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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한국 가수 최초 '카네기 홀 공연'
'돌아와요 부산항에', 일본서 신드롬급 인기
조용필, 日 열도 울린 '원조 한류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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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트랜스크립트
00:00다음 영상에서 만나요.
00:30K-POP이 드디어 이 기록을 썼습니다.
00:44무려 그래미상을 거머쥔 거예요, 미국에서.
00:48일단 영상부터 한번 볼까요?
01:00지금 이 기록을 못하는 거잖아요.
01:02지금 이 기록을 못하는 거잖아요.
01:04지금 이 기록을 못하는 거예요.
01:06한국인들에게 정말 기록을 못하는 거예요.
01:08홍 기자님, 일단 이게 어마어마한 거죠. 대단해요.
01:12어마어마한 거죠. 사실 비욘세도 4전 오기만에 지난해야 올해 앨범 받았고
01:17BTS는 21년, 22년, 23년 계속 3년 연속 후보만 올랐지 못 받았고
01:23그런데 지금 K-POP이 데몬 헌터스의 골든이라는 노래가 드디어 상을 받았고
01:30이걸 우리끼리만 호들갑 떠는 게 아니고요.
01:33미국 현지 언론이 뉴욕타임즈가 K-POP이 그동안 달성하지 못했던
01:39허물지 못했던 장벽을 허무는 순간이다. 이런 표현을 썼어요.
01:45그만큼 대단한 순간인데 그리고 아까 화면 보셨지만
01:49세상에 우리의 로제, 로제 아파트가 오프닝 무대예요.
01:54문을 열고 그리고 좀 있으니까 우리 또 K-POP 골든이 수상을 하는데
02:00여기 이게 지금 작곡가들이 작곡가들한테 주는 이 상이에요.
02:04이게 베스트 송 리틀 포 비주얼 미디어.
02:07여기 작곡가의 이재 씨도 들어가 있죠.
02:10회의 24 할 거 없이 다 한국인입니다.
02:13물론 이제 이재 씨 한국의 미국인이지만 그런 상황이고요.
02:18그러다 보니까 거기다가 또 본무대 우리의 걸그룹, 캐치아이가 또 난리 본무대 퍼포먼스도 했어요.
02:25그야말로 물론 여기에서 80개 넘는 상을 줍니다.
02:29그래미에서.
02:30그래도 올해는 적어도 K-POP이 정말 큰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02:36네. 이런 K-POP의 영광을 사실 하루아침에 찾아왔다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02:42왜냐하면 이게 과거부터요.
02:44조금조금조금씩 선배들이 계속해서 철옹선 같던 해외 그래미의 벽을 두드려왔고
02:51이게 마침내 무너진 거거든요.
02:53그럼 몰랐던 이야기의 데를 통해서요.
02:55오늘 한번 이 K-POP이 세계인의 마음을 흔드는 음악으로 자리 잡기까지
02:59우리 선배들이 어떤 노력을 해왔나 한번 짚어보려고 합니다.
03:03이름하여 저희가 준비해봤습니다.
03:04K-POP 지구 정복자들.
03:08첫 번째 누가 뜰까요?
03:09보면 미국 김시스터즈가 떴는데 일단 영상으로 한번 확인해 볼까요?
03:21비록 흑백 화면이지만 영상만 봐도 굉장히 끼가 다분하게 느껴져요.
03:36그런데 이분들 김시스터즈가 K-POP 원조 걸그룹이에요?
03:39현대적 의미의 한류, 최초의 한류를 미국에서 이끌어냈던 최초의 걸그룹이다.
03:46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데 1959년에 갔어요.
03:49미국에는 한국에서는 53년에 데뷔했지만
03:51우리나라 한국 음악사에서 최초의 걸그룹 그러면
03:551939년에 결성됐던 저고리 시스터즈가 있어요.
04:00그런데 거기에 바로 누가 있냐면
04:02저 이 멤버들을 키워낸
04:05또 이 가운데 분이 숙자 씨고 오른쪽 분이 애자 씨고요.
