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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정지웅 앵커, 박민설 앵커
■ 전화연결 : 김성수 문화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와이드]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정겨운 '국민 아버지'이자 '영원한 수사반장',배우 최불암 씨의 빈소에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일 고인의 발인식과 장례미사가 진행됩니다. 김성수 문화평론가와 함께최불암 씨가 우리 문화사에 남긴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평론가님 연결 돼 있으시죠?

[김성수]
안녕하세요. 김성수입니다.


고 최불암 선생님의 발인이 내일 예정돼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장례 일정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김성수]
내일 오전 7시 40분에 서울아산병원에서 발인이 엄수됩니다. 그런데 발인 자체는 유족의 뜻에 따라 전부 비공개로 진행되고요. 9시께 여의도 성당에서 추기경이 직접 집전하는 장례미사가 진행되는데요. 이 장례미사에는 제한적으로 참석도 가능하고 또 취재도 가능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례미사 이후에 오전 10시 40분께 고 최불암 선생님과 45년간이나 함께했던 초록우산본부를 들르게 됩니다. 그래서 작별인사를 하게 되는데요. 이 일정은 최불암 선생의 당부에 따라서 마련된 특별한 일정입니다. 마지막으로 꼭 초록우산본부를 들르고 싶다고 당부를 했다고 하는데요. 아마도 45년간 아이들을 지원하고 키워내는 데 헌신했던 그 마음을 마지막까지 주고 가고 싶은 그런 심정 아니었을까 하고 상상을 해 봅니다.


최불암 선생님은 배우로서 많은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죠. 고인의 연기인생 설명을 해 주신다면요?

[김성수]
짧게 말씀드리면 대한민국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세기의 캐릭터를 만들고 가셨습니다. 어떤 배우들은 전체 인생에서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어도 많은 대중들이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배우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최불암 선생님은 수사반장의 박영한, 정의를 지키고 원칙을 세우는 아버지의 모습이었고요. 그리고 전원일기에서는 한 발자국 뒤에 물러나서 중재하고 소통하는 그런 아버지의 역할로서 22년을 한결같이 한가족과 마을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교양프로그램으로 기억하지만 한국인의 밥상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동네 밥친구 같은 그런 인물인데 우리가 지켜야 될 ... (중략)

YTN 정유진 (yjq07@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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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정겨운 국민 아버지이자 영원한 수사반장, 배우 최불암씨의 빈소에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00:08내일 고인의 발인식과 장례 미사가 진행됩니다.
00:11김성수 문화평론가와 함께 최불암씨가 우리 문화사에 남긴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00:16평론가님 전화 연결되어 있으시죠?
00:19네, 안녕하세요. 김성수입니다.
00:22곧 최불암 선생님의 발인 내일 예정이 되어 있는데요.
00:26기본적으로 이제 장례 일정은 좀 어떻게 진행이 됩니까?
00:29네, 내일 오전 7시 40분 내 서울 아산병원에서 발인이 엄수가 됩니다.
00:37그런데 이 발인 자체는 유족의 뜻에 따라 전부 비공개로 진행이 되고요.
00:439시께 여의도 성당에서 추기경이 직접 직전하는 장례 미사가 진행되는데요.
00:50이 장례 미사에는 제한적으로 참석도 가능하고 또 취재도 가능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00:56그리고 장례 미사 이후에 오전 10시 40분께 고 최불암 전국 후원회장이 45년간이나 함께했던 초록우산 본부를 들르게 됩니다.
01:09그래서 작별 인사를 하게 되는데요.
01:11이 일정은 최불암 선생의 당부에 따라서 마련된 특별한 일정입니다.
01:19마지막으로 꼭 이 초록우산 본부를 들리고 싶다라고 당부를 했다고 하는데요.
01:27아마도 지금 45년간 이 아이들을 정말 지원하고 또 키워내는 데 헌신을 했던 그 마음을 마지막까지 두고 가고 싶은 그런 심정
01:42아니었을까 하고 상상을 해봅니다.
