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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안녕하세요. 궤도입니다.
00:17제가 강연을 다니다 보면 과학에 입문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생명공학, 생물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시더라고요.
00:25다른 과학보다 수학의 벽도 낮고 내 삶이랑 제일 근접해 보여서 편하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요.
00:33지난 시즌에서도 진화, 유전에 대한 내용이 반응이 좋았거든요.
00:37그래서 오늘은 생명공학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합니다.
00:551838년, 런던의 한 동물원에는 지금의 푸바오 같은 인기 스타가 있었습니다.
01:03당시엔 인도네시아 쪽에서만 서식했던 동물이라 유럽인에겐 낯선 존재였는데요.
01:08바로 사람의 옷을 입고 사람처럼 행동했던 3살짜리 오랑우탄 제니였습니다.
01:17이 오랑우탄 제니는 지푸라기로 기차를 만들고 사람처럼 스푼을 들고 차를 마셨습니다.
01:23빅토리아 여왕은 그 모습을 보고 불쾌할 정도로 인간을 닮았다며 언짢아했는데요.
01:32그만큼 당시 유럽인들에게 오랑우탄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당혹스러운 존재였습니다.
01:41그런데 이때 동물원을 어슬렁거리던 한 청년은 제니를 오랫동안 유심히 관찰합니다.
01:48그리고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01:50제니는 질투할 때 자신의 치아를 드러내며 짜증내는 소리를 낸다.
01:56제니는 사육사가 사과를 주면 이 세상에서 가장 만족한 표정으로 사과를 먹는다.
02:02이 청년은 오랑우탄도 인간 같은 감정 표현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는데요.
02:10세상을 보는 눈이 어쩐지 남달랐던 이 청년.
02:13인간과 원숭이는 같은 조상에서 나왔다.
02:17모든 생물에겐 공통의 조상이 있다.
02:19고 주장한 이 사람.
02:21바로 찰스 다윈입니다.
02:31찰스 다윈.
02:32정말 훌륭하신 분이죠.
02:35과학에 관심 없어도 다들 다윈은 아시잖아요.
02:39진화론을 주장한 사람.
02:41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쓴 사람.
02:44그런데 대부분 딱 거기까지 아시죠?
02:47다윈은 과학사에서 중요도로 따지면 지금보단 좀 더 알아두시면 좋은 정말 중요한 인물입니다.
02:54우선 찰스 다윈은 영국 사람입니다.
02:581809년 부유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는데요.
03:02가족 이력도 살짝 남다릅니다.
03:05다윈의 할아버지인 이레즈머스 다윈은 성공한 의사였는데요.
03:09진화와 관련된 아이디어를 다윈보다 먼저 책에 쓴 적이 있어요.
03:14아버지도 역시 의사였고요.
03:16명문가인 웨지우드 집안의 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03:19웨지우드는 영국 왕실에도 납품할 만큼 최고급 식기를 만드는 기업이에요.
03:26지금도 여러분께서 백화점에 가시면 볼 수 있습니다.
03:30그 말은 무슨 말이냐?
03:32태어날 때부터 돈 걱정을 별로 할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예요.
03:38금수저입니다. 금수저.
03:40그래서 다윈은 평생 별다른 직업이 없이 연구만 하고 지냈습니다.
03:46그래도 처음엔 직업을 가지려고 했어요.
03:50대대로 의사 집안이다 보니까 아버지는 다윈도 의사가 되길 바랬습니다.
03:56그런데 다윈은 비위가 약했어요.
03:58의대에서 해부 실습할 때 상당히 힘들어했는데요.
04:03그 시대는 마취제가 나오기 전이라 마취 없이 수술하는 걸 보다 뛰쳐나오기도 했습니다.
04:09결국 다윈은 의대를 자퇴합니다.
04:13아버지가 화가 많이 났겠죠?
04:15그래서 이번엔 목사가 되라고 신학대학에 보냅니다.
04:21하지만 다윈은 여기서도 신학보단 다른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04:28다윈은 어릴 때부터 동물이랑 곤충 채집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04:33신학대학에서도 교양과목으로 들은 식물학과 지질학을 훨씬 잘했어요.
