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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분 전


원로배우 김지미, 85세 일기로 미국서 별세 
원로배우 김지미 별세… 대상포진 후 건강 악화
영화계 '르네상스' 이끈 김지미… 제작자로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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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스산한 연말, 안타까운 소식들이 잇따라 전해지고 있습니다.
00:056, 70년대 우리 영화계를 대표했던 음악 스타, 원로배우 김지미 씨가 별세했습니다.
00:30이종국 평론가, 저는 사실 김지미 씨를 잘 아는 세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저는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까 큰 별이 지셨다 이런 느낌이 들거든요.
00:42이종국 평론가 어떤 생각부터 드셨어요?
00:45저는 그래도 여기 이 스튜디오에서 60년대를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일 거예요.
00:51우리나라 한국 영화사에서 60년대는 정말 황금 같은 시기였어요.
00:55이 영화 배우들이 하루에 다섯 편 이상 영화를 동시에 촬영을 하던
01:01그리고 당시에 세계 3대 영화제, 베르린 영화제가 있습니다.
01:06거기에 마브라는 영화가 은곰상을 타요. 우리나라 최초의 3대 영화제 수상이에요. 마브라는 영화.
01:13이렇게 그 당시 프라디아에서 그 배우들은.
01:16그런데 김지미 씨는 원탑이었어요.
01:20누구와 견주어서 함께 트로이카 이게 아니라
01:22그야말로 김지미 씨를 보러 영화 티켓을 끊는 사람들.
01:27영화 제목도 필요 없고 영화 내용도 필요 없어요.
01:30김지미 씨를 오로지 보러 가는 그 행렬이 극장의 줄을 이었던
01:35그런 60년들을 상징하는 한 별 하나가 지금 사라져가고 있다는 겁니다.
01:43원조 티켓 파오셨다 이런 설명이신 겁니다.
01:45향년 85세. 아직도 참 많은 분들에게는 이 평론가처럼 김지미 이 이름 세 글자가 추억의 이름으로 남아 있을 겁니다.
01:57미국에 계셨던 거예요.
01:58그러니까요. 일단은 미국에서 대상포진이 좀 있으셨는데
02:02이게 악화되면서 몸이 약해지면서 미국에서 눈을 감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02:08저는요. 김지미 씨 하면 같은 여성으로 봤을 때 인생 선배 씨잖아요.
02:13향년 85세 씨인데 누구보다 영화 배우지만 본인이 찍었던 700여 편의 작품보다도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았죠.
02:23보면 영화 찍는 그 배우로서의 삶.
02:25그리고 또 사랑하면서도 정말 거침없는 사랑도 했었고요.
02:29그래서 사업을 하면서 여러 가지 했던 모습은 자기 인생을 굉장히 주도적으로 살면서
02:34또 이 영화사에 여러 가지 기록과 또 족적을 남긴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02:41이렇게 수십 년간 우리 영화계에 어떻게 보면 독보적인 궤적을 그렸던 여배우 김지미 씨.
02:47김지미 씨는요. 신인 시절부터 특별했습니다.
02:50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지미 이에요.
02:56흰눈이 온 리를 덮고 징글벨 소리가 귀전을 스칠 때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바로 이 예쁜 색종이 크리스마스 시일이에요.
03:07이 크리스마스 시일은 이처럼 무서운 결핵을 없애기 위한 막대한 자금.
03:13쉽게 말해서 풍돈을 모아 목돈을 만드는데 필요한 산타크라스예요.
03:18여러분,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와요.
03:23고요한 밤, 거룩한 밤.
03:27그 한밤에 여러분은 꼭 산타크라스가 되시겠다고 자고 약속해요.
03:33자요, 꼭이에요.
03:37지금 봐도 참 반짝반짝하십니다.
03:41한국 영화계를 수십 년간 호령했던 그야말로 여걸의 데뷔.
03:47그런데 그 시작이 소위 요즘 말하는 길거리 캐스팅이었다고 해요.
03:51길거리 캐스팅의 시발점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도 드는데요.
03:55당대 최고의 감독 김기영 감독이요.
03:58명동의 한 다반 근처에서 아름다운 소녀를 만납니다.
04:02이런 말을 남겼다고 하는데요.
04:04세상에 어쩜 이렇게 예쁜 아이가.