01:45네, 최불암 선생님은 배우로서 정말 많은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죠.
01:50고인의 연기 인생 설명을 좀 해주신다면요?
01:53짧게 말씀드리면 대한민국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3개의 캐릭터를 만들고 가셨습니다.
02:05어떤 배우들은 전체 인생에서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어도 그래서 그것을 많은 대중들이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배우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02:15우리 최불암 선생은 수사반장의 박영환 정의를 지키고 또 원칙을 세우는 아버지의 모습이었고요.
02:27그리고 전원일기에서는 한 발짝 뒤에 물러나서 중재하고 소통하는 그런 아버지의 역할로서 22년을 한결같이 한 가족과 마을을 숨겼습니다.
02:39그리고 마지막 우리 기득가 교양 프로그램으로 기억하지만 한국인의 밥상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동네의 밥 친구 같은 그런 인물인데
02:52우리가 지켜야 될 그런 맛과 가치를 일깨워주는 그런 역할을 맡았거든요.
02:58이거는 참 지혜로운 어르신의 캐릭터라고 볼 수 있는데 이렇게 3개의 캐릭터로 우리에게 늘 살아있는 그런 분이 되셨기 때문에요.
03:10범접할 수 없는 그런 배우로서의 자리를 타협시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03:16앞서 평론가님께서 초록우산 관련된 얘기를 조금 해주셨는데
03:21최불암 선생님께서 전국 후원회장으로도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까?
03:25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03:28네. 지금 최불암 선생님은 1981년에 초록우산과 인연을 맺었는데요.
03:34사실 이거는 전원일기라고 하는 극에서 업둥이, 금동이를 키우면서 온갖 다양한 갓난신고를 겪는 역할을 하셨지 않습니까?
03:46그런데 그 금동이를 키우면서 느끼셨대요.
03:51자기가 극에서 가짜로만 이렇게 아이를 키워내는 그런 역할을 하면 안 되겠다.
03:59그래서 초록우산과 인연을 맺고 그리고 45년간 한결같이 아동복지지원활동에 참여를 했습니다.
04:06전국 후원회장으로 58만 후원자를 대표했고요.
04:10전국 46개의 지역 후원회와 1,600여 명의 위원들을 이끌고 해외 아동지원회도 3차례나 참석을 하셨을 정도로
04:20극에서 배운 깨달음을 실천으로 현실의 인생에 접목했던 그런 인격적 송속을 보여주신 분이었습니다.
04:31네. 초록우산 본부에서도 잠시 들러서 작별의 시간을 갖게 된다는 소식도 저희가 전해드렸었습니다.
04:37방송계에서도 최불암 선생님을 추모하기 위해서 특집 다큐멘터리 등을 긴급 형성하고 있다고 하는데
04:44정작 고인께서는 이 특집 방송을 또 고사하기도 하셨다고요?
04:48네. 실제로 지금 아마 방영이 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04:55다큐멘터리에 참여하기에는 일단 자기가 건당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렇게 사양을 하셨는데
05:02어떻게 보면 빨리 회복을 하셔서 방송 현장,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는 현장으로 돌아오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감히 생각을 해보는데요.
05:14그러니까 기억되는 그런 배우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현장에서 활동하는 배우로서 고인의 삶을 마감하고 싶었던 그 의지가 오히려 느껴지는 이유가 아니었나 이렇게
05:28생각을 합니다.
05:29정부가 이제 곧 최불암 선생님에게 문화예술분야 최고 등급이죠.
05:35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습니다.
05:36이 훈장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도 설명을 해주시죠.
05:40이미 음관문화훈장을 받으신 바 있는데
05:42연기 67년 인생을 이미 그 훈장으로서 평가를 받았거든요.
05:48그런데 이번에 금관훈장을 추서를 한 것은
05:51최불암이라는 배우는 모든 연기를 생업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범이다, 전범이다.
06:00이런 의미가 깊다고 생각을 합니다.
06:03고인은 배우로서 가질 수 있는 사적인 어떤 욕망들을 내려놓고
06:10우리 시대가 또 우리 시청자들이 원하는 그런 캐릭터로서 살아오셨어요.
