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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과학의 중요한 순간들
00:30이 과학이라는 게 인류 역사에서 생겨난 지 한 400년 정도밖에 안 됐습니다
00:351500년대만 해도 천문학은 점성술 취급을 받았거든요
00:39그때는 행성이 움직이는 게 천사들이 밀고 다녀서 그렇다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00:45이런 세상에서 도대체 과학이 어떻게 싹 튼 걸까요?
00:51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01:00오늘의 첫 번째 주인공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그림 하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01:13보고 계신 이 그림은 단태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을 그린 건데요
01:19여러분 단태의 신곡 들어보셨죠?
01:2213세기의 이탈리아 작가인 단태가 쓴 서사시인데요
01:27그 중 첫 번째가 지옥편입니다
01:30그 당시 단태가 만든 지옥의 크기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진지한 연구 주제였는데요
01:371588년 이걸 계산해낸 사람이 있었습니다
01:41이 사람은 지옥편에 나오는 문장을 바탕으로 계산을 했는데요
01:47그 결과 악마 루시퍼의 키는 약 1200m
01:52지옥의 부피는 지구의 약 12분의 1이라는 것을 밝혀냅니다
01:57그때까지 종교적이고 추상적인 공간으로 인식되던 지옥을 수학으로 묘사한 거예요
02:04그 덕분에 이 사람은 20대 상류사회로 진출합니다
02:10당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았던 메디치 가문에서
02:15대학 졸업도 안 했던 이 사람을 피사대학의 수학 교수로 스카우트했거든요
02:21지옥의 크기를 알아낸 이 사람 과연 누구였을까요?
02:27바로 오늘의 첫 번째 주인공 갈릴레오 갈릴레입니다
02:30갈릴레오 갈릴레이
02:40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로 유명한 사람이죠
02:43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던 천동설 대신에
02:49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행성 중 하나일 뿐이라는 지동설을 주장한 분입니다
02:55그래서 가톨릭의 탄압을 받았다는 것까지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죠
03:01그런데 사실 갈릴레오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게 역사학자들의 의견입니다
03:10이건 후대의 예술가들이 지어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요
03:14또 피사의 사탑에서 무게가 다른 추 두 개를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다는 것도 유명한데요
03:20이것도 본인이 한 적은 없다고 하죠
03:22이렇게 갈릴레오는 유명세만큼이나 가짜 뉴스나 좀 과장된 뉴스가 많았습니다
03:30그럼 갈릴레오에 대한 진짜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03:35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03:37갈릴레오는 1564년 이탈리아 피사에서 태어났습니다
03:43이름이 똑같은 게 두 번 반복되는 느낌이죠
03:47외울 때는 52로 외우시면 됩니다
03:5052 갈릴레오 갈릴레이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시겠죠?