04:38교수님들 눈에도 탐나는 인재였습니다.
04:43그렇지만 다윈의 아버지는 여전히 다윈을 못마땅하게 이겼어요.
04:48가족의 수치라고 말할 정도였죠.
04:50그럼 다윈은 아버지의 반대 속에서 어떻게 우리가 아는 그 다윈이 됐을까요?
04:58다윈이 대학을 졸업할 때쯤 다윈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찾아오는데요.
05:03바로 이렇게 생긴 커다란 해군 함선을 타고 몇 년 동안 세계여행을 하면서 자연탐사를 할 수 있는 일을 제안받은 겁니다.
05:14이게 바로 그 유명한 비그로 탐사입니다.
05:16당시의 영국은 전세계 식민지를 두고 있었는데요.
05:22식민지를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면 정확한 지도가 필요했습니다.
05:27그래서 해군 함선이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해안선을 측량하는 작업을 했어요.
05:33비그로도 이런 임무를 맡은 배였던 거죠.
05:37그런데 항해를 몇 년 동안 하려면 외롭잖아요.
05:42얼마나 심심하겠습니까?
05:43그래서 비그로의 선장인 로버트 피치로인은 지적인 말동물을 비그로에 태우고 싶어 했습니다.
05:51옆에서 계속 말해주니까 그냥 심심할 틈이 없는 그런 사람.
05:56크... 제가 왔어야 되는데...
05:59어쨌든 피치로인은 나중에 영국 최초의 기상청장이 될 정도로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분입니다.
06:06같이 갈 사람을 좀 추천해달라고 건너건너 수소문을 했는데요.
06:11마침 다윈을 가르친 교수가 다윈을 추천해줍니다.
06:17그 전부터 과학자들의 세계 여행기에 푹 빠져 있었던 다윈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06:24문제는 이 직책이 무급이었고요.
06:28심지어 항해 경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했다는 겁니다.
06:32현재 기준으로는 한 1, 2억 정도였어요.
06:35다윈의 아버지는 이게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 결사반대합니다.
06:41다행히 다윈의 외삼촌이 아버지를 열심히 설득해줘요.
06:46이렇게 다윈은 아버지의 허락도 받고 여행 경비도 지원을 받는 데 성공합니다.
06:51이야... 이때 못 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06:55정말 많은 게 바뀌었을 것 같은데
06:56어쨌거나 1831년 12월 27일 비글호는 5년에 걸친 항해를 시작합니다.
07:03다윈의 종의 기원에 바탕이 된 역사적인 항해였죠.
07:08비글호는 영국에서 출발해서 대서양을 지나
07:12남아메리카, 갈라파고스 제도, 호주, 인도양, 남아프리카를 거쳐
07:16그야말로 세계 일주를 합니다.
07:18이야... 말만 들으면 럭셔리 크루즈 여행으로 오해하실 수 있는데요.
07:26비글호는 그냥 군함이었습니다.
07:29크루즈가 아니에요.
07:30그리고 관광지가 아닌 빡센 지역을 다녔기 때문에
07:34아주 고된 항해였는데요.
07:36다윈의 키가 180이 넘었는데
07:39다윈이 지내던 선실은 한 평!
07:43한 평 크기의 높이도 1.5m 정도밖에 안 됐습니다.
07:48제대로 설 수도 없는 거죠.
07:50침대도 없었고요.
07:51밥도 거의 통조림으로 때웠습니다.
07:55항해 중에 자연재해를 만나서 표류하는 일도 많았고요.
07:59남아메리카 지역은 야생 그 자체라서
08:01목숨을 걸고 탐사를 했습니다.
08:05이런 난관에도 다윈의 열정은 불타올랐습니다.
08:09다윈은 배가 설 때마다
08:11미지의 땅에서 새로운 생물과 광물을 찾아
08:14부지런히 표본을 채집했습니다.
08:17이렇게 채집한 생물 표본과 뼈, 화석들이 무려 5천 개가 넘었습니다.
