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개월 전
- #2424
【스튜디오】
▶엄지민
안녕하세요. 엄지민입니다. 현상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좇아, 팩트추적! 지금 시작합니다.
【인트로】
1950년 6월 25일, 평온했던 일요일 새벽을 짓밟은 무자비한 포성.
북한군의 기습 남침은 우리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 비극의 서막이었습니다.
[6·25 전쟁 발발 당시 라디오 방송 : 임시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새벽 북한 공산군은 38선 전역에 걸쳐서 전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치열했던 전장의 한복판에는 조국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격전지의 상흔은 이제는 사라졌지만, 용사들의 뇌리에는 그날의 참상이 여전히 또렷합니다.
[김구현 / 백골부대(제18보병연대) 참전용사 : (국군) 1개 대대가 용산역까지 쫙 배치하고 거기다 대기를 하고 있었다고. (북한군이) 불과 한 200~300m 앞에까지 온 다음에 대전차포를 쐈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들의 일상에는 쉽사리 평화가 찾아오지 못했고, 땅속에는 돌아오지 못한 영웅들의 슬픈 사연이 잠들어 있습니다.
[박기문 / 국방부 유해발굴단 발굴팀장 : 1만 3천여 명의 유해는 발견됐으나 실질적으로 유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신 분들은 253분밖에….]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될 '동족상잔'의 참극이 발발한 지 어느덧 75년.
사라진 전쟁의 흔적 속, 남겨진 그들의 이야기를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스튜디오】
▶엄지민
팩트체커 안동준 기자와 함께합니다.
안 기자,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엄청난 피해를 안겼죠?
▶안동준
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3년여 동안, 한반도는 전쟁의 참화에 휩싸였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전사와 부상, 실종, 포로 등을 합해 77만여 명이 피해를 봤고, 북한군은 50만여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망과 부상, 행방불명 등 남북한 민간인의 인명 피해 규모도 249만 명을 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아 10만여 명, 이산가족 1,000만여 명 역시 전쟁의 희생양이었습니다.
▶엄지민
전 국토가 초토화되면서 가늠하기 힘든 '물적 손실'도 발생했잖아요.
▶안동준
맞습니다. 이제는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포화에 할퀸 75년 전 대한민국은 폐허 그 자체였습니다.
처참했던 현장엔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수많은 사람의 눈물과 헌신이 녹아있고요.
은 6‧25 전쟁 75주년을 맞아 결코, 잊혀선 ... (중략)
▶ 기사 원문 : https://www.ytn.co.kr/replay/view.php?idx=274&key=20250618102441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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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민
안녕하세요. 엄지민입니다. 현상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좇아, 팩트추적! 지금 시작합니다.
【인트로】
1950년 6월 25일, 평온했던 일요일 새벽을 짓밟은 무자비한 포성.
북한군의 기습 남침은 우리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 비극의 서막이었습니다.
[6·25 전쟁 발발 당시 라디오 방송 : 임시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새벽 북한 공산군은 38선 전역에 걸쳐서 전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치열했던 전장의 한복판에는 조국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격전지의 상흔은 이제는 사라졌지만, 용사들의 뇌리에는 그날의 참상이 여전히 또렷합니다.
[김구현 / 백골부대(제18보병연대) 참전용사 : (국군) 1개 대대가 용산역까지 쫙 배치하고 거기다 대기를 하고 있었다고. (북한군이) 불과 한 200~300m 앞에까지 온 다음에 대전차포를 쐈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들의 일상에는 쉽사리 평화가 찾아오지 못했고, 땅속에는 돌아오지 못한 영웅들의 슬픈 사연이 잠들어 있습니다.
[박기문 / 국방부 유해발굴단 발굴팀장 : 1만 3천여 명의 유해는 발견됐으나 실질적으로 유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신 분들은 253분밖에….]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될 '동족상잔'의 참극이 발발한 지 어느덧 75년.