03:54갈릴레오는 몰락한 귀족 가문의 장남이었어요
03:57역시나 어릴 때부터 머리가 좋았습니다
04:00수학을 잘했어요
04:01하지만 집안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까
04:04아버지는 아들이 의사가 돼서 명의였던 조상님처럼 부와 명예를 갖길 바랬습니다
04:10그래서 아들을 의대에 보냅니다
04:13당시 수학자 연봉이 의사의 30분의 1밖에 안 됐거든요
04:18이야 이게 의대 열풍이 무려 400년 전에도 있었던 거예요
04:22그런데 갈릴레오는 의사가 될 생각이 별로 없었습니다
04:27계속 수학에만 관심을 가지니까
04:30아버지가 학비를 끊어버립니다
04:33대단하신 분이에요
04:35그래서 갈릴레오는 돈을 벌려고 귀족 자제들에게 수학 과외를 해줬는데요
04:41귀족들 사이에서도 1타 선생님으로 이름이 알려져서
04:46귀도발도 델몬테라는 귀족의 눈에 듭니다
04:49갈릴레오가 지옥의 크기를 계산한 후 학사 학위도 없는데 교수가 됐잖아요
04:55이것도 델몬테의 덕분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04:59아무튼 그때 갈릴레오의 나이 불과 25살이었습니다
05:05비사대의 수학 교수로 있던 갈릴레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했던 진리에
05:102000년 만에 도전장을 내밉니다
05:13갈릴레오는 기존 체제에 그렇게 순응적인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05:18당시에는 사람들이 무거운 물체는 더 빨리 떨어지고 가벼운 물체는 천천히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05:25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렇게 주장했거든요
05:28근거는 딱히 없었습니다
05:31하지만 그냥 막연하게 생각해봐도 그렇잖아요
05:35그때는 머리로 생각만 하는 게 당연한 시대였거든요
05:40실험이나 구체적인 증거가 중요한 때가 아니었는데 갈릴레오는 달랐습니다
05:46집에서 직접 실험해봤는데요
05:48그 결과 무거운 공이든 가벼운 공이든 똑같은 속도로 점점 빨라지면서 떨어진다
05:54이런 결론이 나왔습니다
05:56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랑 달랐던 거죠
05:59갈릴레오는 사고 실험을 통해 논리적으로도 반박을 했는데요
06:05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를 줄로 묶었습니다
06:08그러면 어떻습니까? 하나의 더 무거운 물체가 될 텐데요
06:12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따르면 가벼운 물체는 천천히
06:16무거운 물체는 빨리 떨어지려고 하니까
06:18둘을 묶으면 어떻습니까? 속도가 그 사이 어딘가 정도 되겠죠
06:23그런데 둘을 묶었으니까 더 무거운 물체는 사실은 더 빨리 떨어져야 합니다
06:29이미 논리적으로도 모순인 것이죠
06:32갈릴레오의 실험은 나중에 뉴턴한테도 영향을 끼친 엄청난 발견이었는데요
06:39그 당시에는 감히 아리스토텔레스를 반박했다고 해서
06:43갈릴레오의 평판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06:46교수 제의명이 되는데도 실패했어요
06:49살 길을 모색하던 갈릴레오는 친분이 있던 귀족들 도움을 받아서
06:55자기가 가고 싶던 파도바 대학의 수학 교수가 되는데요
06:59갈릴레오는 여기 있던 18년 동안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성취를 내놓습니다
07:07바로 지동설, 즉 태양중심설에 대한 근거를 발견한 것이죠
07:13그런데 여기에 큰 도움을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07:17바로 오늘의 두 번째 주인공입니다
07:20신이 우주를 움직인다고 믿었던 시절
07:24우주가 사실은 수학으로 움직인다는 걸 최초로 증명한 사람
07:30이과생들은 다 아는 케플러 법칙을 만든 사람
07:34바로 유하네스 케플러입니다
07:37케플러는 케플러의 세 가지 법칙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07:48자세한 건 조금 이따가 설명드릴 건데
07:50현대 천문학의 기초가 되는 법칙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07:56제가 첫 편에서 소개해드렸던 칼세이건
08:00벌써 잊어버리신 건 아니죠?
