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개월 전
- #2424
【스튜디오】
▶엄지민
안녕하세요. 엄지민입니다. 현상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좇아, 팩트추적! 지금 시작합니다.
【인트로】
'가노라 통도사야. 잘 있거라 전우들아.'
고즈넉한 법당 안 벽면에 새겨진 이름 모를 부상병들의 낙서.
세월의 무게에 글씨는 흐릿해졌지만….
처절했던 전쟁의 기억까지 잊히지는 않았습니다.
[현덕스님 / 통도사 주지 : 스님들께서 손수 나서서 환자들을 또 장병들을 다 돌보고….]
도심 한가운데에 녹아 있는 고아들의 아픔도….
[김병삼 / 영락보린원 원장 : 밀가루빵으로 (끼니를 채우며) 피난을 가고 그랬는데.]
평화로운 산야 뒤에 감춰진 그 날의 비극도….
[엄영현 / '적대 세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 유족 : (북한군한테) 끌려와서 14일 만에 여기서 학살된 거야.]
[최동임 /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 유족 : 420명이 넘게 창고 안에서 갇혀서 총살당했으니…]
바뀌어버린 흔적 너머의 고통은 아직 멎지 않았습니다.
[최봉열 / 실향민(교동도 거주) : 꿈이 가시질 않아. 그냥 매일 꿈꾼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홍성복 / 남북이산가족 : 어머니가 거기(북한에) 남아 계시고, 동생 셋 그러니까 남동생 둘에, 여동생 한 명이 있는데….]
승자도 패자도 없이 상처만을 남긴 6‧25 전쟁.
끝나지 않은 75년간의 눈물의 기록을 다시 펼쳐봅니다.
【스튜디오】
▶엄지민
팩트체커 윤성훈 기자와 함께합니다.
윤 기자, 지난 시간에는 사투가 벌어진 전장의 이야기를 주로 다뤘는데, 상흔이 깊게 팬 곳은 이들 격전지만은 아니죠?
▶윤성훈
맞습니다.
온 나라가 잿더미가 됐던 만큼 그 누구도 전쟁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저마다의 애절한 사연이, 현재는 많이 변해버린 당시의 현장에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 VCR - 1 】
경남 양산 영축산 자락의 포근한 품에 안긴 대한민국 3대 사찰, 통도사.
천년 넘는 역사가 깃든 유서 깊은 고찰입니다.
지금은 불자들이 오가며 평온을 되찾는 이 공간이, 75년 전엔 전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서 다친 수많은 부상병을 치료한 '제31육군병원 분원'으로 쓰였던 겁니다.
[현덕스님 / 통도사 주지 : 용화전, 대광명전, 또 관음전, 지장전. 이런 여러 전각이 거기서 이제 치료하는 그 병원으로 사용됐고….]
스님들은 염불 대신 ... (중략)
▶ 기사 원문 : https://www.ytn.co.kr/replay/view.php?idx=274&key=202506251450152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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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민
안녕하세요. 엄지민입니다. 현상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좇아, 팩트추적! 지금 시작합니다.
【인트로】
'가노라 통도사야. 잘 있거라 전우들아.'
고즈넉한 법당 안 벽면에 새겨진 이름 모를 부상병들의 낙서.
세월의 무게에 글씨는 흐릿해졌지만….
처절했던 전쟁의 기억까지 잊히지는 않았습니다.
[현덕스님 / 통도사 주지 : 스님들께서 손수 나서서 환자들을 또 장병들을 다 돌보고….]
도심 한가운데에 녹아 있는 고아들의 아픔도….
[김병삼 / 영락보린원 원장 : 밀가루빵으로 (끼니를 채우며) 피난을 가고 그랬는데.]
평화로운 산야 뒤에 감춰진 그 날의 비극도….
[엄영현 / '적대 세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 유족 : (북한군한테) 끌려와서 14일 만에 여기서 학살된 거야.]