04:09왼쪽 분은 이난영 씨의 오빠, 이벙영 씨의 딸 이민자 씨인데
04:14김시스터즈가 되니까 김민기 씨로 김민자 씨로 개명을 했어요.
04:19이난영 씨의 그 목포의 눈물.
04:20그렇죠, 목포의 눈물.
04:21그분, 바로 저고리 시스터즈에 사실 그 이난영 씨가 있었어요.
04:25그래요.
04:26그런데 그분이 이제 이렇게 자신의 딸 두 명
04:30거기다가 오빠의 딸까지, 조카까지 해가지고
04:34이렇게 김시스터즈를 키웠는데
04:36본인도 이난영까지 있을 만큼 불세출의 가수지만
04:40지금 SM의 이수만, JYP의 박진영이
04:44아니, 그 전에 이난영이라는 엄청난 프로듀서가
04:49이렇게 한국에서 만들어서 미국에 가서
04:51실질적인 인기를 끄는 코리안 걸그룹을 만들었던 거예요.
04:56코리안 걸그룹입니다.
04:57그런데 이분들이 무대에 서게 된 이유가
05:00좀 굉장히 특별하다고 해요.
05:01전쟁과 얽혀 있다고요.
05:02한국전쟁 6.25 때 김시스터즈
05:08집안은 아주 엄청난 타격을 입었습니다.
05:10아, 당시에?
05:12아버지이며 과장이신 김혜송 씨가 납북이 됐고요.
05:17납북돼서 실종이 됐습니다.
05:19지금까지도 연락이 끊긴 상태이고요.
05:22그리고 이제 집안이 다 타가지고
05:24폐허 위에 집들이 있어서 집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05:28재산도 다 뺏기고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막막했는데
05:31그 유일한 방법은 노래밖에 없었습니다.
05:36그래서 딸들을
05:38생계를 위해서
05:40어린 딸들을 이렇게 동원할 수밖에 없었고
05:43그때 숙자 씨가
05:45제 맏언니인 숙자 씨가 13살였습니다.
05:50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05:51어머니인 이난영 씨가
05:53회초리까지 들면서
05:55이렇게 아이들을 가르쳐서
05:57미국 위문 공연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06:00그때부터?
06:01네, 그렇습니다.
06:03그때 이제 회초리까지 막 휘두르면서
06:05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습니까?
06:07그렇죠.
06:07그럼에도 눈물의 회초리
06:09눈물의 회초리 통해서
06:10출연료로
06:12그 미팔군 무대에 섰을 때
06:15돈으로 이제 개런티를 받지 않고
06:18양주
06:19아, 양주로?
06:20양주로 받아들여
06:21위스키
06:22위스키로 대신 받아들입니다.
06:24그런데 사실 뭐 그때 당시에
06:25화폐의 가치가 별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06:28전쟁 통일까?
06:29오히려 양주가 더 비싸지 않았나
06:31이런 생각이 좀 들긴 합니다.
06:33그런 안타까운 이야기가 숨어 있었던 건데
06:35그런데 이게 1950년대 얘기잖아요.
06:38그때 생각을 해보면
06:39아니, 미국으로 어떻게 갈 수 있을까?
06:42그것도 궁금하긴 한데
06:43일단 미국으로 진출을 했다고 하니까
06:45어떻게 하는 거예요?
06:46그러니까 1950년대면
06:47미국 사람들이 한국에 가수가 있다는 것 자체를
06:51알 수가 없던 시기였거든요.
06:53미국의 어떤 프라모터가
06:55아시아에 누구 좋은 사람 있나 싶어서
06:58일본 도쿄에 왔던 겁니다.
07:00그런데 일본 도쿄에 주한 미군들이 휴가를 간 거예요.
07:04아, 그때?
07:04그렇습니다.
07:05거기서 프라모터를 우연히 만나가지고
07:07한국에 지금 김시스터즈라는 가수가 했는데
07:09대박이다! 라고 알려준 겁니다.
