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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시간 전


데뷔 40부년 기념 5월 음원 발표 이어
9월 새 미니앨범까지 발매
가수 겸 작곡가 김범룡이 전곡 작곡에 참여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가 중2때
기념 앨범 제작까지 지원
아버지 사업실패로 가수데뷔엔 실패하고
공부에 전념 약학과 입학
약대생 밴드 동아리 보컬로 합류
1981년 강변가요제 출전해 장려상 수상
과거 인연이 있던 작곡가 정종택 대타가수로
주현미를 찾아 녹음한 히트곡 메들리 앨범 대박
1집 비내리는 영동교 로 초대박으로 공식 데뷔
데뷔 4년후 결혼, 결혼 후 인생 메가 히트곡
신사동 그사람 발표
1988년 가요계 역사상 최초 주요 3대 가요상 석권

활기가 넘치는 '행복한 아침'이 시작됩니다!
'행복한 아침'
월~금 아침 7시 30분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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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네, 맞습니다. 1985년도에 정식 데뷔를 해서 이 앨범을 발매했던 주현미 씨인데요. 올해가 딱 데뷔 40주년을 맞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주현미 씨가 이 새로운 앨범을 올해는 2번이나 발표를 했는데요.
00:14일단 지난 5월에는 새 음원을 냈고 지난달 15일에는 이 음악 여정을 정리하고 또 팬들에게 감사함을 담은 새 미니 앨범까지 발표를 하면서 팬들과 이렇게 열심히 소통을 하고 있어요.
00:27특히 이번 앨범 같은 경우는 바람바람바람 이 노래를 부른 가수 겸 작곡가 김벅룡 씨가 전곡을 작곡을 해서 팬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00:39네, 140주년을 맞은 주현미 씨의 인생 여정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현미 씨는 독특한 창법으로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어릴 때도 이렇게 노래를 잘했나요?
00:51잘했다 그래요. 사실 주현미 씨가 화교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죠. 한의 사이인 중국인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01:00장녀인 이후 조금 이따가 다시 말씀드릴 테니까 이거 기억을 해주시고요.
01:06이렇게 보면 노래하고 전혀 인연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주현미 씨 어렸을 때부터 2반에 이미 집안에서 꼬마 가수였고요.
01:15집안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성인들하고 결혼은 대회에서 이미자 씨의 모창으로 무려 성인들, 경쟁자를 제치고 대상을 받으면서
01:27전국구 신동, 노래 신동으로 떠올랐는데 사실 이미자 씨랑 조항조 씨랑 주현미 씨랑 함께 이미자 씨의 마지막 콘서트 무대에 있었잖아요.
01:37그 시작이 이미 이때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이미자 모창을 그렇게 잘했답니다.
01:42그러니까 떡잎부터 달랐던 거야.
01:44주현미 씨의 이런 특별한 재능을 또 알아봐준 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01:48네, 주현미 씨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바로 그분에 대한 내용은요. 주현미 씨 라이브로 들어볼 수 있습니다. 함께 보시죠.
01:57당신의 그 깊은 사랑을 이제서야 알아갑니다.
02:11무거운 그 발걸음에 숙여진 그 마음 몰라봤네요 아버지
02:35주현미 씨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02:43제가 노래하는 걸 그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게 생각을 해주셨고
02:48애기 때 우리 집안에 꼬마 가수라고
02:50이제 친척 분들이 집에 놀러 오신다거나 아니면 명절 때 모인다거나 그러면
02:58가족 모임 할 때
02:58늘 우리 현미 노래 좀 들어보라고
03:01그래서 저를 노래를 시켜줬어요. 시켜줬어요.
03:04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자기 자식의 그런 재능을
03:11너무 자랑스러우셨던 거죠. 정확히 알아주셨던
03:15보여주고 싶고 혹시 그때 주현미 씨 인생에 아버지가 안 계셨더라면
03:20가수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이런 제가 가수가 돼서
03:26이런 많은 사랑을 받고 이렇게 노래를 언없이 하고 있는 이런 모습은
03:32아버지께서 못 보셨어요. 일찍 돌아가셨어요.
03:36항상 마음에 그렇죠. 저도 나이 들고 저도 아이들이 크고 그러다 보니까
03:42이 노래 아버지 노래 가사처럼 그때는 정말 왜 몰랐을까
03:47그런 가장이라는 그 쓸쓸한 외롭고 쓸쓸한 그 자리에 대한 그런
03:53안타까움 이런 것들이 뼈저리게 와 닿았죠.
03:58주현미 씨 아버지가 딸의 재능을 먼저 알아봤군요.
04:01그렇습니다. 주현미 씨 아버지는요. 일찌감치 딸의 남다른 이 가창력에 대한
04:06이 노래 소화력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빠르게 캐치를 하고요.