04:08김기영 감독의 감탄을 부를 만한 그런 과의, 그런 존재감이었습니다.
04:12그렇군요.
04:13우연히 거리에서 눈에 들어온 17세 소녀 김지미 씨를 만나서
04:17정말 예쁘다, 정말 아름답다.
04:20누가 봐도 배우를 하겠다라는 그런 느낌을 확실히 받았다고 하는데
04:24이때를 기점으로 해서 결국 이렇게 데뷔까지 이르게 된 겁니다.
04:30포스터 하나 보여드릴게요.
04:32이게 전설의 시작으로 불리는 황혼열차 포스터입니다.
04:37그런데 당시 배우의 뜻도 없었던 평범한 여고생이
04:41배우를 안 한다고 하니까 감독이 집까지 찾아왔다는 거예요.
04:44그러니까 도대체 뭐가 그렇게 남달랐길래 그런 거죠?
04:47그러게요. 김기영 감독이 사실 생전보다 지금, 그러니까 2000년대부터
04:53다시 전 세계의 그런 감독들이 추앙해요. 김기영 감독을.
04:58한여라는 작품은 정말 전 세계에서 다시 들여다보는데
05:01그런데 김기영 감독의 정말 대단한 신의 한 수가 바로 김지미 씨를 캐스팅했다는 겁니다.
05:07김지미 씨를 캐스팅했는데 사실 김지미 씨는 집안이 굉장히 좋아요. 부유해요.
05:11그래서 원래 서울대, 그러니까 오빠들도 서울대 음대 나오고
05:17외국의 오빠랑 같이 유학을 가려고 했대요.
05:20그런데 갑자기 느닷없이 캐스팅하자고 하니까
05:24아, 난 안 하겠습니다 했는데 말씀하셨듯이 집까지 찾아온 거예요.
05:27그래서 이제 설득을 했겠죠.
05:30제작사에 데려갔습니다.
05:33제작사분들이 봤을 때 아니, 연기를 할 수 있겠나.
05:36너무 청초해갖고.
05:37그런데 옷을 딱 입혀놓고 한 번 배역을 해보니까
05:40김지미 씨, 연기 연습 한 번도 안 했는데
05:43제작자들이 와, 이런 끼가 있어? 라고 받아들였다는 거예요.
05:47김종훈 씨, 영화평론가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05:51다른 배우에서 진짜 볼 수 없었던 현대 여성의 아주 청신함.
05:55청신함이 보였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05:58그래서 이제 이후에 일약 스타돔에 올랐습니다.
06:01그래서 한 해 보니까 아니, 요즘은 상상도 어려워요.
06:0430, 40편씩 찍으셨다는 거예요.
06:06그래서 영화를 다작을 했는데 빠르게 입지를 굽혀나가는 그 과정에서
06:11알고 보니까 본인이 사실 외모 때문에 나는 좀 손해받다, 이렇게 생각을 했다고요?
06:16그러니까. 2019년에 훗날 지나서 인터뷰하면서 이 발언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06:22김지미 씨가요.
06:23나한테 뭐 미니니 뭐니 하지만 오히려 작품에서 손해를 많이 봤다.
06:27눈이 어떻다, 코가 명품이다 하니까
06:29그런 건 보다고 내가 진짜 열심히 연기하는데 그 연기가 안 보이더라.
06:33그냥 예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서.
06:35그러니까 정말 외모 때문에 연기가 가린다는 말 우리가 많이 하잖아요.
06:39지금 보시면 정말 저도 감탄을 잘 안 했는데 별명이요.
06:43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였잖아요.
06:45그러니까 그 외모에 대한 얘기가 워낙 많이 얘기가 나오다 보니
06:49본인의 어떤 연기가 가렸다 이런 겁니다.
06:51저는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게요.
06:54저 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목소리예요.
06:57사실 아까 조금 전에 크리스마스 시일 홍보하는 목소리 보면 뭔가 옥고슬 굴러가는 목소리인데
07:03그 목소리는 사실 당당 성우가 계셔서 김지미 씨 목소리, 어떤 그런 좀 아름다운 이미지에 맞는 예쁜 목소리가 나오잖아요.
07:11아, 이 목소리요?
07:12그런데 훗날 우리가 이제 90년대 지나고는 보통 우리가 성우 더빙보다는 실제 본인 배우 목소리가 나오잖아요.