07:12그 말을 듣고 미국 프라모터가 한국으로 와서
07:14미군부대 통해서 계약을 한 거예요.
07:17500달러 주고 딱 계약을 했는데
07:18문제는 그 당시에 한국인이 미국에 간다는 것 자체가
07:22너무나 어려웠던 시기였다는 거죠.
07:24직항 항공기도 없었고
07:26직항도 없었군요.
07:27오키나와 경유해서 가야 됐고
07:30거기다가 여권, 비자 이런 거 발급받는 것도
07:34어려웠던 그런 시기였는데
07:36이러한 사정을 전해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07:39직접 허락해서 김시스터즈의 미국 진출이 가능했다는 겁니다.
07:44이렇게 어렵게, 정말 너무 어렵게
07:4710대 소녀들이 하루아침에 낯선 미국 땅으로 가게 된 거죠.
07:51그런데 이 활동이 쉬울 리가 있겠습니까?
07:54김시스터즈의 첫째, 김숙자 선생님의 이야기 한번 들어볼까요?
07:57영어가 짧아서 우리가 음식점에 들어가서
08:04닭이 먹고 싶으면 이렇게 해서 닭이라고 그러고
08:08물고기, 생선이 먹고 싶으면 이런 역사가 있어요, 여기서.
08:15연습을 하루 8시간씩 하고 잠자고 밥 먹고
08:19그게 우리 라이프였어요.
08:20참 외롭고 한국이 그립고 어머니가 그립고 고통 많이 했어요.
08:27그런데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08:30김시스터즈가 미국 생활 초반 생각을 해보면
08:34거의 피난길에 못지않은 고생했다 이렇게 전해지더라고요.
08:37사실은 엄마 이난혁 씨가 4년 뒤에 미국에 오거든요.
08:414년 동안은 처음에 갈 때는 다 10대예요.
08:46이 3명이서 이 고생을 해야 했던 거예요.
08:48그리고 아버지는 또 당시에 한국전쟁 중에 납북이 된 상황이었거든요.
08:53그런 상황인데 갔는데 이 얘기를 들었다고 그래요.
08:55미국은 신호등이라는 게 있는데 파란 불에, 파란 신호등에 건너했는데
09:00그게 빨간불이, 파란불이 됐을 때 건너라가 아니라
09:03빨간 건 안 되는구나.
09:05계속 파란 신호등을 찾아다닌 거예요.
09:08그러면서 2시간 이상 해민 적도 있고
09:10굉장히 인기 끌어서 어디 초대가 됐는데
09:13천신 눈물 줬는데
09:15몰라서 마셨더니 비웃음을 당하기도 하고
09:19그리고 사실 그때 어머니가 거기 그때 슈프림즈도 있고
09:23앤드류 시스터즈도 있고 너무 걸그룹 많으니까
09:27니네가 되려고 그러면 지금 악기하고 계시잖아요.
09:29악기해야 돼.
09:30그래서 1인당 10가지 이상씩
09:32특히나 김숙자 씨는 혼자 13가지 악기를 하셨다고 그래요.
09:36이런 걸 하다 보니까 잠잘 시간도 없어요.
09:38그런데 그렇게 몸은 고단할 때 뭐가 필요한가요?
09:41소울푸드, 김치잖아요.
09:43맞아요.
09:43김치의 힘으로 버티는데 어디 김치가 흔하지 않죠.
09:46그러다 보니까 맨날 배추가 보이기만 하면 사니까
09:51너네 집에서 토끼 키우니? 이렇게 얘기하는데
09:54아니면 배추 없으면 양배추라도 무라도 구해서
09:58뭐 겉절이 깍두기 담아서 먹으면서 버텼다고 합니다.
10:02저도 유학생활 했었지만 이 김치가 너무 그립거든요.
10:05얼마나 그리웠는지 당시에 이런 노래까지 불렀다고 해요.
10:09한번 들어볼까요?
10:16저 정도로 그리워했다는 거예요.
