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개월 전
아역부터 천만 배우까지…69년간 170여 편 출연
안성기, 구설 없는 60년…철저한 '자기관리' 아이콘
"좋은 사람, 좋은 배우"…故 안성기 추모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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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트랜스크립트
00:00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00:30너무 업종들 많이 해주시는데 아주 좋아지고 있고 또 새로운 영화로 여러분을 뵙도록 하겠습니다.
00:41새로운 영화로 찾아뵙겠다라는 말씀이 가슴이 참 아픕니다.
00:45중환자실로 옮겨지셨다 이런 소식이 들린 지 엿새 만에 별세 소식이 전해졌어요.
00:50지난 1월 5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병원에서 아내 오소영 씨 그리고 아들 안다빈 필립 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결국 안성기 배우가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01:06당초 큰아들이 2일 금요일에 귀고를 한다고 해서 아들 얼굴 보면 좀 자리 털고 일어나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들이 있었는데
01:13안타깝게도 결국에는 안성기 씨는 고인이 되셨습니다.
01:18영정사진 방금 보셨는데 영정사진은 살아생전 고인이 제일 좋아하던 1987년작 기쁜 우리 젊은 날의 포스터 이미지를 사용을 했습니다.
01:27그렇군요.
01:27고인이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모기 걸린 채 쓰러져서 심정지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었습니다.
01:36사실 혈액암 투병을 좀 장기간 해오고 계셨는데 그래도 한층 나아지고 밝아지는 모습을 보이셔서
01:42이렇게 비보가 전해질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을 못했는데 연말에 정말 너무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던 거였거든요.
01:49이렇게 입원한 지 6일 만에 결국에는 숨을 거두신 거고요.
01:52장례는 고인이 이사장을 맡았던 신영균 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가 주관해서 영화인장으로 치러지고 있습니다.
02:01명예장례위원장은 원로배우 신영균 씨가 맡았고 지금 배우 이정재 씨 모습이 보이죠.
02:08그리고 정우성 씨도 조문을 하고 있고 오랜 기간 같은 소속사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배우이거든요.
02:14웅구도 배우 이정재 씨 그리고 정우성 씨 등이 참여해서 함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02:20배창우 감독이 공동장례위원장을 원로배우 신영균 배우님과 함께 맡았고요.
02:26발의는 나흘 뒤 9일 오전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02:30이렇게 69년 연기 인생의 마침표를 찍게 된 고 안성기 씨.
02:365살 꼬마에서 70대 노신사까지 안성기 씨가 걸어온 길은 그 자체가 곧 한국영화의 길이었습니다.
02:44너 자신만의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준다면 이 칼 나를 위해 다시 한번 잡을 수 있나?
02:52내 임무는 이제 너희를 죽이는 것이다.
02:56비겁한 변명입니다!
02:57사람들은 내 아무것도 모르고 싶어요.
03:00그 모두 어떻게 그렇게 편하게 살 수 있었는지.
03:02솔직히 저도 기억이 안 납니다.
03:04이제 그만하세요.
03:06넌 양심도 없냐?
03:08사람을 죽여놓고!
03:09정말 그 한 편 한 편이 다 울림이 있는 영화들인데 최진봉 교수님 혹시 개인적으로 어떤 것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03:18아까 잠깐 영상에 나왔으면 실미동 같은 경우도 그때 정말 대박을 터뜨린 영화였기도 했고요.
03:24우리의 옛 역사 숨겨져 있었던 우리의 역사적 사실들을 하나하나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의미가 있었고
03:29또 저는 안성기 씨 하면 투캅스하고 그다음에 박주문 씨하고 연기했던 그런 영화들이 대부분 생각이 많이 나요.
03:37라디오 스타도 마찬가지.
03:38라디오 스타도 같은 경우에는 정말 한물간 연예인을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다시 또 이렇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03:46형님 같기도 하고 때때로 좀 엄중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정말 친근한 모습도 많이 보여주셨거든요.
03:53그런 이미지 그런 이미지가 코믹 그다음에 정극 그리고 역사물
03:57뭐 전 영역에 걸쳐서 정말 역할을 맡은 것마다 실제로 그 역할을 사는 사람처럼 보여줬다는 점에서 참 의미 있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04:06한 170여 편에 달한다고 하는데 워낙 많아서 사실 기억에 남는 게 워낙 많아요.
04:11그런데 저는 이제 단 하나 꼽으라면 정말 저는 고민하지 않고 라디오 스타를 하겠습니다.
04:17왜냐하면 그 작품이야말로 인간 안성기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것 같아요.
