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개월 전
국내 최초 단일 앨범 밀리언 셀러 달성
일본 골든 디스크상 한국인 최초 수상
잠실 주 경기장 콘서트 최초 전석 매진
교과서에 실린 국내 최초 대중가요 보유
살아있는 가요계의 전설
조용필의 인생여정
활기가 넘치는 '행복한 아침'이 시작됩니다!
'행복한 아침'
월~금 아침 7시 30분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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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오늘의 주인공은요 살아있는 가요계의 레전드라고 불리는 분이죠. 바로 가왕 조용필씨입니다. 조용필씨 하면 지금까지도 여전히 리빙 레전드입니다. 최고의 자리에선 가수다 이렇게 봐도 과언이 아니죠.
00:16맞습니다. 2년 전에 전문가 39명을 대상으로 해서 우리 시대 최고의 가수를 선정한 적이 있는데 엘레지의 여왕 그 감수성의 여왕 이미자씨를 제치고 1위에 오른 가수가 바로 조용필씨였습니다.
00:31특히 조용필씨 하면 최초라는 이 수식어가 너무나 잘 어울리고 실제로 그러한 기록들이 많아요.
00:37국내 최초의 단일 앨범 밀리언셀러 달성 일본에서 주는 골든디스크상 한국인 최초 수상 잠실 주경기장 콘서트 최초 전석 매진 국내 최초 교과서에 자신의 노래가 실린 그런 대중가요를 보유한 가수 수많은 최초 기록을 보유한 그야말로 대한민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 가수이자 뮤지션 싱어송라이터죠.
01:06얼마 전에도 큰 콘서트 하지 않았습니까?
01:09네 지난 토요일이었습니다.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요 조용필씨가 전석 무료 공연을 열었습니다.
01:16예매 시작과 동시에 3분 만에 전석 매진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는데 만 8천여 관객을 동원해서 여전히 뜨거운 인기를 증명을 했죠.
01:25네 그렇다면 살아있는 전설 조용필씨의 인생을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01:31우선 어린 시절 어린 시절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하네요.
01:35저희 정말 위인전 써야 되는 분위기입니다.
01:38조용필씨를 보면 어딘가 귀티가 흐르지 않나요. 이유가 있더라고요.
01:41고향이 경기도 화성인데 여기서 어떤 집에서 태어났느냐.
01:47이 화성에서요. 염전업하고 과수원하고 큰 정미소를 하는 이런 하나만 해도 부잣집인데.
01:55이런 부잣집에 큰 부잣집에 친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어요.
02:00이렇게 조용필씨가 요런 아주 부잣집 막내 도련님이 하나 푹 빠지게 된 일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음악입니다.
02:09요게 왜 제가 위인전이라고 했냐면 다섯 살 여섯 살 때 이 우연히 들은 하모니카 소리에 그만 가슴이 울렁거려서 아버지한테 조르구졸라서 하모니카를 손에 넣었습니다.
02:23그리고 나서 푸른 하늘 은하수 요 동요 반달을 어머 세상에 언제 배웠다고 요거를 또 이 하모니카로 부르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요.
02:35그렇게 보내다가 때는 또 한 번 중학교 때 또 이제 오게 되는데 서울에서 유학하던 중에 여름방학 때 잠시 시골에 내려갔습니다.
02:45그 고향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기타 소리를 하모니카에 이어서 이번에 기타 소리를 듣게 되는데 친남매였다고 그랬죠 형이 통기타를 치고 있었대요.
02:54근데 그거에 또 빠져 빠져서 이 조용필 씨가 다시 한 번 기타를 치게 되면서 또 음악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03:03옛날하고 지금하고 똑같네요.
03:04그렇죠 그렇죠.
03:06네 이 시절에 조용필 씨의 모습 너무 궁금하실 것 같아서 사진을 한 장 준비해 봤는데요 앞서 보신 사진보다 더 개구쟁이입니다.
