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시간 전
2026.03.01
카테고리
📺
TV트랜스크립트
00:133월의 첫날
00:143월의 첫날입니다.
00:16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때죠.
00:231919년 오늘 이곳 탑골공원에 모인 사람들도
00:27그 어느 때보다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00:31그리고 독립을 바라던 열망은
00:34그날 이후 온 민족의 3.1운동으로 이어졌죠.
00:52그런데 새삼 놀랍습니다.
00:55어떻게 한날 한시에 전국에서 만세 시위가 벌어졌을까요?
01:01어째서 1919년 3월이었을까요?
01:05대체 조선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01:26함령
01:30모두가 평안하다라는 뜻을 지닌 고종의 침전
01:37예상치 못한 병고가 생긴 모양입니다.
01:44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 고종이 서거했다.
01:58그런데
02:03왕의 죽음을 두고 세간의 의욕이 제기됐다.
02:13암살을 당하신 것이다.
02:18파리 강화회가 열리고 3일 뒤인 1월 21일 날 고종이 죽었어요.
02:22당시에는 침파가 죽였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02:26고종을 보위하고 있었던 민씨 척족들이
02:28파리 강화회에 한국인들의 독립의지가 없다는 그런 내용의 글을 써서
02:32거기에 고종한테 서명하게 했더니 고종이 거절해서 죽였다.
02:37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02:44이처럼 고종은 독살된 걸 봐.
02:50먹은 음식과는 무관한 증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02:54지금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중독사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고요.
03:00독살의 증거는 별로 없습니다. 사실은.
03:02다만 심정적으로 망국의 군주가 극적으로 돌아가시기를 원하는 심성들이 있었던 것 같고
03:13사실이 아닐지라도 고종의 독살설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들을 많이 자극했던 건 사실입니다.
03:2410년 전 나라를 빼앗긴 백성들은 임금마저 세상을 떠나자 망국의 현실을 절감했다.
03:37식민지 조선은 일제의 폭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03:54총독부는 막강한 권할을 내세워 조선인들을 무력으로 동치했다.
04:22공개된 장소에서 처해진 이 가학적인 형벌은 주로 경범죄에 집행됐다.
04:32조선 태형령은 조선인한테만 적용이 됩니다.
04:37일본인한테 적용하지 않는 법률인 거죠.
04:39조선인이 문명적 통치와 문명적인 규제, 강제, 형사법적 체제에 적합하지 않은 야만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거죠.
04:53군 소속의 헌병이 경찰과 치안을 도맡았고 일반 관리는 물론 교사마저 제복 차림에 대검을 찬 채 일제의 복종을 강요했다.
05:25일제의 무단통치와 억압으로 조선인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고 서서히 임계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05:42무언가 험한 기운이 조선 땅에 감돌고 있습니다.
05:59정신차려!
06:00정신차려!
06:02어머!
06:03정신차려!
06:12이게 더 무슨 일입니까?
06:14아휴, 말도 마시오.
06:16역병이 돌고 있잖소.
06:20이 지독한 무 5년 독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06:261918년에 스페인 독감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했거든요.
06:30그 유행으로 동아시아에서 우리나라 피해가 가장 컸어요.
06:33750만 명이 감염이 돼서 14만 명이 죽게 됐는데.
06:38일단 사망자 수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06:41많게 보는 사람은 1억 명 정도.
06:44감염자도 보통 5억 명 정도.
06:47그 당시 1차 세계대전이기 때문에 한 공간에 많은 사람이 밀집해 있고.
06:53그 인원들이 통째로 또 외국으로 실려 나가고.
06:58그 전염이 잘 되는 조건이 완전히 갖춰졌습니다.
07:01조선도 피해갈 순 없었다.
07:05위생과 방역을 강조했던 조선총독부는 정작 속수무책이었다.
07:14관공서와 학교는 폐쇄됐다.
07:17일반적인 독감과 달리 특히 20대, 30대에게 치명적인 병이었다.
07:25곳곳에서 아주 빨리 젊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때문에
07:29아마 굉장히 정신적인 공황 상태가 됐을 겁니다.
07:34상신의 슬픔은 뜻밖의 오래가지 않았다.
07:391918년 이제 가을부터 대유행을 시작했다가
07:421, 2월, 1, 2월에게 잦아들었어요.
07:46형제 자매를 잊고 가족과 친구들을 잃은 사람들이
07:50사실 거리에 나와서 만세 시위를 한 거거든요.
07:54전염병과 함께 확산된 불안과 불안정성이
07:57뜻밖의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행동하게 하고 있었다.