사라진 전쟁의 흔적 속, 남겨진 그들의 이야기를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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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민
팩트체커 안동준 기자와 함께합니다.
안 기자,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엄청난 피해를 안겼죠?
▶안동준
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3년여 동안, 한반도는 전쟁의 참화에 휩싸였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전사와 부상, 실종, 포로 등을 합해 77만여 명이 피해를 봤고, 북한군은 50만여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망과 부상, 행방불명 등 남북한 민간인의 인명 피해 규모도 249만 명을 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아 10만여 명, 이산가족 1,000만여 명 역시 전쟁의 희생양이었습니다.
▶엄지민
전 국토가 초토화되면서 가늠하기 힘든 '물적 손실'도 발생했잖아요.
▶안동준
맞습니다. 이제는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포화에 할퀸 75년 전 대한민국은 폐허 그 자체였습니다.
처참했던 현장엔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수많은 사람의 눈물과 헌신이 녹아있고요.
은 6‧25 전쟁 75주년을 맞아 결코, 잊혀선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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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1950년 6월 25일, 평온했던 일요일 새벽을 짓밟은 무자비한 포성.
00:09북한군의 기승남침은 우리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 비극의 서막이었습니다.
00:14오늘 새벽 북한 공산군은 38선 전역에 걸쳐서 전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00:22치열했던 전장의 항복판에는 조국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00:31격전지의 상은은 이젠 사라졌지만 용사들의 뇌기에는 그날의 참상이 여전히 또렷합니다.
00:38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들의 일상에는 쉽사리 평화가 찾아오지 못했고, 땅속에는 돌아오지 못한 영웅들의 슬픈 사연이 잠들어 있습니다.
01:00만 3천여 명의 유엔은 발견을 했으나, 실질적으로 불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신 분들은 253분밖에 안 되었습니다.
01:12다시는 반복돼선 안 돼, 동족상자 내 참극이 발발한 지 언덕 75년.
01:19사라진 전쟁의 흔적 속, 남겨진 그들의 이야기를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01:26오늘의 팩트체크 안동준 기자와 함께합니다.
01:29안 기자,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엄청난 피해를 남겼죠?
01:38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3년여 동안 한반도는 전쟁의 참하에 휩싸였습니다.
01:46국군과 유엔군은 전사자와 부상, 실종 포로 등을 합해 77만여 명이 피해를 받고, 북한군은 50만여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01:55사망과 부상, 행방불명 등 남북한 민간인의 인명피해 규모도 249만 명을 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02:04고아 10만여 명, 이산가족 천만여 명 역시 전쟁의 희생양이었습니다.
02:09그리고 전 국토가 초토화되면서 가늠하기 힘든 물적 손실도 발생했잖아요.
02:13맞습니다. 이제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포화에 핥힌 75년 전 대한민국은 폐허 그 자체였습니다.
02:22처참했던 현장에는 오늘의 우리를 잊게 한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헌신이 녹아있고요.
02:28팩트 추적은 6.25 전쟁 75주년을 맞아 결코 잊혀서는 안 될 이들의 숨은 이야기를 앞으로 2주 동안 집중 조명합니다.
02:36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02:43평화롭게 거니는 시민들 사이로 제복을 입은 노신사가 눈에 띕니다.
02:49제18보병연대, 일명 백골부대 소속으로 한강전투에서 싸웠던 김구현 어르신입니다.
02:57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한번 말씀해 주실 수 있어요? 기억나시는 대로?
03:02지금 저희 여의도가 이게 지금 뭐 백사장이 됐다고 이게
03:0975년 전 이곳 한강은 혈투가 벌어진 최전선이었습니다.
03:17당시 국군은 38선을 넘은 지 불과 사흘 만에 서울로 들이닥친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강을 따라 방어선을 구축했습니다.
03:27아흔이 넘은 지금도 그날의 기억이 선명합니다.