07:18그러면 김지미 배우 목소리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겠지만 굉장히 허숙해하세요.
07:23그러니까 요즘 말로 보면 걸크러시잖아요.
07:26그런 오히려 되게 진취적이고 어떤 고분고분하지 않는 여성상을 오히려 더 잘 보여주는 목소리를 지녔다.
07:33이런 평가도 나옵니다.
07:34조금 전에 인터뷰대로 봐도 굉장히 단단한 심지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07:40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여배우가 돌연 데뷔 5년 만에 세상을 발칵 뒤집어놨습니다.
07:48바로 다른 것도 아니, 사랑 때문이라고 해요.
07:51그러니까 배우 최문실 씨 아버지, 최무룡 씨 그분 얘기예요?
07:561962년입니다.
07:57말 그대로 초대형 스캔들이 터진 건데요.
08:01김지미 씨는 최무룡 씨와 함께 일주일간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됩니다.
08:07바로 간통 혐의로 고소를 당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08:11당시 굉장히 이슈로 떠올릴 수밖에 없었죠.
08:15최무룡 씨도 이미 결혼한 상황이었고 김지미 씨 역시 초혼한 상태였습니다.
08:20수갑을 차고도 두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또 많은 파장이 있었고요.
08:26영화계에서도 1년간 영화 출연 정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08:31그런데 배우 인생의 내리막을 탈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
08:36최무룡, 김지미 이 두 사람의 지분은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08:42제작 대기 중인 영화만 12편에 달했기 때문에 한 해만 정지를, 활동을 하지 않아도
08:48영화 자체가, 영화계가 올스톱 될 그런 상황까지 봤다고 합니다.
08:52이 두 분의 사랑, 시작점이 굉장히 떠들썩했습니다.
08:56그런데 시작도 떠들썩했지만 이종우 변호가, 결별까지 떠들썩했다면서요.
09:00네, 그렇습니다.
09:01그러니까 결별을 하게 된 동기는 최무룡 씨가 영화 제작을 했는데 계속 실패한 거예요.
09:08그 영화 제작에 드는 돈도 사실 김지미 씨가 계속 냈거든요.
09:13위자료까지, 예를 들어서 최무룡 씨가 이혼을 하는데 그 위자료 모두 다 김지미 씨가 됩니다.
09:19400만 원이었대요.
09:20당시에 가장 좋은 집을 사고도 남을 돈이었는데 이 최무룡 씨와의 결별에서도 위자료를 모두 다 김지미 씨가 냈다고 합니다.
09:30그러면서 사실 김지미 씨가 회고하는 게 있어요.
09:33나중에도 말씀드리겠지만 여러 번의 어떤 결혼 생활 중에 가장 그래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 최무룡 씨와의 결혼이었다.
09:40그 결혼 기간 동안이 가장 남는다 하면서 사실 왜 그렇게 표현했냐면 당시에도 헤어지면서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라는 말을 남겨서.
09:49아, 그 말이요?
09:50네, 그때 나온 말입니다. 진짜 드라마의 그런 대사 같지 않아요?
09:55그런데 실제로 그 말을 남기고.
09:56유심도 많이 쓰는 말이에요?
09:58그럼요, 지금도 쓰죠.
09:59그래서 그 당시에 이 헤어짐조차 굉장한 정말 뉴스거리가 됐습니다.
10:04아, 그렇군요.
10:05자, 이제 이후에 두 번의 헤어짐을 겪으셨고 또 어떻게 보면 쏟아지는 세간의 비난도 있었는데 김지미 씨는 그 순간을 그럼 어떤 마음으로 견뎌왔을까요?
10:18나는 뭐 루머도 많고 스캔날도 많고 스캔날도 인간이니까 있을 수가 있어.
10:25그래서 나는 후배들한테도 당당하게만 해라. 책임져라.
10:33그러면 된다. 그렇게 얘기하거든요.
10:35그런 과정에 시달리면서 내가 지지 않고 현재까지 버텨왔거든.
10:45그래서 김지미 같은 거 아니에요.
10:49그러니까 당당하게 책임졌고 지지 않기 위해 버텼다는 겁니다.
10:54채널A와의 생전 인터뷰 모습 저희 보여드린 겁니다.
10:58김지미 씨를 좀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런데 다음 열애 상대는 조금 더 놀라웠어요.