08:02칼세이건은 케플러 법칙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08:06우주 탐사선이 광대한 우주를 가로질러
08:10외계로 달려갈 때
08:12사람이고 기계고 가릴 것 없이
08:15확고부동한 이정표가 하나 있다
08:18그것은 케플러가 밝혀낸 행성운동에 관한 세 가지 법칙이다
08:24그러니까 케플러는 우주의 이정표를 만든 사람이라는 거예요
08:29그런데 우리가 갈릴레오만큼 잘 알지는 못하죠
08:34케플러는 1571년 독일에서 태어났습니다
08:38갈릴레오보다 7살 어려요
08:40동생입니다 동생
08:42케플러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자랐습니다
08:45가난한 데다 어릴 때 천연두를 앓으면서
08:49시력이 굉장히 나빠졌고요
08:51손가락도 운전하지 못했습니다
08:53여러분 시력이 나쁜 건 천문학을 하는데
08:57굉장히 치명적인 단점입니다
09:00하늘을 관측하는 데에 지장이 있으니까요
09:02특히나 과거에는 직접 관측을 많이 했기 때문에
09:06시력이 너무 중요했다는 거죠
09:08이렇게 병약하고 내성적인 케플러에게
09:12위안이 됐던 건 두 가지였는데요
09:14하나는 우주였습니다
09:16케플러도 갈릴레오처럼
09:19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많았어요
09:22다른 하나는
09:24머리가 굉장히 좋다는 거였습니다
09:26그때까지만 해도
09:28교회에서 가르치는 우주로는
09:30그리스의 철학자인
09:32푸톨레마이오스가 제시한 거였습니다
09:34우주의 중심이 지구라는
09:36천동설이었던 거죠
09:38천동설
09:40하늘이 돈다
09:42거의 1500년간 이어지던
09:44그런 생각에 의문을 제기한 게
09:46코페르니쿠스였습니다
09:48케플러는 신앙심이 깊었는데요
09:51신앙심과 별개로 코페르니쿠스의 생각에 동조했습니다
09:55너무나 혁명적이라
09:57당시 지동설을 인정하는 과학자는 소수였는데
10:00케플러도 그 중 한 명이었던 거죠
10:03하지만 시력이 안 좋아서 관측을 하기 어려웠으니
10:07수학적인 재능만으로 우주의 신비를 풀 수밖에 없었습니다
10:11당시엔 행성이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10:17이렇게 딱 6개만 알려져 있던 때였는데요
10:20케플러는 그 이유를 수학적으로 설명해냅니다
10:25정다면체 안에 정다면체가 들어있는
10:28그야말로
10:30판타지적인 세계관의 우주모형을 발표하는데요
10:33지금 봤을 때는 말도 안 되는 가설이죠
10:36하지만 이 모형을 발표한
10:39우주의 신비라는 책은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10:4425살에 평범한 수학 교사였던 그의 이름이
10:48유럽 천문학계에 알려졌죠
10:51케플러가 제시한 우주모형은
10:53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옹호한
10:56최초의 우주모형이었거든요
10:59케플러는 행성이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건
11:02태양에서 나온 힘이 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는데요
11:06이거 자체가 맞는 건 아니지만
11:09최소한 신이나 천사가 행성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11:14큰 전환점이었죠
11:17케플러는 자신의 책
11:19우주의 신비를 저명한 천문학자들에게 보냈는데요
11:23그 중 한 명이 바로 갈릴레오였습니다
11:26머지않아 둘은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합니다
11:30그 시기 갈릴레오는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는 사실을 확신했지만
11:36이걸 발표했다가 곤란해질까봐 망설이고 있었어요
11:40그래서 케플러에게 편지로
11:42더 많은 사람들이 당신과 같은 태도를 가지게 될 때
11:45발표할 생각이다 라고 보냈죠
11:48케플러는 여기에 응원과 지지의 답장을 보냈습니다
11:52신념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11:56내 생각이 맞다면 유럽의 중요한 수학자들 가운데서
12:00우리와 의견이 다른 이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12:04진리의 힘은 그렇게 위대한 법이니까요
12:07케플러의 책 우주의 신비는 갈릴레오만 본 게 아니었어요
12:12역사상 가장 위대한 관측 천문학자
12:15티코 브라에도 봤습니다
12:18당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실 수학자였던 티코는
12:23케플러의 천재성을 바로 알아봅니다
12:26얼마 후 케플러는 한 귀족의 도움을 받아서
12:30브라에서 티코를 만나게 되는데요
12:33그렇게 29살이었던 케플러가
12:3653살이었던 티코의 제자가 돼서 같이 일을 하게 됩니다
12:41케플러에게 이건 엄청난 기회였습니다
12:45케플러는 시력이 나빴지만 티코는 시력이 굉장히 좋았거든요
12:505.0 정도 된다는 소문이 있어요
12:535.0? 이게 말이 되나?