08:24더 대단한 건 다윈이 5년간 항해하며 세세한 일지를 썼다는 건데요.
08:29나중에 이걸 바탕으로 책 원고를 만들었을 때
08:33무려 2천 쪽에 달하는 대기록이 나왔습니다.
08:38아니, 항해 중에 뭘 봤길래 이렇게 쓸 말이 많았을까요?
08:42지금부터 다윈이 본 걸 같이 보겠습니다.
08:47그 전에 잠깐!
08:48우리가 알아야 할 게 다윈이 살던 시대의 세계관입니다.
08:51그때 기독교 문화권이었던 유럽에선
08:55대중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자들도 창조론을 믿던 시대였죠.
09:00신이 약 6천 년 전에 지구와 모든 생명체를 만들었고
09:05모든 생물은 지금과 비슷한 모습으로 창조됐다고 믿었죠.
09:11하지만 다윈은 비그로 항해를 하며
09:13창조론에 조금씩 의문을 품게 됩니다.
09:15먼저 다윈은 남미 동쪽의 해변에서
09:19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동물들의 뼈를 찾아내는데요.
09:24하나는 톡소돈이라는 동물이었습니다.
09:27코뿔소의 몸과 하마의 머리
09:30그리고 쥐의 이빨을 한 동물이었는데요.
09:34카피바라와 얼핏 비슷하게 생겼지만
09:36크기가 코끼리만 했습니다.
09:39아주 오래전에 멸종된 동물이었죠.
09:42또 다른 뼈의 정체는 메가테리움이었는데요.
09:46크기가 6미터, 몸무게가 4톤 정도 되는 커다란 동물이었습니다.
09:53이 친구는 나무늘보의 조상인데
09:55이것도 역시 오래전에 멸종된 동물이었죠.
09:59다윈은 톡소돈과 메가테리움의 뼈를 보고
10:02이런 궁금증을 가졌습니다.
10:05신은 왜 큰 동물을 멸종시키고
10:08그거랑 비슷하지만 더 작은 동물로 대체한 걸까?
10:13어? 약간 신선한 질문이죠.
10:16다윈은 몸집 큰 동물이 힘도 더 세고
10:20생존에 유리할 것 같은데
10:21왜 멸종한 건지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10:26그리고 1835년 9월
10:28비글호는 갈라파고스 제도에 도착하는데요.
10:32갈라파고스 제도는 남미 해안에서 800km 이상 떨어진 곳입니다.
10:3912개가 넘는 화산섬으로 이루어진 곳이고요.
10:43육지에서 워낙 떨어져 있다 보니까
10:46희귀한 종들이 많았어요.
10:49이 갈라파고스에 있던 특이한 종들 중에
10:52대표적인 게 코끼리 거북인데요.
10:55길이는 2.4m
10:57몸무게는 약 230kg에 달하는 초대형 거북이었습니다.
11:03느낌이 약간 공룡 같죠?
11:06중요한 점은
11:07이 코끼리 거북이 사는 섬마다
11:10모습이 조금씩 달랐다는 겁니다.
11:13생김새가 다른 건 코끼리 거북뿐만이 아니었어요.
11:18갈라파고스에는 핀치새도 있었는데요.
11:20핀치새도 섬마다 부리의 모양이 달랐습니다.
11:25핀치의 부리 많이 들어보셨죠?
11:28바로 여기 나오는 겁니다.
11:30열매가 많은 섬에서는 부리가 두꺼웠고요.
11:34선인장을 먹이로 하는 섬에서는 부리가 뾰족했어요.
11:39다윈은 이런 갈라파고스의 동물들을 보면서
11:42왜 신은 비슷하지만 차이가 존재하는 수많은 종을 만들었을까?
11:47라는 의문을 품습니다.
11:48그리고 여기엔 신의 의도와는 무관한
11:51자연의 원리가 존재할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되죠.
11:56같은 생물도 환경의 차이로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2:02진화론의 힌트를 얻게 된 거죠.