11:04어마어마합니다. 저도 제가 태어나기 전에 밝혀진 일입니다.
11:09바로 영화계에 김지미가 있다면 가요계는 누가 있을까요?
11:13바로 나훈아 씨입니다.
11:15나훈아 씨가 7살 연하거든요.
11:181976년도부터 동거를 시작했는데 그 두 사람의 동거 사실이 한 주간지에 현상이 공개가 된 겁니다.
11:26그래서 이가 너무나 불티나게 팔리면서 주간지 몇 세를 찍어냈다 이렇게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11:32그러니까 이 두 분 얘기를 훗날에 서태지 이지아 씨 예전에 결혼했다 이혼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11:38이제 젊은 분들은 과거에 이 나훈아 김지미 두 분의 동거 얘기가 어떤 서태지 이지아 씨의 그 예전 결혼 얘기와도 비견될 정도의 어떤 충격이었던 겁니다.
11:50그래서 당시에 인터뷰했던 말들도 지금은 굉장히 회자되거든요.
11:55나훈아 씨 같은 경우는 지금 김지미 씨한테 대해서 그녀는 나를 남자로 만들어준 사람이다.
12:01그리고 또 김지미 씨 같은 경우도 7살 연하지만 남편으로 믿고 정말 의지할 만했던 사람이다.
12:08두 사람이 함께 결혼해서요.
12:09대전에 한 경양식 집도 운영했다고 하고요.
12:12또 김지미 씨 고향에 신탄진에서 살았다는 걸로 알려졌는데 이 두 사람의 어떤 뜨거운 사랑 같이 지금 보면은 같이 사진 찍고 있는 모습인데요.
12:21그때 보면 이제 그 동거설 터졌을 때가 김지미 씨가 36살 때거든요.
12:26그래서 두 사람의 뜨거운 사랑도 굉장히 이 문화계의 회자가 됐었습니다.
12:31근데 이 정도 별로예요.
12:33이때 이 기사가 실린 주간지가 제가 알고 보니까 이게 한 세 판까지 나왔다고 해요.
12:38너무 좋았습니다.
12:40지금 이게 세상에 이렇게 지금 알려진 게 우리가 보통 왜 그 파파라치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매체들이 특종하잖아요.
12:48특종처럼 이미 오래 살고 있었는데 조용히 아무도 몰랐던 거예요.
12:53근데 그것을 특종하다 보니까 너무너무 충격이었죠.
12:56나훈아 씨도 사실 팬덤이 어마어마하거든요.
12:59여성 팬들이 어마어마했는데 너무 충격을 받은 거예요.
13:03이 사건 때문에.
13:04그래서 채무룡 씨와의 어떤 그런 스캔들도 스캔들이지만 나훈아 씨와의 스캔들이 어떤 면에서는 더 반향이 컸었어요.
13:14방금 저희가 배경으로 틀어드린 이 노래가요.
13:17나훈아 씨가 김지미 씨와 결별한 직후에 녹음했던 곡.
13:22그 연정이라는 노래에 저희 들려드렸는데.
13:25어떻게 보면 좀 애틋한 이별 후에 심경이 담긴 노래인데 임재 변호사.
13:28근데 두 분이 헤어지고 나서도 관계는 괜찮았다고 해요.
13:32나훈아 씨의 연정.
13:33김지미 씨와 이 헤어진 직후에 나온 노래이기 때문에 김지미 씨에 대한 노래가 아닌가 추측이 가능하죠.
13:40가사를 좀 들어보면요.
13:42사랑하는 사람아, 사랑하던 사람아.
13:44내 마음을 아는가.
13:46이슬비에 젖어, 봄비에 젖어.
13:48사랑을 잃은 눈물에 젖어.
13:51사나이는 말없이 떠난다.
13:53두 분의 사랑 그리고 이별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 같은데요.
13:58실제로 나훈아 씨는요.
14:00여자는 돈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을 남기면서 당시에 갖고 있던 재산을 모두 김지미 씨에게 넘겼다.
14:07이런 걸로도 또 기사가 나와 있기도 합니다.
14:10이 재산의 위자료도 모두 넘긴 것도 화제가 되었고.
14:13이런 노래를 끝으로 남긴 그런 부분들을 보자면.
14:16두 분이 이별은 했어도, 헤어짐은 있었어도 사이는 좋았지 않았나, 아름다운 이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14:24그러니까 거침없이 사랑을 숨기지 않으셨던 김지미 씨.