06:17한 캐릭터를 한국인의 밥상에서의 캐릭터가 제일 짧은 14년이고
06:22제일 길게는 22년을 특정한 캐릭터로 공적인 배우의 삶을 살았습니다.
06:30그러니까 내가 어떤 캐릭터를 두루두루 섭렵하면서
06:34연기자로서의 오전과 성취를 만끽하고 싶다라는 그런 욕망들을 내려놓고
06:40우리 나를 사랑해주시는 분과 함께 사회적인 합의와
06:45또 압론들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그런 공적인 삶을
06:50많은 후배들이 함께 배워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06:53그런 측면에서 당연히 훈장이 추서되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06:56네, 평론가님께서는 고인이 맡은 여러 가지 캐릭터 중에서
07:01또 가장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줬던 캐릭터 어떤 것으로 기억하면 좋을까요?
07:07사실 전원일기의 김 회장 역할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07:12원래 전원일기 처음 시작할 때는 우리 회장님은 굉장히 고집이 있고
07:17또 원칙을 중시하는 그런 캐릭터로 많이 그려졌고요.
07:21가부장치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묘사하는 그런 아버지의 역할이었습니다.
07:27그런데 김혜자 씨와의 연기 호흡들이 깊어지면서
07:31또 전원일기가 농촌, 저희가 김포에 사는데 바로 옆에 있는 양촌인데요.
07:38여기가 점차 변화되면서 농촌이 사라지고 가족이 사라지고
07:44공동체가 사라지는 그런 모습들을 또 그 안에서 그려냈어야 됐거든요.
07:49그러면서 고집보다는 중재를 하고 소통을 하고
07:54그래서 현명한 대안을 찾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으로서 많이 기억이 됐어요.
07:59이것은 상당히 예언적인 그런 캐릭터였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08:03지금 이 시대에도 진짜 어른은 서로 소통하게 하고 중재하게 하고
08:08파업하게 하고 공동의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가게끔 하는 분이 어른입니다.
08:13그런 측면에서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캐릭터로
08:16김혜자의 캐릭터로 저는 손꼽고 있습니다.
08:20최불암 씨가 이제 단순히 연기를 잘하는 그런 어떤 배우를 넘어서
08:25지금 말씀해 주신 것과 같이 어떻게 보면
08:27아버지와 같은 그런 이미지를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까?
08:30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이렇게 최불암 씨가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08:35최불암 씨만의 어떤 매력은 좀 뭐라고 보십니까?
08:38최불암 선생님은 처음 데뷔할 때부터 노역으로 데뷔를 하셨어요.
08:44그래서 늘 항상 어른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고민을 하고
08:49그것을 캐릭터에 일관되게 관철시켜 왔던 분입니다.
08:54그러니까 우리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항상 이분은 원칙과 기준
09:01그리고 그 안에서의 또 따뜻한 배력
09:04그리고 항상 원칙 이외에도 새로운 대안들과 함께 고민해 주는
09:12그런 어른의 역할들을 많이 했는데요.
09:15그러다 보니까 이제 우리들한테는 항상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09:21혹은 뭔가 의논하고 싶은 상대가 있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로서
09:26최불암을 선택을 했어요.
09:28그러다 보니까요.
09:29어떤 일도 벌어졌냐면 최불암 시리즈라고 하는 그런 유머가 돌았는데
09:35그건 바로 그런 아버지로서의 딱딱한 이미지와
09:39그 이미지 뒤에 있는 따뜻함을 같이 연결시켜서 유머로 삼았던 겁니다.
09:45그래서 그런 최불암 씨는 어떻게 보면 배우로서의 캐릭터라는 삶과
09:53또 현실에서의 독특한 실천들을 결합시켜서
09:58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그 모습을 일관되게 연결시켜 나갔기 때문에
10:04그런 대중문화적인 새로운 변화의 소비가 가능했던 것이거든요.
