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네, 가수 심수봉 씨가 한 방송에 오늘 출연할 예정인 녹화를 했다고 합니다.
00:08그 안에서 이 노래에 대한 에피소드를 밝혔다고 합니다.
00:13우리 48년간 가수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심수봉 씨.
00:19이 노래 정말 국민 애창곡이죠.
00:21들어보시죠.
00:30아쉬워 두 손이 꼭 잡았나 아쉬워 꼭 잡은 두 손 손 앞에 봐라 눕힌 대로 헤어지나
00:44남자는 남자는 다 남자는 다 모두가 그렇게 다
00:56안진영 기자
00:58가사 제목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01:03이걸로 이걸 불렀는데 순진한 여자인 줄 알았더니 저지리네
01:08이런 얘기를 들었다는데 왜 그렇습니까?
01:11일단 저 노래는 심수봉 씨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01:14작사 작곡.
01:15그렇습니다. 원조 싱어송라이터로 유명하죠.
01:18저 노래를 왜 만들게 됐는지 먼저 말씀을 해드리면
01:21꽃꽂이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의 남편이 외양 선원이었다는 거죠.
01:27결국은 그 배를 타고 먼 길을 떠나는 남편을 보면서 하염없이 우는
01:32이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떠나는 자 또 그를 보내며 기다리는 자의 모습을
01:37이 작품으로 만들게 됐다는 겁니다.
01:40그런데 이 노래를 듣고 나서 많은 이들이 호응을 했는데 정작 몇몇 청취자들이
01:46굉장히 조용하고 순진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저지리네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거죠.
01:53이걸 놓고서는 나는 왜 이런 반응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는데
01:57이거를 남녀를 너무 비유적으로 너무 외설적으로 해석을 한 게 아니냐 하는 얘기까지 나오게 됐다는 겁니다.
02:04그래서 정작 많이 속이 상했다고 하는데 이런 반응이 나온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02:08그만큼 이 노래가 인기가 높다는 얘기겠죠.
02:111984년에 발표한 노래인데 그 당시 기준으로 한 달 발매 기준 저작권료만 7천만 원.
02:18요즘으로 따지면 무려 3억 원이었다고 합니다.
02:20그만큼 높은 인기를 누린 노래였던 만큼
02:23그거에 대한 반작용으로 여러 가지 이런 반응들도 나왔던 것으로 풀이가 됩니다.
02:28그런데 안중 기자, 당시에 배 타는 사람들이 주로 남성이었을 거고
02:31가족이 있는 남성 항해사였다면
02:35당연히 기다리고 있는 가족, 여정, 아내가 있었을 테니까
02:38그런 가사를 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저게 외설적이에요?
02:41전혀 그런 느낌을 누군가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02:44중요한 거는 그 노래 자체만 놓고 봤을 때는 그림이 딱 그려지죠.
02:48멀리 배가 떠납니다.
02:49그 당시 1980년대만 해도 비행 자율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죠.
02:53대다수 해외 갈 때 특히 이런 외향사 선원이라든지
02:56혹은 파도 광부 이런 분들도 배를 타고 떠났다는 겁니다.
03:00그러면 이 아내와 가족들은 항구에 남아서 손을 흔드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죠.
03:05그러니까 그 모습을 너무 슬펐기 때문에
03:08노래로 만든 심수봉 씨의 노래가 발표됐던 거였고
03:11그 노래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호응을 했던 겁니다.
03:14맞아.
03:14저 장면을 보면서 나도 저런 슬픔을 느꼈어 해서 엄청난 인기를 누린 건데
03:18오히려 이거를 굉장히 삐딱하게 바라보는 이 사람들의 시선이 외설적이었기 때문에
03:24이 노래가 저질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게 됐고
03:26그 당시 심수봉 씨가 적지 않은 심적 부담 역시 느꼈다는 거죠.
03:30예.
03:31심수봉 씨 하면 히트곡이 참 많죠.
03:34이 노래도 있는데 이 노래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만든 곡이라고 합니다.
03:39들어보시죠.