03:31에천억배만 되면 이 건너편에 마포강에 마포강에 쭉 서빙거 거지
03:39해안가에 전부 포상해가는 게 불이 번쩍 고쩍 고쩍 고쩍
03:44우리는 포가 없으니까 써질 못하지
03:50사야 또 그 밑이 60mm이 뭐니 박격버도 별로 없어서
03:55그러니까 소총하고 기관총하고 그런 건 싸우는 거야
03:58살아도 백골 죽어도 백골
04:02강독에서 적들과 맞선 부대원들의 용맹함은
04:06전적비에 고스란히 새겨졌습니다.
04:08일주일 동안 이어진 필사의 전투는 북한군이 파괴된 한강 철교를 복구하고 도하에 성공한 뒤 막을 내렸습니다.
04:30전쟁 초기 적군의 압도적 전력에 밀려 한강 사수에는 실패했지만
04:35아군이 전열을 정비할 소중한 시간을 벌었습니다.
04:38한강 남쪽에서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는 이런 의지의 표현
04:43그런 것들이 우리 국군이 계속해서 북한군을 상대로 싸울 수 있었던 어떤 힘이 된 원천이라고 저는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04:52수도 서울에서 펼쳐진 사투의 현장은 한강이 전부는 아닙니다.
04:57서울 연희동 주택가 뒷산에 자리 잡은 백사고지 전적비.
05:011950년 9월 인천 상륙작전 이후 북진하던 국군해병대는 북한군과 백병전 끝에 이곳을 되찾았습니다.
05:12우리 국군해병 일대대가 9월 21일 날 타락을 하게 됩니다.
05:19이것을 발판으로 해서 안산, 연세대학교 뒷속에 있는 연희고지, 홍익대 뒤쪽에 있는 백오고지.
05:27서울의 대표적 관광 명소인 남산 역시 전쟁 당시엔 격전지였습니다.
05:35서울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군사적 요충지인 탓에 사활에 건 전투가 계속됐습니다.
05:42서울의 눈이라고 하는 이곳, 어딜까요? 바로 남산이죠.
05:47연인들의 데이티 코스이고 N타워가 있지만 실제 이곳이 굉장히 중요했기 때문에
05:52우리 국군수도경비사령부와 헌병대가 목숨을 걸고 지켜냈습니다.
05:58이렇게 서울 곳곳에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전적비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06:04네, 서울에는 6.25전쟁과 관련된 전적비만 30여 개가 세워져 있는데요.
06:09앞서 보신 백골부대 전적비는 한강공원 한복판에 있지만
06:13나머지 대부분은 백사고지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소에 있습니다.
06:17더 많은 사람들이 참전용사들의 헌신에 감사할 수 있도록 당국이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06:42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는 서울 이외의 다른 곳에도 남아있습니다.
06:47서울과 남부지역을 잇는 주요 길목에 자리한 경기도 오산의 중미령.
06:551950년 7월 5일, 한강 방어선을 뚫고 남아하던 북한군을 여기서 멈춰 세운 건 미 육군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이었습니다.
07:05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미군이 처음으로 외국에서 치른 지상전입니다.
07:12특히 이 스미스 부대가 오산 중미령에서 벌였던 이 전투로 인해서 북한군은 큰 충격을 받게 되고 일시적으로 부대를 멈추게 되죠.
07:23그날의 치열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기념관.
07:26첨전했던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원 명판 가운데 한국인 이름이 눈에 띕니다.
07:35스미스 특임대에 파견돼 교육받던 룬승구, 당시 대위의 자취입니다.
07:40그때는 이제 미군 부대, 미군 부대원으로서 나와서 같이 전쟁을 한 거예요.
07:55그것이 영어로 하면 딜레이 액션이라고.
07:59그래서 그 사람들이 그 이상 못 내려가게 막는 거예요.
08:03막는 거예요. 그래서 그 전투에 참여를 하게 된 거죠.
08:12전쟁이 터지자 미군을 따라 유엔군의 첫 전투에 뛰어든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윤대위.