08:02세상 밖에서 불어온 바람이 죽음의 역병만 가져다 준 건 아니었습니다.
08:111910년대 세계는 요동치고 있었다.
08:14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저 멀리 프랑스에서 희망이 들려왔다.
08:22제국주의가 지금까지 이야기해오던 세계지배의 논리가 붕괴됐다.
08:28그 문명이 갖고 온 결과가 뭐냐?
08:30치명적인 전쟁이었고
08:321차 세계대전 끝날 즈음에서 독일 제국이 무너졌습니다.
08:37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서 제국이 무너졌고
08:40이런 전제주의 군주 국가는 사실상 시대의 착오적인 것이 돼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08:47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군주들은 하나둘 왕좌에서 물러났고
08:51거스를 수 없는 변혁의 물결은 주선에도 도달했다.
08:56전제 군주제 국가라는 것은 주권이 왕 혼자한테 있었기 때문에
09:00한일병합조역에서 도장을 찍고 나라가 망한 거예요.
09:03황제의 도장을 찍고 정말 수천만의 백성들이 식민지민이 된 거잖아요.
09:08보종의 죽음은 뜻밖의 변곡점이 됐다.
09:121919년 1월 파리에선 1차 대전의 승전국들이 모여 식민지 문제 등을 논의했다.
09:19의장을 맡은 이는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한 미국의 윌슨 대통령.
09:24식민지 조선이 일제로부터 독립할 희망이 보였다.
09:31사람들은 세계 정세의 뒤바뀌 속에서 한국도 한 시대가 저물고 있구나.
09:37새로운 시대의 전환의 어떤 신호탄?
09:40독립되면 누가 다스려야 되라는 질문을 하면 되는 거죠.
09:46왜 군주가 돌아와야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09:48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등장을 하는 겁니다.
09:51이 변화된 세계 속에서는 새로운 국가가 만들어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09:56군주가 아니고 대표가 국가를 만든다 라고 생각하는 거죠.
10:00그 공화정의 이념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겁니다.
10:03어떤 면에서 보면 이 무렵의 세계가 초에 있던 운명이고 상황이었던 것이죠.
10:11파리 강화 회의가 열리고 있던 그 무렵.
10:15경성에는 조선의 운명을 짊어진 한 일본 유학생이 막 도착했습니다.
10:27평소 믿고 따르던 스승과 선배에게 김이 전할 것이 있어서입니다.
10:38일본의 감시를 피해 모자 안감에 꼭꼭 숨겨온 것은
10:44다름 아닌 독립선언서 초안
10:57천도교는 12월경부터 당시 파리 강화 회의 이런 걸 염두에 두고 논의를 시작했는데
11:03대체적인 여론은 일본에 자치 청원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11:07독립은 꿈도 사실 못 꾸고 있었죠.
11:10그러다가 이제 송계백이 와서 유학생들이 독립선언을 한다라고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11:18학생들이 한다는데 우리가 어떻게 자치를 청원할 수 있냐.
11:22우리도 같은 수준의 독립선언을 해야 되겠다.
11:262월 8일 도쿄 독립선언식을 위해 작성된 이 결의문은
11:31일제 식민지배의 폭압을 고발하고
11:34조선독립의 당위성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고자 했다.
11:40고초를 겪을 것이 분명했지만 청년들은 주저함이 없었고
11:46이들의 용기는 독립운동의 불씨를 당겼다.
11:51제국의 심장부에서 독립을 외친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11:58반갑게도 최근 2.8 독립선언을 주도했던 이들의 증언이 백여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12:07송계백의 모교.
12:08와세다 대학교에 있는 그 소중한 기록을 직접 확인하러
12:12국내 언론사 최초로 취재에 나섰다.
12:18도쿄 변호사협회가 관리 중인 1900년대 전반기의 형사재판 기록.
12:24그 가운데 우리가 찾는 조선청년독립단의 흔적이 있다.
12:30기록의 열람은 허가됐지만 방송공개는 허용되지 않았다.
12:38독립선언서에 이름을 남겨 출판법 위반형위로 복역한 이들의 진술서다.
13:02선언 당시 학생들의 심정을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다.
13:26진술서 분석 결과 학생 전원은 경찰 추궁에도 독립을 희망한다고 답했다.
13:32이루어질 것이라.
13:36그리고 그들의 바람대로 송계백을 통해 전달된 28독립선언서는
13:42다가오는 3월의 조선을 거대한 함성으로 뒤덮게 했다.