04:10심지어 기념 앨범까지 만들어줬습니다. 이때 나이가 중2밖에 되지 않았어요.
04:15당시 작곡가 정종택 씨가 발표한 노래집에서 12곡이 실렸는데
04:21그중에 무려 절반인 6곡을 중2인 이 아주 어린 소녀가 다 소화를 했었던 거예요.
04:29와 당시에 중학생 소녀였던 그 주현미 씨의 목소리 궁금하시죠.
04:33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오늘의 DJ 영이에요.
04:38오늘 행아 음악다방 우리 주현미 씨의 목소리가 담긴 첫 앨범이죠.
04:44고향의 품에 들려 드릴게요.
04:46고향의 품에 들려 드릴게요.
04:54돌아가고
04:56돌아가고
04:58바쁘고 새가 오는 마을
05:04꽃 향기 풀냄새에
05:12내 사랑이 피던 마을
05:18이야
05:20우리가 들으면서도 이게 중학생이에요 그랬잖아요.
05:24대단하다.
05:25약간의 앳땜은 느껴지지만 그래도 실력이 진짜 대단합니다.
05:29그러면 이때부터 가수 활동을 시작을 한 거예요?
05:32아니 이렇게 잘했으면 사실 승승장구해야 되죠.
05:34그렇죠.
05:35앨범은 냈지만 가수로서 활동할 수가 없었어요.
05:38그게 바로 재능을 알아봐 준 아버지하고 또 관련이 있는데
05:42아까 주현미 씨가 노래 아버지 부르면서 눈시울 붉히는 모습 기억하시죠.
05:47사실 이 아버지가 제가 중국인 한의사였다고 했잖아요.
05:51근데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셨는데 한 번 실패로 끝이지 않고 재기하시려고 한 거죠.
05:57한국과 이 해외를 계속 오가면서 사업을 하는데 계속 연인 실패.
06:02그러면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06:04제가 아까 주현미 씨 장녀라고 했죠.
06:06말씀드린 이유가 있어요.
06:07주현미 씨가 동생들까지 돌봐야 하는 이런 상황에서 가수 활동을 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06:14그러면서 주현미 씨는 이 아버지를 원망했던 이 세월이 또 길기도 했다고 했는데
06:21이 주현미 씨 아버지가요.
06:23후에 이 손자, 손녀들한테 너네 엄마가 이 주현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아?
06:30이거를 계속 정신교육, 주입교육을 시켰을 만큼 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고 했는데
06:36아까 말씀 주현미 씨가 본인이 한 것처럼 이 잘나가는 스타의 모습을 못 보고 돌아가셨잖아요.
06:43그러다 보니까 아버지 노래 부르면서
06:45어떤 애증, 또 뒤늦은 이해, 회한 이런 게 뒤섞인 눈물이 아니었던가 싶네요.
06:52그리고 주현미 씨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또 있죠.
06:55약사 출신 가수인데
06:56맞아요.
06:57아니 이 와중에 또 공부도 잘했다고 해요.
07:00이렇게 잠시 노래를 뒤로 했던 이 주현미 씨가 공부에 전념해서요.
07:05중앙대 약학과 입학을 하게 됩니다.
07:07그런데 그 끼가 어디 가나요?
07:09입학하고 나서도 노래를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07:12노래가 너무 좋았던 주현미 씨가 어떤 선택을 하냐면
07:15이 동기 약대생들이 있던 밴드 동아리에 여성 보컬로 딱 들어간 거예요.
07:21이 1981년도에 강변 축제라고 불린 이 강변 가요제까지 결국 출전을 하게 되는데요.
07:28약대생 밴드답게 이름도 독특합니다.
07:31이 영어로는 진생 라딕스, 인산뿌리다.
07:36이런 이름에 가진 너무 귀여운 밴드인데요.
07:41그런데 밴드가 가요제에서 장려상을 수상을 하게 돼요.
07:45이 가요계에 내가 이 인산뿌리 같은 역할을 하겠다.
07:49이 콧불을 갖고 나타난 밴드였는데
07:51주현미 씨와 정말 이 노래는 때려야 뗄 수 없는 이런 관계가 된 거죠.
07:56하지만 이렇게 또 강변 가요제에서 수상을 했다고
08:00또 주현미 씨가 가수로 데뷔한 게 아니에요.
08:02사실 뭐 가수 생활 처음에 배 고프잖아요.
08:06그러나 이 주현미 씨도 우리 장념입니다.
08:08그래서 가족의 온 기대를 안고
08:11서울 필동에 약국을 차리게 됩니다.
08:14약국 잘 됐을까요? 아니라고 하는데 왜 잘 되지 않았을까요?
08:18주현미 씨가 직접 한 얘기 들어보시죠.
08:21저 정말 졸업하자마자 약국을 이렇게 개업을 했기 때문에
08:25엄청 정직했나 봐요 제가.