12:55뭐 하여간 눈이 엄청나게 좋았다는 겁니다
13:00티코는 망원경이 발명되기 무려 35년 전부터
13:05맨눈으로 하늘을 관측한 결과를 발표해서 이름을 날렸습니다
13:09천 개가 넘는 행성을 관측한 방대한 데이터를 갖고 있었고
13:14수치도 매우 정확한 편이었습니다
13:17다만 티코에겐 데이터를 유리할 수학적인 능력이 부족했는데
13:21케플러가 거기에 딱이었던 거죠
13:24최고의 관측 천문학자와 최고의 수학자의 만남
13:28가슴이 웅장해지죠
13:30일이 일사천리로 풀릴 것 같지만
13:33사실 이 둘의 관계는 썩 좋지 않았습니다
13:37티코 입장에선 케플러가 생판 남이었거든요
13:42티코는 케플러를 경계해서 자신이 평생 관측해서 모은 데이터를 주기가 싫었던 거예요
13:49그래서 아주 찔끔찔끔 자료를 줍니다
13:54여러모로 둘은 절대 우호적인 사이는 아니었는데요
13:58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둘이 같이 일한 지 1년 반 만에
14:03티코가 사망하게 됩니다
14:05방광염이 악화된 건데요
14:08죽는 순간에는 정신이 굉장히 맑았던 것 같습니다
14:13자신의 관측 데이터를 전부 케플러에게 넘긴다는 유언을 남겼거든요
14:18오히려 티코의 죽음이 케플러에게 행운이 돼버렸죠
14:22다시 갈릴레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14:26티코가 물려준 관측 자료로 날개를 단 케플러처럼
14:29갈릴레오도 파도바 대학에서 수학 교수로 이명된 후로 승승장구하는데요
14:34여기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14:37바로 망원경을 만든 거죠
14:40근데 여기서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게 갈릴레오가 최초로 망원경을 발명한 건 아닙니다
14:45망원경은 네덜란드에서 최초로 만들어졌어요
14:49갈릴레오가 한 건 이탈리아에 도착한 망원경을 보고
14:53어? 이것 좀 개선할 수 있겠는데? 해서 훨씬 더 배율이 높은 망원경을 제작한 겁니다
15:00갈릴레오는 이 망원경을 가지고 연구만 하진 않았습니다
15:04갈릴레오는 케플러랑 달리 사회생활을 잘하고 성공지향적인 사람이었거든요
15:10그래서 베네치아의 지역 유지들을 모시고 종탑에 올라갑니다
15:14거기서 망원경으로 해안가를 보여주면서 시연을 한 거죠
15:19이걸 쓰면 적들을 멀리서도 크게 볼 수 있습니다
15:23하면서 홍보를 한 거예요
15:25그리고 갈릴레오는 베네치아 총독에게 망원경을 선물로 줬는데요
15:30그 대가로 파도바 대학의 종신 교수직을 제안받았습니다
15:35급여도 두 배로 올랐죠
15:37그 후 갈릴레오는 훨씬 더 배율이 높은 망원경을 만드는 데 성공했는데요
15:42갈릴레오가 대단한 점은 지상이나 해상을 관찰하던 망원경으로
15:47하늘을 올려다 봤다는 겁니다
15:50바로 1609년이었죠
15:53이렇게 오늘날까지 갈릴레오를 유명하게 만든 위대한 업적이 이제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15:59망원경이 갈릴레오에게 태양 중심설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들을 가져다 줬거든요
16:06어느 날 망원경으로 목성을 관측하던 갈릴레오는
16:10목성 근처에서 별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걸 보게 됩니다
16:16왜 보였다 말았다 할까요?
