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국민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배우 최불암씨가 오늘 영원한 안식이 됩니다.
00:06고인이 우리 곁에 남긴 발조치를 하재근 문화평론가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00:10어서오세요.
00:11어서오십시오.
00:13참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잠시 뒤 오전 7시 40분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이 엄수된다고 하는데요.
00:21오늘 장례 절차 어떻게 진행됩니까?
00:23말씀하신 것처럼 7시 40분에 서울 아산병원에서 발인식이 엄수가 되고 그 이후에 오전 9시에 여의도 성당으로 가서 장례 미사가 열리게 됩니다.
00:34그리고 오전 10시 40분께 고인의 유언대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본부에 거기에 운구행렬이 가서 마지막으로 고별 행사를 치르게 되고 그 이후에 경기도
00:45파주에 있는 장지로 이동하게 됩니다.
00:48오전 9시에 장례 미사를 염수정 추기경에 집전을 하고요.
00:51또 파파야 가수 임영주 씨가 아베 마리아 노래를 부른다고 하는데 이 두 분과 고인은 어떤 인연이 있습니까?
00:57염수정 추기경이 2018년에 최불암 씨한테 세례를 해준 바로 그분이고 또 최불암 씨가 세상을 떠나기 9일 전에 병석에서 병자 성사가 진행이
01:09됐는데 그때도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을 했던 그러한 인연이 있습니다.
01:13또 임영주 씨 같은 경우에는 생전에 최불암 씨 부부하고 굉장히 가까웠던 사이였고 최불암 씨한테 이모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01:22그 인연으로 이번에 장례 미사 때 아베 마리아를 부르게 된 것인데 최불암 씨가 생전에 세례명이 프란치스코였었거든요.
01:30어려운 사람들을 섬기겠다는 의미인데 이명주 씨가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서 아베 마리아를 불렀었거든요.
01:39이번에 또 다른 프란치스코 최불암 씨 또 가는 길에 아베 마리아를 부르게 됐습니다.
01:44프란치스코 성인으로서 또 하나의 인연이 있는 것 같은데요.
01:48독실한 가톨릭 신자의 시도 했었고요.
01:51고인이 이번 빈소에는 많은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는데요.
01:56고인이 한국 대중문화사에 어떤 족적을 남겼다 이렇게 보십니까?
02:00최불암 씨가 우리나라의 개발 시대 고도 성장기를 대표하는 배우 중에 한 명이었다라고 할 수가 있겠고
02:08그리고 그 시대를 계속 연기를 하시면서 대부분의 경우에 본인의 나이보다 훨씬 위인 역할을 맡았거든요.
02:17계속 어른이었던 수십 년 동안.
02:19그러면서 한국인의 머릿속에 사회적인 어떤 어른의 대표 이미지로 하나의 표상으로 그렇게 자리를 잡은 분이었고
02:28특히 이순재 씨와 더불어서 완전히 국민 아버지였다라고 할 수가 있는데
02:32이순재 씨가 좀 더 엄격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02:35그래서 이순재 씨가 약간 국민 가부장의 느낌이 있었다면
02:38최불암 씨는 좀 더 따뜻한 아버지의 느낌 그렇게 두 분이 한국인의 머릿속에 남아있고
02:45그러면서 특히 최불암 씨가 서민들의 애환을 대변해주고 위로해주는 그러한 국민 배우였다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02:53정말 많은 작품들을 하셨잖아요.
02:55그중에 대표작 꼽을 수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02:58대표작은 누구나 아시다시피 수사반장 전월기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03:02수사반장이 그 극주에서 나왔던 얘기가 빌딩이 높아질수록 그림자가 길어진다였거든요.
03:10그러니까 빌딩을 보는 게 아니라 그 빌딩의 화려한 면에 가려진 그림자 속에 가려진 서민들의 아픔을 보겠다라는 게 프로그램의 모터였고
03:19그걸 대변하는 게 박 반장, 최불암 씨가 맡았던 역할이었거든요.
03:24이게 국민들한테 굉장히 큰 감동을 주면서 당시에 시청률은 70% 이상이 나오고
03:29박정희 대통령 부부부터 시작해서 온 국민이 다 프로그램을 봤던 그러한 프로그램이었고
03:35또 1980년부터 시작된 전원일기는 우리나라의 농촌을 대변하면서
03:40우리나라 성장기에 수많은 국민들이 농촌, 고향을 떠나서 도시로 갔거든요.