13:51이 청취서를 보면 송계백이 서울에 온 것은 1월 25일경으로 추정이 됩니다.
13:58그 불과 4월 뒤에 선병이가 결단을 내는 것이고
14:01따라서 송계백이 국내에 들어와서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했던 것이
14:10천도교가 독립운동을 시작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4:17제1유학생들을 비롯해 해외의 독립운동가들이 분주히 움직이자 국내 지도자들도 고삐를 당겼다.
14:29백만신도를 보유한 천도교의 교주 손병이를 중심으로 기독교와 불교계 인사들도 속속 합류하며 민족대표를 구성했다.
14:39합류운동을 가능케 한 성사시킨 결정적인 순간은 2월 24일 천도교와 기독교가 합작을 하기로 합의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14:5424일부터 28일까지는 그야말로 숨막히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준비가 이루어졌고
15:01학생단 합류까지 결정되며 거사일과 장소가 빠르게 정해졌다.
15:18고종국장이 3월 3일이잖아요. 3월 1일이 토요일이었거든요.
15:23그런데 3월 2일은 일요일이잖아요. 일요일은 종교적인 이유가 있으니까 3월 1일 토요일을 한 거죠.
15:28그 사이 선언서도 완성됐습니다.
15:32최남선이 작성한 3일 독립선언서는 정의와 인도에 기초한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조선이 독립해야 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15:43나아가 그것이 인류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 주장합니다.
15:49조선인이 잔주민임을 선언하노라.
15:52천문단 부분에서의 선언하는 언어들이 상당히 중요하고 가장 질서를 존중하고라는 표현이 있는데
16:00난폭한 행동을 하지 말라라는 게 그런 표현의 핵심적인 내용이었다.
16:06독립선언서에 보면 평화 단어가 많이 있습니다.
16:08그러니까 조선의 독립은 세계 평화의 출발점이다.
16:11조선인은 문화적인 그런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조선이 독립하게 되면 우리는 세계 문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16:20한국인들의 어떤 문화에 대한 그런 자존감 이런 것은 그 당시에도 대단히 높았다고 보여집니다.
16:26이제 거서를 위한 마지막 단계만 남았습니다.
16:30이 선언문과 함께 선언식 소식을 조선 땅 곳곳에 널리 알려야 합니다.
16:38이곳은 보성사입니다.
16:41천도계에서 운영하는 조선 최대 규모의 인쇄소인데요.
16:46여기 보이는 이 활판 인쇄기로 선언서를 찍어낼 예정입니다.
16:50물론 극비리에 진행돼야 하고요.
16:53지금이 2월 27일 저녁 6시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17:00날이 밝으면 선언서를 배포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17:04과연 하룻밤 사이에 충분한 양의 선언서를 무사히 인쇄할 수 있을까요?
17:151919년 무렵 대량 인쇄는 어떻게 이뤄졌을까?
17:21이곳은 현재 운영되고 있는 전국에 몇 남지 않은 활판 인쇄소 중 한 곳이다.
17:32활판 인쇄를 하려면 우선 원고에 적힌 글에 맞게 작은 금속 활자를 일일이 골라내.
17:41틀에 반듯하게 배치해가며 단어와 문장을 완성해야 한다.
18:04영안 사전 한 권을 만드는데 7년이 걸렸을 정도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작업이다.
18:1316살부터 활자를 만져온 노련한 식자궁이지만
18:17활판 앞에서는 지금도 한결같이 지극하다.
18:37활판을 다 만들면 시범으로 한 불을 찍어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는 단계를 거친다.
19:00그렇다면 1919년 당시 3.1 독립선언서의 인쇄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19:09공방에는 일제강점기 때 사용했던 탈면 활판 인쇄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19:25소음과 진동이 엄청 컸어요.
19:29데시빌로 따질 수도 없지만 동네가 시끄럽죠.
19:33동네가.
19:33대화가 잘 안 돼.
19:35내 목소리가 좀 큰 편이죠.
19:37기계 옆에서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커졌어요.
19:44손수 종이를 올려야 하는 이 방식은 1초에 한 장씩.
19:491분이면 60장이 찍혀 나온다.
19:56시작부터 끝까지가 집중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인쇄거든요.
20:00이게 지금처럼 전율 전력으로 돌아가면서 순식간에도 뭐 하루에만 다 하겠지만은 가능은 하지만은 그렇게 쉽지는 않았을 거로 삼천 매라는 거는 속도가
20:12엄청난 속도인데.