10:45이제 각고의 노력 끝에 미국 무대에 서게 됐죠.
10:50그러면 제일 궁금한 거는 미국 사람들의 반응이에요.
10:54어땠어요?
10:55라스베가스 호텔에서 첫 공연을 했는데 정말 놀라운 반응이 왔던 겁니다.
11:02그래요?
11:02미국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치면서 브라보를 외쳤다고 합니다.
11:08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11:09본인들도 너무 놀라운 거예요.
11:10이 정도의 반응인지 몰랐는데
11:12정말 멀리 동양에서 온 작은 아가씨들이
11:15세 명이 이렇게 노래하는 장면이 너무 신기했던 겁니다.
11:19미국 관객들 입장에서는.
11:20그래서 브라보를 받은 바로 직후에 라스베가스 호텔과 8개월 장기 계약을 맺게 되고요.
11:30그다음에 그 당시에 가장 인기 있는 예능 프로라고 했는데 CBS TV의 에드 설리반 쇼에
11:3620회 이상 출연하는 놀라운 일이 발생합니다.
11:40에드 설리반 쇼뿐만 아니라 또 다른 어떤 여러 매체에도
11:45동양에서 온 마녀라고 불리우면서 굉장히 유명인사로 했고
11:52또 한국 시장에도 많이 알려졌습니다.
11:55이 당시에 김시스터즈의 주급은 1만 5천 달러.
12:01그런 수준입니다.
12:02라스베가스 고행 납세자 명단까지 올랐다는 겁니다.
12:04그렇군요.
12:05아닌데 여기서 그 김숙자 선생님이 당대 미국 최고 스타한테 만나보자.
12:11한번 만났으면 좋겠다 이런 제안이 들어왔다고요?
12:14맞습니다.
12:15센터에 있는 분이 김숙자 씨인데 사실 어머니가 미국 갈 때 이걸 당부했다고 그래요.
12:22노 데이트.
12:23데이트는 절대 안 돼요.
12:24그렇게 얘기를 해서 누가 차 한 잔 마시자 그래도 세 명이 같이 갔다고 그래요.
12:28그래서 연애 분위기가 형성이 안 됐는데 어머님이 4년 만에 허락을 하셨다고 그래요.
12:34이제는 데이트해도 돼.
12:36그런데 이때는 어머님이 4년 만에 와서 허락하기 전이에요.
12:40엘비스 플레슬리도 그 라스베이거스, 머선버드 호텔 비롯해서 그 호텔들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잖아요.
12:47김숙자 씨를 보고 반한 거죠.
12:49그래서 데이트 신청을 했지만 어머니의 데이트 금지.
12:53그 말씀을 지키느라고.
12:54안 그랬으면 우리 니콜라스 케이지한테 캐서방이라고 하잖아요.
12:59우리 엘비스 플레슬리도 우리한테 후서방, 엘서방 생길 뻔 했는데.
13:04그래서 비화까지 있었다는 겁니다.
13:06이렇게 김시스터즈가 어떻게 보면 미국의 문을 뚜드린 시초가 됐다는 거예요.
13:11그 이후로 우리나라의 많은 가수들이 잇따라서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시작했죠.
13:16당시에 미팔군 무대를 통해서 우리나라 가수들의 역량이 미국 사람들한테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겁니다.
13:21그러면서 윤복희 씨, 패티 김 씨 이런 여성 가수들이 미국 진출을 했었는데 그러다가 1970년대가 됐을 때 한미 관계가 조금 안 좋아졌거든요.
13:32그러면서 대중문화 교류도 좀 끊겼고 그랬다가 나중에 2009년에 원더걸스가 미국 진출을 시도하면서 그때부터 케이팝 여성 가수의 미국 진출이 다시 시작되게 됐습니다.
13:44김시스터즈에서 원더걸스까지 이렇게 쭉 문을 두드렸던 사람들이 있었던 겁니다.
13:49그래서 오늘날에 그래미까지 이어지게 된 건데.
13:52그런데요.
