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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조태현 앵커, 엄지민 앵커
■ 출연 : 하재근 문화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START]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민 아버지'로 사랑받은 배우 최불암 씨가 오늘 영원한 안식에 듭니다. 고인이 우리 곁에 남긴 발자취를 하재근 문화평론가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잠시 뒤인 오전 7시 40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이 엄수된다고 하는데요. 오늘 장례 절차 어떻게 진행됩니까?

[하재근]
말씀하신 것처럼 7시 40분에 서울아산병원에서 발인식이 엄수되고 그 이후에 오전 9시에 여의도성당으로 가서 장례미사가 열리게 됩니다. 오전 10시 40분께 고인의 유언대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본부에 운구행렬이 가서 마지막으로 고별행사를 치르게 되고 그 이후에 경기도 파주에 있는 장지로 이동하게 됩니다.


오전 9시에 장례미사를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하고요. 또 팝페라가수 임형주는 아베 마리아 노래를 부른다고 하는데, 두 분과 고인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하재근]
염수정 추기경이 2018년에 최불암 씨한테 세례를 해 준 분이고 또 최불암 씨가 세상을 떠나기 9일 전에 병석에서 병자성사가 진행됐는데 그때도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을 했던 그런 인연이 있습니다. 또 임형주 씨 같은 경우 생전에 최불암 씨 부부하고 굉장히 가까웠던 사이였고 최불암 씨한테 이모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 인연으로 이번에 장례미사 때 아베마리아를 부르게 된 것인데. 최불암 씨가 생전에 세례명이 프란치스코였거든요. 어려운 사람들을 섬기겠다는 의미인데. 임형주 씨가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서 아베마리아를 불렀었거든요. 이번에 또 다른 프란치스코 최불암 씨 가는 길에 아베마리아를 부르게 됐습니다.


성인으로서 또 하나의 인연이 있는 것 같은데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했었고요. 이번 빈소에는 많은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는데요. 고인이 한국 대중문화사에 어떤 족적을 남겼다고 보십니까?

[하재근]
최불암 씨가 우리나라의 개발 시대, 고도성장기를 대표하는 배우 중의 한 명이었다고 할 수 있겠고 그 시대를 계속 연기하시면서 대부분의 경우에 본인의 나이보다 훨씬 위의 역할을 맡았거든요. 계속 어른이었던 거예요,... (중략)