03:46항상 고향을 그리워했거든요.
03:47전원일기가 바로 국민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줬던 그런 프로그램이고
03:53정주영 회장이 그렇게 또 전원일기를 조였다고 합니다.
03:56그래서 정주영 회장이 최불암 씨한테 지게 매는 법도 가르쳐준 적도 있고
04:01다 출연시켜달라고 해서 원래 전원일기 출연도 예정돼 있었는데
04:05현대거래 임원들이 결사반대여서 출연은 백지화됐다고 하지만
04:10어쨌든 그야말로 둘 다 한국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이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04:15많이 서운하셨을 것 같은데
04:17정 회장님은 워낙 또 어려운 유년기를 보내셨기 때문에
04:20자기 고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게 웃음소리라든지
04:25어떤 말씀하신 것 같은 아버지 같은 연기 톤이라든지 이런 게 있을 텐데
04:29연기 방식, 어떤 차별성이 있었습니까?
04:32최불암 씨의 연기가 열정이 엄청났습니다.
04:35배우로서의 열정이.
04:37그러면서 그 역할에 깊게 몰입해 들어가는 연기였거든요.
04:41그래서 수사 반장 찍을 때는 그냥 형사처럼, 경찰처럼 실제로 이렇게 살았다는 거예요.
04:47언제나 그랬다.
04:48완전히 몰입을 해서.
04:49그래서 최불암 씨가 내 성격도 바뀌었다.
04:51원래 젊었을 때는 내가 약간 한량이었는데
04:55수사 반장을 연기하면서 몰입을 하다 보니까
04:57진짜 박 반장 같은 성격이 내가 돼버렸다라고 이야기를 했었고
05:02디테일이 또 엄청났거든요.
05:04우리가 디테일 잘 챙긴다고 봉저로 감독을 봉태일이라고 하는데
05:08최불암 씨도 그에 못지않게 하나하나의 설정을 다 챙기면서 연기를 했다고 합니다.
05:14그러면서 연출자의 영역까지
05:18대본만 난 잘 소화하면 된다 이게 아니라
05:21프로그램을 어떻게 지금 이끌고 나갈 것인가
05:24그런 걸 항상 생각을 했다고 하는데
05:25그래서 예를 들어서 전원일기에서
05:28아랫목에 최불암 씨가 앉아 있는데
05:31옛날 집들은 보면 구둘장이 있고 아랫목이 있고 그러면
05:35아랫목이 까맣게 타 있었거든요. 불을 떼다 보면
05:39그래서 최불암 씨가 그 방의 세트에 아랫목을 본인이 까맣게 칠을 하기도 했었고
05:45그리고 또 후배들 연기를 지도한다든지
05:48그리고 또 본인의 스타일도 수사 반장 처음에는
05:52권총 들고 나오고 수갑 들고 나오고 이런 반장 역할이었는데
05:55본인이 스타일을 다 바꿨다는 거예요. 권총 수갑 없애고
06:00트렌치코트 차림에 보다 따뜻한 느낌으로
06:04그렇게 연출까지도 생각하는 그런 연기였다라는 게
06:08최불암 씨 연기의 특징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06:10조금 전에 봉준호 감독 말씀해 주셨는데
06:12봉준호 감독의 영화 중에 살인의 추억 있잖아요.
06:15그 영화에 보면 수사 반장을 관람하는 그런 장면이 나오거든요.
06:19봉준호 감독이 또 최불암 배우를 굉장히 좋아했었나 보죠?
06:22그렇죠. 그러니까 최불암 씨하고 수사 반장을 안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06:26전 국민이 다 보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06:29그래서 봉준호 감독이 수사 반장의 팬이다 보니까
06:32수사 반장에서 악역으로 그렇게 많이 나왔던 변이봉 씨
06:36이 변이봉 씨를 다시 또 캐스팅해서
06:39변이봉 씨한테 제2의 전성기를 만들어드리기도 했었고
06:42수많은 수사 반장 키드들이 나중에 나이를 먹어서
06:45우리나라 연출자가 되면서 요즘에 장름을 전성시대거든요.