16:18갈릴레오는 이 별들이 목성 주위를 돌기 때문에
16:22목성에 가려서 그런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16:26목성을 중심으로 도는 위성을 발견한 거죠
16:29이건 어마어마한 발견이었습니다
16:32왜냐? 지구 중심설은 모든 천체가 오직 지구 주위만을 공전한다고 주장했는데
16:40목성의 위성들은 지구가 아닌 목성을 중심으로 돈 거예요
16:45그 전까지 이론적으로만 알려져 있던 태양 중심설의 모형이
16:50실제로 하늘에 존재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 거죠
16:54사회생활의 천재였던 갈릴레오는 이 네 개의 위성에 자신을 후원했던 명문가 메디치 가문의 이름을 붙여서 메디치의 별이라고 불렀습니다
17:05그리고 이 발견은 시데리우스 눈치우스라는 책으로 발표를 했는데요
17:11그 책에도 메디치 가문에 대한 헌사를 쏟아붓습니다
17:16눈치껏 쏟아붓은 거예요
17:18그 덕분에 갈릴레오는 메디치 가문의 궁정 수학자이자 자연 철학자가 되면서 커리어 하이를 찍습니다
17:26당시엔 수학자보다 자연 철학자의 주위가 더 높았거든요
17:30근데 당시 메디치 가문이 예측 못했던 게 있습니다
17:35바로 지금은 그 위성을 아무도 메디치의 별이라고 부르지 않고 갈릴레오 위성이라고 부른다는 겁니다
17:42다들 아시죠?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
17:47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됩니다 기본 소양이에요
17:51갈릴레오는 지구 중심설에 반박할 결정타를 발견했는데요
17:56금성의 위상 변화를 알아낸 겁니다
17:59위상 변화가 뭐냐면요
18:01쉽게 말하면 지구에서 봤을 때 달의 모습이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계속 변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18:08만약에 태양과 금성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면요
18:12금성의 모습은 초승달이나 금음달 모양에서 반달이 채 안되는 모양까지만 변화해야 합니다
18:20그런데 갈릴레오가 관측을 해봤더니
18:23금성도 달처럼 초승달, 금음달, 반달, 보름달 모양까지 다양한 위상 변화를 보여준 거예요
18:31금성이 태양 주위를 돌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었죠
18:39아리스토텔레스의 신봉자들은 망원경으로만 보이는 현상들은
18:44망원경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18:47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주장도 펼칩니다
18:51이때 갈릴레오에게 편지를 보내 격려를 해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18:56바로 케플러입니다
18:58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비난이나 조롱, 의구심을 뒤로하고
19:03그 천체들을 직접 관찰하고 연구함으로써
19:06무지라는 유령을 멀리 쫓아버린 선생님께
19:10마땅히 받아야 할 칭찬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19:13하지만 갈릴레오나 케플러는 소수파였습니다
19:181616년 갈릴레오는 교황청의 심기를 거스른 죄로
19:23교황청에 소환당해서 신문을 받습니다
19:27다행히 형벌을 받진 않았는데요
19:29더 이상 태양중심서를 신봉하거나 옹호하지 말라고 경고를 받습니다
19:35이 내용은 공식 기록으로 남아서 나중에 크게 문제가 되죠
19:40한편 트이코의 황실수학자 자리를 물려받은 케플러는 어떻게 됐을까요?