[최동임 /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 유족 : 420명이 넘게 창고 안에서 갇혀서 총살당했으니…]
바뀌어버린 흔적 너머의 고통은 아직 멎지 않았습니다.
[최봉열 / 실향민(교동도 거주) : 꿈이 가시질 않아. 그냥 매일 꿈꾼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홍성복 / 남북이산가족 : 어머니가 거기(북한에) 남아 계시고, 동생 셋 그러니까 남동생 둘에, 여동생 한 명이 있는데….]
승자도 패자도 없이 상처만을 남긴 6‧25 전쟁.
끝나지 않은 75년간의 눈물의 기록을 다시 펼쳐봅니다.
【스튜디오】
▶엄지민
팩트체커 윤성훈 기자와 함께합니다.
윤 기자, 지난 시간에는 사투가 벌어진 전장의 이야기를 주로 다뤘는데, 상흔이 깊게 팬 곳은 이들 격전지만은 아니죠?
▶윤성훈
맞습니다.
온 나라가 잿더미가 됐던 만큼 그 누구도 전쟁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저마다의 애절한 사연이, 현재는 많이 변해버린 당시의 현장에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 VCR - 1 】
경남 양산 영축산 자락의 포근한 품에 안긴 대한민국 3대 사찰, 통도사.
천년 넘는 역사가 깃든 유서 깊은 고찰입니다.
지금은 불자들이 오가며 평온을 되찾는 이 공간이, 75년 전엔 전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서 다친 수많은 부상병을 치료한 '제31육군병원 분원'으로 쓰였던 겁니다.
[현덕스님 / 통도사 주지 : 용화전, 대광명전, 또 관음전, 지장전. 이런 여러 전각이 거기서 이제 치료하는 그 병원으로 사용됐고….]
스님들은 염불 대신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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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가노라 통도사야, 잘 있거라 전우드라.
00:06고준억한 법당한 벽면에 새겨진 이르모를 부상병들의 낙서.
00:13세월의 무게의 글씨는 흐릿해졌지만, 처절했던 전쟁의 기억까지 잊히지는 않았습니다.
00:20스윗네들께서 손수 낳아서 환자들을, 장변들을 다 돌보고
00:27도심 한가운데에 녹아있는 고아들의 아픔도.
00:35평화로운 산야 뒤에 감춰진 그날의 비극도.
00:48바뀌어버린 흔적 너머의 고통은 아직 멎지 않았습니다.
00:57승자도 패자도 없이 상처만을 남긴 6.25 전쟁.
01:14끝나지 않은 75년간의 눈물의 기록을 다시 펼쳐봅니다.
01:18오늘의 팩트체커 윤성훈 기자와 함께합니다.
01:23윤 기자, 지난 시간에는 사투가 벌어진 전장 이야기를 주로 다뤘는데,
01:29상은이 깊게 팬 곳이 이들 격전지만은 아니죠?
01:32맞습니다. 온 나라가 잿더미가 됐던 만큼 그 누구도 전쟁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01:38저마다의 애절한 사연이 현재는 많이 변해버린 당시의 현장에 고스란히 배어있습니다.
01:43경남 양산 영축산 자락에 포근한 품에 안긴 대한민국 3대 사찰 통도사.
01:54천년 넘는 역사가 깃든 유서 깊은 고찰입니다.
01:59지금은 불자들이 오가며 평온을 되찾는 이 공간이,
02:0375년 전엔 전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02:07낙동강 방어선 전투에서 다친 수많은 부상병을 치료한
02:13제30일 육군병원 분원으로 쓰였던 겁니다.
02:17용화전, 도강명전, 관음전, 지장전 이런 정각들이 거기서 치료하는 병원으로 사용됐고
02:29스님들은 연불 대신 붕대를 들고, 피 흘리며 신음하는 병사들을 보살폈습니다.
