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문화 인터뷰 시간입니다.
00:04고래사냥, 피리 부는 사나이, 그리고 세시봉.
00:08이렇게만 들어도 떠오르는 얼굴이 있죠.
00:11송창식은 자신의 노래 대부분을 직접 작사, 작곡하며
00:157, 80년대 시대를 앞서간 명곡들로 큰 사랑을 받았는데요.
00:21어느새 여든을 바라보는 노가수는 이제 운명처럼 만났던 세시봉의 마지막 투어를 하는 중입니다.
00:28하루도 연습을 거르지 않는다는 영원한 가객 송창식 바로 만나봅니다.
00:36해방 이후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00:39인천에서 조부모 손에 자란 송창식에게 음악은 처음부터 사치였습니다.
00:46그러나 재능만큼은 남달랐습니다.
00:49요즘 아이들은 초등학생만 되면 버스타 음계로 노래를 하거든요.
00:53우리 때는 그게 없었어요.
00:55그런데 이제 책에 콩나물떼가 되다가 음계림을 이렇게 써서 논 책들이 많았어요.
01:03도미솔, 도미솔 이렇게 미솔솔, 미솔솔, 랄랄랄랄랄라 이렇게 써놓은 콩나물떼에 쓴 것들이 많았어요.
01:13그러니까 가사로 그걸 하지 않고 그걸 따라서 하다 보니까 음계의 체계가 잡힌 거죠.
01:20혼자 음악을 배운 송창식은 중학교 선생님 손에 이끌려 우연히 나간 콩쿠르에 입상하면서 서울예고로 진학합니다.
01:30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에 학교를 중퇴하고 운명처럼 세시봉을 만납니다.
01:36그 곡을 중퇴하면서 음악은 하긴 해야겠는데 할 방법은 없고 하는 말하자면 좀 마음이 다급하잖아요.
01:54그러다가 세시봉이라는 데를 그냥 어쩌다 가게 된 거예요.
01:59어쩌다 가서 노래를 했는데 거기 있는 세시봉 주인 아저씨가 세시봉이라는 이름을 걸고 그룹을 하나 만들어봐라.
02:08그러면 우리가 바운덩이 줄게.
02:11용형주와 만나 1968년 트윈폴리오로 데뷔했고 다시 솔로로 활동하면서 가요 무대를 평정합니다.
02:19고래사냥, 피리 부는 사나이, 한 번쯤 상하의 노래, 내나라 내결의 등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명곡으로 70년대 대표가수에 자리합니다.
02:33팝송하는 그런 음악 실력 가지고는 내가 가수라고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02:40그래서 거기서 빨리 타이프했어요. 저는 그래가지고 그 다음에는 이제 정식으로 한국 가요를 한 거죠.
02:48그런데 그걸 먼저 있던 다른 사람들이 하는 그 가요의 형식으로 할 수는 없었고.
02:55그러니까 그때까지는 없던 전혀 다른 형태의 대중 가요로 노래를 만들어서 하기 시작한 거죠.
03:06국악을 접목시킨 가나다라, 참새의 하루, 담배가게 아가씨 등으로 총창식은 80년대 이미 레전드 반열에 올랐습니다.
03:16밑바탕에는 음악에 대한 겸손함이 알려 있습니다.
03:19잘하는 게 아니다라는 게 늘 저면에 깔려 있었어요.
03:28왜냐하면 그동안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교육받고 그런 것들을 난 못 받았으니까.
03:35내가 이게 잘하는 건 분명히 아니다.
03:38내가 얼만큼 못하는가를 늘 인지하고 있었다는 거죠.
03:421987년 이후 공식적인 신곡을 내놓고 있지 않지만 송창식의 노래는 수많은 후배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03:54그런 후배들에게 송창식의 부탁은 단 하나입니다.
03:57포기하지 말라는 거죠.
04:01어느 아이가 되면 그전에 가장 자기가 전성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안 될 때가 있다고요.
04:08어느 순간 그때 안 되는 걸 키우면 또 새롭게 잘 되는 것이 생기는데
04:14절대로 포기만 안 하면 그게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이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04:23스스로한테는 큰 성공을 이끌 거라고요.
04:28포기만 안 하면.
04:29우리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04:37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하면서 내일은 더 노래가 잘 될 거라고 믿는다는 송창식.
04:45왜 송창식이 최고의 가수이고 작곡가인지 음악에 대한 자세를 통해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04:55YTN 박순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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