19:47이것저것 황실 비위도 맞춰야 하고 연구도 병행해야 하고 하다보니까
19:52케플러의 위대한 업적인 케플러 법칙이 탄생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19:58트이코가 남긴 관측 데이터로 케플러가 가장 열심히 했던 일은
20:03화성 궤도를 계산하는 거였는데요
20:05코페리니크스의 말대로 화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원 모양의 궤도를 돈다고 간주하고 계산했는데
20:138년이 걸려도 미묘한 오차가 있어서 계산이 맞아떨어지지가 않는 거예요
20:19고생 고생하다가 마침내 1602년 케플러 제2법칙을 내놓습니다
20:27케플러 2법칙은 태양과 행성을 잇는 직선이 같은 시간 동안에 같은 넓이를 휩쓸고 지나간다는 건데요
20:36행성이 태양에 가까우면 속도가 빨라지고요
20:39태양에서 멀어지면 느려지지만 같은 시간 동안 만들어내는 면적은 항상 같다 이런 겁니다
20:47이렇게 태양과 행성 사이의 거리가 일정하지 않다는 건 행성의 궤도 모양이 원이 아니라 타원형이라는 증거였습니다
20:57여기서 바로 케플러 제1법칙이 탄생합니다
21:01모든 행성의 궤도는 태양을 하나의 초점에 두는 타원 궤도다
21:07제3법칙은 조화의 법칙으로 행성의 공전 주기의 제곱은 행성과 태양 사이 평균 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법칙입니다
21:17무슨 말인지 모르겠죠?
21:19네, 쉽게 말하면 태양에서 멀리 떨어진 행성일수록 더 천천히 움직인다는 뜻이에요
21:26예를 들어 한 행성이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이 8이라면 타원의 가장 긴 반지름은 4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거죠
21:38이 법칙에 따라서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수성은 공전 주기가 88일, 금성은 225일, 지구는 365일, 화성은 687일입니다
21:48케플러가 세상을 떠나고 한참 뒤에 발견된 천황성, 해왕성도 조화의 법칙을 완벽하게 따르고 있죠
21:55이제 칼세이건이 케플러 법칙을 왜 우주의 이정표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시죠?
22:02이렇게 17년 만에 케플러 법칙 3개가 모두 완성됐는데요
22:07케플러의 법칙이 중요한 이유는 태양으로 인해 행성의 운동이 결정된다는 걸 수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했다는 겁니다
22:16즉, 태양 중심설의 수학적 근거인 거죠
22:21이렇게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케플러의 삶은 늘 녹록치 않았습니다
22:26이사도 자주 다니고 생계도 힘들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케플러를 고통스럽게 한 건
22:331615년에 어머니가 마녀로 고발당한 일입니다
22:38케플러의 어머니는 약초민간요법을 신봉했는데요
22:42당시에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지만 이것 때문에 마녀로 몰린 거예요
22:47그때는 마녀라는 이유로 화형을 당하는 사람이 많았던 시대였으니까
22:52케플러가 얼마나 맘고생을 했겠습니까
22:55몇 년간 법정에서 어머니를 변론하느라 가진 애를 썼습니다
23:01다행히 어머니는 마녀의 누명을 벗었지만 고된 감옥살이로 출소 후 반년 만에 세상을 떠납니다
23:11그런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케플러는 연구를 손에서 놓지 않았어요
23:161624년 필생의 역작인 루돌프 행성 운행표 줄여서 루돌프표를 완성합니다
23:24루돌프는 케플러가 모시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습니다
23:30당시 대중은 행성의 위치를 더 정확하게 알고 싶어 했는데요
23:35행성의 위치가 정확할수록 점성술의 예언력이 높아진다고 믿었거든요
23:41케플러가 완성한 루돌프표는 코페리누크스가 만든 운행표보다 30배나 더 정확했습니다
23:49그래서 항해사나 지도 제작자들에게 100년 이상 필수적인 자료로 쓰였습니다
23:55이렇게 인정받았지만 케플러는 말년도 불운했습니다
24:00황실의 수학자로 일할 때 재정난 때문에 급여가 자주 밀렸거든요
24:06궁핍했던 케플러는 못 받은 급여를 받으려고 길을 나섰는데요
24:11늙은 말을 끌고 추운 날 먼 길을 가다가 병에 걸렸고 58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24:20심지어 그의 무덤도 30년 전쟁 중에 훼손되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24:26다만 그가 직접 쓴 묘비문만 남아서 전해지고 있어요
24:31어제는 하늘을 재더니 오늘 나는 어둠을 재고 있다
24:37나는 뜻을 하늘로 뻗쳤었지만 육신은 땅에 남는구나
24:43사실 업적으로 보면 케플러는 갈릴레오 못지않게 천문학계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인데요
24:50근데 왜 갈릴레오에 비해 유명하지 않은 걸까요?
