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배우 안성기씨가 향년 74세로 별세했습니다 관련 내용 김원식 대중문화평론가와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안성기씨 중환자실에 입원한지 오늘로 7일째였던 걸로 알고 있는데 앞서 음식을 먹다가 기도에 걸려서 이송이 됐었죠 네 그렇습니다 지난달 30일에 자택에서 음식을 드신 중에 기도에 음식물이 걸리게 되면서 병원으로 이송이 됐고요 그동안 심정지 상태로 이송이 됐었습니다
00:29그런데 위중했기 때문에 중간에 또 오보가 나기도 했는데요 오늘 아침 9시에 유가족이 보는 상황 속에서 영면에 들어간 것으로 공식 발표가 됐습니다 고인은 과거에 혈액암 진단을 받고 투병했었는데 완치 판정을 받은 뒤에 다시 또 재발했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2019년에 혈액암 판정을 받았고요 그래서 암투병 이후에 사실 1년 만에 또 완치됐다는 발표도 했어요
00:59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병 중에 부산 영화제를 포함을 해가지고 예를 들면 대주상 공로상 또 수상도 했었고 그리고 민주평화상 시상식에도 나왔었고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도 참여를 하는데 활발하게 활동을 했거든요
01:15그렇기 때문에 이제 또 완치를 하면서 복귀하는 거 아니냐 이런 평가들이 많았고 본인도 또 복귀를 하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해왔던 것으로 또 알려지고 있습니다
01:26네 고인의 투병 소식은 좀 뒤늦게 알려졌는데 왜 투병 소식을 알리길 원하지 않았던 걸까요?
01:32일단 평소에 좀 민폐를 끼치는 거를 굉장히 삼가했던 고인의 그런 성향 의지도 있었고요 팬들이 많이 또 걱정을 하기 때문이고 또 지인들이나 동료 선후배 배우들에게 또 많이 알리지 않았습니다
01:46그리고 곧 복귀할 거라는 또 강한 의지 이런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가 있겠는데요 그런 점에서 좀 안타까움이 더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01:55빈소는 어디고 이게 일반인들도 좀 조문이 가능한가요?
01:59일단 조문하실 수 있는 곳은 두 곳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02:03서울 성모병원 같은 경우에 이제 빈소가 있는데 이곳은 평소에 안성기 배우가 1억 원 정도의 어떤 기부금을 기증했던 것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고요
02:14그리고 충무로에 영화인센터가 있는데 여기는 일반인들을 위해서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엽니다
02:21그래서 오후 4시부터 일반 팬들 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점 참조하시면 좋겠고
02:27성모병원에서는 이제 박상원 씨가 처음 빈소를 방문해서 추모하고 또 고인에 대한 애틋한 존경의 뜻 그런 것을 밝히는 그런 모습도 보여졌습니다
02:38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고 하던데 이건 어떤 건가요?
02:42네 영화인장은 사실 한 협회나 단체에서 하는 게 아니고요
02:47예를 들면 영화감독협회, 배우협회가 따로 이제 직능단체가 있는데
02:51그곳의 대표자들이 장례위원회를 구성을 하게 되겠습니다
02:55그래서 무엇보다도 영화 발전에 기여를 했고 또 국민들한테 사랑을 많이 받아온 감독, 배우들에게 이렇게 장례 절차로서 치러지게 되는 것인데요
03:07그 사례로서는 2022년에 강수연 배우가 있었고 남궁원 배우 그리고 최근에 김지미 씨도 영화인장으로 치렀습니다
03:16그런데 3일장이 아니고요 5일간 치러지기 때문에 9일 발의를 하게 되고 오전 6시에 발인이 있게 됩니다
03:25장지는 양평으로 예정이 된 그런 상황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03:28국민 배우로 불린 안성기 씨의 아역배우로 데뷔한 뒤에 왕성한 활동을 이어 왔는데요
03:34데뷔 때의 모습 한번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03:37금년도 우수 국산영화상 수상자는 작품상과 시나리오상 등 15명이었는데
03:51소년연기상에는 안성기 군 등이었습니다
03:55어렸을 때 글쎄 저는 전혀 연기가 뭔지를 몰랐고 그냥 정말 시키는 대로 했죠
04:03그래서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잘하나 보다 하고 했어요
04:09어렸을 때 모습인데도 얼굴이 좀 이렇게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04:17평론관님은 어떤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04:19일단 앞서서 이제 나왔던 작품은 1959년에 10대 반항입니다
