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그 상황은 어떻게 됩니까? 그때 당시에 뭐 잡혔으니까 조사를 받았죠. 조사를 받고 사실은 뭐 제가 묵비권 아닌 묵비권을 행사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조원을 저는 살려 보내야 되니까 조원이 움직일 수 있는 동선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제가 이제 감추고 계속 거짓말을 했습니다.
00:24뭐 침투 어디로 했냐 그러면 강화도로 했다. 그런데 강화도는 제가 복귀를 했으니까 잘 알잖아요. 저는 조원을 살려야 된다는 그 오직 하나의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에 계속 이제 거짓말을 하면서 버티고 있었는데 3일이 지나니까 어떤 분이 와서 그러더라고요. 조원 죽었다고. 그래서 저는 그분의 말을 또 믿을 수가 없잖아요.
00:47그래서 엉뚱한 허튼 소리 하냐. 그리고 이제 저는 외면을 했는데 나중에 이제 한 2시간, 3시간 지나니까 사진을 갖다 보여주더라고요.
00:57그래서 제가 그 사진을 보고 나니까 뭐 저는 뭐 그 사진은 조작은 할 수는 없잖아요. 저는 제가 얼굴을 아니까 사진 보고 나서 한 서너 시간을 울은 것 같아요.
01:08어느 지역에서 그 당시에 멀리 벗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잡힌 데서 불과 한 3, 4km 정도 이내에 있었던 것 같아요.
01:20그러니까 아마 그 친구는 제가 따라올 줄 알았던 거예요. 그러니까 얘는 처음에 나왔고 조원이고 경험이 없으니까 이게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랐던 것 같고.
01:32그래도 조장이 오면 같이 뭔가 해보려고 좀 기다리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01:38그러니까 3일 만에 그때 현장에서 군 장병들하고 교전이 붙어가지고 현장에서 이제 사살됐죠.
01:46전향은 당연히 하셨겠죠.
01:53그때는 전향을 안 했죠. 안 하고. 전향은 생각도 안 했고요.
01:59그리고 특히 이제 북한의 가족들이 부모 형제가 살고 있기 때문에 제가 전향을 하면 부모 형제가 다치는 건 다 뻔한 사실이니까 안 하고 이제 버티고 있었습니다.
02:11자 그렇게 이제 2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랬는데 또 끝까지 전향을 안 하셨죠.
02:16감옥에 있는 거예요.
02:17그렇죠. 그때 이제 안기부서 어떤 사람을 데려오냐면
02:2197년도에 이제 부부공작원으로 난파됐다가 검거된 최정남 씨를 데려오게 됩니다.
02:32최정남 씨가 제가 속해 있던 소속의 같은 과였어요. 대남공작과.
02:39북한에서는 한 번도 만난 적은 없는데 그냥 감으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02:46부부공작조가 어느 초대에서 있다.
02:49그리고 그 친구는 제가 어느 초대에서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요.
02:52그런 상태에서 이제 만나서 저는 뭐 다른 관심은 없었고
02:58과연 제가 잡힌 다음에 제 가족이 어떻게 됐는지 그게 제일 궁금했는데
03:03그걸 뭐 다른 얘기 쭉 하면서 제 가족이 숙청됐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03:08그래서 그 우연히 그거를 이제 들었는데 아주 자세한 내막을 다 듣고 왔어요.
03:17우연히 들었는데.
03:18숙청이라고 하는 거는 최소 사람 못 살 오지로 추방을 한다든지 강제 이수.
03:23이게 최소?
03:24아니면.
03:25네.
03:26근데 얘기를 들어보니까 저희 같은 경우에는 정치범 수용소 수용 이상의 처형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03:32그래서 그렇게 된 거예요.
03:34근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진짜 이게 배신감이 어마어마하게 들더라고요.
03:41그러니까 전형을 한 것도 아니고.
03:43그렇죠.