12:051836년 10월
12:07비글호는 약 5년간의 항해를 마치고
12:10영국으로 돌아옵니다.
12:12배를 타기 전에는
12:13아버지 돈을 겨우 타가지고 항해를 떠난 금쪽이었는데요.
12:17돌아올 땐 말 그대로 금의환향을 합니다.
12:22항해를 하는 동안 수집한 자연 표본을 계속 영국으로 보냈는데
12:26그것 때문에 영국에서 엄청 유명한 박물학자가 된 거예요.
12:31드디어 아버지한테도 인정을 받게 되죠.
12:36다윈은 비글호 항액이라는 책을 새로 냅니다.
12:40이 책이 크게 흥행을 하면서
12:42다윈은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지고
12:45과학계에서도 명성을 쌓게 됩니다.
12:48하지만 우리가 아는 진화론은
12:51이때까지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12:54우선 창조론과 반대되는 주장을
12:57쉽게 발표할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거든요.
13:01거기다 사실 다윈 이전에도
13:03진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13:05근거가 부족해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13:10그래서 다윈은 진화론을 어디에 내놔도
13:13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만들기 위해
13:16아주 긴 시간을 쓰게 됩니다.
13:18이때 다윈에게 커다란 영감을 준 책이 있었는데요.
13:23바로 경제학자 토머스 멜서스가 쓴
13:26유명한 고전, 인구론이라는 책입니다.
13:30이 책에서 멜서스는 인구가 식량보다
13:33훨씬 빨리 늘기 때문에
13:35기근이나 질병, 전쟁 같은 조절 메커니즘이 나타나서
13:40인구를 제한하게 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13:43다윈은 이 책을 보고 무슨 힌트를 얻은 걸까요?
13:47자, 다윈의 생각을 한번 따라가 보겠습니다.
13:52동물은 영토와 먹이, 번식을 위해 경쟁한다.
13:56이 중 자신이 사는 환경에 유리한 특징을 가진 동물이
13:59번식할 기회가 높아진다.
14:02그러면 이 유리한 특징을 다음 세대가 물려받는다.
14:07이건 농부가 더 많은 양털을 얻기 위해
14:10양털이 많은 양들끼리 교배시켜서
14:14몇 세대가 지나면 털이 많은 양들이
14:16훨씬 많아지는 현상이나 마찬가지다.
14:20즉, 자연도 농부처럼 선택을 한다.
14:24뭘?
14:25특정 환경에서 살아남고
14:27번식하기에 유리한 동물을 선택한다.
14:32다윈은 이 과정을 자연선택이라고 불렀습니다.
14:34그리고 진화는 이 방법을 통해 이뤄진다고 믿었죠.
14:40이런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종의의 기원에서 핵심이 되는 내용입니다.
14:47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워서 상식으로 알지만
14:50그 당시엔 완전히 새로운 생각이었죠.
14:54그래서 다윈은 20년 가까이 이 책을 출판할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14:58이 책의 원고를 책장에 끼워놓고
15:01자신이 사망한 뒤에 출판해달라는 메모를 써뒀을 정도니까
15:06얼마나 고민했는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15:10그런데 결국 다윈은 생전의 종의의 기원을 세상에 내놓게 됩니다.
15:17왜일까요?
15:18바로 한 장의 편지 때문이었습니다.
15:211858년 다윈은 인도네시아 말루쿠 제도에서 온 한 통의 편지를 받습니다.
15:28편지의 주인공은 엘프레드 러셀 월리스.
15:32다윈보다 14살 어린 영국인이었습니다.
15:36월리스는 다윈처럼 직접 탐사를 떠나 생생한 자료를 얻은 사람이었고
15:42다윈을 굉장히 존경했는데요.
15:45자신이 쓴 논문이 출간할 가치가 있는지 물어보려고
15:49다윈에게 편지를 썼던 겁니다.
15:52그런데 편지를 받은 다윈은 깜짝 놀라고 맙니다.
15:56자기가 쓰고 있던 종의 기원의 요약본 같았거든요.