13:53케이팝 지구 정복자들 바로 두 번째 인물을 또 한번 살펴봐야 될 것 같습니다.
13:58이번에는요.
13:59누구냐.
14:001980년대에 일본 정복에 나선 원조 한류가 속에 있습니다.
14:06바로 조용필 선생님이요.
14:07탄환의 Atmanau
14:25특별한 경호� unders음을 파란히
14:28좋은 점 modal
14:28여러분과ennually
14:28踩해� Filip 가iritual
14:30아
14:31아
14:31네
14:32studied
14:33그
14:34홍 기자님, 그런데 조용필 선생님의 일본 진출, 이건 모르시는 분들도 꽤 있을 것 같아요.
14:54왜냐하면 한국에서 너무 잘 나갔고 부족함이 없는, 예를 들면 어떤 가수는 한국에서 자리를 못 잡아서 일본에 갔어요, 이런 경우지만 그게 아니라 조용필 씨는 한국에서 너무 잘 나가는 그 인기가 일본까지 소문이 퍼져서 일본에 가게 된 게 1982년이에요.
15:12그런데 가서 이때 굉장히 정말 인기를 끌어서 그냥 인기 끈 게 아니고요. 그때 가서 사실은 2년 정도 됐을 때 이미 일본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골든디스크를 타요.
15:28또 그리고 나중에는 추억의 미아라는 걸 또 일본어 판을 내게 되는데 이것도 또 한 번 두 번째 골든디스크를 타요.
15:36그리고 일본의 연말마다 말하자면 딱 자정에서 넘어서 새해 맞이할 때 홍백 가업전이라고 그 해 가장 잘 나갔던 그 스타들이 총 출동하는 쇼가 있는데 여기에 무려 5회, 이거는 한국 가수인지 현지 일본 가수인지 5년 동안, 5회 동안 출연을 하기도 했고요.
15:56뿐만이 아닙니다. 뭐 이런 수치상 이거 말고도 사실은 어느 정도 조용필 씨가 일본 대중의 삶 속으로 들어갔나 하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16:07첫 번째는 일본 가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거기 가면 일본은 가라오케 라는 문화가 있잖아요.
16:13직장인들이 퇴근하면서 이렇게 산토리 이스키 과음은 아니고 몇 잔 마시고 거기 가라오케 그게 이제 이렇게 음악만 녹음이 돼 있고 그걸 눌러서 노래 부르는 그런 가라오케의 주점이 있는데
16:28여기에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당연히 올라 있고요.
16:32그런데 만약에 그거를 일본인이지만 이걸 못 부른다? 심지어 1절은 한국어로 부르고 2절은 일본어로 못 부른다?
16:42그럼 아 요즘 유행 모르네. 뭐 이런 식으로.
16:45지금 조용필이 올해에 몇 월 몇 월에 어디 어디 뭐 오사카도 어디에서 공연해 이거 모른다? 그러면 아유 대화에 끼지마 대화가 안 되네.
16:55정말 이럴 정도였다고 하고요. 그리고 그 차이표 씨 고모님이 일본 사시는데
17:00그 고모님 표현이 조용필 씨의 인기는 산골의 할아버지도 안다.
17:05일본 산골의 할아버지도 안다. 그 정도라는 건데.
17:08오늘 이제 홍성규 평론가님이 저희가 특별하게 모신 이유가
17:11누구보다 조용필 선생님을 10여 년 넘게 취재를 해서 거의 뭐 조용필 전문가다 이렇게 통화하시더라고요.
17:19특히 조용필 선생님을 빼놓을 수 없는 게 가왕이라는 수식인데 이걸 직접 붙여주신 거예요?
17:24네네. 제가 처음에 조용필 씨를 만나서 인터뷰를 하면서.
17:29이때 같이 계신 거군요.
17:30네네.
17:30네네.
17:31말씀하면 저기 나와요.
17:32네네.
17:33그 선배 기자들이 최고의 가수, 탑싱어 이런 진부한 표현을 쓰더라고요.