04:21그러니까 조금 전에 말씀하셨지만 한물간 배우를 다시 일으켜서 오는 게 아니라 거기에 대한 배려 그다음에 자기 희생, 헌신 그다음에 본인은 절제하고 상대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04:31그런 모든 것들이 정말 안성기화되어 있는 그런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고
04:36그리고 저 영화가 사실은 개인적으로도 박중훈 씨도 어찌 보면 다시 한번 터닝포인트를 할 수 있는 그런 인생의 영화가 됐기 때문에
04:43두 분의 케미도 케미지만 어찌 보면 인생 안성기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그런 역작이 아니었나 저는 그렇게 평가하고 싶어요.
04:51그런데 그 안성기 씨의 커리어를 한번 보면요.
04:54이렇게 5살에 데뷔를 해서 20살이 되던 해에 영화제 나무주연상까지 받았습니다.
05:02어떻게 보면 상당히 레전드 커리어지만 자세히 보면 60년 후반부터 한 10년 정도가 비어있습니다.
05:09이때가 김원식 평론가 상당히 안성기 선생님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고 해요.
05:14그렇습니다. 그래서 1965년의 알개전 이후에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 그런 상황이고
05:19그러다가 1977년에 병사 아가씨도 돌아오게 되는데요.
05:23거의 10여 년 가까이 비어있죠. 그런데 이 부분은 두 가지 요인 때문입니다.
05:28첫 번째는 사실 안성기 씨 같은 경우에는 아역배우로 등장을 해서 성인 연기자까지 성공한 유일무이한 케이스였습니다.
05:37그렇기 때문에 아역배우에서 성인 연기자로 변신할 때 굉장히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05:43그런 갈등들이 있었고 사실 개인적으로는 일단 대학에 진학을 해서 ROCC 장교로 또 복무를 했고
05:50장교 복무한 이후에 해외 취업을 도모했지만 베트남 전쟁 때문에 취업을 하지 못한 그런 상황 속에서 1977년에 돌아오는데
05:58이때 돌아오니까 영화 산업적인 상황 속에서 약간 변화가 있었던 것이죠.
06:03일단 그때는 약간 가벼운 호스티스물 그리고 가벼운 액션물들이 있다 보니까
06:08좀 영화에 대한 인식이 좀 안 좋았던 측면도 있습니다.
06:12그러다 보니까 나는 어떤 영화를 해야 되는가라는 고민이 있었고
06:15그러다가 이제 1980년에 바람이 불어도 좋은 날 이런 작품들을 통해가지고 다시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06:22성인 연기자의 길로 다시 변신에 성공한 것이죠.
06:25자리에서 보면 작품도 신중히 고르겠다 다짐했다라는 건데
06:29청년 안성기가 복귀를 하면서 나름대로 작품 선택의 기준으로 내세운 겁니다.
06:35이게 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작품을 나는 택하겠다라고 했던데 그게 뭡니까?
06:40일단은 그 이후의 작품들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06:4481년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예에 출연하고요.
06:47또 1982년에 바로 우리가 꼬박동네 사람이라는 사람들이라는 작품으로 나무주연상을 받게 되는 거거든요.
06:59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들을 보면 특히 꼬박동네 사람들 같은 경우는 서민들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07:05그 당시에 이제 개발 과정에서 좀 소외됐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07:08그 뒤에 칠수와 만수에 이르기까지 1980년대에는 안성기 씨가 사회 현실을 좀 반영한 작품들이 많이 출연하죠.
07:16그래서 고래의 사냥 시리즈도 마찬가지고 그런 면에서 한국 영화에 대한 인식을 탈바꿈시켜줬던 큰 기여를 했던 측면이 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07:25그런데 사실 우리가 안성기 씨를 부를 때요.
07:29흔히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07:30국민 배우라고 칭하는데 이게 사전을 한번 찾아보니까
07:33뛰어난 연기력과 모범적 활동으로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배우다 이렇게 뜨던데
07:40어떻게 보면 가장 이견이 없는 분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07:44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국민이라는 타이틀이 그 앞에 수식어가 붙을 때는 사실 그만한 삶의 자격이 있는 거죠.
07:51그런데 제가 오늘 부고 기사가 많이 뜨지 않았습니까? 안성기 선생님에 대해서.
07:55그런데 제가 딱 하나가 눈에 탁 들어오더라고요.
07:58운명이 낳고 노력이 기른 배우.
08:01저는 그 기사가 그 기사의 제목이 가장 안성기 선생의 일대기를 압축시켜준 게 아닌가 싶은데
08:07안성기 씨는 사실 어찌 보면 성실과 절제, 신의와 예의 이 네 글자가 평생을 본인을 관통했던 키워드라고 저는 볼 수 있습니다.