03:44임무수행 중에 그냥 검거된 거잖아요.
03:46그런데 이제 뭐가 있냐면 불문율이 있는데 저희는 사상교육을 할 때 절대 잡히면 안 된다.
03:55잡히기 전에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03:57잡히기 전에 죽어라.
03:58그래서 저희 자폭교육을 많이 합니다.
04:01그렇기 때문에 잡힌 다음에 어떻게 하라고 하는 지침은 없어요.
04:06그러면 잡히면 어떻게 되지.
04:09잡히면 가족이 수천댄대.
04:11그리고 잡히면 아무리 어쩌고 저쩌고 해도 너를 배신자 취급을 한대라는 정도만 알고 있어요.
04:18근데 저는 이제 실제로 잡혔고.
04:21그런데 제가 이렇게 총격전을 하면서 마지막까지 그들이 준 임무.
04:27그러니까 소리를 내라.
04:29그래서 소리까지 다 내고 끝까지 저항을 하다가 잡혔기 때문에 저희 가족들은 그래도 살려놨겠죠.
04:35라고 하는 일말의 어떤 미련을 갖고 있었는데 그게 한순간에 이제 다 무너진 거죠.
04:41배신감이 굉장히 컸거든요 사실은.
04:43그리고 그나마 가족 하나 믿고 있었는데 가족까지 그렇게 했다고 그러니까 더 이상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었죠.
04:51그래서 그러면 내가 차라리 대한민국에 살아야 되겠다.
04:56사는데 어차피 제가 이제 거의 죽었다 살았으니까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05:03그러면 내가 대한민국을 위해서 뭔가 일을 해야 되겠다.
05:07그런 생각을 그때 이제 한 거죠.
05:09그 이후에 제가 3년 반을 그때 잡혀 있었는데 3년 반 만에 나와가지고.
05:15그 당시에 국군기무사령부에 제가 분석관으로 들어갔습니다.
05:18아 그러세요.
05:19사실은 그 이후에 간첩단 사건들이 여러 개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제가 나가서 증언을 했고요.
05:26법정 증언을 했고 최근에 있었던 4대 간첩단 사건에도 제가 증인으로 갔습니다.
05:31왜냐하면 그때 당시에 제가 금방 검거됐을 때는 저희 동료들이 다 공작원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알려지지가 않았는데 세월이 한 20년 30년 흐르다 보니까 저랑 같이 공작원했던 친구들이 지금 다 공작 부서에 장이 되어 있는 거예요.
05:49장관도 하고 차관도 하고.
05:51그렇겠다.
05:52그러니까 애들이 밖에 나와서 얼굴이 노출이 되면 제가 다 아는 거예요.
05:56그래서 이제 가서 저 사람들이 공작 부서에 사람들이 맞다.
06:01이런 것들을 다 증언을 해서 어쨌든 저는 대한민국 안보에는 어느 정도 지금은 기여를 하고 있다.
06:10이렇게 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06:12지금도 간첩이 옵니까?
06:16옵니다.
06:17어머.
06:18요즘 세상에 높은 거.
06:20간첩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하게 정보 수집하러 오는 게 아닙니다.
06:24정보 수집은 뭐 해킹을 해서도 할 수 있고 그렇지만 해킹을 해서도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06:31예를 들어서 뭐 정말 극비의 극비는 사람이 들어가서 직접 꺼내와야 되는 거고.
06:36특히 이제 뭐냐 하면 사람을 포섭하고 포섭해서 만들어 놓은 간첩망을 와서 현장에 와서 검증하고.
06:45그다음에 이 사람들한테 뭐 공작금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갖다 주고.
06:50이런 거는 사람이 와야 됩니다.
06:53어쨌든 이게 지금도 계속되는 일이라는 거잖아요.
06:58특속 정보원을 만들고 이 극실가를 위해서 또 누군가를 목숨을 던지고 있다는 게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07:05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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