16:01다윈이 진화론을 오래전부터 연구해온 걸 알고 있던 친한 과학자들은
16:06이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다윈 구출 작전에 들어갑니다.
16:11우선 학회에 발표할 논문을 급조했어요.
16:14그리고 1858년 학회에 이 논문을 다윈과 월리스 두 사람의 이름으로 기습 발표를 합니다.
16:24이 사건 이후 다윈은 이제 출간을 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16:29그래서 서둘러 20년간의 연구를 정리해 약 500쪽의 원고를 완성했어요.
16:371859년 11월, 마침내 종의 기원이 세상에 나옵니다.
16:43종의 기원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어요.
16:46그런데 어마어마한 파장을 몰고 옵니다.
16:51진화론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증거들을 내놨는데도
16:54종교계 뿐만 아니라 많은 과학자들에게도 격하게 비판을 받았습니다.
17:01종의 기원에는 자연선택만큼이나 논쟁적인 내용이 또 있었거든요.
17:06바로 모든 생명체가 공통된 조상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던 겁니다.
17:12진화라는 게 공통의 조상에서 나무가 가지를 갈라져 나오듯이 벌어졌다는 이야기였죠.
17:21다윈은 이걸 생명의 나무라는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17:26생명의 나무에 따르면 인간과 침팬지는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생명체들인데요.
17:33당시 사람들은 이걸 왜곡해서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공격했습니다.
17:42얌마, 그럼 원숭이가 사람이 있다는 거냐?
17:46딱 봐도 화력이 엄청난 질문이죠.
17:49이 문제로 1860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토론이 펼쳐집니다.
17:55아쉽게도 다윈은 건강 이슈로 참석하지 못했고요.
17:58다윈을 지지했던 유명 생물학자 토머스 억슬리가 토론자로 나왔습니다.
18:05진화론 반대파로는 영국 성공회의 고위성직자인 윌버포스 주교가 나왔어요.
18:12먼저 윌버포스 주교가 선빵을 날립니다.
18:16당신의 할아버지 선조가 원숭이요?
18:19아니면 할머니 선조가 원숭이요?
18:21어느 쪽이요?
18:24헉슬리는 정말 이렇게 심각한 비난, 공격, 악플 받고 이렇게 받아칩니다.
18:31신이 선물한 지적 능력을 가지고도 진실을 왜곡하는 인간을 할아버지로 삼느니
18:38차라리 정직한 원숭이의 후손이 되는 게 낫겠소.
18:44이 토론회 이후로도 논쟁은 계속됐고요.
18:48다윈은 11년 뒤
18:49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이라는 책을 내서
18:53인간이 유인원에서 진화했다는 왜곡의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18:58지금까지 종의 기원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19:02종의 기원은 결국 왜 그렇게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책이 된 걸까요?
19:08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중요한 점은
19:11다윈이 인간의 위치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놨다는 겁니다.
19:15그 전까지 사람들은 인간이 자연계의 최상위층에 있는 아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거든요.
19:24그런데 다윈이 제시한 생명의 나무에 따르면
19:26인간은 그저 환경에 맞게 살아남은 현존하는 수많은 종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19:36코페레니크스의 지동설이 지구가 우주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알려준 것처럼
19:41다윈은 인간이 자연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직시하게 해준 거예요.
19:47그래서 종의 기원이 그토록 혁명적이었던 겁니다.
19:52그런데요.
19:53종의 기원은 위대한 책이지만
19:55다윈의 이론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19:59예를 들어
20:00기린마다 목의 길이가 다 다른 이유
20:02성인인 인간의 키가 다 다른 이유
20:05이런 걸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어요.
20:08이건 유전자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데요.
20:11같은 종이어도 유전자가 조금씩 달라서 그런 거예요.
20:15그런데 다윈의 시대에는 아직 유전자라는 개념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20:20이걸 과학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20:25다윈의 진화론에서 부족했던 퍼즐들은
20:27후대의 과학자들 덕분에 하나둘씩 맞춰집니다.
20:311952년
20:32DNA가 유전물질이라는 것이 밝혀졌고요.