08:20이후 육군 소장으로 전역한 뒤 지난 2021년 결세했지만 생사를 넘나들었던 순간의 기억은 가족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08:29후퇴를 해야 할 그런 입장이 됐을 때 제일 자동차 제일 앞에 타가지고 말이에요.
08:39민간인한테 한국말을 하니까 물어보고 그러면서 길을 안내해서 200명을 안전주재로 인도를 했대요.
08:53그렇게 해서 무사히...
08:54또 다른 참전국의 흔적이 남아있는 강원도 화천군 사냥리.
09:02아프리카에서는 유일하게 지상군을 보낸 에티오피아의 황실근위대, 강류 부대가 주둔했던 곳입니다.
09:10이영만리로 파병된 최정예 부대는 이 일대에서 253차례 격전을 치렀고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습니다.
09:19왕실 근위군 출신이라는 이런 자부심, 긍지를 가지고 전투에 임하면서 단결력이라든가 용맹성 이런 것들은 어느 부대보다 가장 앞섰다라고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09:32춘천에 세워진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기념관에서 만난 참전용사 후손 라헬 솔로몬 씨.
09:40강료부대 일원이었던 케베드 아바테 씨의 손녀입니다.
09:47안녕하세요. 저는 이름은 라헬 솔로몬이라고 하고요. 한국 이름은 하은희입니다.
09:53그리고 에티오피아에서 왔고 저희 외할아버지께서 6.25전쟁 때 참전을 하셨고요.
10:00그러나 낯선 땅의 자유를 위해 싸웠던 용사들의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10:051974년 군부 쿠데타로 에티오피아의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졸지의 배신자로 낙인 찍혔던 겁니다.
10:191991년 공산 독재 정권은 무너졌지만 핍박에 시간이 안긴 상처는 컸습니다.
10:25군인이셨기 때문에 핍박을 받으셨고 막 숨어야 했고 아니면 뭐 다 잡혀 들어가서 고문을 받거나 그러신 경우도 있으셨고
10:36모든 참전용사분들이 이렇게 떳떳하게 내가 참전을 했다는 사실을 알리면 안 되었기 때문에 다 흩어지게 되었어요.
10:45고초를 겪은 영웅들의 헌신에 대한 보답은 늦게나마 그의 후손들에게 닿고 있습니다.
10:52화천군의 장학사업을 통해 현지 대학에서 학업을 마친 라엘 씨는 한국대학원에서 석사학위도 받았습니다.
11:02이제는 국제변호사를 꿈꾸며 할아버지가 지킨 나라에서 경력을 쌓고 있습니다.
11:08한국말을 하다 보니까 통역할 수 있는 통번역을 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주어졌었는데
11:15외교관 분들도 만나고 국제변호사이신 분들도 만나게 되었어요.
11:19그래서 너무 나도 그런 멋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합니다.
11:2675년 전 할아버지가 한국과 맺은 인연을 이제는 손녀가 이어가고 있는 거네요.
11:32보신 것처럼 강원도 화천군은 지난 2009년부터 화천지역에서 싸웠던
11:37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의 후손들을 찾아 교육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11:41우리를 도왔던 영웅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11:44미래세대와 교류하며 우호관계를 돈독히 하는 겁니다.
11:49이런 장학사업을 하시고 하시면 에티오피아 측에서도
11:52그런 일들로 인해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되게 많아졌고
11:59저희 역사가 안 잊혀지잖아요.
12:02먼 이국당에 와서 젊음을 바친 용사들에게 감사의 뜻이 계속 잘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12:07안 기자 그런데 유엔군 이외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 또 있다고요?
12:13네. 제대로 된 예우를 받지 못하고 오랜 기간 잊힌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12:19벚꽃이 활짝 핀 서울 현충원.
12:24하얗게 머리가 센 참전용사들이 전적 위령비 앞에 모였습니다.