08:28그래서 그때는 의약분업이 안 돼 있었어요.
08:31그래서 그냥 와서 감기 걸리고 목이 아프면 마이신 주세요.
08:35막 이랬거든요.
08:36소염제?
08:37네 소염제하고 마이신 주세요.
08:39그런데 저는 학교에서 배울 때 절대 그거 남용을 하면 안 된다.
08:43항생제 그래서 균에 내성이 생기고
08:45나중에는 용량이 더 많아지고
08:47그래도 뭐 균에 막 이런 걸 배우기 때문에
08:49배운대로?
08:50네 배운대로 항생제 드시면 안 되는 거라고.
08:53가수가 안 되셨으면 알아서 약국 문은 다 닫겠네요.
08:59정말 다행이에요.
09:01그때 계속 약사하셨으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주옥 같은 노래를 들었겠습니까?
09:05정말 배운대로 정직하게 약국 운영을 했던 겁니다.
09:11이번에는 약국 운영을 하다가 어떻게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로 들어서게 됐을까요?
09:15이렇게 약국을 운영하면서 수입이 변변치 않았어요.
09:18정직하게 했을 뿐인데.
09:20그러던 중 기회가 찾아옵니다.
09:22아까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앨범을 냈다고 했잖아요.
09:25그때 작곡가 정종택 씨가 준비하던 앨범이 있었던 겁니다.
09:30원래 녹음이 예정되어 있었던 가수가 있는데 이 가수가 펑크를 낸 거예요.
09:35대타를 급하게 찾던 와중에 이 기회로 주현미 씨가
09:39가수 절대 안 된다라고 반대했던 어머니 몰래, 몰래가 중요합니다.
09:44과거의 히트곡을 메들리로 엮은 앨범을 녹음하게 되는데요.
09:48이게 정말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요?
09:51이 앨범이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게 되면서
09:55왜 당시에 리어카에서 앨범이 많이 팔리는지
09:58바로 이 길보드 차트 1위라고 하셨죠.
10:01이 길보드 차트 1위를 하게 되고
10:04이 일을 계기로 주현미 씨가 그야말로 쭉쭉쭉쭉 활동을 하게 되는데
10:09음반 발매가 또 그 다음이었습니다.
10:12이쯤에서 또 The Day Young이 나올 차례죠.
10:16바야흐로 1985년입니다.
10:18그때 또 주현미 씨의 이름을 건
10:21첫 단독 정규 앨범이 나옵니다.
10:24그때부터요.
10:25그 데뷔 년도부터 해가지고
10:26아주 어마어마한 히트곡이 나오는데요.
10:29제가 또 음악 띄워드릴게요.
10:31비가 오면 왠지
10:33뮤직 큐
10:35비 내린 영동교를
10:43홀로 걷는 마음
10:45그 사람은 모를 거야 모르실 거야
10:55비에 젖어 슬픔에 젖어 눈물에 젖어
11:02하염없이 걷고 있네
11:06밤 비 내리는 영동교
11:10잊어야지 하면서도 못 잊는 것은
11:17미련 미련 미련 때문인가 봐
11:24간드러지게
11:28비 내리는 영동교
11:30정말 기억 같은 노래고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11:33당시 이 노래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죠.
11:35대단했죠.
11:361985년이었고요.
11:37그때는 노래가 히트하면 영화가 만들어집니다.
11:40바로 이듬해 86년에
11:42동일한 제목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11:44출연 배우가요.
11:45이영아 김혜수 김영애
11:48탑스타들이 출연을 했다.
11:50그만큼 노래가 빵 떴던 건데
11:52사실 또 이게 시대상하고도 관련이 있어요.
11:55당시에 강남 일대가 개발이 되면서
11:57이 강남과 강북을 잇는 대교가 완성됐는데
12:01그게 영동교
12:02근데 여기서 그때 당시에 강북에서 강남으로 놀러가는 사람들이 많으면서
12:07이 강남으로 연결되는 영동교가
12:09시대상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곳이 됐고
12:12당시 또 트로트는 이게 성인가요다 이렇게 인식이 되면서
12:16이 비내리는 영동교는 어떤 어른들의 이 삶의 애환
12:21중장년층 사이에서 그러면서 아주 그냥 인기를 끌었습니다.
12:24네 뭐 이렇게 정말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주현미씨가
12:28데뷔 4년 만에 모두가 깜짝 놀랄 발표를 또 하나 하죠.
12:32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려요.
12:34만 나이로 26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의 가요계에 그냥 큰 이슈를 던집니다.
12:39바로 깜짝 결혼 발표였는데요.
12:41상대는 기타리스트 임동신씨였어요.