YTN 정선화 (jungsh@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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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국민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배우 최불암씨가 오늘 영원한 안식이 됩니다.
00:06고인이 우리 곁에 남긴 발조치를 하재근 문화평론가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00:10어서오세요.
00:11어서오십시오.
00:13참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잠시 뒤 오전 7시 40분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이 엄수된다고 하는데요.
00:21오늘 장례 절차 어떻게 진행됩니까?
00:23말씀하신 것처럼 7시 40분에 서울 아산병원에서 발인식이 엄수가 되고 그 이후에 오전 9시에 여의도 성당으로 가서 장례 미사가 열리게 됩니다.
00:34그리고 오전 10시 40분께 고인의 유언대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본부에 거기에 운구행렬이 가서 마지막으로 고별 행사를 치르게 되고 그 이후에 경기도
00:45파주에 있는 장지로 이동하게 됩니다.
00:48오전 9시에 장례 미사를 염수정 추기경에 집전을 하고요.
00:51또 파파야 가수 임영주 씨가 아베 마리아 노래를 부른다고 하는데 이 두 분과 고인은 어떤 인연이 있습니까?
00:57염수정 추기경이 2018년에 최불암 씨한테 세례를 해준 바로 그분이고 또 최불암 씨가 세상을 떠나기 9일 전에 병석에서 병자 성사가 진행이
01:09됐는데 그때도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을 했던 그러한 인연이 있습니다.
01:13또 임영주 씨 같은 경우에는 생전에 최불암 씨 부부하고 굉장히 가까웠던 사이였고 최불암 씨한테 이모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01:22그 인연으로 이번에 장례 미사 때 아베 마리아를 부르게 된 것인데 최불암 씨가 생전에 세례명이 프란치스코였었거든요.
01:30어려운 사람들을 섬기겠다는 의미인데 이명주 씨가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서 아베 마리아를 불렀었거든요.
01:39이번에 또 다른 프란치스코 최불암 씨 또 가는 길에 아베 마리아를 부르게 됐습니다.
01:44프란치스코 성인으로서 또 하나의 인연이 있는 것 같은데요.
01:48독실한 가톨릭 신자의 시도 했었고요.
01:51고인이 이번 빈소에는 많은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는데요.
01:56고인이 한국 대중문화사에 어떤 족적을 남겼다 이렇게 보십니까?
02:00최불암 씨가 우리나라의 개발 시대 고도 성장기를 대표하는 배우 중에 한 명이었다라고 할 수가 있겠고
02:08그리고 그 시대를 계속 연기를 하시면서 대부분의 경우에 본인의 나이보다 훨씬 위인 역할을 맡았거든요.
02:17계속 어른이었던 수십 년 동안.
02:19그러면서 한국인의 머릿속에 사회적인 어떤 어른의 대표 이미지로 하나의 표상으로 그렇게 자리를 잡은 분이었고
02:28특히 이순재 씨와 더불어서 완전히 국민 아버지였다라고 할 수가 있는데
02:32이순재 씨가 좀 더 엄격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02:35그래서 이순재 씨가 약간 국민 가부장의 느낌이 있었다면
02:38최불암 씨는 좀 더 따뜻한 아버지의 느낌 그렇게 두 분이 한국인의 머릿속에 남아있고
02:45그러면서 특히 최불암 씨가 서민들의 애환을 대변해주고 위로해주는 그러한 국민 배우였다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02:53정말 많은 작품들을 하셨잖아요.
02:55그중에 대표작 꼽을 수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02:58대표작은 누구나 아시다시피 수사반장 전월기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03:02수사반장이 그 극주에서 나왔던 얘기가 빌딩이 높아질수록 그림자가 길어진다였거든요.
03:10그러니까 빌딩을 보는 게 아니라 그 빌딩의 화려한 면에 가려진 그림자 속에 가려진 서민들의 아픔을 보겠다라는 게 프로그램의 모터였고
03:19그걸 대변하는 게 박 반장, 최불암 씨가 맡았던 역할이었거든요.
03:24이게 국민들한테 굉장히 큰 감동을 주면서 당시에 시청률은 70% 이상이 나오고
03:29박정희 대통령 부부부터 시작해서 온 국민이 다 프로그램을 봤던 그러한 프로그램이었고
03:35또 1980년부터 시작된 전원일기는 우리나라의 농촌을 대변하면서
03:40우리나라 성장기에 수많은 국민들이 농촌, 고향을 떠나서 도시로 갔거든요.
03:46항상 고향을 그리워했거든요.
03:47전원일기가 바로 국민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줬던 그런 프로그램이고
03:53정주영 회장이 그렇게 또 전원일기를 조였다고 합니다.
03:56그래서 정주영 회장이 최불암 씨한테 지게 매는 법도 가르쳐준 적도 있고
04:01다 출연시켜달라고 해서 원래 전원일기 출연도 예정돼 있었는데
04:05현대거래 임원들이 결사반대여서 출연은 백지화됐다고 하지만
04:10어쨌든 그야말로 둘 다 한국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이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04:15많이 서운하셨을 것 같은데
04:17정 회장님은 워낙 또 어려운 유년기를 보내셨기 때문에
04:20자기 고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게 웃음소리라든지
04:25어떤 말씀하신 것 같은 아버지 같은 연기 톤이라든지 이런 게 있을 텐데
04:29연기 방식, 어떤 차별성이 있었습니까?
04:32최불암 씨의 연기가 열정이 엄청났습니다.
04:35배우로서의 열정이.
04:37그러면서 그 역할에 깊게 몰입해 들어가는 연기였거든요.
04:41그래서 수사 반장 찍을 때는 그냥 형사처럼, 경찰처럼 실제로 이렇게 살았다는 거예요.
04:47언제나 그랬다.
04:48완전히 몰입을 해서.
04:49그래서 최불암 씨가 내 성격도 바뀌었다.
04:51원래 젊었을 때는 내가 약간 한량이었는데