03:14화면으로 함께 만나보시죠 어디에요 저기 표시 왼쪽에서 위에서 이 두 번째 세 번째에 계신 분인데요 바로 이 조용필 씨와 중학교 동창인 배우 안성기 씨가 있습니다.
03:30안성기 씨도의 모습도 보이죠 안성기 씨 말에 따르면요 조용필 씨가 나중에 음악을 할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고 해요
03:38당시 조용필 씨가 그냥 조용한 모범생 그 자체였다라고 하는데요
03:43하지만 키는 그때와 똑같다라는 칭찬다운 디스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03:49네 조용필 씨하고 안성기 씨하고 중학교 동창인 그때부터 인연이 있었는데요
03:54네.
03:54근데 이 조용하던 조용필 씨가 어떻게 또 가수가 됐을까요.
03:58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이 먼저 올라간다 이런 말이 있죠 조용필 씨 경우가 뭐 그렇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일단 고등학교 때입니다.
04:06이 막내 아들이 귀하디 귀한 막내 아들이 가만히만 있어도 됐는데 음악에 빠져서 그냥 기타 치고 이러니까 아버님께서 화가 나셔서 기타를 여러 대 부셨다고 해요.
04:17그럼 이제 보통 여기서 조금 사그라들만도 한데 우리 조용필 씨 여기에서 반항하고 반항해서 집을 나간 겁니다.
04:25그때 이제 친구 집도 이렇게 전전하면서 살았다 그때 이제 기타 많이 쳤다 이런 얘기 제가 들었는데 이렇게 음악에 대해서 확고한 뜻을 가졌던 조용필 씨
04:35결국 1968년 밴드를 결성하고 기타리스트로서 미 8군 부대 이 무대에 서게 되는 거예요.
04:45정말 이거 다 사전 테스트해서 합격해야 오를 수 있는 무대잖아요.
04:49이렇게 미 8군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가다가
04:53그런데 사실 이제 내 노래는 없고 해외 유명한 팝들 하고 이러다 보니까
04:58레퍼터리가 없다 이러면서 쫓겨나는 그런 서름도 겪었던 가수입니다.
05:04처음에는 기타리스트로 무대에 선 건데 그때는 그럼 노래는 안 하셨던 거예요?
05:09조용필 씨는 미 8군 무대에 한 사건을 계기로 이 무대에 서게 됐는데요.
05:14당시 밴드 보컬이 군에 입대하는 바람에 조용필 씨가 노래를 좀 부르게 되는 일이 있었다고 해요.
05:21한 미군 병사가 내가 생일인데 내일 생일에 내가 좀 노래를 듣고 싶다라고 얘기를 하면서
05:29노래 불러주면 내가 맥주 한 잔 사겠다라고 얘기를 한 거예요.
05:32조용필 씨 그날로 바로 막 연습을 너무너무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05:37그리고 이 무대에 다음날 딱 서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는데
05:41이 조용필 씨의 노래를 들은 그 미군 병사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05:45이 일을 계기로 조용필 씨가 노래라는 게 이렇게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거구나라는 걸 깨닫고 가수로서의 꿈을 본격적으로 준비했다고 하죠.
05:56그렇다면 가수가 된 조용필 씨 그 수많은 히트곡은 언제 만들어진 거예요?
06:01그 수많은 히트곡 중에 가장 첫 히트곡이 어떤 노래일지 궁금하시죠?
06:06일단 한번 먼저 들어보시겠습니다.
06:09정답은 이 노래입니다.
06:111999년에 나온 기사인데요.
06:1420세기 최고 가요 돌아와요 부산항에 조용필과 그의 히트곡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한국인이 뽑은 20세기 최고의 가수와 가요에 선정되었다.
06:2620세기 최고의 가수와 노래로 뽑힌 이 부산을 상징하는 노래이자 프로 야구팀 자이언트의 대표 응원가죠.
06:34바로 돌아와요 부산항에였습니다.
06:36이게 조용필 씨의 첫 히트곡이었군요.
06:39그런데 무명이었단 말이죠.
06:42그런데 조용필 씨가 어떻게 이 노래를 부르게 된 건지.