12:306.25 전쟁 당시 계급도 군본도 없이 북한군과 맞섰던 유격 부대원들입니다.
12:36일사 후퇴 당시에 우리 국군이 유엔군과 밀려가는 과정에서
12:43북한 지역에 살고 계시는 15세 전후의 청년들이
12:49이거 안 되겠다.
12:52공산주의에게 국가를 뺏길 수 없다라는 생각으로
12:55의병들이 일어섰습니다.
12:58굳은 표정으로 추모 행사에 참석한 주은상 어르신도
13:02황해도 은율군에서 구월산 유격대원으로 활약했습니다.
13:0815살 어린 나이.
13:11군에 징집되지 않은 마을 주민들과 의용대를 조직해
13:15변변한 무기도 없이 가족과 마을을 지켰습니다.
13:20인천 상륙작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하자
13:24미처 철수하지 못한 북한군이 산속에 숨어들어
13:27마을을 약탈했기 때문입니다.
13:31산에서 식량 공급이라든가 생필품
13:35이걸 제대로 공급을 못 받으니까
13:38밤에 습경 내려온다고
13:41내려와가지고 우리 양민들을 학살을 하고
13:44또 뭐 재산들을 뺏어가고 그러니까
13:48각 지역의 마을별로
13:51자체적인 취한 데가 조성이 됐다고
13:55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선이 다시 남쪽으로 내려온 뒤로는
14:01수탈이 더 심해졌습니다.
14:04이에 마을 단위로 결성됐던 의용대들은
14:07하나의 부대로 힘을 합쳤고
14:09비로소 구월산 유격대라는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14:14미군이 각지의 유격부대를 통합 운영한 이후에는
14:18제8의 사공 부대에 배속됐습니다.
14:22몽둥이 가지고 횃불 돌고 다니면서
14:25일을 했지만
14:28그래도 저놈들한테는
14:32쉽사리 우리 지역을 그냥 밀고 들어올 수 없도록
14:37그런 방패막이 되어줬다라고 하는
14:41자부심을 갖고 있고
14:42북한 후방 지역에서
14:45정보 수집과 보급로 파괴 등 위험을 무릅쓴 작전들을 수행했지만
14:50비정규 군이었던 탓에 그 공은 잊혀 있었습니다.
14:56그러다 지난 2014년
14:58예우바들 길이 열렸습니다.
15:01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소속
15:04남보람 당시 소령이
15:06미특수전 사령부에 보관돼 있던
15:088.240 부대원들의 명단을 일부 확보한 겁니다.
15:14하지만 그 뒤 과정이 쉽진 않았습니다.
15:18불완전한 기록으로 생존자와 유족을 확인하는 게 어려워
15:217년이 더 지나서야 공로금을 지급할 수 있었습니다.
15:2510년 전에 그 명단으로 인해서
15:28특수임무수행자 보상법안이
15:32좀 더 수월하게 통과가 됐고
15:34그 명단에 있던 분들 중 두 분은
15:37사후에 훈장을 추서받기도 했습니다.
15:40현재까지 공적을 인정받은 유격대원과 유족은
15:433,800여 명
15:45유격부대원이 최대 2만 3천여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15:51잊힌 영웅들을 찾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15:55국군과 유엔군 그리고 비정규군인 유격대원까지
16:016.25 전쟁 참전 용사들의 남겨진 이야기들을 쭉 돌아봤는데요.
16:06끝내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분들도 계시죠?
16:096.25 전쟁 중 실종되거나 포로로 끌려간
16:12국군과 유엔군은 4만 2천여 명에 이르는데요.
16:16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사투를 벌였던 현장에
16:19아직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6:22유족들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16:24그리고 국가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라도
16:27이분들의 유해를 잘 수습해서 모셔야 될 것 같습니다.
16:30맞습니다.
16:316.25 전쟁 50주년이던 지난 2000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16:35전사자 유해발굴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16:40등산로조차 없는 가파른 산을 오르는 국군 장병들.