04:55수사 반장을 연기하면서 몰입을 하다 보니까
04:57진짜 박 반장 같은 성격이 내가 돼버렸다라고 이야기를 했었고
05:02디테일이 또 엄청났거든요.
05:04우리가 디테일 잘 챙긴다고 봉저로 감독을 봉태일이라고 하는데
05:08최불암 씨도 그에 못지않게 하나하나의 설정을 다 챙기면서 연기를 했다고 합니다.
05:14그러면서 연출자의 영역까지
05:18대본만 난 잘 소화하면 된다 이게 아니라
05:21프로그램을 어떻게 지금 이끌고 나갈 것인가
05:24그런 걸 항상 생각을 했다고 하는데
05:25그래서 예를 들어서 전원일기에서
05:28아랫목에 최불암 씨가 앉아 있는데
05:31옛날 집들은 보면 구둘장이 있고 아랫목이 있고 그러면
05:35아랫목이 까맣게 타 있었거든요. 불을 떼다 보면
05:39그래서 최불암 씨가 그 방의 세트에 아랫목을 본인이 까맣게 칠을 하기도 했었고
05:45그리고 또 후배들 연기를 지도한다든지
05:48그리고 또 본인의 스타일도 수사 반장 처음에는
05:52권총 들고 나오고 수갑 들고 나오고 이런 반장 역할이었는데
05:55본인이 스타일을 다 바꿨다는 거예요. 권총 수갑 없애고
06:00트렌치코트 차림에 보다 따뜻한 느낌으로
06:04그렇게 연출까지도 생각하는 그런 연기였다라는 게
06:08최불암 씨 연기의 특징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06:10조금 전에 봉준호 감독 말씀해 주셨는데
06:12봉준호 감독의 영화 중에 살인의 추억 있잖아요.
06:15그 영화에 보면 수사 반장을 관람하는 그런 장면이 나오거든요.
06:19봉준호 감독이 또 최불암 배우를 굉장히 좋아했었나 보죠?
06:22그렇죠. 그러니까 최불암 씨하고 수사 반장을 안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06:26전 국민이 다 보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06:29그래서 봉준호 감독이 수사 반장의 팬이다 보니까
06:32수사 반장에서 악역으로 그렇게 많이 나왔던 변이봉 씨
06:36이 변이봉 씨를 다시 또 캐스팅해서
06:39변이봉 씨한테 제2의 전성기를 만들어드리기도 했었고
06:42수많은 수사 반장 키드들이 나중에 나이를 먹어서
06:45우리나라 연출자가 되면서 요즘에 장름을 전성시대거든요.
06:50그러니까 수사 반장 키드들이 나이 먹어서 장름을 지금 만들고 있는 거죠.
06:55이런 연기 방식 때문에 동료들도 또 후배들도 많은 감명을 받았는데
06:58빈소에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았잖아요.
07:01동료와 후배들이 기억하는 고 최불암 배우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07:06동료와 후배들이 기억하는 모습이
07:08작품 속의 캐릭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07:12그러니까 이게 캐릭터하고 실제 모습이 다른 분들도 많거든요.
07:17그런데 최불암 씨는 거의 똑같았다는 거예요.
07:19그래서 실제로도 작품 속 캐릭터처럼 굉장히 인자하고
07:23그러면서도 엄격할 때는 엄격하고
07:25후배들이 잘못하면 확실하게 그런 지적을 하면서도
07:28후배들의 연기를 또 따뜻하게 이끌어주는
07:31그런 선배이고 동료였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07:34구체적으로 많은 빈소를 찾았던 분들이
07:37김혜자 씨가 22년간 함께한 동료이자 가족 같은 인연이었다라고 이야기했고
07:42남은희 씨가 함께한 추억을 간직할 동료다.
07:46유인천 씨가 평소에도 아버지라고 불렀던 선배였다.
07:49차인표 씨는 후배를 존중한 큰 어른이었다.
07:52김혜수 씨는 부모처럼 따랐던 존재였다.
07:55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07:56많은 울림이 있는 분이었던 것 같은데요.
07:59우리에게도 익숙했던 게
08:00제가 어렸을 때 최불암 시리즈라고
08:02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잖아요.
08:04어떻게 보면 기분이 나쁘실 법도 한데
08:06방송에 나와서 그걸 본인이 직접 연기하시기도 하더라고요.
08:10좀 소탈한 면이 있으셨나 봐요.
08:12그렇습니다.
08:13그러니까 이제 최불암 씨가 국민들하고
08:14굉장히 신세대 젊은 사람들하고도 친밀해진 계기가
08:1790년대 최불암 시리즈인데
08:19그 90년대 최불암 시리즈가 나오게 된 게
08:22이제 90년대 신세대가 막 나타났거든요.
08:25그래서 9세대하고의 단절, 전복 이런 걸
08:30신세대가 당시 90년대에 하게 되는데
08:32그때 청소년들이 보기에
08:34기성세대 어른의 대표가
08:37최불암 씨를 인식이 됐던 거예요.
08:39왜냐하면 워낙 그분이 비중이 크니까
08:41그래서 이제 10대 청소년들이
08:44그 기성세대 대표격인 최불암 씨를
08:47희화화하는 곳에서 굉장히 통쾌감을 느끼고
08:50재미를 느꼈는데
08:51그때 최불암 씨가 자기 자신이
08:53그렇게 웃음거리가 되는 곳에 대해서
08:54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고
08:56청소년들을 위해서 저작권을 풀어준 겁니다.
08:59그래서 여기저기서 최불암 씨를 내서
09:01책도 내고 최불암 씨를 인기를 끌게 된 건데
09:04또 한편으로는 또 최불암 씨가
09:06파 하고 웃는 모습
09:09그게 이제 전원일기에서
09:10큰 소리로 웃으면 어머니한테 폐를 끼칠까봐
09:14큰 소리를 웃지 못하고
09:15조용히 숨죽이면서 웃었던 웃음소리가
09:17파 하고 이렇게 숨만 쉬는 웃음소리가 된 건데
09:20그게 하나의 웃음코드가
09:22웃음코드로 80, 90년대부터 소비가 되면서
09:25최불암 시리즈 파 하는 웃음
09:27이런 걸 통해서 국민 웃음에 또 소재가 되니까
09:30그러면서 국민 아버지 겸
09:32동시에 또 굉장히 친밀한 우리의 이웃
09:35그러한 성격으로
09:36신세대한테도 깊게 자리매김하게 됐습니다.
09:40최불암 배우 잠시 뒤 한 10분 뒤쯤이면
09:43서울 아산병원에서 장례식장에서 발인이 엄수되는데요.
09:47고인의 명복을 빌고요.
09:48저희가 그 현장도 함께 전달해드리겠습니다.
09:51지금까지 하재근 문화평론가와 함께했습니다.
09:53고맙습니다.
09:5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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