14:28그런데 김지미 씨가 일평생 가장 오래 그래도 뜨겁게 사랑했던 거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14:37바로 영화입니다.
14:38충무로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면서 최은희 또 그리고 어맹란 씨와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습니다.
14:50그런데 이종호 토론은 누구 제일 좋아하셨어요?
14:52어려운 질문이네요.
14:54왜냐하면 이분들은 제가 너무 어렸을 때 사실은 활약하시던 분들이라.
14:58저도 윗세대 어머님이라든지 이모님들이 서로서로 어맹란 씨가 진짜 최고다, 최은희 씨 제일 최고다.
15:06이런 말을 들으면서 자랐거든요.
15:09나중에 작품을 보게 됐지요.
15:11그런데 아까 말씀하셨지만 첫 번째 드리고 싶은 말씀은 어떤 여배우도 사실 나중에 드라마도 나오고 브라운관도 나오고 하지만
15:19김지미 씨는 오로지 영화에만 나왔어요.
15:22그리고 나중에 사업도 영화도.
15:23브라운관에 거의 안 나왔어요.
15:24아예 한 편도 브라운관에 나오지 않았어요.
15:27한 편도 그냥 영화로서만 그러니까 내가 영화인으로서만 살았고 영화 제작자 나중에 제작자가 됐고.
15:34두 번째 사실 여배우 트로이카는 이 세 분이라고 얘기하지 않아요.
15:391세대 트로이카는 이 다음 세대 남정임 그다음에 문희 윤정희 이 세 분이 트로이카고
15:46그다음에 최은희 씨가 나오는데 최은희 씨는 지금 김지미 씨도 바로 이 세대예요.
15:51최은희 그다음에 도금봉, 조은영 이분들이 20년대생들이거든요.
15:5720, 30년대 초반.
15:58그런데 40년대생이 바로 딱 혼자서 지금 김지미 씨라 솔직히 경쟁을 한 건 어맹란 씨하고 경쟁을 했어요.
16:06그런데 이 두 분의 어떤 캐릭터가 다른 게 어맹란 씨는 부잣집, 막내딸 이런 이미지로 좀 굳어졌는데 김지미 씨는 여러 배역을 했어요.
16:15그렇다면 사실 제가 귀동량으로 듣고 나중에 영화를 봤을 때 김지미 씨가 훨씬 더 인기가 많았다.
16:21어맹란 선생님한테 제가 죄송합니다만 반대의 어떤 연기 폭이 훨씬 더 깊었다라고 평들을 당신들 하셨죠.
16:29그런데 또 세간의 평이 이런 얘기가 있어요.
16:31김지미 씨가 다른 두 분이랑 그래도 조금 달랐던 거는 말씀하셨던 것처럼 여배우 세대 교체가 계속 이뤄져요.
16:38그런데 이뤄져도 홀로 살아남아서 2세대, 3세대에 또 나오는 그 트로이카들이랑 계속 끊임없이 경쟁을 하셨던 거거든요.
16:45어떤 점 때문에 이렇게 주목을 받았다고 보세요?
16:47왜 그러니 하면 대개의 여배우들은 내가 굉장히 여자 주인공이 돼야 되고 나이가 들어서도 로맨스 영화의 하나의 어떤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데
16:57그러니까 배역이 안 주어지면 화를 내고 이러잖아요.
17:01안 그러셨어요.
17:02김지미 씨는 나중에 트로이카 아까 말씀드린 세 사람 윤정희 씨, 남정희 씨, 문희 씨가 주인공이 됐을 때 기꺼이 언니 역할, 이모 역할, 어머니 역할도 했고
17:14그 이후에 정말 매춘하는 어떤 그런 역할도 하시고
17:20그러니까 보통의 아름다운 여배우가 하기 싫어하는 그런 나이 든 역할까지 마다하지 않고 하셨어요.
17:27그렇군요.
17:27그렇기 때문에 연기 생활이 굉장히 길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17:31공개된 게 한 300여 편 되세요, 작품 수가.
17:35그런데 비공개 작품까지 따지면 무려 800편 가까이 작품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17:40어떻게 보면 이게 세계의 영화사에서도 드문 기록이라고 하는데
17:43그만큼 성실하게 연기를 했고 또 다채롭게 변신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17:49저는 이제 그 남배우들 역사를 따져보면 상대 배우가 김승우 씨, 김진규 씨, 최무령 씨, 장동희 씨, 윤일봉 씨 이렇게 쭉 내려와서 많은 남자들을 상대한 여배우입니다.