24:54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24:57우선 케플러 법칙은 수학이잖아요
25:00수학, 눈에 보이지 않은 근거를 댄 겁니다
25:04반면 갈릴레오는 목성, 금성, 태양, 달로부터 눈에 보이는 관측적 증거들을 제시했죠
25:11수학보다 사람들이 훨씬 이해하기 쉬우니까 더 많이 알려졌을 겁니다
25:17한편 교황청에 호출됐던 갈릴레오도 위기를 맞습니다
25:22교황청의 경고를 받고 십여 년간 조용히 지내던 갈릴레오가 다시 자신의 뜻을 펼치려고 나섰거든요
25:30당시에 바다의 밀물과 썰물 현상에 관심이 있었던 갈릴레오는
25:361632년에 이 내용을 다룬
25:39대화라는 책을 출간합니다
25:42이 책은 출간 직후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25:46출판된 지 몇 달 만에 교황청이 금소로 지정했는데도
25:50책 가격이 12배까지 폭등했을 정도였죠
25:54대화는 연극 형식입니다
25:56두 명의 철학자와 한 명의 지적인 시민이 등장해서
26:00태양중심설과 지구중심설에 대해 4일간 토론하는 책입니다
26:05태양중심설을 옹호하는 철학자는 살비아티
26:08지구중심설을 옹호하는 철학자는 심플리치오
26:12그리고 그 둘을 중지하는 시민은 싸그래도였죠
26:16갈릴레오는 이 책으로 결국 종교 재판까지 받게 됩니다
26:21여기에는 교황의 분노와 배신감이 숨어 있었는데요
26:26그럼 대체 대화라는 책에 어떤 내용이 있었길래
26:30교황이 커다란 배신감을 느꼈던 걸까요?
26:34어떤 토론이 진행되는지 살짝 보여드릴게요
26:38먼저 살비아티가 이렇게 말합니다
26:42만약 지구가 움직이지 않으면
26:44바닷물의 밀물과 썰물은 저절로 일어날 수가 없다네
26:48그릇에 담긴 물로 생각해보면
26:50물의 움직임은 물을 담고 있는 그릇이 움직이지 않는 한
26:54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라네
26:57여기에 심플리치오는 이렇게 답하죠
27:01지구의 움직임 때문에 조수가 생긴다는 것은 엉터리 같네
27:04이것은 기적이라네
27:06그릇을 움직이지 말고
27:08다른 방법을 써서 설명해주게
27:10바닷물을 담고 있는 지구라는 그릇은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까
27:15싸그래도는 둘을 지켜보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7:19심플리치오
27:21이것을 자네가 제시한
27:23터무니없는 의견과 같은 것으로 분류하려 하지 말게
27:27기적이란 말은 함부로 쓰면 안 돼
27:30자연의 범위에서 모든 주장들을 다 검토하고 난 다음에야
27:35기적을 찾아야 하네
27:38여러분, 뭔가 눈치챘었을까요?
27:42목소리만 들어도 눈치가 좀 채지죠?
27:45살비아티는 갈릴레오를 대변하는 캐릭터였습니다
27:49그리고 중재자인 싸그래도는 사실 중립이 아니라
27:53살비아티 쪽으로 기울어 있어요
27:55제일 큰 문제는 태양 중심설을 반대하는 심플리치오였습니다
28:00이름이 이미 심플
28:02단순한 사람
28:03뇌구조가 좀 심플한 거야
28:05심플리치오
28:06이런 뜻인데요
28:07어리석은 모습으로 나오는 심플리치오가
28:11교황인 우르바노 8세를 모델로 만들어졌다는 소문이 돌면서
28:16교황이 뚜껑이 열린 겁니다
28:19사실 대화에 나오는 내용은 틀린 부분이 있습니다
28:23밀물과 썰물은 지구와 달 사이의 중력 때문에 생긴 현상이죠
28:28자, 그럼 종교 재판에 끌려간 갈릴레오는 어땠을까요?