06:45이것도 대타 투입이라고 해야 될까요?
06:47원래 이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조용필 씨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06:511970년에 김해일이라는 가수가 돌아와요 충무항에라는 이 노래를 발표를 했는데
07:00원곡 가수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서 이 노래가 빛을 보지 못했어요.
07:05그때 천구백칠십이 년에 조용필 씨가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이 노래로 바꿔서 발표를 하게 되는데 요 때만 해도 발표하자마자 히트는 아니었어요.
07:16그런데 이 노래가 국민가요가 될 수 있게 하는 그런 사건 정말 대단한 명장면이 이 한국의 부산에서 펼쳐지는데 때는 천구백칠십오년 구월 십오일이었습니다.
07:28이때요 그 우리 옛날에는 뭐 이렇게 조청녀 이렇게 좀 잘못 부르기도 했던 우리 제일동포 일 세대 칠백여 명의 분들이 이 배를 타고 부산에 이 정말 해방 이후에 고국을 찾아서 탁 오면서 이산가족과 상봉해서 정말 눈물바다가 되는 그런 사건이 있었고 이게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거든요.
07:53그런데 요거에 딱 맞춰서 조용필 씨가 일 년 뒤에 칠십육 년도에 요거 개사를 하고 노래도 뭔가 경쾌한 풍으로 바꿨는데 이게 이제 히트를 친 거예요 노래 개사 어떻게 했느냐 원래는 이게 떠나가는 님을 그리워하는 노래였거든요.
08:11그래서 그런데 요게 이제 님 떠난 부산항을 형제 떠난 부산항으로 하고 그리운 내니 말을 그리운 내 형제여 이렇게 딱 동포에 넘치는 이 노래로 딱 탈바꿈한달까요.
08:29그러면서 그분들의 마음뿐 아니라 우리 온 국민의 마음을 절절하게 왜냐하면 이제 이산가족이 꼭 일본에 계시지 않아도 북한에 있는 분도 있고 많았기 때문에 굉장히 이게 정말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국민가요가 됐습니다.
08:43시기가 또 딱 들어맞았네요.
08:46이건 정말 술 한 잔 걸치면 늘 흥얼거리던 노래였고 인기가 어마어마했죠.
08:50네 당시 음악 다방 그리고 대학 주점에서 항상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라고 추억하시는 분들 정말 많으실 것 같은데요.
08:58게다가 각 방송사의 가요 차트 그리고 신청곡 획수에서도 1위를 계속해서 차지를 했다고 합니다.
09:061977년 말에 추산한 이 음반 판매량이요.
09:09이미자 씨의 동백 아가씨를 뛰어넘은 이 40만 장이라고 하는데 사실 지금 가요계 상황에서도 40만 장이라고 하면 와 진짜 대단하다 소리를 듣는데요.
09:19이때 상황을 설명해드리자면 1만 장을 넘기는 이 앨범이 당시에는 연간 10장도 되지 않았다고 해요.
09:28그런데 40만이면 정말 엄청난 숫자죠.
09:30네 그런데 이렇게 승승장구해야 할 이때 조용필 씨가 오히려 은퇴를 합니다.
09:37그렇죠. 왜 이렇게 승승장구하는데 의외의 선택을 했을까 이유가 있었습니다.
09:43이 무명 시절에 제가 아까 미 8급 무대 중심으로 활동했다고 했죠.
09:46이때 이제 하숙을 했는데 같은 하숙집에 살던 미군 병사가 건네준 대마초를 피웠던 겁니다.
09:55그렇게 해서 1975년에 벌금을 내고 끝났는데 76년에 이거 개사하고 이러면서 전 국민적 인기를 끌었다고 했잖아요.
10:05그러면서 이게 다시 수면 위로 올라서 재조명이 된 거죠.
10:11그러면서 이때 사회를 흔들었던 연예계 대마초 사건 이게 있었는데 여기에 연루됐다 이런 의혹을 받으면서 사실은 그 전이었는데
10:22그러면서 고문까지 당하게 됐고 그러면서 결국 활동도 금지되고 그래서 별 수 없이
10:291977년 5월에 은퇴 쇼를 했던 겁니다.