20:14이월 이십 칠일
20:287시부터 작업을 시작했는데 7시쯤에 민족대표 명단이 확정이 됐어요.
20:34계속 전화가 오는 거예요.
20:36바꿔달라, 바꿔달라.
20:37그래서 다시 이름을 고치고 돌린 거죠.
20:41인쇄기를 돌린 거죠.
20:42그래서 그게 돌리기 시작한 게 9시경이었던 것 같아요.
20:46게다가 대한제국 시절 신문사를 운영한 이종일 사장은 일본 경찰의 요시찰 대상이었던 터라.
20:55늦은 밤 쉴 새 없이 인쇄기 3대를 돌리는 건 위험천만한 일.
21:042시간 남짓 작업은 계속됐고 다행히 모두 2만 천여 장의 독립선언서가 인쇄됐다.
21:11그 당시에는 상상도 못한 일들을 하신 거예요, 선배님들이.
21:17얼마나 가슴이 쪼렵겠습니까.
21:20기술도 어렵겠지만도 숨어서 한다는 건 더 어려워.
21:24목숨을 걸고 하는 일들이라 굉장히 선배님들이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 하셨다고 생각이 됩니다.
21:30존경스럽고.
21:32발각된다면 분명 고난이 따를 일.
21:36인쇄소 직원들이 험난한 거사에 동참한 이유는 뭘까.
21:49보성사 직원이었던 인종익이라고 하는 사람이 체포되어서 경찰 쪽에서 왜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했냐 이렇게 물어보니까
22:00어리석은 짓이 아니다.
22:02우리는 이번에 이 운동이 꼭 독립을 얻을 수 있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2:07그러나 훗날 뒷사람들이 반드시 그 독립을 이뤄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22:14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역사를 믿었던 것입니다.
22:18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자기의 역할을 이 시점에서 내가 해야 된다.
22:24천도교 본부까지 무사히 옮겨진 독립선언서는 날이 밝자마자 배포가 시작된다.
22:32종교계와 학생대표들이 선언서 묶음을 비닐리에 넘겨받아 전국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22:40이튿날까지 전국에 선언서를 전하는 것이 목표.
22:44다소 무모해 보이는 이 계획엔 뜻밖에도 일제가 건설한 철도가 유용하게 쓰였다.
22:52철도의 역할이 컸죠.
22:54세상에서 자기 의도와 결과가 다른 경우가 있는데
22:59의도는 식민지 수탈을 위해서 철도를 건설했는데
23:03그게 또 독립운동의 확산에 만세시 확산의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 거죠.
23:09일제의 건물을 피하기 위해 위장과 은폐는 필수였다.
23:15철도교인 이경섭이 황해도에 배포하라는 임무를 맡으니까
23:20처음 만난 사람한테 일부를 주고
23:2550km를 10시간 동안 걸어가서 주고
23:28이런 식으로 분산해서
23:29기차를 탈 때도 쭉 한 번에 타고 갈 수 있는데
23:32중간에 내렸다가 다시 갈아타고
23:34이런 방식으로
23:35되도록이면 경찬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23:37굉장한 노력들을 했죠.
23:393.1운동은 준비 과정이 전혀 발각이 안 됐어요.
23:44그 이유는 무엇이냐.
23:453.1운동은 준비 기간이 짧았다는 것입니다.
23:482월 27일에 찍어서 28일에 배포를 해버렸기 때문에
23:51발각되고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죠.
23:55그야말로 정광석화같이.
23:57조선총도부가 한국인들한테 언론의 자유를 주지 않았어요.
24:02전혀 언론을 차단하면서
24:03한국인들의 생각을 알지 못했던 거고요.
24:063월 1일 날 매일씩 찾아봤어요.
24:08그랬더니 뭐라고 나오니
24:09약간 요상한 기운, 요운
24:13약간 요상한 구름과 같은
24:15뭔가 분위기가 느껴지긴 한다
24:17까지만 알고
24:19파악을 못한 거 구체적으로
24:22운명의 날이 밝았다.
24:26이틀 후 열릴 고종의 국장에 맞춰
24:28경성엔 아침부터 인파가 몰렸고
24:31기미를 접한 이들은
24:34하나둘 약속 장소에 모여들었다.
24:41그런데
24:42선원식이 열릴 탑골공원입니다.
24:47오후 2시가 가까워오는데요.
24:51민족대표들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24:55그 시각 민족대표들은 태화관에 집결해 있었다.
24:59전날 밤 급히 장소를 바꾼 것이다.