02:38고통스러운 생명을 구하라는 그런 메시지가 크니까
02:44전쟁 당시에 여러 가지 힘든 사항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02:52참혹했던 당시 모습을 이제는 찾아볼 수 없지만
02:55법당 한쪽엔 그때를 증언하는 병사들의 낙서가 남아있습니다.
03:01정전이 웬말, 이렇게도 쏘으신 분도 계시고
03:04치열했던 전장을 떠올린 듯
03:19탱크와 철모 그림부터
03:21가족과 연인으로 보이는 여러 이름
03:24그리고 애 끓는 전후에까지
03:27희미해진 글씨 속엔
03:31부상병들의 그리움과 애환이 담겨 있습니다.
03:361950년도에
03:386.25 사변이 발발을 해서
03:41국군 상위병, 즉 다친 병사들 3천 명이
03:46절에 들어왔고
03:472년 뒤인
03:481979년, 즉 1952년에
03:53이 절에서 나갔다.
03:55말로만 전해지던 그때의 기억이 기록으로 뒷받침되면서
04:00통도사는 지난 2021년
04:03국가현충시설로 지정됐습니다.
04:08부산 금정산 기슬계 자리한 범어사도
04:10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힘을 보탠
04:13호국 사찰이었습니다.
04:16전쟁의 포화를 피해 밀려드는 사람들을 보듬고
04:19야전 병원 역할도 하고
04:22야전 기휴소 역할도 했고
04:25수많은 피난민들의 안식처가 되고
04:29고아들이 끊임없이 범어사로 밀려와서
04:33목숨을 잃은 장병들의 유해를 직접 화장해
04:36안장하는 일을 도맡았습니다.
04:38그 당시는 범어사가 유일한
04:42그래도 이렇게 군장병을 돌보고
04:46유해를 안치시키는 그런 장소가 되고
04:501956년 국군 묘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04:55임시 현충원 역할을 했던 범어사
04:58역시 지난 2023년 국가현충시설로 이름을
05:04올렸습니다.
05:05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호국 영령들에
05:10대해서 정말 마음속 깊이 고맙고
05:15감사하다는 생각을 일으켜야 되지 않나
05:17생각이 됩니다.
05:20고요하고 아늑한 현재 절의 모습만 보면 당시
05:23상황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가늠하기조차
05:26어려운데요.
05:27그런데 이런 비극은 전장 밖에 있는
05:30민간인들에게도 가혹했다고요?
05:326.25 전쟁 기간 사망과 부상, 납치 등을 당한
05:35남한 지역 민간인은 99만 명이 넘습니다.
05:38북한 지역 추정책까지 합하면 남북한 민간인의
05:41인명피해 규모는 249만여 명에 달하는데요.
05:45특히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더 혹독한
05:47시련을 겪었습니다.
05:50쉴 새 없이 터진 포탄에 생지옥으로 변해버린
05:53서울 용산 일대.
05:55빽빽이 들어선 빌딩 틈에서 그날의 절규가 더는 들리지
06:00않지만 아픈 기억만큼은 오롯이 간직한 곳이 있습니다.
06:06고 한경직 목사가 1939년 신의주에 세웠던 아동보호시설에 뿌리를 둔
06:12영락보린원.
06:13해방 뒤 서울에서 재건된 고아들의 안식처에도
06:30전쟁의 참화가 덮쳤습니다.
06:35북한군이 아이들을 끌고 간다는 흉요한 소문까지도는
06:38긴박했던 상황.
06:41보륜원 식구들은 보호하고 있던 아이들 60여 명을
06:44데리고 피란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06:49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또다시 남쪽으로
06:52목숨을 걸었던 험난한 여정.
06:56아이들은 부두에 욕 깔고 이불 덮어씌우고 멀리 배 한 척이 바다에 떠 있는 거예요.
07:05우리도 좀 태워달라.
07:06겨우 제주도에 도착했지만 머물 데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07:12지붕만 있다면 어디든 의탁해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07:17그렇게 견전엔 역경의 시간.