10:34그렇다면 그렇게 은퇴했던 조용필 씨가 어떻게 다시 복귀하게 되는 겁니까?
10:38한 드라마 PD가요.
10:39우리 드라마 주제곡이 좀 필요한데 작곡해서 노래 좀 불러주라고 얘기를 한 거예요.
10:45조용필 씨는 흔쾌히 응했고요.
10:47이 노래가 가왕의 재탄생을 알리는 창밖의 여자입니다.
10:52창밖의 여자는 당시 인기곡으로 바로 급부상하게 됐고 이 노래를 포함한 발매한 1집이 국내 최초로요.
11:00앨범이 100만 장 판매를 기록합니다.
11:03그러면서 국내 첫 밀리언셀러로 자리를 잡게 되는데요.
11:07여기에 또 다른 최초 기록이 있습니다.
11:09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가들이 공연을 한다라고 하는 미국 카네기 홀에서 한국 가수 최초로 마이크를 잡은 가수로 이름을 올리게 됐죠.
11:21지금 이제 조용필 씨 인기는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만 그 당시의 인기는 정말 상상초에 어마어마한 하늘을 찌르는 수준이었다고 하던데요.
11:32네 그 하늘을 찌를 때 저도 그 중심에 있었던 그런 한 명인데 뭐냐 하면 지금은요 공연장 앞에 아이돌이 공연하면 팬들이 빠르락 와글와글 몰려있고 이거 흔한 풍경이지만 예전엔 그러지 않았거든요.
11:46그런데 조용필 씨 등장 이후에 생겨난 풍속도가 이 조용필 씨 공연장이 있으면 그 앞에 막 팬들이 몰려있고 조용필 씨가 걸어가거나 그 차가 지나간 길을 따라가겠다고 막 쫙 뛰어가고
12:00그리고 티켓 얻어야 되는데 사야 되는데 이거 못 구하면 울부짖고 막 팬들이 조용필 씨 지나가면 오빠 이러면서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12:09그래서 이걸 이제 오빠 부대다. 언론이 오빠 부대라는 이름을 짓게 됐는데 사실 이 오빠 부대의 응원에 힘입어 또 전국민이 사랑하고 하다 보니까
12:19뭐 유행과가 전부 다 유행곡이 됐어요. 뭐냐 단발머리 못찾겠다 깨꼬리 여행을 떠나요 켈리만자리의 포범 서울 서울 서울 꿈 이거 말고도 말고도 많아요.
12:31들으면 다 아는 이렇게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켰고 역대 가요 대상에서 총 12회를 수상하는 대기록을 또 세우게 되죠.
12:42야 여기에서 제가 문제를 하나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12:45그 조용필 씨의 수많은 히트곡들 중에서 가장 길게 1위를 했던 히트곡 어떤 것이 있을까요.
12:53그거 아니에요 그 돌아와요 부산항에.
12:56아닙니다.
12:57아니 여행을 떠나요.
12:58오 정답은요 바로 엄마야 나를 왜 자꾸만.
13:05그렇죠 맞습니다. 바로 1981년에 발표한 고추잠자리라는 노래인데요.
13:11바로 라디오 차트에서요 무려 24주나 1위를 했다고 합니다.
13:1524주면요 장작 6개월 동안 1위를 한 건데요.
13:19정말 이용필 오빠 멋있어 오빠.
13:21심지어 고추잠자리 다음에 나온 노래 못 찾겠다 깨꼬리 이 노래 역시도 너무 장기간 1위를 하니까 음악방송에서 아예 룰을 바꿔버려요.
13:32이러다가 1년 내내 조용필이 1위 하겠다라는 이런 생각을 했었던 거죠.
13:36그래서 이 음악방송에서요 10주 연속 1위를 하면 아주 명예롭게 상을 줘서 이 순위에서는 일단 내려가라고 얘기를 하는 골든컵 제도가 생겼어요.
