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그때 이제 아빠한테 그런 이야기를 왜 거기 가서 오래 그렇게 앉아 있었냐 그러니까 너무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고 그래서 어떤 일에 그렇게 충격을 받았냐
00:10그러니까 사랑 사랑 내 사랑의 장소니 씨라고 있었죠 장소니 주인공 그 장소니 배우가 임신을 했는데
00:18그때 수령님 역할을 하는 그 배우하고 연애 섬생이 있어서 임신을 했는데 근데 그 임신을 한 거 가지고 사상투쟁을 하는 거야 아침에 감히 수령님 역할을 하는 그런 일어배우하고 놀아놨다 뭐 이런 거
00:38아니 그러면 수령님 역할을 한 일어배우가 비난을 받아야지 왜 여배우가 비난을 받아요
00:44그러면 사람이 여성이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고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00:49축하받으니까 그거 가지고 축복받을 일을 갖고 어떻게 그거를 가지고 사상투쟁을 하냐
00:55충격을 받아서 신상욱 씨가 앞으로 가고 싶어하는 것 같다 아빠가 집에 와서 어머니와 이야기하는 이야기를 제가 들었죠
01:04그래서 아 이거 큰일 났는데 하면서 조심해야 되겠더라 그래서 저한테만 말하지 말고 그렇게 얘기했다고 누구한테 말하지 말라
01:13거기 제가 정확한 첨언을 해드리면 제가 신상욱 감독님의 마지막 조 감독 출신이었거든요
01:19미국에 망명하 계실 때 제가 물어봤어요 저는 이제 영화 학도니까
01:24감독님 북한에도 키스싱리냐고 영화에 그랬더니 그 철길 따라 천말리라는 영화가 있대요
01:30네 있어요
01:31그게 자기가 감독했는데 북한 영화 사상 최초로 키스싱 넣었대요
01:36근데 김정일과 딜을 한 게 있대요
01:43뭐가 있냐면 큰 흐름에서는 북한 정권을 홍보하는 영화를 만들어주겠는데
01:48영화 만드는 방식은 내 맘대로 하겠다
01:50그러니까 터치하지 말라
01:51그래서 자기는 키스싱은 당연히 사람이면 키스를 해야 되지 해가지고 넣었는데 이게 난리가 난 거예요
01:56심지어 NHK에도 이게 방송이 됐었거든요
01:59북한 영화에 키스싱 등장한다 뭐 이런 식으로
02:01여기까지는 1차 충격이었어요
02:03둘째는 뭐냐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춘향전을 모티브로 한 사랑 사랑 내 사랑이
02:08아직 정확하게 기억을 하는데
02:101986년 1월 1일 날 신년회 때 이거를 김일성 당시 주석이 쫙 뭐 새해에 복 많이 받아라 한 다음에 이제 빠졌어요
02:20빠진 다음에 사회자가 뭐라고 얘기했냐면 지금 김정일 동지의 허락 아예 사랑 사랑 내 사랑을 인민 문화 공정에서 상영하니 보러 가라
02:31이걸 했는데 앉아있는 사람들이 다 빵 터진 거예요
02:35우와 웃어요
02:36왜 웃어?
02:37신감독이 이해를 못한 거예요
02:38왜 웃지? 했더니 공개석상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처음 뱉은 거예요
02:42무슨 말이에요 이게
02:44북한 정권 관계자가 인민들이 앉아있는 그 자리에서 공적인 자리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처음 뱉은 거를 너무 창피한 거죠
02:53그런 제목이 없던 거예요?
02:54없었던 거예요
02:55북한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저국의 수령의 동지에 이렇게밖에 사용할 수가 없었어요
03:01사랑
03:02그러니까 그래서 이렇게 남녀끼리 난 동물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03:05굉장히 그 시대에 떨어진 낙오자 혁명을 하는 식의 사람 따위나 논하는 이런 질 떨어진 인간들
03:11이렇게 하다 보니까 공적인 자리에 사랑이라는 단어 나오는 게 북한 주민이라는 데는 충격이죠
03:16거기서 빵 터져가지고 거기서 신감독이 2차 충격을 받으신 거예요
03:20내가 이 땅에서는 영화 만들면 안 되겠구나 해가지고 탈북 결심한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하나가 그거였어요
03:26사랑을 통제하는 나라구나
03:28자기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김평강 작가님의 아버지는 영화감독이자
03:31또 동시에 김일성종합대학교 1기 졸업생 출신이라고 해요
03:351기요?