07:20휴전 이후 서울로 돌아와선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까지
07:24고아 200여 명의 울타리가 됐습니다.
07:27북한군을 피해 전국에서 몰려든 인파로
07:43발디딜 틈조차 없었던 1951년 부산.
07:49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들이 마주한 현실은 더욱 암담했습니다.
07:53그해 12월 천막 3동으로 다비다 모자원이 개원하는 등
07:59홀로 자녀를 키우는 사람들을 도우려는 노력이 이어졌지만
08:03남편하고 이별하고 어린 자녀들을 키우면서
08:08일정 기간 동안에 어머님이 자녀를 양육하면서
08:14조금 사회에 적응하고 적응하고
08:17엄청난 수요에 비해 시설은 턱없이 부족했고
08:21많은 여성은 힘겨운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08:28부모를 잃은 전쟁 고아들의 이야기가 특히 안타까웠는데요.
08:32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08:33정확한 수치를 집계하기는 어렵지만
08:35전쟁 직후 보호시설에 머물고 있던 어린이는
08:384만 8천 명 정도였습니다.
08:40그러나 시설 밖 고아들까지 포함하면
08:4210만 명에 달할 것이란 추산이 학계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08:45정부는 전쟁 고아 대책의 하나로
08:48지난 1955년부터 1961년까지
08:524,100명을 해외로 입양 보내기도 했는데요.
08:55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던 이 기간에 이뤄진 해외 입양은
08:58기록조차 제대로 보존되지 않은 실정입니다.
09:00그리고 비무장 민간인이 북한군 등 적대 세력과
09:05또 우리 군경에 의해서 희생됐던 아픈 역사도 있잖아요.
09:09네, 전쟁의 혼란과 이념 대립의 광풍 속에
09:11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쓰러져갔습니다.
09:15강원도 양국은 비봉산 중앙에
09:18곧켓 뻗은 골짜기 고든골
09:21새들의 지저근만 들릴 뿐
09:24한없이 고요합니다.
09:28그러나 75년 전 이곳은
09:30주민들의 비명이 가득했던 참극의 현장이었습니다.
09:36당시 12살 소년이었던 어명현 씨
09:39아흔을 바라보는 지금도
09:41끔찍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09:456.25 전쟁 발발 전
09:4838선 이북 북한 땅이었던 양국군
09:51공무원이었던 엄 씨의 아버지는
09:54개전 몇 달 뒤 국군이 입성하자
09:57공산당과 절연하겠다는 자술서를 썼습니다.
10:00아군이 들어오니까
10:02아군한테 붙들린 거예요.
10:06붙들려서 자술서 쓴 거예요.
10:08자술서.
10:09자술서는 공산주의가 쉽고
10:12자유민주주의를 택하다고 하고
10:16하지만 얼마 안가 전세가 역전됐고
10:20이 서류는 비극의 단초가 됐습니다.
10:23자술서를 발견한 북한군이
10:26반동군자라며
10:27엄 씨의 아버지 등을 잔혹하게 살해한 겁니다.
10:30민간인에게 총구를 겨눈 잘못은
10:42일부 대한민국 군경도 저질렀습니다.
10:44서울 구로구에 있는
11:02한국전쟁유족회 사무실.
11:06우리 군과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은
11:09희생자 유족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11:11서로를 위로하며
11:23진실규명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1:25420명이 넘게 창구 안에서 갇혀서 총살당했으니
11:30피범벅이 된 곳에서 아버지를 겨우 찾아가지고
11:34주변의 공동묘지에 매장을 하셨대요.
11:38단순히 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11:41주민들을 무참히 살해한
11:42청원 오창창고 보도연맹 사건 등
11:45적법 절차 없이 자행된 국가폭력.
11:50이념도 단체 성격도 잘 알지 못한
11:53애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았습니다.
11:57뒤늦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 조사로 진실이 드러난 사건들이 있지만
12:02여전히 한을 풀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12:06설사 진실 규명 결정을 받았더라도
12:103년 안에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이겨야 배상이 이뤄집니다.