13:49그래서 엄청난 인기였다는 거죠.
13:52그때 오빠 부대였던 분들이 우리 연배인가 아니면 우리보다 위쪽인가 어떻게 되나.
13:58제 연배도 있고 저보다 좀 위도 있고 뭐 그런데요.
14:02저도 정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14:05왜냐하면 이게 한두 회의 인기를 끈 분이 아니라 저의 초중고 인생을 함께한 그런 가수인데.
14:12사실 아까 최 기자 얘기한 골든컵이 나중에 5주로도 더 줄고 그랬어요.
14:16그런데 이게 저도 아직도 기억나는 게 오빠 부대가 뭐 어디 가도 울지만 특히 이 오빠 부대를 자지러워지게 하는 마법의 네 글자가 있었어요.
14:26뭐예요?
14:26노래 어디서든 기도하는.
14:30그냥 노래 가사처럼.
14:32이게 노래 비련이었죠.
14:33기도하면 그럼 이제 조용히 해야 돼요.
14:37맞아요.
14:38기도하는.
14:39네 그래서 마치 또 이 후세대들은 노래 비련의 애초 가사인 줄 알아요.
14:44기도하는 하면 아하 저희가 소리 질렀던 겁니다.
14:47저희가.
14:48워낙 명곡이 많아서 어떤 곡 제일 좋아하셨어요?
14:51저는 여행을 떠나죠.
14:53풍 언덕에.
14:54하늘을 내고.
14:56너무 좋고.
14:58저희는 그거.
14:59바운스 바운스.
15:00아 맞아요.
15:01최근에 가정책이 나왔어요.
15:02너무 좋아했어요.
15:04노래방 같은 거 이제 가면은 이제 선배들이랑 가면 항상 하는 거 있었어요.
15:08먹이를 찾아 산키스.
15:10어슬렁거리는 하이블들을 본 적이 있니까.
15:12이렇게 선배들이 진짜 다들 좋아하셨거든요.
15:14저는 역시 좀 옛날 세단 가봐 저는 그 겨울의 찻집.
15:18이제 그랬으면 좋겠네요.
15:20명곡 너무 많습니다.
15:21너무 많죠.
15:22뭐 끝도 없습니다.
15:23그런데 조용필 씨의 노래는요.
15:25특히 해외에서도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죠.
15:28요즘 케이팝 케이팝 얘기를 하는데 해외에서 인기를 얻은 원조는 조용필 씨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15:35지금도 한류 특히 한국 가수들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을 하면 와 인기에서 인기가 진짜 많은가 보다 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일본의 홍백 가압전이라는 프로그램인데요.
15:46조용필 씨가 1987년부터 무려 4년 연속 출연을 합니다.
15:52심지어 일본 뿐만이 아닙니다.
15:54북한조차 평양 단독 공연을 요청할 정도로 인기가 정말 대단했었는데요.
16:00조용필 씨 2005년 평양에 7천 명의 관객 앞에서 단독 공연을 치렀습니다.
16:06무표정하고 경직된 분위기에서 무대를 하는 조용필 씨도 노래가 끝날 때마다 정말 숨이 멎을 지경으로 긴장이 됐다고 하는데요.
16:15하지만 이 공연이 다 끝나고 나서 이 관객석에서 기립박스가 터져나왔다고 해요.
16:21이 조용필 씨가 이 공연 후에 꿈이 하나 생겼다고 하는데요.
16:26영상으로 직접 보시죠.
16:27저는 이제 뭐 가게 된다면 그때는 체육관에서 했지만 그때 갔을 때 한 번 그런 얘기를 했어요.
16:38거기 저희를 초청한 그쪽 아주 높으신 분이 다음에 조용필 씨가 오면 저 5.1 경기장에서 한 번 해야지?
16:48뭐 그런 얘기를 한 번 들은 적이 있어요.
16:50그렇다면 아주 영광인다고 그랬죠.
16:52와 그 5.1 경기장에서 했으면 거기가 15만 석이니까 정말 대단한 공연이 됐을 텐데
17:005.1 공연장에서는 못했어도 경기장에서는 못했어도 조용필 씨 꿈을 이뤘습니다.
