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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 탈북 계획을 말한 김강우!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2016년 탈북에 성공한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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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매주 일요일 밤 10시 40분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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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반역사 집안에 거의 아들이 되다 보니까 학교에 제대로 나갈 수도 없었고요.
00:04진짜 거의 산에 남하러 다니고 약초 캐고 집안일 도우면서 반 백수로 지냈었고 학교 졸업하고 거의 무직으로 그렇게 지냈었고요.
00:15어떤 사람이 진짜 나사자랑 고향을 떠나서 부모 형제를 다 버리고 이제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겠습니다.
00:19그냥 그렇게 만드는 체제가 문제인데 이제 북한 사회 같은 경우에는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가니까 이 사회에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제가 어머니한테 말씀을 드렸죠.
00:30어머니 저 여기서 더 이상 미래가 안 보여요.
00:33제가 여기 있으면 아버지처럼 그냥 평생 노예처럼 돈 못 받고 일하다가 죽을 것 같은데 너무 억울하다.
00:40나는 살고 싶다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죠.
00:43어머니한테 그래서 어머니 그게 뭔 소리냐 잘 얘기해봐라 해서 저는 아랫동네 가겠습니다.
00:49자 이제 엄마한테 얘기했어요.
00:53엄마 난 미래가 안 보여요.
00:55아랫동네에 남조선 갈래요.
00:57엄마 놀랐어.
00:58이랬을 때 엄마의 반응이 어땠어요?
01:00어머니가 아무 말씀도 못 하셨어요 솔직히.
01:03가라고 어머니가 그냥 우셨어요.
01:04그리고 하셨던 말씀에 기억에 남는 게 내가 너를 이 땅에서 어떻게 잘 내세울 수 없으니까
01:09유명은 네가 개척해서 살아야 된다.
01:11그렇지.
01:12그래서 네가 가겠다고 하면 가는 건데 나는 응원도 못하겠고 잡지도 못하겠다.
01:17그만큼 위험한 길이기도 하고.
01:19네 남편을 잃으셨으니까.
01:21그럼 뭐라고 그래 거기다 대고 가라고 할 수도 없고 가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01:23제가 그렇게 말씀을 드리고 나서 바로 탈북한 게 아니고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린 거예요.
01:28준비도 필요하고 나만의 친척이 없다 보니까 제가 여기까지 오는 길을 알아서 자자야 되다 보니까
01:34그때 자다 깨나보면 그냥 어머니가 매일 새벽마다 오셨어요.
01:39그래서 보고 계셨어요.
01:40아니 엄마는 어떻게 살아야 돼.
01:41그러니까.
01:41어머니가 또 이렇게 힘들어하시면 어머니랑 함께 탈북을 해야겠다는 이런 생각은 안 하셨어요?
01:47그 생각은 진짜 많이 해봤는데 자신이 없었어요.
01:50저도 처음 가는 길이다 보니까 또 아버지가 시신으로 돌아오고 나니까 나도 가다 죽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01:58제가 그때 합리적이라고 했던 생각은 그냥 제가 먼저 가서 돈 많이 벌고 성공해서 3년이든 5년이든 안에 모시러 다시 와야겠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02:09그렇게 이제 2015년 12월이에요.
02:126개월 동안 탈북을 강호 씨가 준비를 한 겁니다.
02:16그래서 2016년 5월 같이 탈북을 결심했던 다른 친구와 함께 브로투커를 통해서 우리가 익히 아는 그 루트대로 중국과 라오스를 거쳐 태국으로 가서 난민수용소에 들어간 다음에
02:2920일 만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됩니다.
02:33제일 빨리 됐네요.
02:33그런데 이제 무사히 한국으로 도착하기까지 강호 씨만의 특별한 또 비결이 있었다고 해요.
02:41탈북할 때 아버지 사진을 한 장 챙겨왔어요.