12:15이런 절차 자체를 몰랐던 고령의 희생자 유족 중에는
12:20어렵게 얻은 기회를 날린 사람도 있습니다.
12:23진실화해위 결정 이후 후속 조치가 미흡하다는 지정 역시 끊이질 않습니다.
12:412기 진실화해위가 6.25 전쟁 기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으로 결정한 건 올해 5월 발표 기준 5,422건.
12:55그러나 중앙정부 차원에서 사과가 이뤄진 사례는 아직 한 건도 없습니다.
13:01이것을 정부가 국가 공권력으로 희생을 했어요. 학살을 했습니다.
13:06그러면 거기에 대한 사과는 분명히 따라야 되는데.
13:10이분들의 아픔을 달래기 위한 제도와 정책 보완이 꼭 뒤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13:16정부와 정책권이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분들이 또 있다고요?
13:20북한의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들의 눈물이 여전히 마르지 않고 있습니다.
13:25바다 건너 황해남도와 마주한 인천 강화군 북서쪽의 섬 교동도.
13:32최단 거리는 불과 2.5km.
13:36맑은 날이면 손에 잡힐 듯 북녘당이 가깝습니다.
13:42잠시 폭격을 피해 내려왔던 이들의 그리움은 그만큼 사무칩니다.
13:48우리도 연백군 연안읍 미산이라는 데서 살다가 우리나라 6.25전쟁 때
13:58천만 이상 가족 틈에 일원으로 나왔습니다.
14:04저 어릴 때부터 아빠가 항상 주소를 말씀해줘서
14:10아빠 고향은 호동면 남당이다 이렇게 바닷길만 아니고
14:14이렇게 정말 그냥 아빠랑 손붙잡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인데 되게 보면서 아쉽죠.
14:22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절절한 마음은 교동도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14:30황해도 연백시장을 떠올리며 실향민들이 함께 일궈낸 대룡시장.
14:36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가는 제비가 북녘 소식을 전해주길 소망하며 작은 새의 둥지마저 소중히 여긴 제비 마을.
14:46그리고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와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재단에는 75년 동안 격회이 쌓인 슬픔이 묻어 있습니다.
14:55산에 가서 이렇게 보면 집도 보이고 하니까 아 여기가 우리 집이다 이렇게 보면서 그래서 여기를 고향을 못 떠난 거예요.
15:05스무살 청년을 95노인으로 만든 75년이란 세월.
15:11살아생전 꿈에 그리던 고향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을지.
15:15흘러가는 시간과 기약 없는 기다림이 그저 야속할 따름입니다.
15:21꿈이 가시질 않아. 매일 꿈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 꿈이 나타나.
15:29옛날에 친구들하고 놀던 꿈이 갈 수도 없고 그냥 슬픔을 그대로 안고 사는 수밖에 없이 오늘까지 살고 있는 거지.
15:46제비잼마저 함부로 치우지 못한다는 그 마음이 어떨까 싶은데 실양민들의 절절한 심정이 느껴져서 저도 참 마음이 아픕니다.
15:56그런데 고향을 그려하는 마음에 더해 이별의 상처마저 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6:02이별의 상처요?
16:04가족을 두고 온 남북 이산가족의 애 끓는 호소가 더욱 간절해지고 있습니다.
16:08올해 3월 말 기준 정부의 혈육을 찾아달라고 신청한 남북 이산가족은 모두 13만 4천여 명인데요.
16:15이 가운데 현재 살아계신 분은 3만 6천여 명에 불과합니다.
16:19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이산가족 상봉이 중단됐잖아요.
16:23생존해 계신 분들의 초조한 마음은 더 커질 것 같아요.
16:26맞습니다. 당장 만남이 어렵다면 생사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습니다.
16:32올해 84살인 홍성복 씨는 1950년 6월 여느 또래처럼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16:47북한군이 전쟁을 일으킨 직후에도 평소처럼 학교에 갔습니다.