06:50그러니까 수사 반장 키드들이 나이 먹어서 장름을 지금 만들고 있는 거죠.
06:55이런 연기 방식 때문에 동료들도 또 후배들도 많은 감명을 받았는데
06:58빈소에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았잖아요.
07:01동료와 후배들이 기억하는 고 최불암 배우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07:06동료와 후배들이 기억하는 모습이
07:08작품 속의 캐릭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07:12그러니까 이게 캐릭터하고 실제 모습이 다른 분들도 많거든요.
07:17그런데 최불암 씨는 거의 똑같았다는 거예요.
07:19그래서 실제로도 작품 속 캐릭터처럼 굉장히 인자하고
07:23그러면서도 엄격할 때는 엄격하고
07:25후배들이 잘못하면 확실하게 그런 지적을 하면서도
07:28후배들의 연기를 또 따뜻하게 이끌어주는
07:31그런 선배이고 동료였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07:34구체적으로 많은 빈소를 찾았던 분들이
07:37김혜자 씨가 22년간 함께한 동료이자 가족 같은 인연이었다라고 이야기했고
07:42남은희 씨가 함께한 추억을 간직할 동료다.
07:46유인천 씨가 평소에도 아버지라고 불렀던 선배였다.
07:49차인표 씨는 후배를 존중한 큰 어른이었다.
07:52김혜수 씨는 부모처럼 따랐던 존재였다.
07:55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07:56많은 울림이 있는 분이었던 것 같은데요.
07:59우리에게도 익숙했던 게
08:00제가 어렸을 때 최불암 시리즈라고
08:02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잖아요.
08:04어떻게 보면 기분이 나쁘실 법도 한데
08:06방송에 나와서 그걸 본인이 직접 연기하시기도 하더라고요.
08:10좀 소탈한 면이 있으셨나 봐요.
08:12그렇습니다.
08:13그러니까 이제 최불암 씨가 국민들하고
08:14굉장히 신세대 젊은 사람들하고도 친밀해진 계기가
08:1790년대 최불암 시리즈인데
08:19그 90년대 최불암 시리즈가 나오게 된 게
08:22이제 90년대 신세대가 막 나타났거든요.
08:25그래서 9세대하고의 단절, 전복 이런 걸
08:30신세대가 당시 90년대에 하게 되는데
08:32그때 청소년들이 보기에
08:34기성세대 어른의 대표가
08:37최불암 씨를 인식이 됐던 거예요.
08:39왜냐하면 워낙 그분이 비중이 크니까
08:41그래서 이제 10대 청소년들이
08:44그 기성세대 대표격인 최불암 씨를
08:47희화화하는 곳에서 굉장히 통쾌감을 느끼고
08:50재미를 느꼈는데
08:51그때 최불암 씨가 자기 자신이
08:53그렇게 웃음거리가 되는 곳에 대해서
08:54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고
08:56청소년들을 위해서 저작권을 풀어준 겁니다.
08:59그래서 여기저기서 최불암 씨를 내서
09:01책도 내고 최불암 씨를 인기를 끌게 된 건데
09:04또 한편으로는 또 최불암 씨가
09:06파 하고 웃는 모습
09:09그게 이제 전원일기에서
09:10큰 소리로 웃으면 어머니한테 폐를 끼칠까봐
09:14큰 소리를 웃지 못하고
09:15조용히 숨죽이면서 웃었던 웃음소리가
09:17파 하고 이렇게 숨만 쉬는 웃음소리가 된 건데
09:20그게 하나의 웃음코드가
09:22웃음코드로 80, 90년대부터 소비가 되면서
09:25최불암 시리즈 파 하는 웃음
09:27이런 걸 통해서 국민 웃음에 또 소재가 되니까
09:30그러면서 국민 아버지 겸
09:32동시에 또 굉장히 친밀한 우리의 이웃
09:35그러한 성격으로
09:36신세대한테도 깊게 자리매김하게 됐습니다.
09:40최불암 배우 잠시 뒤 한 10분 뒤쯤이면
09:43서울 아산병원에서 장례식장에서 발인이 엄수되는데요.
09:47고인의 명복을 빌고요.
09:48저희가 그 현장도 함께 전달해드리겠습니다.
09:51지금까지 하재근 문화평론가와 함께했습니다.
09:53고맙습니다.
09:5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