17:38그래서 좀 더 우리 조용필 씨한테 어울리는 표현 없을까 생각하다가 노래의 왕이 아닌가.
17:46가왕이다.
17:47가왕 조용필 이렇게 쓰기 시작했는데 다른 매체에서도 받아쓰기 시작했고
17:51어느 날까지 계속 아예 가왕 조용필이라는 고유명사화된 것 같아요.
17:58누구보다 조용필 선생님을 잘 아시니까 우리가 지금 일본 진출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
18:04일본 진출하는 그 과정은 어땠어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18:07처음에는 사실은 일본 팬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18:12그런데 일본 팬들은 굉장히 어떤 실력을 따지거든요.
18:15실력을 알고 나서는 그때부터 자발적으로 특별한 조치를 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18:20많은 관객들이 모이기 시작해서 80년대는 거의 일본에서 최고의 가수로 등록을 했었죠.
18:27그런데 일본어를 원래 좀 잘 하셨나요?
18:29전혀 몰랐죠.
18:30전혀 못 하셨나요?
18:31전혀 몰랐는데 일본에서 일본어 선생님이 붙여서 매일 틈나는 대로 공부를 해서
18:37기초 과정은 3개월에 다 끝냈고 1년 안에 거의 통역까지 할 수 있는 수술입니다.
18:43그게 가능해요?
18:45조용필이 그걸 보여주신 거죠.
18:47얼마나 연습을 했으면 그 정도에 달하실까 싶은데
18:49틈나는 대로 틈나는 대로
18:51그런데 사실 말만 잘하는 것보다는 언어라는 게 노래를 하게 되면
18:55그 억양도 미묘하게 좀 있잖아요.
18:57이것까지 다 연습을 하시는 거예요?
18:59노래 연습도 매일 하니까
19:00일본말로
19:01노래를 하게 해서 일본어를 배운 거죠.
19:04그거 어마어마하다라는 생각이 드는데
19:06혹시 일본 진출 과정에서
19:09선생님이 옆에서 지켜보시고 취재를 해보시면서
19:12겪은 에피소드 이런 게 있으실까요?
19:14조용필 씨가 항상 그때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것이
19:17가수는 앞서가는 음악을 해야 된다.
19:21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19:22그때는 저는 그 얘기가 과연 뭘까 하는 얘기를 잘 몰랐는데
19:25오늘날에 와서 그 이후에 벌어진 조용필 씨의 행적을 보면
19:29늘 새로운 음반을 낼 때 새로운 어떤 장르의 곡을 냅니다.
19:35그러니까 전에 했던 곡들이 잘 나갔다고 해서
19:38히트곡을 답습하는 그런 속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19:42그런 걸 보면서 이분이 그 약속을, 그 신념을 지금까지 계속 지키고 있구나.
19:48대단한 사람이다.
19:50이런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19:51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19:52그런데 일본 진출 얘기 말고도요.
19:55왜 그 가수들 하면 떠오르는 거는 카네기올을 빼놓을 수가 없어요.
20:01나 여기에 섰다, 섰다, 섰다 이런 기사들이 줄을 잇는데
20:04이 시초가 조용필 씨님이에요.
20:05그렇습니다.
20:071980년대 한국인이 여기가 세계 최고의 무대다라고 생각했던
20:11무대가 바로 카네기올 공연이었는데
20:13그거를 한국 가수 최초로 한 사람이 조용필 씨인 겁니다.
20:181981년에 카네기올 공연을 했고
20:20그 다음에 패티 김 씨, 인순이 씨, 이선희 씨 쭉 이렇게 이어지는데
20:25요즘이야 케이팝 가수들이 미국에서 스타디움 공연을 하지만
20:28하시는 데에는 카네기올을 최고라 생각해서
20:31그게 이제 우리나라 케이팝의 어떤 역사에 출발을 할 수가 있는데
20:34그 맨 시초점에 조용필 씨가 있었던데
20:37그런데 다시 일본 얘기로 돌아와서
20:39일본의 산골 할아버지도 아는 게 조용필 선생님이다라고 했는데
20:42사실 일본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김연자 선생님이에요.