16:53학교를 갔더니 벌써 빨간 완장을 찬 그런 사람이 연단에 올라가더니 인민군으로 입대를 하라는 거예요.
17:08꽤 깜짝 놀랐죠 사실은.
17:10한시가 급해지자 작은 아버지와 고향인 황해도 연백군을 떠나 연평도로 향했습니다.
17:18아버지가 미리 가 있던 곳에서 몇 개월만 피신했다가 돌아올 계획이었습니다.
17:24그런데 그 길이 북에 남은 가족들과 기나긴 이별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17:31막 길어야 1, 2개월.
17:35잠깐 몸만 피해야만 된다.
17:37결국은 청산도로에서 연평도에 거주하다가.
17:42사랑하는 어머니와 동생 셋.
17:46북녘해 혈육이 너무나 보고 싶었지만 이산가족 찾기 신청은 주저했습니다.
17:52행여 원람한 자신 때문에 핍박받지는 않을지 두려웠습니다.
17:57하지만 커지는 그리움을 끝내 외면하기는 힘들었습니다.
18:02신청을 안 하다가 최근에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18:07그래도 지금은 연세가 어머니는 벌써 1910년생이니까
18:15100살이, 110살이 넘으셨잖아요.
18:18그래서 안 되겠다.
18:20그래도 내가 뭔가 찾아야 되겠다 해서
18:23그 DNA 그것도 검사를 하고.
18:29퇴직 이후에는 고향을 회상하며 이북 5도 위에서 명예 연백군수를 맡은 홍성복 씨.
18:37남북 관계가 개선돼 북쪽 가족들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18:44지금 그리워하시는 어머니를 뵐 수 있다면 어떤 말씀하고 싶으세요?
18:49저는 그래요.
18:51불효자입니다.
18:53우선 용서해 주시죠.
18:55우선 그 말부터 드려야 되죠 사실은.
18:59정부는 매달 이산가족 신청을 받고는 있지만
19:02꽉 막힌 남북 관계 탓에 만남 성사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19:08전문가들은 곧바로 상봉이 어렵다면
19:11서신과 영상 교환이라도 재개할 수 있도록
19:14정부가 더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19:18현실적으로 대면 상봉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19:22왜냐하면 북측에 있는 가족들도 고령화가 이미 돼 있고
19:26그들은 사망자가 더 많죠.
19:28왜냐하면 보건의료체가 더 좋지 않으니까
19:30화상상봉이랄지 다른 여러 가지 방식들을 동원해서
19:36국내뿐 아니라 해외에 사는 이산가족들을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고요?
19:41네.
19:42통일부가 지난 2023년 진행한 조사 결과를 보면
19:45북미 지역에 거주하는 해외 이산가족의 90%가
19:49북한 가족의 생존 여부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19:52그러나 민간 교류단체 등을 통해 생사를 확인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19:56전체 응답자의 19.3%에 그쳤습니다.
19:59가장 시급한 정책으로는 생사 확인과 고령층 우선 교류,
20:03대면 상봉, 고향 방문 등을 꼽았습니다.
20:06현재 이산가족법은 남북한에 사는 이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요.
20:10사각지대에 있는 이산가족에 대한 지원도
20:13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20:16인도적인 차원에서의 이산가족, 실향민 문제는
20:20빨리 해결돼야 한다. 지체할 수가 없다는 것이고.
20:23네.
20:2475년이란 세월에 달아서 이제 전쟁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20:28그때 상처를 여전히 안고 살아가는 분들은 많은 것 같습니다.
20:33우리 모두 그분들의 아픔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20:36윤 기자 수고 많았습니다.
20:40오늘 팩트 추적은 여기까지입니다.
20:42저희는 다음 주에도 현상 이면에 숨겨진 사실조차
20:46시청자 여러분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20:49함께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20:51고맙습니다.
21:18고맙습니다.
21:20고맙습니다.
21:21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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