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로 건너뛰기본문으로 건너뛰기
한국 대중가요에서 최고의 가수를 꼽으라면 여러분은 누구를 떠올리시나요?

저마다 기준과 취향이 달라 여러 가수의 이름이 나오겠지만 그래도 모두가 인정하는 가수는 있습니다.

바로 송창식이 그 가운데 한 명입니다.

어느덧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하루도 연습을 거르지 않는다는 영원한 가객 송창식을 박순표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해방 이후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인천에서 조부모 손에 자란 송창식에게 음악은 처음부터 사치였습니다.

그러나 재능만큼은 남달랐습니다.

[가수 송창식 :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생만 되면 벌써 음계로 노래를 하거든요. 우리 때는 그게 없었어요. 근데 이제 책에 콩나물 대가리에다가 음계 이름을 써서 놓은 책들이 많았어요. 도미솔 도미솔 요렇게 미솔솔 미솔솔 라라라라라 요렇게 써놓은 콩나물 대가리 위에 써놓은 책(?)들이 많았어요. 가사로 그걸 하지 않고 그걸 따라서 하다 보니까 음계의 체계가 잡힌 거죠]

혼자 음악을 배운 송창식은 중학교 선생님 손에 이끌려 우연히 나간 콩쿠르에 입상하면서 서울예고로 진학합니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에 학교를 중퇴하고 운명처럼 쎄시봉을 만납니다.

"그대 영원할 줄 알았네. 그 여름 바닷가 행복했던 모래성"

[가수 송창식 : 예고를 중퇴하면서 그 음악을 하긴 해야겠는데 할 방법이 없고 말하자면 좀 마음이 다급하잖아요 그러다가 쎄시봉이라는 데를 그냥 어쩌다 가게 된 거예요. 어쩌다 가서 노래를 했는데 거기 있는 쎄시봉 주인 아저씨가 쎄시봉이라는 이름을 걸고 그룹을 한번 만들어봐라 그럼 우리가 밥은 먹여줄게]

윤형주와 만나 1968년 트윈폴리오로 데뷔했고 다시 솔로로 활동하면서 가요 무대를 평정합니다.

[고래사냥], [피리 부는 사나이], [한 번쯤] [상아의 노래], [내 나라 내 겨레] 등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명곡으로 70년대 대표 가수에 자리합니다.

[가수 송창식 : 팝송 하던 그런 음악 실력 가지고는 내가 가수라고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빨리 탈피했었어요 저는 그래 가지고 그 다음에 정식으로 한국가요를 한 거죠. 근데 그걸 먼저 있던 다른 사람들이 하던 가요의 형식으로 할 수는 없었고 /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없던 다른 전혀 다른 형태의 대중가요를, 노래를 만들어서 하기 시작한 거죠.]

국악을 접목 시킨 [가나다라], [참새의 하루], [담... (중략)

YTN 박순표 (sunny@ytn.co.kr)

▶ 기사 원문 : https://www.ytn.co.kr/_ln/0106_202510050158334482
▶ 제보 안내 : http://goo.gl/gEvsAL, 모바일앱, social@ytn.co.kr, #2424

▣ YTN 데일리모션 채널 구독 : http://goo.gl/oXJWJs

[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

카테고리

🗞
뉴스
트랜스크립트
00:00한국 대중가요에서 최고의 가수를 꼽으려면 여러분은 누구를 떠올리시나요?
00:05저마다 기준과 취향이 달라 여러 가수의 이름이 나오겠지만
00:08그래도 모두가 인정하는 가수는 있습니다.
00:12바로 송창식이 그 가운데 한 명입니다.
00:15어느덧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하루도 연습을 거르지 않는다는
00:18영원한 가객 송창식을 박순표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00:25해방 이후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00:28인천에서 조부모 손에 자란 송창식에게 음악은 처음부터 사치였습니다.
00:34그러나 재능만큼은 남달랐습니다.
00:37로즈마이들은 초등학생 만나면 벌써 다 음계로 노래를 하거든요.
00:42우리 때는 그게 없었어요.
00:44그런데 이제 책에 콩나물 때가 되다가 음계름을 써서 논 책들이 많았어요.
00:52도미설을 도미설 이렇게 미설설 미설설 랄랄랄랄라 이렇게 써놓은 콩나물 때가 쓴 것들이 많았어요.
01:01그러니까 가사로 그걸 하지 않고 그걸 따라서 하다 보니까 음계의 체계가 잡힌 거죠.
01:10혼자 음악을 배운 송창식은 중학교 선생님 손에 이끌려 우연히 나간 콩쿠르에 입상하면서 서울예고로 진학합니다.
01:18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에 학교를 중퇴하고 운명처럼 세시봉을 만납니다.
01:25그대 영원할 줄 알았네
01:30그 곡을 중퇴하면서 음악은 하긴 빼겠는데 할 방법은 없고 하는 말하자면 좀 마음이 다급하잖아요.
01:43그러다가 세시봉이라는 데를 그냥 어쩌다 가게 된 거예요.
01:48어쩌다 가서 노래를 했는데 거기 있는 세시봉 주인 아저씨가 세시봉이라는 이름을 걸고 그룹을 하나 만들어봐라.
01:57그러면 우리가 바운덱이 줄게.
02:00용형주와 만나 1968년 트윈폴리오로 데뷔했고 다시 솔로로 활동하면서 가요 무대를 평정합니다.
02:08고래사냥, 피리부는 사나이, 한 번쯤, 상하의 노래, 내나라 내결의 등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명곡으로 70년대 대표 가수에 자리합니다.
02:22팝송하는 그런 음악 실력 가지고는 내가 가수라고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02:28그래서 거기서 빨리 타이프했어요. 저는.
02:32그래가지고 그 다음에는 이제 정식으로 한국 가요를 한 거죠.
02:37그런데 그걸 먼저 있던 다른 사람들이 하는 그 가요의 형식으로 할 수는 없었고.
02:43그러니까 그때까지는 없던 전혀 다른 형태의 대중 가요로 노래를 만들어서 하기 시작한 거죠.
02:55국악을 접목시킨 가나다라, 참새의 하루, 담배가게 아가씨 등으로 총창식은 80년대 이미 레전드 반열에 올랐습니다.
03:05밑바탕에는 음악에 대한 겸손함이 알려 있습니다.
03:08잘하는 게 아니다라는 게 늘 저변에 깔려 있었어요.
03:16왜냐하면 그동안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교육받고 그런 것들을 난 못 받았으니까.
03:24내가 이게 잘하는 건 분명히 아니다.
03:27내가 얼만큼 못하는가를 늘 인지하고 있었다는 거죠.
03:311987년 이후 공식적인 신곡을 내놓고 있지 않지만 송창식의 노래는 수많은 후배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03:42그런 후배들에게 송창식의 부탁은 단 하나입니다.
03:46포기하지 말라는 거죠.
03:50어느 나이가 되면 그전에 가장 자기가 전성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안 될 때가 있다고요.
03:57어느 순간 그때 안 되는 걸 치우면 또 새롭게 잘 되는 것이 생기는데
04:03절대로 포기만 안 하면 그게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이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04:12스스로한테는 큰 성공을 이끌 거라고요.
04:17포기만 안 하면.
04:18우리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04:26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하면서 내일은 더 노래가 잘 될 거라고 믿는다는 송창식.
04:31왜 송창식이 최고의 가수이고 작곡가인지 음악에 대한 자세를 통해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04:44YTN 박순표입니다.
첫 번째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을 추가하세요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