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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 yıl önce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3.2.9.]
섹스 동맹 - 기지촌 정화운동
# 역사의 사생아, 기지촌 여성
이제는 익숙해진 미군범죄라는 용어, 그러나 사실 우리 사회에 미
군범죄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1992년 윤금이 살인 사
건 때부터였다. 기지촌 여성이었던 윤금이는 잘 알려진 대로 미군
에게 엽기적인 살인을 당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지만 사실 이 사건 전에
도 많은 기지촌 여인들이 윤금이 못지 않은 변태적인 방법으로 미
군에 의해 살인 당하고, 유린당해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기지촌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보호받아야 할 최소한의 권리마저 인정받
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기지촌 여성, 사실 그들은 불평등한 한
미관계에서 태어난 불행한 사생아들이다.
1945년 9월 8일, 2차 대전 전승국으로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
해 이 땅에 미군이 첫 발을 디딘 이후, 동두천, 의정부, 오산, 평
택, 부산 등 전국 18개 도시에 미군이 주둔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기지촌이 들어섰고, 6.25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30만이 넘는
여성들이 기지촌을 거쳐갔다.
미국 정부는 자국의 병사들에게 안전한 휴식과 섹스를 제공하길
원했고, 한국 정부는 주한 미군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달러와 안보
의 약속이 필요했다. 양국간의 이해에 따라 유지되어 온 기지촌의
거래는 50여년 가까이 이어져오고 있다 .
이 외에도
전두환 정권의 기지촌 정비 5개년 사업, 정부와 포주의 유착관계,
끊이지 않는 기지촌 여성 대상 범죄, 소외당한 기지촌 여성들의
삶 등도 다루어진다. 주한 미군 주둔을 위한 제물이었던 기지촌 여
성들, 절대 빈곤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기지촌으로 흘러 들어갔
던 그들에게 남은 건 여전한 가난과, 변태적인 미군 범죄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사회의 천시와 냉대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녀들
의 자리를 필리핀과 러시아의 가난한 여성들이 들어와 똑같은 방
식으로 메우고 있다.
기지촌은 모든 사람에게 우리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공간이었
다. 그래서 기지촌을 말할 때 미군이 좋아 몸 팔러 들어간 부도덕
한 여인들의 개인적인 돈벌이 매춘공간으로 애써 폄하하려 해왔
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서는 기지촌은 타락한 몇몇 여성과 업주들
에 의해 이루어진 사적인 거래가 아니라 미국과 한국, 두 국가가
정책적으로 조장하고 후원한 국가적인 산업이었음을 1971년 박정희 대통령 당시 벌어진 기지촌 정화운동을 중심으로 기지촌 여성들 및 미군 관계자, 정부관계자들의 생생한 육성 증언을 통해 밝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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