04:23이때 이 작품에서 소매치기 역을 했어요 7살이었고요
04:27이 영화가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서 아역 연기상을 줬습니다
04:31그런데 우리나라 역사상 해외에서 영화상을 받은 게 이게 최초예요
04:35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고 개인적으로는 2006년에 라디오스타가 인상적입니다
04:39여기서 박중훈씨가 가수 나오는데 매니저인 안성기씨한테 형 돌아오라고 울먹이는데
04:44사실 그때 김밥을 먹으면서 안성기씨가 눈물을 흘렸던 장면이 떠오르게 돼서 돌아오죠
04:49그런데 이제는 돌아오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됐는데
04:52개인적으로는 종이꽃이라는 작품이 또 인상깊습니다
04:552020년 작품인데 장의사 역할을 하거든요
04:58이 종이꽃은 상여에 달던 꽃이에요
05:00그래서 죽음을 앞두고 누구라도 공평하게 종이꽃을 달아주는 우리 장래 문화를 얘기하고 있는데
05:06그런 점에 각별한 또 이 작품이 또 휴스턴 영화제에서 작품상과 함께 안성기씨가 연기상도 받았었거든요
05:13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종이꽃을 안성기씨한테 달아줘야 되는 그런 상황이 됐습니다
05:18네 고인은 작품활동 말고도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사회활동에도 참여를 해왔는데요
05:242000년대에는 스크린쿼터 폐지반대에 당장도 맡았습니다
05:28당시 그림 함께 보고 오시죠
05:31저는 앞장서서 뭐 하는 거 뭐 이렇게 외치고 이러는 걸 너무너무 힘들어하고
05:37저하고 안 맞는데 그런 걸 했어요
05:40그거는 아 영화를 위해서 이거는
05:43그리고 이 영화를 위한다기보다는
05:46우리의 어떤 표현을 할 수 있는 어떤 매체들을 위해서는
05:50표현을 위해서는 우리가 이걸 일을 해야 되겠다라고 해서 어떤 사명감을 갖고
05:56정말 이거 이 역할을 해야 된다라는 어떤 연기자의 어떤 그런 자세로서
06:02마치 배우같이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06:08네 작품 외의 활동도 저렇게 적극적으로 한 안성기씨의 모습 좀 어떻게 보셨습니까
06:13일단 배우의 어떤 사회적 참여인데 그걸 뭐 항상 하셨던 건 아니고
06:18무엇보다 중요한 거는 한국 영화 산업이 살아야 우리 한국 영화 작품도 살고
06:23배우도 살 수 있다라고 하는 문제의식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06:26그리고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도 공동위원장을 맡는 등
06:30국직한 그런 영화제에 관련된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셨고
06:34또 이제 영화를 합법적으로 다운로드 받는 것에 대해서도
06:38저작권 인식 차원에서 활동도 많이 하셨고
06:40또 기부 활동도 많이 하셨기 때문에
06:42그래서 영화인의 어떤 사회적 참여
06:44사회적 참여 또 그런 것이 뜻하는 의미
06:47이런 것들을 많이 남기셨던 그런 상황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06:50네 마지막으로 이제 고인이 영화계에 미친
06:53그런 가장 큰 영향은 어떻게 보세요
06:55사실 우리나라 영화 산업이 이렇게 성장해 온 데는
06:58안성기씨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고 생각을 들고요
07:01이런 말이 있습니다
07:02안성기씨는 거지부터 소매치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07:07가리지 않고 모든 역할을 하면서
07:09국민들이 보고 싶은 역할들 또 내용들을 많이 보여줬다라는 거죠
07:13사극에서부터 현대극까지도
07:15그렇기 때문에 저는 페르소나라는 단어를 쓰는데
07:18그렇지 않고 저는 국민들을 위한 서번티였다
07:21봉사자였다 이런 말씀을 드리겠고
07:23그래서 다치 우리가 좀 유명해지거나 셀럽이 되게 되면
07:26그 정신을 잊잖아요
07:28그런데 안성기씨는 끝까지 영화인
07:30또 국민들을 위한 작품 활동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줬기 때문에
07:33영화인 활동 그리고 사회적 참여
07:35그리고 우리 어떤 K커텐치의 밑바탕
07:38그것을 위한 정신이 무엇인지를
07:40온몸으로 잘 보여주셨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07:42네 알겠습니다
07:43지금까지 김원식 대중문화평론가와 함께
07:45안성기씨의 생애에 대해서 좀 짚어봤습니다
07:48고맙습니다
07:49고맙습니다
07:50고맙습니다
07:51고맙습니다
07:52고맙습니다
07:53고맙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