20:37이어서 1953년
20:38DNA가 이중 나선 구조라는 걸 밝혀내면서
20:42유전자가 후대에 전해지는 원리까지 알게 되죠.
20:47그런데 말입니다.
20:49진화의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발견한
20:51이 유전자가 엄청난 열쇠가 되어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게 됩니다.
20:58바로 인류가 유전의 과정, 진화에 인위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거죠.
21:07유전자 편집 기술,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서 말이죠.
21:12조금 현대로 와보겠습니다.
21:142020년 10월 7일
21:16두 명의 과학자가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는데요.
21:20이들의 공로는 크리스퍼 캐스나인이라는 유전자 가위를 개발한 거였습니다.
21:27이 두 명의 과학자 덕분에 인류는 과거에 멸종된 종을 복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됐고요.
21:34반대로 현존하는 종을 멸종시킬 수도 있게 됐습니다.
21:39유니콘처럼 판타지 속에 존재하는 동물도 만들 수 있게 됐죠.
21:45신의 영역이었던 생명의 설계에 도전한 두 사람.
21:48오늘의 두 번째 주인공, 제니퍼 다우드나와 에마니엘 샤르팡트입니다.
22:01조금 생소하실 수 있는 이 두 분에 대해 설명을 드리면요.
22:05제니퍼 다우드나는 1964년생, 미국의 생물화학자입니다.
22:10지금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교수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현역 중의 형형입니다.
22:18에마니엘 샤르팡트에는 1968년생이고 프랑스의 미생물학자입니다.
22:24지금은 독일 막스플랑크 감염 생물학 연구소의 교수로 계시죠.
22:29정정하게 살아계신 과학자 두 분을 다루니까 굉장히 기분이 새로운데요.
22:35이 두 분이 처음 만난 건 2011년입니다.
22:39서로 같은 연구 목표를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돼서 공동 연구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22:45그렇게 두 사람은 만난 지 14개월 만에 새로운 유전자 가위를 발견해서 사이언스지에 논문을 실습니다.
22:53그리고 8년 동안 기술 검증 기간을 거쳐 2020년에 노벨상을 받게 된 거죠.
23:01자 그럼 유전자 가위가 뭔지 말씀드려볼게요.
23:05간혹 가다가 이게 진짜 우리가 아는 가위처럼 생긴 거예요?
23:09이거 자르는 거예요? 라고 묻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23:12이거 아닙니다.
23:14유전자 가위는 단백질로 구성된 효소의 일종이에요.
23:18그런데 이 효소가 특정 DNA를 잘라낼 수가 있어서 그 기능이 꼭 가위랑 비슷하니까 유전자 가위라고 부르는 겁니다.
23:30그럼 유전자 가위가 정확히 뭘 자르느냐?
23:35여러분 학교 다닐 때 유전자, DNA 배우셨죠?
23:40유전자는요 DNA가 의미를 가지고 늘어선 배열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23:45예를 들어 가나다라, 과학, 마바사, 궤도, 자차, 카타라는 문장이 있다고 칩시다.
23:53여기서 의미를 가지는 단어는 궤도와 과학 이 둘밖에 없습니다.
23:58글자 하나하나가 DNA라면 궤도와 과학이 유전자에 해당되는 거예요.
24:04이 문장에서 과학이라는 단어를 궤학이나 기학으로 바꾸면 뜻이 달라지거나 의미가 없어지죠?
24:12그것처럼 어떤 유전자를 구성하는 DNA의 배열이 바뀌면 그 유전자는 기능을 잃거나 오히려 해로워지기도 합니다.
24:22생물체에게 어떤 질병이 생기게 될 수도 있는 거죠.
24:26그럼 이렇게 문제가 생긴 유전자를 잘라내고 다른 정상적인 유전자를 그 자리에 붙이면 질병을 치료할 수 있겠죠?
24:35그래서 유전자 가위는 쉽게 말하면 어떤 블록의 조합이 있는데 거기서 특정 블록을 찾아서 원하는 블록으로 교체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24:47그런데 이 유전자 가위라는 건 사실 제니퍼 다우드나랑 에마니엘 샤르팡트에가 처음 만든 건 아닙니다.
