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먹고 살기 위해 의류 수선을 배웠고 우연히 복장학원을 알게 됐습니다.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 국제복장학원이라는 데가 제가 서울예대가 남산에 있었거든요. 바로 그 길에 매일 거기로 지나가는 길에 있었는데 저는 진짜 몰랐던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제가. 아니 제가 몇 년을 댕겼는데 여기 있었어? / 그때는 제가 모든 걸 단절하고 신문, TV도 안보고, 꿈을 접어야 되는 아픔이 있잖아요? 그러면서 패션을 할 때라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기에 몰입했던 것 같아요.]
죽기 살기로 패션을 배웠고 각종 공모전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본인의 이름으로 의상실을 낼 때도 생계를 건 도전이었습니다.
[패션디자이너 이상봉 : 2천만 원을 담보로 이렇게 받았어요. 근데 그때 1,800만 원인가가 보증금이었어요. 가게에 보증금 이었고, 나머지 돈은 친구 회사에 빌붙어서 거기 에서 사람도 딱 패턴은 제가 하고, 그냥 미싱 하시는 분, 제자 하나, 딱 2명만 써서 일을 시작한 거죠.]
자기 브랜드를 만들고 12년 만에 파리 전시회를 열 정도로 승승장구한 건 한 번도 도전을 멈추지 않아서였습니다.
한글과의 만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 한국과 프랑스의 (수교) 120주년 행사가 있었습니다. / 이왕이면 내 돈 가지고 가서 쇼를 하는 데 이왕 나도 그럼 다시 한국적인 거 한번 더해야지 그래서 다시 고민하고 찾아낸 것이 한글이었어요. / 그러면서 처음에 시작할 때는 / 다 반대하는 거예요. 우리 직원들이. 선생님 파리에서 정말 무슨 망할 일 있어요? 영업 해외 마케팅하는 친구들, 우리 디자이너들, 회사 영업 다 반대를 하는 거예요. 우리 회사 망한다고.]
우리는 한글을 문자로 보지만 외국에서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봤습니다.
의외의 반응에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 한글 플러스... (중략)
YTN 박순표 (spark@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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