25:03학생들이 좀 다치지 않겠나
25:05결국 체포되어 갈 수밖에 없는데
25:07말리기 위해서 경찰하고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25:10그러니까 그럼 어디 모일까
25:12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뭘 할 수 있는 데가
25:15큰 식당 말고 별로 없기도 했고요.
25:16그리고 또 하나
25:18그 식당에 전화가 있습니다.
25:21민족대표들은 각자 조용히 선원서를 묵독하고
25:25짧은 연설로 길고 고된 독립운동의 포물을 열었다.
25:30선원서에 이름을 올린 순간
25:32체포는 각오한 터였다.
25:35최진선생이 선원서를 종농경찰서에 갖다 줘라라고
25:39시켜서 인력과 군역을 가지고 가서
25:42그래서 그 경찰서에서 먼저 태화관에 전화를 해서
25:45거기에 그 사람들이 있느냐라고 확인을 했습니다.
25:49민족대표들을 체포하기 위해
25:51경찰의 눈이 태화관을 향해 있던 그때.
25:57탑골공원에 모인 사람들은
25:59당혹스럽고 초조해졌다.
26:02다들 태화관에서의 일은 알 리가 없고
26:05독립선언식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는데요.
26:16그때 누군가 팔각정에 올라섭니다.
26:21예정이 없던 뜻밖의 인물입니다.
26:29정재웅에게도 계획이 없던 일이었다.
26:32다만 그 순간 누구라도 나서야 했다.
26:39선원서.
26:43우리는 오늘
26:45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26:48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26:51선언한다.
26:57우리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27:00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27:04우리 후손이
27:06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27:10영원히 누리게 할 것이다.
27:12정립된 민족의 약심과
27:15사라진 국가 정의를 다시 일으키도록
27:18그 사람들이 저마다 입력을 발달시키고
27:21우리 가해손 자녀에게
27:23완전한 행복을 주여야 한다.
27:27시작이
27:27곧 성공이다.
27:31다만
27:32저 앞에 밝은 빛을 향하여
27:35힘차게 나아갈 뿐이다.
27:40조선 독립 만세!
27:47조선 독립 만세!
27:51조선 독립 만세!
27:54조선국님 만세!
28:02조선국님 만세!
28:05조선국님 만세!
28:11조선국님 만세!
28:14조선국님 만세!
28:16조선국님 만세!
28:18조선국님 만세!
28:20조선국님 만세!
28:20조선국님 만세!
28:21조선국님 만세!
28:22조선국님 만세!
28:23조선국님 만세!
28:39선언서를 낭독하고 내가 듣때는 조선독립 만세
28:46그러니까 학생들이 화창해서 만세, 만세, 모자가 공중으로 날아가고 학생이 발은 땅을 굴고
28:59만세, 만세, 오늘 만세
29:05뜨거운 운리는 점점 커져갔다
29:12만세라고 하는 것은 대한제국 시기에 황제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그런 의미로
29:20조선독립 만세라고 하는 것은 조선독립이여 영원하라
29:24왕의 국장인데 보수적인 유생들은 이 상황 자체를 못 받아들여요
29:30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경우, 이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잖아요
29:34이게 뭐냐면 고종의 죽음에 동정을 표하거나 애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라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29:42만세는 사실 축하의 의미입니다
29:44만세는 그 자체로 조선독립이 이미 완성됐다라고 하는 축하의 의미도 갖고 있는 겁니다
29:53탑골공원을 빠져나온 시위대는 종로 일대로 뻗어나갔고
29:58흩어지고 다시 모이며 인파는 수천이 됐다
30:03사람들은 갑자기 그걸 보고 깜짝 놀랐죠
30:07뭘 하는 건가, 어리둥절했는데 학생들이 나오면서 만세를 부르세요라고 얘기한 거죠
30:12조선독립신문이라고 하는 것을 수천 장을 쌓아놨습니다
30:16그래서 그걸 학생들에게 많이 나눠줬어요
30:18사람들이 그걸 보고 아, 이게 독립선언 시기였구나
30:251919년 3월 1일
30:27경성뿐 아니라 북부 6개 도시에서도 만세 시위가 있었다
30:31철도역이 있어 선언서가 일찍 도착한 덕분이었다
30:38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르는 시가 행진을 하는 방식
30:43모두 동일했다
30:45어떻게 가능했을까?
