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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분 전


어머니를 위한 사모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로 데뷔
쓸쓸한 가을에 어울리는 데뷔곡 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
'입영 전야','영일만 친구' 등 잇따른 히트
배우 김자옥과 초고속 결혼 후 3년만 에 이혼
80년대 중반 부터 긴 슬럼프
1989년 경 가족과 돌연 미국행
당시 한인 방송 라디오 DJ로 힘든 시절을 보냄
1992년 경 귀국 가요계 복귀
1994년 '낭만에 대하여' 발매 그 해 연말에만 30만 장 이상 판매

활기가 넘치는 '행복한 아침'이 시작됩니다!
'행복한 아침'
월~금 아침 7시 30분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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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오늘의 주인공은요. 아주 허스키한 보이스. 거기에다가 삶의 연륜이 느껴지는 가사로요. 아주 많은 이들의 가슴을 촉촉하게 거기다가 흡엽하기도 한 그런 분인데요. 이분 그리고 이분의 노래를 많은 스타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바로 방탄소년단 B씨는요. 힘이 들 때 정말 위로를 받는 곡이라고 했고요. 그리고 똑순이 배우 김민희씨가 제 2의 삶을 살게 해준 분이라고 했고요.
00:25이분 폭탄 발언을 했습니다. 남편 다음으로 좋아하는 남자라고 우리 강구자씨가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제가 아직 결혼을 안 해봐서 잘 모르겠거든요. 남편 다음으로 좋아하는 남자 이런 건 어떤 표현으로 쓸 수 있는 건가요? 장애인 아나운서 혹시?
00:41그런 표현은 사실 제가 이재용 아나운서 얘기할 때만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런 표현은 남편 제일 좋지만.
00:48고맙히게 좋아한다. 이런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분의 정체를 바로 공개하겠습니다. 남편 다음으로 좋아하는 이 남자. 바로 떠올리기만 해도 낭만이 흐르는 가수죠.
00:59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바로 낭만각의 최백호씨입니다.
01:04데뷔 50주년을 맞이한 최백호씨.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좀 나눠볼까 하는데요.
01:10최백호씨 하면 쓸쓸하지만 담담하고 울림있는 그 목소리. 저도 정말 좋아하는데 어떻게 해서 이런 목소리를 갖게 되셨을까요?
01:20최백호씨의 죄송합니다. 이런 정서가 어린 시절하고도 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01:25최백호씨 부친께서는요. 당시 부산 영도에서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던 고 최원봉씨예요.
01:33어머나 그런데 삼남매의 막내로 최백호씨가 태어났는데 태어난 지 불과 5달 만에 이 국회의원 아버지께서 사망하신, 병세하신 겁니다.
01:44그런데 그때 이 국회의원 집안, 이 친가에서 말하자면 애비 잡아먹은 자식아.
01:50이런 표현을 쓰고 이런 얘기 들으면 엄마 가슴 무너지죠.
01:55내가 진짜 시댁 도움 필요 없다. 혼자서 이 삼남매를 키웠고.
01:59그러니 여자 혼자 몸으로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02:03최백호씨 기억 속에서는요.
02:05이 엄마는 맨날 돈을 꾸러다니거든요.
02:07옷 살 돈이 없어서 옷 사줄 돈이 없어서 재봉틀도 옆집에서 빌려서 애들 옷 만들던 그 모습밖에 없다고 해요.
02:17그래서 이 아버지 없던 최백호씨 어린 시절 친구들하고 놀기보다 혼자 나무에 올라가서 이렇게 생각하고.
02:24이렇게 흥얼흥얼 또 기타도 치고 이랬는데 그래서 이걸 최백호나무라고 하는데 부산의 이 최백호나무 아직도 남아있다고 해요.
02:32이렇게 어린 시절을 외롭게 보낸 최백호씨 노래는 어떻게 시작한 거예요?
02:37놀랍게도 최백호씨는요.
02:39어릴 적에는 마치 저처럼 거의 저처럼 움치 수준의 놀이신 역이었다고 합니다.
02:45그런데 이런 최백호씨가 본격적으로 노래를 할 수 있었던 그런 계기가 있었는데요.
02:50바로 앞서 말씀드릴 어머니였습니다.
02:54최백호씨가 20살에 어머니께서 쇄장암으로 돌아가신 거예요.