20:46김연자 씨죠. 사실 김연자 씨가 고생이 많았어요.
20:4914살에 서울 올라와서 가수가 됐는데
20:52밤무대만 전전하고 가난하고
20:56돈이 모이지도 않고 노래가 인기도 없더라는 거죠.
20:59대단합니다. 18살에 일본 오디션을 보게 돼요.
21:02그런데 여기 합격을 해요.
21:05그래서 갔는데 여기가 이제 1년마다 재계약을 하는데
21:09한 3년 동안 별 성과를 못 냈다 그래요.
21:12그래도 앨범 만들고 재킷사진까지 다 찍고
21:16왜냐하면 비자를 계속 연장해야 일본에 있으니까
21:19잠깐 한국 왔는데 그때 일본 기획사에서 해지 통보가 왔대요.
21:23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21:24이때가 겨우 21살이에요.
21:27그런데 이대로 끝날까?
21:29아니 사실 마이크를 거의 정강이까지 떨어뜨려도
21:33이 소리가 들어가는 대단한 가수잖아요.
21:36그러다 보니까 기회가 옵니다.
21:37그게 바로 1988년 서울올림픽
21:40이 폐막식에서 그 폐막 곡으로
21:43이 김연자 씨 아침에 나라
21:45그 대단한 노래가 선정이 된 거죠.
21:48그런데 그 올림픽 어떻습니까?
21:49전 세계가 지켜봤죠.
21:51나는 처음에 첫 번째 진출에서는 쓴맛을 봤던
21:54일본에서도 그 저 가수 아침에 나라
21:58우리 일본에서 활동했던 가수 알아본 거죠.
22:01그래서 일본에 가서 이 노래를 또 일본어 버전으로 해서
22:05녹음을 내고 출시를 하게 되는데
22:07이때는 대단한 인기를 끌었는데
22:09자존심에 한복 입고 가서 불렀어요.
22:12한복이요? 아니 왜 한복?
22:14계속 한복을 입고 계신 거네요.
22:16지금 보면 사진이 있어요.
22:17김연자 씨가 일본에서 38년 동안 활동을 했었는데
22:21계속 한복을 입고 활동을 하는 거예요.
22:24김연자 씨가 뭐라고 그랬냐면
22:25한복이 어머니의 품 같다.
22:28나를 지켜주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22:31심리적 갑옷 같다.
22:33그런 얘기도 했었는데
22:34김연자 씨가 1977년에 일본에서 데뷔 앨범 발매했을 때
22:39그 자켓 사진에서도 한복을 입고 있었고
22:4288년에 아침에 나라에서 일본 진출할 때도 한복 입고 갔고
22:4689년에 홍백과 앞전에 출연할 때도 한복을 입고 출연한 거예요.
22:50이 모습이 일본에서 굉장히 화제가 됐고
22:53또 일본 교포들한테도 상당히 위로를 줬던 일화였습니다.
22:57그런데 김연자 스님을 좋아한 의외 인물이 있어요.
23:01영상으로 준비했습니다.
23:02이거 한 번에 마셔야 되는 거죠?
23:23한 번에 마시면 되죠.
23:24남한 가수로서는 처음이었던 김 씨의 공연에 북측은 뜨겁게 반응했습니다.
23:42김정일이 김연자 선생님이 열렬한 팬이었어요.
23:46그래서 우리 한국 가수 중에서 평양 무대에 가장 먼저 섰던 가수가 김연자 씨가 된 건데
23:52이때 안타깝게도 김정일이 평양에 없었어요.
23:56함경 북도에 있었습니다.
23:57전용 열차를 보내서 함경 북도까지 와서 노래를 부르게 했는데요.
24:02이때 지금 입은 이 한복이 북한 디자이너가 북한 천으로 다 한 땀 한 땀 자수 나서 만든 한복이라고 하는데
24:11이 가치가 한 3억에서 많게는 15억까지 평가된다고 해요.