24:56이분들이 만든 건 무려 3세대 유전자 가위예요.
25:013세대? 그럼 당연히 뭐가 있죠?
25:041세대, 2세대가 있겠죠.
25:06먼저 1세대 유전자 가위는 1996년에 개발되는데요.
25:11징크핑거 뉴클리아제라고 합니다.
25:13그 다음에 나온 게 2009년에 나온 2세대 유전자 가위 탈렌입니다.
25:182012년에 나온 게 3세대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 캐스난입니다.
25:24기존 유전자 가위가 가졌던 아쉬운 점을 모두 제거한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유전자 가위인데요.
25:32이름이 좀 복잡하죠?
25:34크리스퍼는 박테리아 미생물이 갖고 있는 면역체계인데요.
25:38이 원리를 활용해서 유전자 가위를 만든 거예요.
25:43박테리아가 어떻게 면역작용을 하냐면요.
25:46자신의 세포 안으로 들어온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인식해서
25:49효소로 잘라서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킵니다.
26:04퀘스나인은 단백질 효소예요.
26:07얘가 DNA를 자르는 거죠.
26:113세대 유전자 가위는 이 원리를 이용해서
26:14우리가 바꾸고 싶은 타깃 유전자만 인식하도록 했습니다.
26:20자, 그런데 왜 1세대, 2세대는 노벨상을 못 받고 3세대만 노벨상을 받았을까요?
26:26물론 노벨상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26:32일단 3세대 유전자 가위가 1, 2세대에 비해서 정확성이 굉장히 높아요.
26:371, 2세대는 목표 지점이 아니라 다른 지점을 자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는데요.
26:44문제 없는 부분을 자르면 안 되잖아요.
26:47그런데 3세대는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무려 4조 4천만 분의 1밖에 안 됩니다.
26:56거기다가 3세대 가위는 시간과 비용도 획기적으로 낮췄어요.
27:011세대 유전자 가위로 유전자 편집을 하려면 최소 약 5천 달러의 비용이 들었는데요.
27:083세대는 똑같은 일을 하는데 30달러밖에 안 됩니다.
27:12비용 차이가 어마어마한 거예요.
27:15그리고 1세대 유전자 가위로 특정 유전자를 제거한 생쥐를 만드는데 최소 1년 정도 걸렸다면
27:233세대는 2개월 안에 가능합니다.
27:25이렇게 유전자를 편집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과 노력을 획기적으로 줄여줬기 때문에
27:333세대 유전자 가위가 노벨상을 받게 됩니다.
27:37그럼 3세대 유전자 가위가 세상에 나오면서 뭘 할 수 있게 됐을까요?
27:44우선 굉장히 논란이 많은 부분인데요.
27:47이론적으로 맞춤형 아기를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27:51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배아 상태에서 유전자를 편집해서 원하는 유전자를 가진 인간을 만들 수 있게 된 거예요.
28:01처음 설계도가 하나 있을 때 이거를 수정하면 그 설계도가 쫙 복제되면서
28:06이제 온몸이 전부 그 설계도대로 만들어지겠죠.
28:11그러면 똑똑하고 병회도 안 걸리고 각종 유전적인 장점을 가진 아이를 만들 수 있으니까
28:17이게 좋은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28:22긍정적으로만 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28:25여러분, 가타카라는 영화 보시면요.
28:28빈부격차로 인해서 유전자 격차가 생기는 걸 볼 수가 있어요.
28:33유전자 때문에 차별받는 세상이 된 거죠.
28:36일단 유전자 가위로 맞춤형 아기를 만드는 건
28:40여러 가지 윤리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28:43전 세계적으로 허용이 되지 않습니다.
28:48그런데 2018년에 이런 유전자 편집 아기를 만들어낸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28:55중국의 허젠쿠이 교수였는데요.
28:58남편이 에이즈에 걸린 부부가 있었는데
29:01태어날 아이가 에이즈에 걸리지 않도록 유전자를 교정한 겁니다.