02:58당시 큰 상실감에 빠진 최백호씨가 곧장 군대에 들어가게 됐는데
03:03그런데 그마저도 결핵에 걸려서 1년 만에 제대를 해야 했대요.
03:08강제로 제대까지 했겠다.
03:10어머니도 사회에 나왔는데 안 계시겠다.
03:12갈 곳이 없어지게 된 최백호씨잖아요.
03:14그런데 이때 통기타를 칠 줄 안다라는 이유만으로 친구 매형이 개혁한 라이브 카페가 있었는데
03:24여기 무대에 올라가게 됐다는 거예요.
03:26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은 거죠.
03:30그런데 이 소문을 들은 서울의 대형클럽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옵니다.
03:35그렇게 최백호씨가 서울로 열심히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요.
03:39여기서 또 굉장히 소문이 잘나서 데뷔 음반까지 본격적으로 내게 됩니다.
03:47그런데 이 데뷔 노래 역시 어머니를 향한 사모곡이라고 하거든요.
03:52어떤 사연이었는지 최백호씨의 입으로 직접 들어보시죠.
03:57첫 노래가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제가
03:59그 힘들었던 시간들을 글로 써놨던 건데
04:04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하고 써놨던 건데
04:07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04:12차라리
04:16하얀 겨울에 떠나요
04:24어머님의 마지막 가실 때
04:30그걸 붙잡지 못했던 불효
04:35그게 너무너무
04:36저는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04:39그래서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
04:42어쩌면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저를
04:45도와주신
04:46아들이 저 어떻게 견디낼까 하고 걱정했던 마음이
04:52그 글을 제가 쓸 수 있게 해주셨고
04:54가수로 또 나와서 어떤 삶의 형편의 길을 바꿔주신 게 아닌가
05:02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05:06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최백호씨를 가수의 길로 이끈 거네요.
05:11그러면 데뷔 이후에 인기는 좀 있었을까요? 어땠나요?
05:14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그리움을 담은 노래
05:171976년도에 나온 이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05:21정말 독보적 음색과 감성이지만 나오자마자 흥행은 아니었고
05:25근데 이게 딱 가을에 들으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05:28최백호씨 음색 자체가 가을이잖아요.
05:30이게 가을로 접어들면서 음악 인기를 끌었는데
05:32이때 당시에 신인 가수 앨범이 만 장 팔리면 대박이다 이랬는데
05:38이거 품절되고 추가 제작해서 8만 장까지 올렸다고 그래요.
05:42이후에도 이병전야 영일만 친구
05:45막 노래가 다 잘 돼서 신인상 7대 가수상
05:49막 휩쓸고 인기가 오면 뭐가 따라오죠?
05:53돈이 세상에 이때 당시에 70년대 후반에
05:57현금 1억 원을 정산 받았다고 그래요.
05:59근데 어려서 부모님 잃고
06:0220살에 어머니 가시고
06:03이거 뭐 어떻게 은행에 저축하는지도 모르고
06:05그래서 하숙지 밑에다가
06:07요 밑에다가 깔아놓고
06:09조금 조금씩 입에서 쓰셨다고 하네요.
06:12제가 또 연예계 덕후로써
06:14최백호씨의 과거를 또 한번 뒤조사를 살짝 해봤는데요.
06:18신인 시절 20대 최백호씨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06:21바로 그때도 지금처럼 아주 쓸쓸한 분위기
06:24묻어나는 그냥 분위기 미남이었다고 하거든요.
06:28자 화면을 함께 여러분들 보시면요.
06:30이야 보세요. 분위기 미남의 조건이죠.
06:33이 우수에 찬 눈빛.
06:35어우 굉장히 촉촉해요.
06:36거기에다가 최백호씨가요.
06:38마라톤 선수 출신으로 오해를 받을 정도로
06:41아주 탄탄한 몸매에 소유까지
06:43반전 매력까지 지녔다고 합니다.
06:45아 우리는 저희 또래는
06:48아쉬운 밤 흐뭇한 밤
06:51군대 갈 때 다 모여서
06:53이병정
06:54이병정
06:54그런 건데
06:55이런 최백호씨가 세상을 또 깜짝 놀라게 하는 주인공이 됐죠.
06:59네 그렇습니다.
07:00제가 80년대 기사를 하나 준비를 해봤는데요.
07:03탤런트 겸 영화배우 김자옥과 가수 최백호가 결혼한다.