24:16그런데 사실 김연자 씨가 평상시 본인 옷도요.
24:193천만 원, 1억 이렇게 들여서 옷을 만들거든요.
24:24그런 진심을 알아서인지 북한에서도 이런 대단한 옷도 만들어주고 가는 곳마다 북빙급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24:33정말 자랑스럽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24:35그러면 세 번째 인물도 저희가 한번 살펴보도록 하죠.
24:39세 번째는요. 바로 중화권 얘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24:42클론 H.O.T가 떴는데 일단 클론 얘기부터 해보면 홍 기자님.
24:46대만에서 상당히 귀빈 대접을 받았어요.
24:49귀빈 대접. 왜냐하면 대만에서 굉장히 인기를 끊었는데 나오기만 하면 시청률 1등이었다고 그래요.
24:56그런데 시청률 1등이면 잡아야 되잖아요.
24:58특히 연말에 새해 특집해야 되는데 만들긴 만들었어요.
25:02그중에 구경TV가 기회를 잡았는데 어떻게 잡은 줄 아세요?
25:05어떻게 해요?
25:06클론이 대만에 간 게 아니라 그들이 한국에 와서 우리나라 신라호텔에서 하는 3배 이벤트를 찍어서 위성중계하는 게 기회를 잡은 거예요.
25:15그리고 이 대만의 연예가 프로그램에서 아예 와가지고 일거수 일투적을 다 취재에 가서 또 방영하면 또 시청률 1등.
25:25이런 식의 대단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25:27그런데 클론도 클론이지만 H.O.T가 뜨면 중화권 팬들의 거의 수백 대 오토바이가 따라다녔다고 해요?
25:34H.O.T가 처음에 대만에 한 번 가고 두 번째 갔을 때 그새 벌써 팬덤 형성이 돼서 H.O.T 이동할 때 오토바이가 1,200대가 따라다녔다고 하는 겁니다.
25:44그렇게 대만을 찍고 중국 본토로 또 진출했는데 엄청난 센세이션이 불러일으켜지면서 그때 H.O.T 중국 내 팬클럽 회원 수가 800만 명에 달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25:57사회주의 중구에서 H.O.T 콘서트 할 때 관객들이 태극기를 흔들어줬다고 합니다.
26:03이렇게 클론이 H.O.T까지 얘기를 했다면 사실 요즘은 BTS 빼놓을 수 없어요.
26:07지금 페루가 난리라면서요.
26:08네 BTS가 지금 월드투어 하잖아요.
26:10근데 페루에 가는데 심지어 페루에서요 도로를 내고 진짜로요.
26:15페루 도로?
26:15네 도로를 냅니다.
26:17근데 이게 제가 하는 말이 아니고요.
26:19그 페루의 행정부 이 도시를 건설하는 그 행정부에서 직접 공식 SNS에 알린 겁니다.
26:27BTS 덕분에 우리도 52개 도로를 내고 맞이할 준비를 했다.
26:32그러니까 지금 BTS 공연에 페루가 꼈다는 건 대단한 영광이다.
26:36이 정도 시대입니다.
26:38홍평론관님.
26:39우리가 이렇게 쭉 김시스토즈, 조용필, 김연수 선생님부터 시작해서 오늘의 BTS까지 케이팝 역사를 짚어봤는데
26:47앞으로는 또 어떤 역사가 쓰일까요?
26:49이번에 케데현의 그래미상 수상을 보면서
26:53이번에 가수가 상을 받은 게 아니라 작곡가, 프로듀서가 상을 받았습니다.
26:58그런 부분들이 상당히 희망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7:01사실 지금까지 케이팝 그러면 거의 어떤 퍼포먼스가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27:06근데 진정한 음악 콘텐츠가 간다면 프로듀싱팀이 간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27:11네, 세 분과 함께 케이팝 해외 도전사 한번 살펴봤습니다.
27:15저희는 60초 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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