16:45거친 숨을 몰아쉬며 1시간 열을 걸어 도착한 곳은
16:49강원도 홍천군 금물산의 유해발굴 현장입니다.
16:52지난 1951년 2월 국군과 중공군의 목숨을 건
16:58고지전이 벌어졌던 장소인 만큼
17:00참전용사가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17:11유해를 찾기 위해서는 지표면에서 최대 80cm까지
17:17땅을 파야 합니다.
17:20고된 작업이지만 장병들의 마음가짐은 남다릅니다.
17:31한쪽에서는 팔뼈로 추정되는 유골이
17:34발굴됐습니다.
17:36이제부터는 6.25 전쟁 당시 국군의 유해인지
17:40확인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17:52이렇게 그동안 격전지 곳곳에서 발굴한 유해는
17:56만 3천여 구.
17:59하지만 신원이 파악돼 가족 품으로 돌아간 건
18:02253구 뿐입니다.
18:03국군 전사자라고 이렇게 모셔왔는데 DNA를
18:08검출을 했으나 이거에 비교해볼 8촌 이내의
18:12DNA가 없기 때문에 유가족분들의 DNA가 필요합니다.
18:16시력 채취가 가장 중요하고 국민들의 관심이
18:19많이 필요합니다.
18:2275년 전 각국 참전용사들이 입었던 군복을
18:25현대적으로 재석한 패션쇼.
18:29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보은 문화 확산을
18:32위해 마련됐습니다.
18:43단순히 옷을 선보이는 걸 넘어 참전용사들의
18:46헌신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노력도 아끼지
18:49않았습니다.
19:03백두추적이 만난 참전용사와 가족들의
19:06소망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19:10지금은 당연하게 느끼는 평화와 번영.
19:14이 모든 게 누군가의 목숨과 희생의 토대에서
19:17만들어졌다는 걸 잊지 않길 바라고
19:20있었습니다.
19:48참전용사의 말씀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19:50전쟁 발발 이후 75년이나 지난 만큼 살아계신
19:54분들이 많지 않고 생존한 분들 또한 모두
19:58고령입니다.
19:59이분들을 충분히 예우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20:01않은 만큼 보은정책 전반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20:05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20:06그럼 어떤 점을 주목해야 될까요?
20:09우선 생계 유지 등 현실적인 문제를 들여다볼
20:12필요가 있습니다.
20:14참전용사들은 정부의 명예수당 외에 주민등록지
20:17지자체에서 별도의 참전수당을 받는데요.
20:20월평균 지급액은 각 지자체의 여건에 따라서
20:23차이가 납니다.
20:25형평성과 상대적 박탈감 논란, 보은정책,
20:28불균형 심화 우려 등이 불거질 수 있는 겁니다.
20:32고령인 상당수 참전용사에게 참전수당은 중요한
20:35수입원인 만큼 격차를 줄이기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20:38할 것으로 보입니다.
20:40그리고 보은병원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꾸준히
20:43제기되고 있죠?
20:44참전용사 등 국가유공자들과 그 유족을 위한
20:48보은병원은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 대전,
20:52인천 등 전국 통틀어 6곳에 불과합니다.
20:56물론 일부 지역은 보은위탑병원을 운영하고
20:59있지만 의료 수요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21:01많습니다.
21:02시설 노후화와 병상 보존 문제가 숙제로
21:05남아있는 상황인데,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21:08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또
21:11세심한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21:14안 기자, 수고 많았습니다.
21:16오늘 팩트 추적은 여기까지입니다.
21:18다음 시간에도 6.25 전쟁 75주년 연속 기획,
21:22두 번째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21:24함께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21:32고맙습니다.
21:34고맙습니다.
21:36고맙습니다.
21:38고맙습니다.
21:40고맙습니다.
21:41고맙습니다.
21:42고맙습니다.
21:43고맙습니다.
21:4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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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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