07:08지방 공연 무대에서 알게 돼
07:118개월 남짓 사귀어 온 두 사람은
07:13결혼 날짜를 9월쯤으로 잡고 있다라는
07:16이 동아일보 기사가 있습니다.
07:18지금은 고인이 된 당시 톱스타 김자옥씨와
07:21깜짝 결혼 발표를 하게 된 건데요.
07:23최백호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07:25당시 공연 중에 만난 김자옥씨와
07:28만나게 됐는데
07:30이때 김자옥씨가 본인의 하숙집에 전화를 걸면서
07:33인연이 또 다시 시작이 됐다고 해요.
07:35그렇게 연애를 하고
07:361년도 한때 초고속으로 결혼 발표까지 하게 됐는데
07:39결혼과 동시에 당시 김자옥씨는
07:42TV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07:44이제 활동을 멈추게 됐었죠.
07:47네 그런데 이 두 사람
07:48부부로서의 결말은 좀 좋지 못했습니다.
07:50네 맞습니다.
07:51사실 뭐 결혼한 지 3년 만에 파경을 맞게 되는데
07:54정확한 이유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고
07:56대외적 사유가 이제 성격 차이입니다.
07:59네 최백호씨가 결혼 생활을 때
08:00짧게 언급한 적이 있었어요.
08:02우리 둘 다 두 사람 다 외로울 때 만나서
08:05급타오르고 급결혼했는데
08:07결혼하자마자 이거 아니다 싶었다는 겁니다.
08:11그래서 최백호씨가 일단 먼저 이 지역에 지방 전국 공연 다니면서 집에 잘 들어가질 않았고요.
08:17당시 이 탤런트들 연예인들 배우들 여자의 경우 결혼하면 은퇴했거든요.
08:22그런데 김자욱씨가 1년 반 만에 은퇴 번복하고 드라마 복귀하고 한 사람은 노래하고 한 사람은 연기하고 이렇게 각자 생활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면서 파경을 맞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08:36그러면 지금의 아내와는 어떻게 만나게 된 건가요?
08:39네 이혼 후 1년이 지난 다음에 최백호씨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됐는데요.
08:47당시에 10살 차이였다고 해요.
08:48지금도 10살이라고 하면 큰데 당시에는 정말 큰 나이 차이었던 거죠.
08:53두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가까워지게 됐다라고 하는데요.
08:57그런데 최백호씨와 만난다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아내의 집에서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라고 합니다.
09:05어느 정도로 반대를 했느냐면요.
09:08장인어른이 찾아와서 우리 딸 계속 만나면 내가 너 사회생활을 못하게 해주겠다 이렇게 얘기를 하신 거예요.
09:15이렇게 협박까지 들었지만 너무 사랑했었던 겁니다.
09:18이 장인어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협박한 이유 그러니까 반대를 한 이유 정말 예상 외에 이유가 숨어 있었는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09:30최백호씨 노래를 싫어했나?
09:33그 목소리가 오히려 너무 쓸쓸하게.
09:35아니면 러미오와 줄리엣처럼 출시감을 하고 무슨 안 좋은 일이었어요.
09:41일단 최백호씨의 고향이 어디라고 했었죠? 우리가 앞서?
09:46영남이죠.
09:46그렇죠. 부산입니다.
09:48그런데 장인어른의 고향이요. 전라도였다고 해요.
09:54사실 지금은 지역 감정 때문에 결혼을 반대한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정말 옛날이잖아요.
10:01그렇기 때문에 장인어른이 정말 크게 반대를 했었던 건데요.
10:05하지만 최백호씨의 결혼할 때까지도 현장에 없었던 장인어른이 딸이 태어나자, 손녀가 태어나자 어느 날 최백호씨한테 딱 전화를 하시더랍니다.
10:17그러면서 술 담궈놨으니까 아기 한번 데리고 와라 이렇게 얘기를 했다는 건데 그러면서 전화를 탁 끊으시더래요.
10:24이때부터 최백호씨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
10:28그렇군요. 그러면 재혼 후에도 최백호씨는 가수로서 승승장구했죠?
10:33이것도 좀 궁금한데 안타깝게도 최백호씨는 80년대 중반부터 긴 슬럼프를 겪게 됩니다.
10:42신인 시절에 히트곡을 연달아 냈지만 이후부터는 또 히트곡이 없었어요.