08:16그러니까 제가 보기에 그런데 이게 후천적으로 본인이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닌가
08:21선천적으로도 보니까 선한 성품과 그다음에 남에 대한 배려 그리고 자기 절제, 헌신 이런 것들이 아마 타고난 그런 쪽이 있어서
08:29일종의 약간 물려받음도 있겠지만 그것을 끊임없이 관리하고 한 차 단 한 번도 그런 것에 대한 자기 어떤 실수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08:37그런 어떤 아주 부단한 노력들이 오늘의 안성기 씨에게 우리가 국민 배우라는 수식어를 붙여줘도 부끄럽지 않고 당당한 그런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08:47그런데 커리어를 보면 실제 90년대 연예계에서는 전개로 넘어가신 분들도 꽤 있으셨어요.
08:54그래서 안성기 씨도 혹시 그러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영화판에 아예 떠나지는 않았었고 단 한 번도 TV 드라마도 찍은 적이 없어요.
09:04그렇습니다. 영화를 사랑했고 영화에서 늘 삶을 살았던 분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사실 전개에서 안성기 씨에 대해서 너브콜이 없었던 게 아니에요.
09:12실제로 출마살이 있기도 했었지만 본인이 고사를 했다고 그래요.
09:16그러니까 본인은 사랑이든 정치든 다 연기해서만 한다.
09:20그리고 실생활에서는 소심으로 살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고 하는데 본인은 난 그냥 영화로 모든 걸 하고 싶다고 얘기했을 정도로 이렇게 소위 영화를 떠나서 외도하는 일을 철저히 금지하면서
09:32제가 볼 때는 안성기 씨가 그래서 사람들이 존중을 받는 것 중에 하나가 스캔들이 별로 없어요.
09:37영화 안에서 본인의 삶을 보여줬지 그 외의 삶에서는 정말 소심인처럼 살았거든요.
09:43그런 점에 안성기 씨를 또 우리가 좀 더 좋은 배우로 기억하는 이유가 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09:49이렇게 안성기 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또 안성기 씨와 인연이 있었던 분들도 애도를 표하고 있습니다.
09:56그런데 알고 보니까 연예계의 한 분야를 주름잡았던 이 분도 특별한 인연이 있으셨다고 합니다.
10:03중학교 동창이고요.
10:07서로 집애들 서로 같이 놀러 다니고 어렸을 때 아주 친한 친구였어요.
10:14진짜 조용했어요.
10:16예전에 이렇게 사진 보면 모범생의 어떤 모습을 갖고 있었던 조용필 씨였고
10:25그 다음에 그때 키가 지금 키하고 같습니다.
10:29무조건 들으면 좋은 거는 돌아와요.
10:31부산항이에요.
10:34꽃피는 동백섬에
10:39봄은 왔고
10:43너무 높이 잡았다.
10:44가왕 조용필 씨와도 인연이 있으셨던 건데
10:52참 마음이 얼마나 슬플까 지금 헤아리기도 어렵습니다.
10:55네, 그렇습니다.
10:56그래서 경동중학교 동창인데요.
10:59사실 우리가 어떤 학교를 같이 나왔다 그러면
11:01같은 학년이었을 뿐이지 인연이 없는 경우도 있는데
11:04그렇지만 이 두 사람은 같은 반 친구였습니다.
11:07그래서 구체적으로 29번, 30번이었기 때문에 같은 짝이었습니다.
11:12그 이후에 60년 단짝으로 죽마고 오다라고 할 정도죠.
11:16그러니까 29번, 30번이니까 키도 비슷하고
11:18사는 것도 이제 도남동하고 정릉에 살았기 때문에 붙어있지 않습니까?
11:22그래서 조용필 씨 같은 경우에는
11:24아버님이 엄하셨는지 밖에 나가지 못하겠다고 그래요.
11:27크리스마스 같은 경우에도.
11:28그런데 안성기 씨가 바깥에서 부르면 그렇게 좋아했다고 합니다.
11:32왜냐하면 성기하고 놀아도 된다 이렇게 부모님이 허락을 했기 때문에
11:36그 정도로 굉장히 친했고 그 이후에도 우정이 계속되어 왔던
11:39두 사람의 그런 훈훈한 이야기가 계속 또 여운을 주고 있습니다.
11:43이렇게 평생 삶을 나누던 친구를 잃은 상황.
11:47죽마고 오는 슬픔을 삼켰습니다.
11:52참 좋은 친구예요.
11:54아주 좋은 친구입니다.
11:56성격도 좋고 같은 밤 제 옆자리에 있었어요.
