데요.
01:59사실 북한 유도하면 이창수다라고 할 정도의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02:04사실 받은 순장만 4개고요. 오죽하면 국가대표 훈련장에 이창수 동상까지 있었습니다.
02:11동상까지?
02:12이런 동상까지 세워질 정도의 체육 영웅도 가차없이 탕광으로 보내버리고 또 그런 아픔을 견디셔야 했던 겁니다.
02:20북한에서 이런 동상까지 세워질 정도의 거물이었으면 이게 남한으로 오는 그게 좀 쉽지는 않았을 것 같거든요.
02:27네, 그렇습니다. 우선 탕광에서 어떻게 나오게 되느냐.
02:31이때 실세였던 김일성의 사위이자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의 도움으로 탕광에서 탈출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02:39특히 장성택은 체육회 선수들을 무척 아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요.
02:43그리고 이제 말씀하신 것처럼 이렇게 스포츠 영웅의 귀순은 사실 상상하기가 무척 힘든데
02:48그런데도 굳게 이렇게 귀순을 다짐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02:52그 이유가 단순히 나라에 대한 배신감 혹은 내 자식들을 여기서 키울 수 없다라는 그런 절망감뿐만이 아니었고
03:00귀순 기자회견에서 한 가지 결정적인 이유를 밝혔습니다.
03:05이제 당시 대만 여성과 만남을 시작을 해서 4년 동안 교제를 해서 깊은 정을 쌓았고
03:12그게 남한으로 귀순을 더욱 다짐하게 된 이유였다라고 고백을 한 거죠.
03:17사실 여행조차 북한 당국의 허락 없이 나갈 수 없었던 그런 시기인데
03:21대체 그러면 어떻게 이 북한 유도 선수가 대만 여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졌던 건지
03:26그리고 또 이게 남한으로의 귀순으로 이어지게 됐던 건지
03:30그 전말을 한번 들어볼까요.
03:3525살 때의 우리 이창수 선생님입니다.
03:38한 여인 옆에 계시는데
03:40이 두 분이 만나게 된 계기도 정말 정말 기적에 가까웠어요.
03:45이창수 선생님께서 금메달, 메달을 따고 들어온 그날
03:48우리 진영진, 대만 선수가 먼저 접근을 해가지고 얘기를 합니다.
03:52혹시 사진 한 장 같이 찍을 수 있냐.
03:55그때 찍었던 사진이 바로 이 사진이거든요.
03:59여기서 또 반전이 일어납니다.
04:01또 또 있죠.
04:02당시로서 상당히 파격적인 것 같긴 합니다만
04:08그렇게 관계가 또 깊어지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또 귀순까지 이어지게 되셨던 건데
04:13아니 그 귀순하겠다라는 그 결심을 할 수는 있어도
04:16이걸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아요.
04:18그렇죠.
04:19이창수 씨가요.
04:201991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함께 출전한 진영진 씨에게
04:24탈북 계획을 미리 털어놨다고 합니다.
04:26당신은 꼭 내 사랑이다, 그때까지 기다려달라라는 편지를 전하면서
04:32한국에 가서 다시 찾겠다라는 약속을 했다는 건데요.
04:36그렇지만 이창수 씨의 곁에는요.
04:38항상 그를 감시하는 코치가 있었습니다.
04:41그래서 탈북 계획을 실행하는 것 결코 쉽지 않았는데요.
04:44하루는 이창수 씨가 코치에게 술을 먹였고
04:47코치가 잠든 틈을 타서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려서 탈북을 감행한 겁니다.
04:52이후에 이창수 씨가 귀순했다라는 기사를 본 진영진 씨가
04:56가족들과 친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04:59그 사람은 나만 믿고 온 건데 나도 가서 찾아야 한다라고 하면서
05:02한국으로 향했다는 겁니다.
05:05두 사람이요.
05:05한국에서 재회를 했고 3개월 말에 결혼식을 올렸다고 합니다.
05:10이창수 씨는 내가 힘들 때 나를 많이 도와줘서
05:12이 사람하고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했다면서
05:14진짜 사랑의 불치창은 불치창은 우리다 이런 얘기도 했고요.
05:18사랑의 불치창.
05:19그렇죠. 그리고 이창수 씨와 진영진 씨 모두 다시 태어나도 같은 선택을 할 거다라는 얘기로
05:24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줬었습니다.
05:27정말 감동적인 얘기인데 이렇게 어렵게 만나서 이루어졌고
05:31또 세 아들을 낳아서 전부 또 유도인으로 잘 키워내셨습니다.
05:36그래도 그 마음속에는 그리움이 여전히 남아서
05:38북한의 남은 가족을 찾으려고 참 많이 애쓰셨다고 해요.
05:41그렇습니다. 이창수 씨는 북한에 있는 친모하고 가족들을 어떻게 하면 좀 데려올 수 있을까
05:48무척 골몰했었던 것 같습니다.
05:50아직까지 그 남북 이산가족들도 많이 남아 있잖아요.
05:53하지만 이분의 경우는 탈북을 했기 때문에
05:56그 남아있는 가족들에 대해서 늘 죄책감을 아마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06:02그래서 그 가족들을 좀 데려오기 위해서 브로커들에게 돈도 많이 뜯겼다고 해요.
06:08그러니까 최대 한 7억 가지를 사기를 당했다고 하는데
06:11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자기가 조선족 기자다 이렇게 하면서
06:15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06:19그걸 보면 정말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을 테고
06:24그걸 이용해서 아마 사기를 쳤던 모양입니다.
06:27총 7억을 날렸다고 하고요.
06:28이창수 씨는 가족을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돈을 모으려고
06:33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무척 노력을 했었대요.
06:36그래서 오죽하면 영양실조로 쓰러져서 병원에 간 적이 있을 정도라고 하고요.
06:41술 마시고 취하면 자고 또 일어나서 술 먹고 이렇게 한동안을 지내다 보니까
06:46정말 아내 입장에서는 무척 힘들었었던 것 같습니다.
06:50남편이 간경화, 알코올 중독 진단을 받고 또 폐에 물이 차기까지 해서
06:55의사 선생님이 오래 못 산다라는 이야기를 하기까지 했다고 하는데요.
07:00결국 알코올 사용 장애로 2개월 시안부 선고를 받기까지 했었습니다만
07:05이창수 씨는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버티기도 했습니다.
07:09이분의 말을 들자면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이 가족 가지고 장난치는 놈 아니냐.
07:15자기도 가족이 있을 텐데 하지만 이제는 있기로 했다라고 말을 전해서
07:19먹먹함을 더하기도 했었습니다.
07:21또 귀순 유도 영웅의 이야기 한번 살펴봤습니다.
07:2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