10:46이렇다 한 곡이 없다 보니까 불러주는 일단 무대가 없는 거예요.
10:50심지어 팬들도 고개를 돌렸다고 합니다.
10:52나중에는 단돈 100원도 없는 이런 생활고에 이르게 되는데
10:57그래서 1989년도에 최백호씨가 엄청난 결심을 하게 돼요.
11:01바로 아내의 가족들이 있는 미국 LA로 건너가자 이렇게 결심을 한 겁니다.
11:06이렇게 최백호씨가 아내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가서 한인방송 DJ를 하면서 생활을 이어나갔다고 추억하기도 했었죠.
11:16그러면 한국에서 다시 활동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거죠?
11:20송충이는 손님 먹고 살아야죠.
11:22미국 DJ 생활 불과 2, 3년 만에 1992년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가수활동 다시 시작합니다.
11:30하지만 뭐 바로 반응 오지 않죠.
11:32그러다 보니까 미사리 카페 여기 전전하면서 손님들이 던지는 수박 껍질 이런 거에 땅콩 맞아가면서 노래를 하다가
11:43그래도 또 너무나 다행히 2년 만에 1994년에 그 노래가 터지고 맙니다.
11:48무슨 노래인지 짐작되시죠? 들어보시죠.
11:51굳은 비 내리는 날
11:55그야말로 옛날식 가방에 앉아
12:02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12:06진튼 새 스폰소리를 들어보려
12:11밖에서 제가 일하고 있던 세상을 들여다보니까
12:16나의 가수로서의 문제점이 무엇이었구나 하는 걸 좀 정확하게 볼 수가 있고
12:23가장 정확하게 파악했던 점은
12:27내 노래를 들으시는 분들도 나처럼 나이가 들어가는구나
12:32같이 늙어가는구나
12:34그래서 아 이제 40대 노래를 부르자
12:3840대에 만들 수 있는 노래
12:4140대 중반에 낭만에 대하여는
12:44그 노래가 가슴에 와닿으면
12:46당신이 이제 넓게 시작하는 겁니다.
12:501994년에 이 노래가 나왔잖아요.
12:52저희 이제 방송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인데
12:55그때는 이 노래가 와닿지 않았어요.
12:59근데 지금은 이 노래 가슴으로 들어
13:02이건 귀로 듣는 음악이야.
13:05맞아요.
13:06나이가 들면 이게 그냥 와요.
13:08이 노래는
13:09낭만에 대하여 최규쿠 씨가 설거지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면서
13:13옛날에 사귀었던 여자친구들도 지금쯤 누군가의 아내가 돼 있겠구나
13:18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13:21이런 막 가사가 줄줄이 나오더라는 거죠.
13:24근데 이 감정이
13:25아 낭만이다.
13:27첫사랑 막 찾고 싶은 게 아니라 낭만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고
13:30근데 아내도 처음에는 어머 이렇게 질투를 했지만
13:33노래 너무 잘 되고 하니까 이제는 다 이해하신답니다.
13:37네. 그런데 이 노래가 처음부터 잘 된 건 아니었다고요.
13:40너무 의외죠. 이 노래가 당긴 앨범을 발표하고 나서
13:441년 동안은 하루에 평균 한 장도 팔리지 않는 그런 앨범의 그런 노래였다는 거예요.
13:50그런데 이런 최규쿠 씨에게 당시 은인이 탁 하고 나타나게 됩니다.
13:54바로 드라마 대작가로 불리고 있는 김수연 작가인데요.
13:59당시 이 앨범이 나오고 1년 뒤에 목욕탕집 남자들 이 드라마 아시죠?
14:04이 화제작에서 장용 씨가 낭만에 대하여 이렇게 딱 노래를 부르는데
14:09이게 대박이 난 겁니다.
14:10알고 보니까 김수연 씨가 택시를 타고 가다가
14:13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낭만의 대하여를 듣고
14:16어? 이거 대본에 장용이 불렀으면 좋겠는데?
14:19라고 해서 그 장면이 탄생했다고 하거든요.
14:22이 노래를 결국 이 연말에만
14:25낭만에 대하여가 이 실릿 앨범이
14:28연말에만 30만 장이 팔리게 됩니다.
14:31최백구 씨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는데요.
14:34그래서 최백구 씨는 이 노래에 대해서
14:36하늘이 준 노래다 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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