03:361기요?
03:37그러다 보니까 집에 김대 동창들 그리고 고위급 장성들
03:42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자연스럽게 많이 드나들었던
03:46가정환경 속에서 우리 김 작가님이 자랐던 거죠
03:49가장 상징적인 인물 하나 꼽자면
03:52황장엽 선생이 당시 학교 총장이었으니까 말하자면
03:56김 작가님의 앞 선친과 황장엽 선생이 사제지간이었던 거죠
04:00사실 황장엽 선생님이라고 하면 저희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만 잘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04:06황장엽 선생은 어떤 분입니까?
04:09김일성이 그 뭐라고 할까 연설문이라든가 이런 걸 많이 작성했던
04:14김일성이 소기실에서 군무를 했던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04:18그리고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으로 활동을 하다가 당중앙위원회 국제비소로 자리를 옮긴 이런 케이스로 알고 있습니다
04:27북한의 이데올로기, 통치 이데올로기를 만든 주제상의 창시자의 한 사람입니다
04:33대사님은 이제 포머한 얘기, 우리 인포머, 우리 카도라죠
04:37황장엽 선생님 앞에서 유일하게 김일성이 맨발로 뛰어나갔다
04:41주민들은 다 그렇게 알고 있어요
04:42왜냐면 황장엽 선생님이 김정일의 개인 선생님이었대요
04:46근데 김정일이 너무나도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말을 안 듣고
04:49완전 프로나 망아지처럼 그렇게 뛰어다닐 때
04:52황장엽 선생님이 집에 가르치려고 딱 왔는데
04:54스승이 얼마나 높은지를 내가 보여줘야겠다 해서
04:57김일성이 맨발로 뛰어나가서 스승님 오셨습니까? 하고 인사를 했더니
05:00그 다음부터 김정일이 꼼짝 못하고 앉아서 황장엽 선생님으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05:04이렇게 북한 주민들도 다 알고 있어요
05:07그래서 김 작가님이 탈북하고 나서 한국에 와서 황장엽 선생을 만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05:12찾아갔어
05:14아버지 얘기를 꺼냈던 건가요?
05:16네, 황장엽 선생님께서 정말 좋은 동생이었는데
05:22빨리 가서 정말 안 됐다고 말씀하셨고
05:25이제부터는 내가 아버지가 되어주겠다고 하시고
05:28자기 사무실에 오셔서 같이 일하자고 하셨는데
05:32저는 또 자유를 찾아왔으니까
05:34뭐 경호원들이 쫙 둘러서 있고
05:36막 우리 둘이서 이제 삼계탕 먹으러 가는 줄 알았는데
05:40다 같이 뭐 석대 녹대 막 이렇게 세대 따라가고 하니까
05:44제가 굉장히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한국에 왔는데
05:50그래서 제가 안 갔었어요
05:54그런데 이제 황 선생님 매일 새벽 6시 반에 전화를 오셔서
05:58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06:01빨리 가자
06:02빨리 가자
06:03책 짓질하라
06:04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06:06저는 그 뜻을 몰랐어요
06:08본인이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하는 이제 그 자소전
06:12자기 자소전을 쓰셨잖아요
06:14그 자소전을 다시 쓰고 싶어 하셨어요
06:16너무 급해서 썼기 때문에 다시 한번 쓰고 싶다고
06:20그래서 얼마 시간이 남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는데
06:23제가 그 뜻을 받들지 못했어요
06:26그래서 책을 내지 못하고 돌아가셨어요
06:30추천서를 써주셨는데
06:40그 추천서를 누구 보고 좀 써주라
06:43그러면 내가 이제 사인을 해줄게
06:45이거 누구 보고 시켰는데
06:47보시다가 보니까
06:48아 이거는 내가 써야 된다
06:50스톱 시키고
06:52본인이 이제 자필로 쓰셨어요
06:55그래서 굉장히 잘 써주셔서
06:59형강림 책의 추천서를
07:01네
07:02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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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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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네
07:07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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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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