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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년 전
■ 진행 : 김영수 앵커
■ 출연 : 안호재 / 故 안병하 치안감 아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했다 붙잡혀 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숨진 고 안병하 치안감. 역시 무고한 희생자들 중 한 명일 겁니다. 안 전 치안감의 아들 안호재 씨가 전화로 연결돼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호재]
안녕하세요.


안호재 씨가 기억하는 1980년 5월 18일. 40년 전입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시죠?

[안호재]
그 당시 제가 5월 18일에는 광주 현장에 없었고요. 그때는 저는 서울에 있었는데 저희 가족은 평범한 공직자 가정이었습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안호재]
네.


어떻습니까? 그날 아버지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안호재]
아버님은 경찰국에 근무하실 때 무슨 일이 발생하면 집에는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저도 서울에 있었고 아버님을 제가 뵙게 된 게 2개월, 3개월 만에 뵙게 된 것 같았습니다.


2개월, 3개월 만에 뵙게 됐다. 어디서 뵈셨는데요?

[안호재]
아버님이 보안사에 압송되고 그다음에 경찰 치안본부 조사받고 나오셨을 때 그때 아주 오랜만에 뵙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고 안병하 치안감. 당시 전라남도 경찰국장이셨죠.

[안호재]
네.


그때 맡고 계신 임무가 무엇이었죠?

[안호재]
경찰로서 전남 지역, 그쪽의 시민, 도민의 단순한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경찰의 임무를 맡고 계셨습니다.


그렇죠.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의무 그걸 수행하고 계셨는데. 경찰은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없다, 이런 생각을 갖고 계셨고 실제로 신군부의 지시를 거부하셨어요.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신군부에 체포돼서 보안사령부에 끌려가서 갖은 고문을 당하신 거죠?

[안호재]
네.


그때 두 달 만에 뵈셨다고 했는데 어떤 고문을 겪으셨습니까?

[안호재]
처음에는 아버님이 말씀을 안 하셨어요. 나중에 말씀하시는 게 허리도 펼 수 없는 공간에서 계속 잠을 안 재우고 불을 비추고 똑같은 말을 계속 질문하고. 그 당시에는 그냥 죽을 방법만 있으면 죽고 싶었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고문이 매우 심해서 그 고문 후유증이 여러 병으로 이어지셨다고 들었습니다.

[안호재]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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