02:43그래서 사진이 없기도 했었고 너무 크면 또 가지고 오기 불편하니까 이렇게 자그마하게
02:48아버지 사진 가져온 사람?
02:51목에 걸고 왔었고요.
02:53분반?
02:54분반처럼 이렇게?
02:54네, 목에 걸고 왔었고요.
02:56그리고 이 사진 뺏어보면 제가 뒤에 구슬강자에 참을 인자를 새겼어요.
03:01너무 힘들어서
03:02솔직히 정말 아버지가 지켜주신 그런 덕분에 강호 씨는 무사히 한국에 도착을 합니다.
03:22드디어 2017년 2월 한국 사회의 첫 발을 내딛는데 우리 강호 씨에게는 더 큰 목표가 있었어요.
03:28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아직 북략에 어머니가 계시잖아요.
03:32그래서 어머니를 탈북시키기 위해서 돈을 벌자, 빨리 돈을 많이 벌자라고 결심을 하시게 됐는데
03:39저는 이게 굉장히 큰 결심이라고 봐요.
03:42아니 근데 이제 브로커를 통해서 어머님을 모시고 와야 될 텐데 최하 몇 백만 원에서 몇 천만 원이 든단 말이에요.
03:50이제 막 남한 사회에 나왔는데 어떤 일을 해서 그 큰 돈을 벌려고 생각을 하셨어요?
03:55이제 하나원 선생님들이나 먼저 나온 탈국 선배들 또 저희 동기 친구들이나 이런 분들 통해서 직업이나 일자리들 막 소개받고 해서
04:02거의 쉬지 않고 뭐 닥치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이면 거의 다 했었던 것 같습니다.
04:07뭐가 있어요?
04:08기억에 남는 게 저 경기도 의천에서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그 CmC 침대에서
04:12아 매트리스 만드는 회사?
04:14네.
04:15거기서 뭐였어요?
04:16그 매트리스 이제 그 조립을 했었죠.
04:18그 와중에도 깨알처럼 홍보를 하는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04:23네. 너무 재밌고 그 계속 그 똑같은 작업을 단순 반복 작업이다 보니까
04:28이런 뭐 하루 이틀 만에 금방 적응을 했고요.
04:31이런 건물들 위에 그 물 안 새게 장수화하는 자맹이 페인트 칠하는 걸 했었고요.
04:37녹색.
04:38그게 생각보다 힘들더라고요.
04:39더 힘들어요.
04:40뜨겁고.
04:41시멘트도 무겁고 뭘 계속 돌려야 되고 네.
04:43그게 있었고 비닐하우스 짓는 일.
04:46하우스 짓는 거예요?
04:47네.
04:48근데 그게 쉬울 줄 알고 갔는데 생각보다 올라가니까 너무너무 높고
04:52그 밟고 다니고 비닐 펼치면 또 바람 불면 막 날리고 무섭더라고요.
04:56그것도 해보고 네.
04:58닥치는 대로 날이 많았네요.
04:59이게 돈은 좀 되는데들 이랬어요.
05:02해먹을.
05:03아니 되게 힘든데 일당 센 거예요.
05:06그때 땅 세는 그냥 하루 13만 원씩.
05:09그치?
05:09네.
05:10썼어야 좀 밥도 좀 먹고 옷도 사 입고 좀 이렇게 했어요?
05:14뭐 사실 체련이 형 같은 사람 만나면 형님이 다 사주시니까
05:17제가 쓸 일이 없었던 것 같아요.
05:19아 또 이제 반대로.
05:20내가 그때 이렇게 많이 버는 줄 알았어요.
05:22막 안 사줬죠.
05:23내가 문제없게 벌었는데요.
05:24반대로.
05:25또 뭐 해서 한번 사주고 싶어요.
05:26그래서 자아가 문판이 붙이는 데에만 남았고
05:29해볼 수 있는 데이터가 있는 데이터가 반대로
05:31이거 못 할 수 있어요.
05:32두 분이 걸어야 되참
05:47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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