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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은 처음부터 영화감독의 길을 걸었던 인물은 아닙니다.

마흔을 넘어 메가폰을 잡았고 장관직이라는 이색 경력도 거쳤습니다.

돌고 돌아 영화에 닿은 뒤, 자신만의 속도로 거장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이창동 감독의 남다른 30년을 김승환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기자]
고등학교 교사에서 소설가로, 문학의 길을 걷던 이창동은 마흔을 넘겨 낯선 세계로 발을 옮겼습니다.

문학의 한계를 느끼던 때, 인생을 새로 배우는 마음으로 영화판에 뛰어든 겁니다.

[이창동 / 영화감독 (1997년 YTN 출연) : 나이 사십 보통 불혹이라고 그러잖아요. 흔들리지 않는 시기라고 그랬는데 저는 굉장히 흔들렸어요. 그 다른 길을 걷고 싶은 욕구가 있었고 다른 공기를 호흡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영화 '초록물고기' 중 대사 : 내가 저 언젠가 초록색 나는 물고기 잡는다고 그러다가 쓰레빠 잃어버려 가지구…]

그렇게 마흔셋에 내놓은 첫 연출작 '초록물고기'.

그 유명한 한석규의 공중전화 신을 비롯해 첫 작품부터 충무로에 이창동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습니다.

5년 뒤 '오아시스'는 이창동을 더 넓은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전과자와 뇌성마비 장애인의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으며 거장의 반열에 한발 다가섰습니다.

[이창동 / 영화감독 (2002년 수상 직후 기자회견) : (베니스 영화제) 현지에서 반응이 괜찮았어요. 썩 보기가 편한 영화는 아니잖아요. 내용도 불편한 내용이고…]

하지만 이듬해 향한 곳은 촬영장이 아닌 정부청사였습니다.

세계의 인정을 받기 시작한 현역 감독이 문화정책 수장이 된 이례적인 선택이었습니다.

[2003년 2월 YTN 보도 : 이 장관은 자신의 싼타페 승용차를 손수 운전하며 문화관광부에 입성했습니다.]

[이창동 /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 (2003년) : 이 중책이 주는 무게를, 이 하중을 제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걸 고민을 하다가… 할 수밖에 없다면 해야 하는 것도 제 운명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장관직을 내려놓은 뒤에는 다시 카메라 뒤에 섰습니다.

복귀작 '밀양'에서 전도연에게서 새로운 얼굴을 끌어냈고, 한국 배우 최초의 칸 여우주연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전도연 / 영화배우 (2007년 칸 수상 직후 기자회견) : 세계적으로 큰, 칸 영화제에서 처음 경험을 하게 돼서 굉장히 영광...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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