17:05그 뒤에 13년 뒤에 2018년도에 이 남북평화협력기원 공연차 평양에 다시 가게 됩니다.
17:14당시 조용필 씨가 몸 상태 좋지 않아서 이제 5.1 경기장에서 노래하고 싶다.
17:19또 하나는 옥류관에서 냉면 먹고 싶다 했는데
17:21이 냉면은 못했지만 다시 한 번 북한 한복판에서 공연을 하면서
17:26명실공이 여전한 그 최고의 가왕이라는 그것을 증명했죠.
17:33조용필 씨는 그 명성에 비해서 사생활이 그렇게 많이 공개되거나 한 스타는 아니에요.
17:39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조용필 씨도 사랑도 했고 가정도 있고 이런 거잖아요.
17:45아마도 창작자, 크리에이터에게 사랑과 이별만큼 더 강력한 곡 작업에 대한 계기는 없을 것 같은데요.
17:54조용필 씨가 사실 한국을 뒤집어 넣었던 스캔들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17:591984년입니다.
18:02조용필 씨가 당시 삼성 국회의원의 딸인 무용 교사와 경기도의 봉선사에서 물 한 그릇 떠놓고
18:0810여 명의 지인만 불러서 극비 결혼식을 감행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18:13심지어 결혼식을 치른 절로 이동하기 직전에 결혼식을 치른다라고 깜짝 발표를 하기도 했습니다.
18:20당시 아내조차 자신의 결혼식을 몰랐다라는 이런 이야기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하지만 이렇게 깜짝 결혼을 했었던 조용필 씨 결혼 사 년 만에 이혼을 발표하면서 다시 한 번 세간의 화제에 오르게 되는데요.
18:34당시 이혼을 발표하면서 조용필 씨가 했었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18:39모든 것은 나의 잘못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었죠.
18:43이은재 조용필 씨가 미국 공연에서 만난 아내와 1994년 재혼하게 되죠.
18:48너무 사랑해서였을까요? 결혼한 지 십 년도 되지 않아서 아내가 세상을 떠납니다.
18:53그래서 노래진을 발표했는데 여기 보면 가슴 깊이 저리는 밤 눈을 감네.
18:58왜 눈을 감냐면요. 그대 모습 더 가까이 보기 위해.
19:02정말 이 노래 꼭 들어보시길 추천드리고 조용필 씨는 아내를 더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아내가 남긴 유산 24억 아내처럼 심장병을 앓는 아이들을 위해서 써달라.
19:14전액 기부했고 여전히 산소 계속 찾아가신다고 들었습니다.
19:18네. 아내의 죽음 이후에 조용필 씨의 음악 인생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19:23네. 조용필 씨는 10년 동안 새 앨범 발매를 하지 않았습니다.
19:27하지만 2013년이죠. 정말 긴 공백을 깨고 가요계에 돌아오게 되는데
19:32그 노래를 많은 분들이 아십니다.
19:35우리 A&M 씨도 얘기한 바운스인데요.
19:38당시 바운스가 발표되자마자 MZ세대들도 바로 반응을 했어요.
19:43실시간 음원 차트 1위, 음악방송에서도 1위를 차지하면서
19:4670년대, 80년대, 90년대, 2010년대까지 차트 1위를 차지하는
19:51정말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진 가왕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
19:577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형인 가수인 거잖아요.
20:01맞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난해 20집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앨범은 내지 않겠다.
20:06이렇게 발표를 하셨는데 자신의 인생을 도전이었다. 근데 이루지 못한 게 있어서 아쉽다고 본인은 얘기하시지만 우리는 정말.
20:16앨범마다 장르를 바꿔가면서 이 스무 개 앨범 정말 백년 천 년 들어도 좋을 앨범을 남겼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고요. 영원히 우리 곁에 가왕으로 남겨주시고 남아주시고 노래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무대에서 노래 불러주세요.
20:31네 조영필 씨의 인생극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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