29:07이렇게 해서 실제로 나나와 루루라는 쌍둥이 아이가 태어났어요.
29:13이걸 몰래 해도 문제인데 발표까지 합니다.
29:18허젠쿠이는 생명윤리를 위반했다는 비난을 전 세계적으로 받았고
29:23중국 정부는 불법 의료 행위로 징역 3년에 6억 원 정도의 벌금을 선고했습니다.
29:28이렇게 금단의 영역 말고 실제로 가능한 영역도 많은데요.
29:33여러분 요즘 디카페인 커피 많이 드시죠?
29:36디카페인 커피콩은 원래 화학적인 방법으로 만듭니다.
29:41주로 커피콩을 물에 담가서 화학약품으로 카페인을 제거하는 방식인데요.
29:47이렇게 하면 원래 커피의 풍미를 지키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29:52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거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지만
29:54그래도 커피 에어가분들은 맛을 미세하게 다르게 느낄 겁니다.
30:00그런데 크리스포 유전자 가위 덕분에 훨씬 더 일반 커피에 가까운 디카페인 커피를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30:09아예 카페인을 만드는 유전자를 제거하는 거죠.
30:13과학자들은 유전자 가위로 멸종된 동물을 복원하는 것에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30:19바로 4천 년 전에 멸종된 털 메머드인데요.
30:23메머드는 긴 털로 뒤덮인 거대한 코끼리로 영하 40도의 추위를 견뎌낼 수 있는 동물입니다.
30:30그럼 어떻게 복원하냐?
30:33메머드의 특징적인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를 통해서 아시아 코끼리 유전자에 집어넣겠다는 건데요.
30:40현존하는 동물 중에 아시아 코끼리가 유전적으로 메머드랑 가장 가깝거든요.
30:462010년대 중반부터 도전 중인데 아직 성공하진 못했습니다.
30:52미국의 한 기업에서는 2028년을 목표로 시도 중인데요.
30:55생태계 교란에 대한 우려로 여러 관점이 공존하고 있기는 합니다.
31:01그래도 영화처럼 더 먼 미래에는 공룡을 복원하는 것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31:08그렇지만 유전자 가위의 역할로 제일 중요한 건 유전병, 난치병을 치료하는 겁니다.
31:15유전병 중에 낫적혈구 병이라는 게 있는데요.
31:18우리나라에는 잘 없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이 병에 걸리면 20세 이전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요.
31:24다행히 2023년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장착한 신약이 영국과 미국에서 승인을 받았습니다.
31:34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거죠.
31:363세대 유전자 가위가 나온 지 약 10년 만에 꽤 많은 성과를 거뒀죠.
31:42하지만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게 영광만 있는 건 아닙니다.
31:47원자폭탄을 개발하고 후회했던 오페나이머처럼 이분들도 윤리적인 고민에 빠집니다.
31:53환자를 치료하는 걸 기대하고 만들었는데 비도덕적인 목적을 가지고 인간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것도 자칫하면 가능해지는 겁니다.
32:02다우드나는 이런 상황을 걱정하며 본인의 책에 이렇게 썼습니다.
32:08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걸까?
32:10나는 흡사 프랑켄슈타인 박사라도 된 기분이었다.
32:14나는 괴물을 창조한 걸까?
32:16결국 유전자 가위 개발에 책임을 느낀 다우드나는 2015년 12월 국제인간 유전자 편집회의를 소집합니다.
32:27이 회의에서 유전자가 교정된 아이를 출산하게 하는 행위는 당분간 금지되어야 한다는 성명이 발표됐죠.
32:34오늘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유전자 가위까지 살펴봤는데요.
32:39원래 진화라는 건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흐름이었다면
32:45이제 우리는 인간이 아주 짧은 시간에 진화와 유사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32:53과연 인류는 이 유니적인 진화를 책임질 수 있을까?
32:56여러분도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33:01그럼 다음 시간에는 전기혁명의 두 축이자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밝힌 두 사람을 만나보겠습니다.
33:09지금까지 궤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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