12:00옛날 생각마저 어렸을 때 같이 많이
12:05뭐 학교 끝나면 같이 집으로 같이 항상 같이 다닐으니까
12:11지난번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제가 왔었고
12:15그때 코로나 시기였기 때문에 병원은 들어갈 수 없어서
12:21와이프하고 한참 얘기도 했고
12:25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또 이렇게
12:27그래서 정말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12:33하고 싶은 게 아직도 굉장히 많을 텐데
12:35올라가서도 편해야죠.
12:38너무 아쉬움 갖지 말고
12:39성기야 또 만나자.
12:42연기 부분은 이미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부분이니까
12:48하지만 연기이기 이전에
12:53그냥 사람의 모습으로서 너무 훌륭하고
12:57저희들이 평생 존경하는
13:00정말 아주 훌륭한 그런
13:04그런 선배였다고 생각합니다.
13:08조금 전에 빈소를 찾았던 조용필 씨 그리고 박상원 씨 모습
13:17저희 보여드렸는데
13:18영화계 뿐만이 아니라 각계에서도 추모가 이어지고 있어요.
13:22그렇습니다.
13:22사실 고인은 평생 영화에 헌신하고 문받쳐서
13:26어렸을 때부터 영화만을 생각하던 영화 배우였지만
13:29그 영향력만큼은 한국 대중문화 예술계의 빛으로 남아있는
13:33그야말로 국민 배우였기 때문에 비단 영화계뿐만 아니라
13:37가요계라든가 종교계에서도 고인을 추모하는 어떤 물결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3:43일단 영화 배우들은 신현준 배우도 그렇고
13:47이시연 배우도 그렇고 사실 배우의 배우였거든요.
13:50어린 시절부터 안성기 배우를 보면서 배우를 꿈꿔서
13:53배우가 됐다고 말하는 분들 너무 많아요.
13:56신현준 배우, 이시연 배우가 대표적인 분들인데
13:58사랑합니다 선배님, 좋은 배우는 좋은 사람이다 라고
14:01SNS에 추모글을 남긴 신현준 배우도 있고
14:04또 배우 이시연 씨도 SNS에 어릴 적에 선생님 연기를 보면서
14:08꿈을 키웠다, 항상 존경한다 이렇게 추모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14:12가요계에서는 가수 배철수 씨 그리고 윤종신 씨
14:15대표적으로 추모 메시지 전하고 있는데요.
14:18배철수 씨도 SNS에 생전에 같이 찍은 사진 올리면서
14:22저렇게 만나면 늘 환하게 웃어주시던 형님
14:26너무 좋아했다, 감사하다 이렇게 명복을 빈다 이렇게 추모 메시지를 올렸고요.
14:30윤종신 씨도 정말 좋아했다, 잊지 않겠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14:35또 안성기 배우는 굉장히 독실한 천주 교도였거든요.
14:39그래서 정순택 서울대 교구장 대주교가 메시지를 내놨는데요.
14:43오랜 세월 국민 배우로서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전해온 안성기 사두요한 배우의
14:48선종서식 접했다, 너무 슬프고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
14:52세대와 시대를 넘어서 이 진정성 있는 모습이 많은 이들 마음속에 오래 남아서
14:57우리 사회에 밝은 빛이 되어주었다 이렇게 추모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15:01김원식 평론가 오늘 아침에 안성기 선생님 별세 소식 듣고
15:05문화평론가에서 참 가슴이 아프셨을 것 같아요.
15:08워낙 한국 영화에 남기신 족정이 워낙 커서.
15:10그렇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대표적인 국민 배우들 많이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15:17이제 톰 앵크스를 얘기하지 않습니까?
15:18그런데 한국에는 안성기 씨가 있었다고 할 만큼
15:21사실 1959년 첫 작품이 10대 반항인데 이때 소매치기 역을 7살에 하거든요.
15:27이게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서 아역상을 받는데
15:29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거예요.
15:33그 이후에 킬러도 했고 또 장군도 왔고 대통령도 할 때까지
15:38페르소나라는 단어쓭니다마는 국민들을 위하는 작품이라고 하면
15:43어딘지 나섰고 특히 영화 산업 현안, 스크린 쿼터제를 포함해서
15:47문제가 있을 때마다 또 실천하는 영화인들의 모습을 보여줬거든요.
15:51그래서 한국 영화 K컬처가 지금 위상을 갖고 있는 데는
15:54안성기 씨의 역할도 굉장히 컸다라는 점을 다시금 기억하고
15:57이 K컬처가 안성기 씨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16:01앞으로 쭉쭉 더 뻗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16:02고 안성기 씨, 참 많은 분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기억되실 것 같습니다.
16:09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