30:47선언문을 가지고 각 지방에 가서 배포를 했던 분들이 그런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30:56독립선언서라는 것을 배포하는 게 이것을 전국화시키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할 거라는 걸 이미 민족대표들이 알고 있었던 거죠
31:05민족대표가 단순하게 그냥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쓴 민족대표들이 아니라 초기 시위를 조직한 걸로 봐야 합니다
31:16조선민 중에 폭발적인 만세 시위에 일자는 당황했다
31:22선언식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총독부는 상황 파악에 나섰다
31:27완전히 예측을 못했었어요
31:29덕분의 공원에서 모여서 시위대에 나가는데
31:32당연히 목격자들의 증가에 따르면 순사들이 다 하고 나가니까 그제 다 허겁지겁 가서 보고하고 있더라
31:48일제의 대응은 과격했다
31:53다급함의 방증이었지만 기록은 사뭇 달랐다
32:05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32:07그런데 그것도 다른 지역은 안 하고 경성에서만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32:13그거는 말하자면 정신 승리죠
32:16그러니까 이거는 크게 일어날 리가 없어
32:19목표를 갖춘 집단 행동으로 보지 않겠다라는 겁니다
32:21그냥 쌀폭동 같은 단순한 행동들이다
32:27정치적 목표나 지향이 없다라는 방식으로 그 의미를 축소하는 거예요
32:333월 3일 고종의 장례식이 치러진 후 시위는 잠시 사그러진 듯 보였다
32:41그러나 다음 날부터 종로 일대 하숙집 주변은 수상한 쪽지 한 장이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32:535일 상호 8시 30분 남대원 역전에 집합
32:57학생들은 이미 2월 중순경에 독자적으로 자기들은 독립운동을 한다
33:06시위를 한다라는 방침에 결정을 했습니다
33:09친밀한 네트워크를 통해서 거의 모든 학생들이 참여하는 시위 준비를 진행했던 것 같고
33:163월 5일 남대문역 주변은 고종 국장에 참여한 뒤 귀향길에 오르는 이들로 아침부터 발디딜 틈이 없었다
33:27쪽지에 적힌 시간에 대자 사방에서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33:36바로 그때
33:375천명의 학생들 사이에서 인력거를 탄
33:43강기덕 김원벽이 다 보성전문 연희전문의 학생들이고
33:48거의 리더들인데
33:50인력거에서 조선 독립이라는 곳은 깃발을 휘둘렀댑니다
33:55그러면서 조선 독립 만세라고 하는 구호를 외쳤죠
34:00요즘으로 따지면 차 위에서 시위를 이끈 거죠
34:07인력거에 탄 지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34:10그 주변에 있는 학생들이 전부 붉은색 띠를 팔에다 두르고
34:15특히 여학생들이 많이 눈에 띈다고
34:17그야말로 정말 영화와 같은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4:20조선 독립 만세!
34:22비 흘릴 각오로 거리에 나선 학생들은
34:25또다시 목 놓아 독립을 풀어지졌고
34:28고향으로 향하던 이들이 발길을 돌리며
34:31순식간에 시위대는 만명으로 불어났다
34:35박수! 박수!
34:4087년 6월 안전이나 아니면 촛불 시위에서
34:44참여하신 분들이나 지켜보신 분들이 보면
34:48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내리에 찍히지 않습니까
34:52그런 장면이 아마
34:531919년 3월 5일에 남대문
34:57서울역 시위가 아니었을까
34:59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35:03굿장 경찰들이 몰려왔고
35:06학생들을 향해 칼을 겨누었다
35:12그날 이후 일제의 진압은 더욱 무자비해졌고
35:16사상자도 늘어갔다
35:23그러나 조선민중의 마음은 꺾이지 않았다
35:26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만세운동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35:33SNS도 없고 전화도 거의 없던 시절이었는데
35:37지금으로 치면 인공위송을 가지고 위에서 이렇게 내려다보면
35:40전국 곳곳에서 서로 연락을 어떻게 해서 이렇게 수십 명 또는 수만 명이 모여서 함께 시위를 하지?