18:11700편의 영화의 주인공으로 보면 700가지의 인생을 살았다고 볼 수 있거든요.
18:19그런데 뭐 안 해본 역할이 있겠어요.
18:22그동안에 행복하게 영화를 열심히 신나게 했다라고 생각합니다.
18:27김진규 씨의 삶을 정리를 해보면 참 대담하고 용감했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8:34그런데 심지어 나중에는 배우가 아니라 직접 제작까지 하셨고요.
18:38그렇습니다.
18:391980년대 중반 영화사 지미필름을 직접 세우셨습니다.
18:44과거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특히 영화에 대한 검열이 너무 심해져서 특히 사회 고발을 다루고 싶은데
18:50그런 소재는 영화가 제대로 만들어지거나 출연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 본인이 직접 제작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으신 겁니다.
18:58지미필름에서는요.
19:00이 본인의 비군이 촬영 경험을 놓인 녹인 아재아재, 바라아재, 서펀재 등 많은 수작을 남겼습니다.
19:07액션몰 같은 흥행에만 취중한 그런 장르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의 정신, 대한민국 영화계의 그 정신을 지켜보셔자 했던 것인데
19:17이런 공을 인정받아서 2016년에는 은관 문화훈장도 수은 받으셨습니다.
19:24일평생 영화를 쫓고 살았던 삶입니다.
19:27천생 배우는 지난 삶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19:37그리고 다른 작품을 또 받아들여야 되니까 그러면 새로운 게 또 탄생되잖아.
19:45오로지 영화의 60년을 따라다녔다고 하면은 제 스스로도 참 기특하구나 하는 생각을 간혹간혹 했습니다.
19:56아직까지도 영화 배우로서는 철이 안 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20:04언제 날지는 모르겠습니다.
20:06영원히 마음속으로 갖고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20:12영원히 여러분들 가슴속에 남는 배우로서 남고 싶습니다.
20:17이제 많은 분들에게 잊혀지지 않을 존재가 되어 떠나셨는데 연예계에서도 상당히 반향이 크겠어요.
20:26그러네요.
20:28방금 전에 영화로서 또 여러분 영화로 가슴속에 남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20:34정말 대중에게도 그렇고요.
20:36또 많은 후배 영화인들에게도 그렇게 족적을 남기신 것 같습니다.
20:40특히 후배 영화 감독들이 많이 추모의 메시지를 남겼는데요.
20:45배창호 감독 같은 경우는 80년대 주로 영화를 많이 찍었었는데
20:49정말 미국 촬영 중에도 김지민 씨가 스태프들 격려차 밥도 사주시고
20:54정말 따뜻하셨다라면서 추억을 했고요.
20:58이장호 감독 같은 경우는 지금 김지민 씨가 마지막 주연작 한 작품이
21:03명자, 아끼꼬, 쏘냐라고 1992년 작품이 있습니다.
21:06그 영화를 찍었던 감독인데요.
21:08사실 김지민 씨 실명 이름이, 진짜 이름이 김명자 씨거든요.
21:12그런데 그 명자, 아끼꼬, 쏘냐.
21:15한 여성이 명자라는 이름도 일본어, 러시아어 이름을 가지면서 어떻게 즐거운 삶을 살았나.
21:22그 주제로 찍은 영화 작품인데요.
21:24이장호 그 영화를 찍었던 이장호 감독도 정말 선택받은 진짜 배우이자 여걸이다.
21:30아쉬운 마음이 든다.
21:31이렇게 회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21:33그리고 정지원 감독도 정말 오랜 전성기를 누렸던 최고의 배우라고
21:37충호의 메시지를 냈는데요.
21:40현재는 지금 보면 영화 인장을 하기 위해서 김지민 씨 쪽과
21:45지금 협의 중이라고 하니까요.
21:47이제 고인이 미국에서 돌아와서 어떻게 장례가 치러지게 될지
21:51좀 지켜봐야 될 것 같습니다.
21:53배우란 자긍심으로 살았고 또 한평생 사랑받았다는 자부심으로
21:58행복했다던 김지민 씨,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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