28:33우리의 기대와 달리 과학적인 신념을 지키기 위해 거세게 저항하는
28:39그런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28:42고문하겠다고 위협하는 신문관 앞에서 무릎 꿇고 선서를 하죠
28:49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거짓 의견을 완전히 버리겠습니다
28:53앞으로는 2단의 의혹을 받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말이나 글로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29:01그럼에도 갈릴레오는 16년 전 자신이 교황청에 맹세한 서약을 어겼다는 죄로 유죄를 선고받습니다
29:10그나마 다행인 건 그래도 갈릴레오라서
29:13사형 대신 평생 집에 갇혀 지내는 종신가택연금이 내려진 거죠
29:19그때 갈릴레오의 나이가 70세였는데요
29:23갈릴레오보다 어렸던 케플러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죠
29:28이쯤에서 한번 상상을 해보겠습니다
29:31과연 갈릴레오는 코페리니쿠스의 아이디어를 함께 지지했던 케플러가 세상을 떠난 걸 슬퍼했을까요?
29:40어쩌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29:43갈릴레오는 케플러랑 성격이 많이 달랐어요
29:47콧대도 높고 세속적인 성공을 추구했고 정치적인 감각이 발달했죠
29:53그는 케플러랑 약 20년간 편지를 교류했지만
29:58케플러만큼 적극적이지는 않았습니다
30:01갈릴레오는 목성과 금성의 관측 결과를 발표한 책을 출간할 때
30:07케플러에게 여러 번 자문을 구했는데요
30:10케플러는 그때마다 아낌없는 조언을 해줬습니다
30:13갈릴레오가 비난을 받을 때마다 앞에 나서서 그의 편을 들어주기도 했죠
30:18하지만 갈릴레오는 케플러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30:25갈릴레오는 케플러에게 왜 미력지근한 반응을 보였을까요?
30:29여러가지 이유가 추측되는데요
30:32갈릴레오는 케플러를 동등한 위치로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30:39케플러가 나이도 어리고 직업적인 신분도 낮았으니까요
30:45또 다른 추측도 있는데요
30:48갈릴레오가 교황청의 감시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30:51공개적으로 케플러랑 연대하는 것에 조심스러워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30:56종교가 절대적인 권력을 갖던 시절
31:00감히 종교에 반대되는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냈던 두 사람
31:06갈릴레오와 케플러 덕분에
31:08하늘은 더 이상 신의 영역이 아닌 과학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31:13지금의 우리가 거대한 천체 망원경을 만들고
31:17인공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릴 수 있는 건
31:19다 이 두 사람이 뿌린 시앗 덕분이죠
31:23여러분 모두가 똑같은 것을 믿는다고 해서
31:26그게 반드시 옳은 건 아닙니다
31:29인류의 진보는 언제나 의문과 질문에서 시작됐어요
31:34여러분도 질문하는 용기를 갖길 바라며
31:38이번 시간은 400년 전에 우주 탐사를 꿈꿨던
31:42케플러의 아름다운 질문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31:46우주 비행을 하게 도치 달린 배를 내게 주시오
31:50만약 거기 누군가가 살고 있다면 과연 누가 살아야 할까요?
31:56우주의 주인은 우리일까요? 아니면 그들일까요?
32:00이 모든 게 정말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요?
32:06그럼 다음 시간엔 갈릴레오와 케플러가 쏘아 올린 공으로
32:10과학 역사상 가장 큰 홈런을 친 과학자
32:14뉴턴과 그의 라이벌들의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32:18지금까지 괴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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