35:49남대문 시위 직후 일제는 휴교령을 내렸고
35:53이는 또 다른 패착이 됐다
35:55많은 학생들이 고향으로 일단 내려가게 되죠
36:00선원분들을 고향의 선후배들에게 보여주고
36:04또 어른들한테 보여주고
36:06우리 고향에서도 만세시위를 하십시다 이렇게 설득을 해서
36:11그래서 각 지방에서도 만세시위가 연쇄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거죠
36:19그 해 봄
36:21뜨거운 청춘들은 조국의 독립을 이끄는 전령이 됐다
36:31지금도 전국 곳곳엔 100년 전 평범한 10대들의 결기가 담긴 그 소중한 흔적이 남겨져 있다
36:42전남남도 목포정명여자중학교에서 3.1운동 당시 미국인 선교사 김다니엘 목사에게 보내줬던 자료들이 발견됐는데
36:51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독립선언서 사본 한 통과 모두 다섯 가지의 귀중한 자료들입니다
37:08선언서 외에도 경문과 지하신문이 발견됐다
37:14경문의 경우에는 언제 뭐 하니까 꼭 나와라
37:17지하신문은 이런 일이 있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
37:20아직도 항쟁이 진행 중이구나
37:22인지하게 되는 되게 중요한 매체가 되는 겁니다
37:26일제 경찰에서는 굉장히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37:29왜냐하면 시민들을 계속 자극하고
37:32또 운동을 이어가게 하는 그런 원동력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37:36경문이나 지하신문을 뿌린 학생이나 청년들에게 훨씬 더 무거운 형이 내려졌습니다
37:43이웃들 모두 함께할 수 있게 어려운 한문도 쉽게 이해되어야 했다
37:50학생이나 지식인들이 풀어줍니다
37:53진짜로 설명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37:54문맥률이 80% 넘는 사회에서는 당연히 이건 누군가가 말로 설명을 해줘야 됩니다
38:02글은 말이 됐고 다시 노래로 이어지며 시위의 기운을 북돋았다
38:09아마 지금 야구가라고 하는데 터졌거나 터졌거나 조선독립성 이렇게 불렀을 것이라고 저희가 불러서 추측을 하고요
38:19그래서 저희가 48만세운동 재연행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거든요
38:23그때마다 학생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입니다
38:25당시 목포의 만세 시위를 주도한 정명여학교 학생들의 용기와 신념을
38:32오늘까지도 후배들은 기리고 있다
38:36자료 자체가 지역에서 발견된 사례가 굉장히 드물고요
38:40목포 경우가 개항도시다 보니까 일제수탈의 천병 역할을 했던 항구도시라는 인식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38:50그런데 그런 자료가 등장함으로써 목포에서도 3.1 만세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라고 하는 것을 실증하는
38:57정명여학교에 있는 학생들이 지하실에 모여서 손수 태극기를 그리면서 우리가 나라를 다시 되찾아야겠다
39:08대열에서 가장 앞장서서 여학생들이 활동을 했다
39:13독특한 것은 그 다음 해인 1920년 10월에도 19년도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이제는 스스로 기획자가 돼서
39:201921년에도 3년 연속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다라고 하는 면에서
39:25종국적으로 매우 사례가 드문 의미 있는 그러한 독립만세운동이 되겠습니다
39:313.1 만세운동은 댕기머리 여학생들이 울타리밭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계기가 됐다
39:47그리고 그 모습은 강렬했다
39:53아사히 신문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편집장이 결국 뭔가 3.1년도를 보여주는 가장 특징적인 사건으로 그걸 픽한 거잖아요
40:01그만큼 여학생의 등장이 큰 어떤 많은 놀라움과 함께 충격을 준 거거든요
40:08세상이 달라졌다는 걸 보여준 거잖아요
40:12독립을 갈망하는 조선인들의 염원은 자취를 감췄던 태극기를 부활시켰다
40:20운동이 진행되면서 태극기 역할이 되게 중요해집니다
40:2310위 현장에서 굉장히 중요한 핵심적인 미디어 역할을 하고
40:26그 깃발을 드는 행동 자체만으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게 되는 거죠
40:34태극기는 어쨌든 대한제국의 상징이죠
40:37독립해야 되겠다고 하는 의지를 굉장히 강력하게 표시하는 것입니다
40:41일제 입장에서 본다면 반역이고 내란에 해당한다고 볼 수가 있어요
40:46그래서 그건 굉장히 용감한 그런 행동이었다
40:50총독부는 만세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하며 참여자들을 붙잡아들였다
40:56하지만 들끓는 민심은 잦아들지 않았다
41:06농민, 노동자, 상인, 유림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동참했고
41:12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한 전민족의 항쟁으로 거듭났다
41:22누구나 지도자였고 누구도 선봉에 나서길 피하지 않았다
41:32농민, 노동자, 상인, 유림들까지 다시 둘 다 вижу
41:33동농에 오려사라는 전민족이니든 세 스티린 방안이 나면
41:41드디어 공격으로 된 식사입니다
41:55운동시설은 unpleasant도 안 좋았습니다
