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어떠세요 그 마음이 저는 아버지 유해를 모셔왔지만은 북한에서 아버지 유고를 멸업한 형제들하고 또 막바꾸게 됐습니다.
00:12맞바꾸는 연락이 안되나.
00:14저는 아버지 유해를 모셔왔지만은 북한에서 아버지 유고를 멸업한 형제들하고 또 막바꾸게 됐습니다.
00:24맞바꾸는 연락이 안되나.
00:26아니요. 형제들은 뉴스 나오고 하면서 북한에 있는 오빠, 막내 동생, 조카 세 분이 정치범을 갔습니다.
00:41그래서 뉴스 나갔으니까 형제들은 다 정치범을 갔습니다.
00:47아 이거 뉴스 진짜 하지.
00:49아니 진짜 그때 좀 같이 오실걸.
00:54그러니까요.
00:55근데 북한은 53년 7월 27일 정지원 협정 이후부터는 국군포로는 북한에 없다가 공식 입장이었어요.
01:06쭉쭉.
01:07그렇죠.
01:07근데 지금 아버님의 유해가 돌아오신 게 어떤 의미냐면은 북한이 지금 수십 년 동안 거짓말했다는 게 지금 폭로가 된 거잖아요.
01:16그러네요.
01:17그러니까 북한 당국 입장에서 봤을 때는 아 지금 이게 단지 파멸한 그 정도가 아니라 정치범이에요.
01:23그러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숨기고 숨기고 숨겼던 그 비밀을 폭로를 하신 거고 또 더 큰 건 뭐냐면 뭐 지금이야 뭐 여러
01:30가지 방법이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 대한민국 당에서 북한에 있는 친지와 연락을 해가지고 여기서 컨트롤을 할 수가 있다.
01:37돈도 보내고 막 이게 연락도 가능하다.
01:40이 두 가지를 봤을 때 단순한 파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정치범이었다는 게 북한 측의 판단인데 이거는 제네마 협의가 아니라 국제사법재판소에
01:49회부되어야 될 문제입니다.
01:51국가가 해야 될 일을 개인이 해냈습니다.
01:54이 손명아 씨는요 이외에도 국군포로 문제를 알리기 위해서 유엔총회나 제네마 국제회의 같은 굵직굵직한 장소에서 본인의 목소리를 내고 계십니다.
02:04최근에는 실제로 이 국군포로 2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43호의 운명에도 참여하셨다고 합니다.
02:12아마도 이만갑 지금까지 보신 분들은 이 43호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계실 것 같아요.
02:16손명아 씨처럼 아버지를 고향에 모시고 오고 싶었던 유족들이 정말 많았을 것 같은데
02:22한 번 더 가장 가까이에서 그분들의 사연을 만나보셨을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02:27제가 이 활동을 오전 10년 넘게 아버지 유해를 모셔오면서 지금까지 이 활동을 하면서
02:33살아온 국군포로가 80분 중에서 이제는 다 돌아가고 다섯 명이 살아있고 유해가 일구고 왔습니다.
02:41유해가 일구고 왔는데 유해는 2004년도에 본인들이 배낭에 다치고 아버지를 모시고 왔고 부인이 남편을 유해를 모시고 왔습니다.
02:51그렇게 되지만 제가 제가 언론에 공개된 거는 제가 이렇게 용감하게 나서서 공개했지만 똑같은 비극들이 있습니다.
03:02유해 한 거는 오다가 두만강을 왔는데 딸이가 이자처럼 갔어요. 중국에.
03:08아버지 유해를 받으려고 갔는데 중국 공안이 북송돼서 거기에서 아버지 유고를 아버지는 돌아간 지 얼마 안 됐어요.
03:16그러니까 그 해골이 안 됐었어요. 그러니까 그 뼈를 나무 막대길로 그 아버지 살을 살 이렇게 굵고
03:24그 다음에는 공안에서 냄새 난다고 아버지 유고를 바깥에다가 던져라 하고 거기서 아버지 두 다리를 몸에다가 숨겼어요. 패딩 입었으니까.
03:36브로커들이 메고 온 아버지 상반신은 결과적으로 북송돼서 어디가 뿌려진지 모르고 아버지 두 다리만 와가지고 대전현충원에 안장되고 있어요.
03:47그런 사건이 한데 있고 그 다음에는 또 유해 한국가 중국 땅에 왔다가 4년 동안 남모를 밭에 중국에 와서 밭에다가 묻어놨다가
04:03이 여자가 북송돼서 세 번 북한으로 갔어요.
04:07그래서 갔다가 세 번의 북송에 아버지 유고를 모시고 한국에 왔습니다.
04:12그래. 유골이 오기는 산 사람이 오기보다 산 사람도 오다가 북송돼 가는데 유골도 오다가 이렇게 북송돼.
04:24사실 이제 손병하 선생님이 아버님을 모셔온 게 국군포로 문제의 끝이 아니라 사실 처음 이제 그 일에 첫 발을 띄워주신 거예요.
04:34그렇죠.
04:35지금도 사실 5만 명에 이르는 많은 국군포로 분들이 생애 마지막 순간에서 혹은 유해로 고향 땅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거든요.
04:46과거에 제가 미국의 전쟁포로 실종자들을 담당하는 DPAA라는 기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04:54그런데 1년에 무려 그 기관에서 1억 7천만 불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2,300억이나 되는 돈을 쓰고 많은 인원들을 동원해서 지금도
05:0440개국에서 유해를 발굴하고 있어요.
05:07그러더라고요.
05:072차 대전 때부터 해서 그 사람들의 모토가 그거예요.
05:11Until they are home.
05:13그들이 고향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이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05:17우리가 이걸 좀 우리 전문가 그룹도 그렇지만 또 국방 당국이나 또 이만갑에서도 이 문제를 앞으로 좀 지속적으로 좀 바라볼 필요가
05:26있겠다.
05:27사실 저는 안중근 의사가 생각났어요. 안중근 의사가 단순히 그냥 독립운동으로 어떤 의거를 했다 이런 차원이 아니라 안중근 의사가 체포되면서도 나는
05:39대한독립군 대한의군의 참모 중장이다.
05:42그러니까 나를 국군 포로로 대우래 달라고 그랬잖아요.
05:45포로로.
05:46군 포로로.
05:47사실 우리가 지금 어떻게 보면 5만 명의 안중근 의사.
05:52우리가 유해를 찾고 또 고국으로 모셔와야 되는 분들이 국력당에 여전히 계시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