03:55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제가.
03:56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좀 하고 그랬는데
04:00손님으로 나훈아 선배님이 오셔서 노래를 하나 서비스로 불러드렸는데
04:09곧바로 레코드사 사장님 두 분을 모시고
04:12이분이 가수 안 하면 누가 하느냐 그러면서 굉장히 좋게 봤나 봐요.
04:19그때 그 사람이 나훈아 씨였군요.
04:22그렇습니다.
04:23심수봉 씨가 과거 나훈아 씨를 오랜 기간 짝사랑했던 그 심정을 공개했습니다.
04:29그리고 그때 그 사람이라는 이 노래도요.
04:31나훈아 선배님을 생각하며 만든 곡이다라는 이야기를 전하셨는데요.
04:35두 분의 인연은요.
04:36심수봉 씨가 피아니스트로 아르바이트를 할 때
04:39나훈아 씨가 우연히 그 가게를 방문하면서 시작이 됐습니다.
04:43한눈에 후배 가수의 재능을 알아봤고
04:46레코드 직원들까지 불러오면서 속에 연결을 해주셨다고 해요.
04:50그런데 그 이후에 심수봉 씨가 입원을 하게 되었고
04:54병실에 나훈아 씨가 직접 찾아와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었다고 합니다.
05:00그래서 그때 그 사람 가사에
05:02외로운 병실에서 기타를 쳐주고라는 가사가 들어가게 된 거죠.
05:078년이나 넘는 기간 동안 선배님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05:11그러면서 나온 이 명곡이 바로 그때 그 사람.
05:14이 서사까지도 정말 완벽한 노래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05:17서로 다른 사람하고 결혼한 거죠.
05:19그렇죠.
05:21한참 지나서 이 얘기를 꺼낸 것.
05:24용기 있다고 봐야 할까요?
05:26심수봉 씨 하면 참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었죠.
05:29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혜 현장에 있어서
05:34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합니다.
05:36안정규 기자, 기타까지
05:38싱어송 라이트였으니까 당연히 기타, 드럼 이런 걸 다 자유자재로 했었는데
05:43기타를 못 잡았다면서요?
05:44무려 47년 동안 못 잡았다고 합니다.
05:47생각을 해보면 1978년 대학 가요지에서 그때 그 사람을 직접 만들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05:53그때도 체구가 작은 여성이 직접 만든 노래를 기타를 치며 부른다.
05:57굉장히 신선한 장면이었죠.
05:59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이게 1978년인데 이듬해 1979년 10월 26일 12.6 사태가 터집니다.
06:06그 자리에도 심수봉 씨가 가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06:09유독 박 전 대통령이 심수봉 씨의 노래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06:13그런데 그 현장에서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 시혜 사건을 목격하게 됐다는 거죠.
06:18그런데 그 후에 어쩔 수 없이 또 조사를 받게 됐죠.
06:22무죄 판결을 받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활동을 중단하게 됐다는 거죠.
06:28그때 무려 4년 넘게 활동을 할 수 없었는데
06:30그 후에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됐을 때도 결과적으로는 기타는 도무지 잡을 수 없었다는 겁니다.
06:3612.6 사태 때 그 충격, 그 이후에는 도무지 기타를 칠 염두를 내지 못했다는 거죠.
06:42그 당시 생각을 해보면 심수봉 씨가 그 사건을 겪었을 때 나이가 불과 24살이었습니다.
06:47굉장히 큰 트라우마가 됐을 것으로 보이고요.
06:49그 후에 심수봉 씨와 대화를 누가 나눴다, 만났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06:53그 사람이 어딘가로 끌려가서 또 취조를 당하고 고문을 당했다.
06:58이런 이야기까지 듣게 되면서 심수봉 씨와 활동이 더욱더 주눅들 수밖에 없었는데
07:03그 끝에 최근 들어서 다시금 기타를 손에 쥐게 됐다는 겁니다.
07:08다시 노래를 발매하고 왕상활동을 벌이고 있는 심수봉 씨.
07:12또 다른 인생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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