10:10그런 측면에서 정말 우리 문화사에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10:16그런 업적을 남기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10:19네. 이렇게 고인께서는 진짜 어른의 모습을 또 스크린에서 많이 보여주셨는데요.
10:24또 저희같이 젊은 세대들은 9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10:28이 최불암 시리즈의 좀 유머러스한 모습으로도 기억을 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10:33맞습니다.
10:33네. 최불암 선생님께서는 평소에 이런 모습에 대해서는
10:37또 어떻게 생각을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10:40그냥 화하하고 웃으셨고요.
10:43그리고 그렇게 다양하게 소비되는 것을 굉장히 재밌어 하셨습니다.
10:48왜냐하면 항상 캐릭터라고 하는 것을 대중 속에서 살아 숨쉬고
10:53대중들이 만들어 나가서 완성된다고 생각을 하셨거든요.
10:57그러니까 본인의 캐릭터를 갖다 완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11:00대중들에 의해서 해석되고 기억되는 것이 진짜라고 생각을 하셨던 거죠.
11:06그러니까 대중들이 어떻게 보면 자기가 개인적으로는
11:10열심히 구축해왔던 캐릭터들을 이용해서
11:14이렇게 농담을 하거나 장난을 친다면 불쾌해할 수도 있는데
11:17그것이 오히려 유쾌하게.
11:19그래서 본인이 나와서 최불암 시리즈의 꽁투들을 선보이는
11:24그런 모습들도 있었거든요.
11:26그런 넉넉함들이 바로 소통을 하는 사람의 모습으로서의
11:32이미지를 더 굳히게 됐던 것 같아요.
11:35그래서 많은 후배 배우들이 그리고 많은 시청자들이
11:39이분에게 어려움을 털어놓으면 뭔가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11:44그런 생각들을 하게 됐던 것이고
11:46그것이 결국은 이분 자체를 공적인 배우의 삶을 유지하게끔 만들었던
11:53그런 요인이 되지도 않았나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11:57마지막으로 수많은 배우들이 최불암 선생님을 존경하고
12:02이렇게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12:04연기자로서 어떻게 보면 최불암 씨가 후배 연기자들에게 남긴
12:09가장 큰 유산이라고 할 만한 건 어떤 게 있을까요?
12:13배우가 자기의 욕심만 쫓아가게 되면
12:17기술적으로는 완성될 수 있을지 몰라도
12:20이렇게 폭넓고 깊은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12:25그런데 자기의 욕심을 내려놓고
12:27진짜 국민들이나 대중들이 원하는 그런 연기들을
12:33숙명처럼 전개해 나갈 때
12:37그럴 때 정말 큰 사랑을 받게 되거든요.
12:41물론 지상파 시대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에
12:45이렇게 긴 시간 동안 수사반장은 한 18년 정도 하셨고
12:49전월일기는 22년을 하셨고
12:52또 한국인의 밥상도 14년을 하셨거든요.
12:54그렇게 긴 시간 동안 한우물을 파도
12:56괜찮은 그런 미디어 환경에서 또 이룬 성취이기도 합니다만
13:01실제로 한 캐릭터의 완성도가 높아지게 되면
13:05그런 공적 배우의 삶을 살 수가 있어요.
13:07시리즈가 계속 이어지게 되거든요.
13:09그런 측면에서 이제 나는 하나의 캐릭터로 영원히 기억되는
13:14그래서 일정한 사회에서 기호로 해석될 수 있는
13:19그런 캐릭터를 남기고 싶다는
13:21그런 분들이라면 최불암 씨를 보고 배우게 될 겁니다.
13:25그래서 이제 배우의 어떤 깊이가
13:28이뻐지는 하나의 길을 우리 최불암 선생이 보여줬기 때문에
13:33후배들이 그런 길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날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3:38최불암 씨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13:40이제 그가 남긴 어떤 문화사에 남긴 의미는
13:43아마도 오랫동안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13:46지금까지 김성수 문화평론가와 함께 자세하게 좀 알아봤습니다.
13:50평론가님 고맙습니다.
13:51고맙습니다.
13:52고맙습니다.
13:52고맙습니다.
13:52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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