41:55생성의 학교, 티셔스, Running, 긍은 지위고하며
41:55도움이 너무 강해� televisive
41:56정부와 와이스, 국가, 이곳에서 유림들까지 너나에 대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41:59일본 군경의 탄압은 갈수록 심해져 사망자가 속출했지만 저항의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졌다
42:06조선원병대 사령부 문건, 소료 발생 전에 있어서 민심의 상황
42:13독립을 바라는 마음은 다 한 가지 있고 의심할 바가 없다
42:16이게 다 사람들한테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누구를 잡아가야 될지 알 수가 없다
42:23역사학자도 되게 궁금합니다 이 열정이나 이 헌신성, 이 자발성을 어떻게 설명할 건가
42:42몇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서
42:47전민족적 제왕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거죠
42:51지역과 계층과 계급을 뛰어넘는 항쟁
42:563.1운동은 독립운동사에서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3:0020세기 전체 우리의 역사를 놓고 볼 때에도 어떤 사건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참여한 사건이 없습니다
43:09독립선언서에 당부한 공약대로 모두가 끝까지 일제에 맞섰다
43:17자신이 만세를 부르면 언젠간 반드시 독립이 될 거라는 희망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43:302천만 조선인의 간절한 외침은
43:33독립선언서와 함께 세계 각지의 독립운동가들에게도 가다왔다
43:44그해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헌장이 선포됐고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43:53새 나라의 이름은 대한민국
43:57빼앗긴 국호를 되찾는 동시에 나라의 주인이 왕이 아닌 국민이라는 의미였다
44:05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꿈꾸던 새 나라의 모습을 이 임시헌장에 담았습니다
44:17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
44:20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
44:22대한민국은 남녀, 귀천, 빈부를 따지지 않아 평등하며
44:27언제 어디서나 자유를 누려 인류의 문화와 평화에 이바지한다
44:40독립선언서에서 거듭 강조한 내용들입니다
44:47그리고 그 이후 수차례 개헌했지만
44:53대한민국은 국민의 나라라는
44:561919년 그날의 다짐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45:04당시에 민주공화국, 고민주공화제라고 하는
45:09그런 표현을 헌법하게 넣은 나라는 없었습니다
45:12나중에 그보다 좀 뒤에 체포가 그걸 넣었고
45:17그리고 20년대 중반에 와서 중국이 그런 표현을 넣었습니다
45:24세계사적으로 볼 때에도 민주공화제를 하겠다고 표현한
45:29그런 경우는 우리가 처음입니다
45:31굉장히 진보적인 그런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45:35현대사의 뿌리가 해방부터 보지만
45:38지금의 어떤 민주주의의 흐름에서 보면
45:403.1운동부터도 볼 수 있다
45:44마침내 해방을 맞이한 날
45:47국민들은 목청껏 만세를 부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45:55꿈에 그리던 독립을 잃은 뒤에도
45:58어렵게 되찾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46:01다시 빼앗길 위기에 놓인 적도 있었지만
46:03그때마다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46:07한 목소리로 불의에 맞섰다
46:121919년 봄날
46:16대한국민이 보여준 강인한 우리의 힘이
46:19모두의 기억 속에 새겨져 있어서다
46:263.1운동부터도 내려온 독립운동의 가치 중에
46:30가장 저는 높게 사는 게 연대의 가치거든요
46:32독지에 저항하면서 민주주의를 쟁채하는 방식이
46:35거리에 나와서 우리의 의사를 밝히는 방식이었잖아요
46:38이방이 계속되어 왔었잖아요
46:40그리고 이게 이제 2024년 5년까지 이어지게 되는
46:43한국의 민족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의
46:46뚜리에는 열곡 3.1운동에 있다라고 볼 수 있고
46:50우리는 모두 이제 어떻게 보면 3.1운동을 계승하고 있다
46:53역사는 그 자체로서 바로 직접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46:58우리의 인식 속에서 전환되는 거죠
47:02어떻게 3.1을 기억하느냐
47:06인식하느냐에 따라서 그 경험은 다르게 해석되고
47:09오늘날 우리에게 다른 의미가 되는 거죠
47:13희망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47:19자칫 종잇장에 머물렀을 이 독립선언서가
47:22평범한 이들의 용기와 믿음 덕분에
47:25조선의 운명을 바꾼 것처럼 말이죠
48:00성북! 성북!
48:03성북!
48:04성북!
48:06성북!
48:07성북!
48:10성북!
48:34성북!
48:36오케이 이쁘다
48:38빨리 와
48:38안녕
48:39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