12:45이연미씨는 당시에 조용필, 인순이, 남이, 이주일씨 등
12:49네로라는 이 스타들과 약 40일 동안 미국 순회 공연을 돈 적이 있는데요.
12:55이 공연을 하던 중에 함께 일하던 지금의 남편과 사랑에 빠진 겁니다.
13:00그런데 이 두 사람을 감시를 탁 하고 있는 눈초리가 있었다고 해요.
13:05바로 가왕 조용필씨였는데요.
13:09질투였을까요? 아닙니다.
13:11그게 아니라 당시 임동신씨가 밴드 조용필가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였던 거예요.
13:17조용필씨의 감시망을 때문에 벗어날 수가 없었던 건데
13:21주현미씨가 조용필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몰래 연애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13:27사실은 조용필씨 다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13:30두 사람 사이에 혹여나 정말 혹여나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봐
13:34두 사람을 딱 안전해야 되라고 하면서 감시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13:39데뷔 3, 4년 차하고 26살이면 아직 신인이고
13:44그런데 그때 결혼이라는 결정을 내렸단 말이죠.
13:47쉽지 않았을 텐데
13:49그때는 연애 무조건 숨겨 결혼은 더 숨겨 이런 시대예요.
13:53연애만 해도 빅뉴스 결혼하면 사실 활동을 좀 접어야 되는
13:57이상한 잘못된 분위기가 있었는데
13:59그러다 보니까 주변에서 주현미씨 다 말렸죠.
14:02그러나 약 파는 것처럼 주현미씨는 사랑도 정직하게
14:05사랑하면 결혼해야죠.
14:07이런 어떻게 보면 당시로서는 무모한 선택을 하는데
14:10이 무모한 선택이 행운으로 돌아옵니다.
14:13왜냐하면 그 남편이 프로듀싱해진 이 집 신사동
14:17그 사람이 메가 히트 곡이 된 거죠.
14:20신사동 그 사람 함께 들어보시죠.
14:37나도 몰래 사랑을 느끼며 만났던 그 사람
14:44그 사람 기다려도 오지를 않네
14:50자정은 벌써 지나 새벽으로 가는데
14:54아, 나 내 마음 가져간 사람
14:59신사동 그 사람
15:02진짜 언제 들어도 그 리듬을 같이
15:08하게 되잖아요.
15:10신사동 그 사람 이게 주현미씨가 결혼을
15:12발표한 후에 나온 노래인데
15:14이게 또 메가 히트를 했단 말이죠.
15:16걱정이나 우려가 한 방에 싹 씻겨나왔을 것 같은데요.
15:20맞습니다.
15:21마주치는 그 인기 피할 수 없어.
15:25그 당시에 정말 신사동 그 사람의 그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15:29그런 설문조사를 제가 또 준비를 해봤는데요.
15:31글쎄 1988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15:35대중가요 1위를 묻는 질문에서요.
15:37글쎄 아니 이사은씨의 담다귀와
15:39그리고 이치현과 벗님들의
15:41집시여인 이걸 물리치고요.
15:44신사동 그 사람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15:47다 대단한 곡들인데 그중에서도 1위라는 거죠.
15:51네 맞습니다.
15:52특히 신사동 그 사람은요.
15:54주현미씨의 남편이 이 앨범을 총괄 기획을 하면서 한
15:59이 앨범의 수록곡이라는 것이 더 의미가 깊은데요.
16:02사실 이 노래는 앨범에서 가장 마지막에
16:05원래 있었던 거니까 끼워넣은
16:08이 곡이라는 거예요.
16:10하지만 이 당시 뜨고 있던 영동붐 그리고 새로운 리듬으로 인해
16:15이 앨범에서 중심곡으로 딱 떠오르는 이 영웅이 됐고요.
16:19이 노래가 큰 인기를 얻게 되자 당시 정통 트로트가 굉장히 히트였었는데
16:24이 분위기가 좀 바뀌어요.
16:25빠른 템포의 트로트로 이 가요계의 흐름까지 바꾸게 되는 이 곡이 됩니다.
16:30그리고 그 해입니다.
16:321988년이죠.
16:34주현미씨.
16:353대 가요상을 다 휩쓴 최초의 가수가 되는 건데요.
16:40이때 주현미씨 수상소감이 아직도 팬들 사이에서 막 가슴을 콩닥콩닥하게 하는
16:45그 명영상으로 손꼽히고 있는데
16:48신혼 부부답게 여봉이라는 이야기를 해서
16:53아직도 사람들이 그 영상을 보면 너무 귀엽다 우리도 신혼이 있었지 이런 얘기를 추억하시거든요.
17:01결혼과 동시에 자신이 하던 음악은 적고 이 아내 뒷바라지에 전념한 채
17:06희생을 해준 이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 여봉 이 단어에 들어간 것 같아요.
17:12너무 귀여워요.
17:13그 이후로도 주옥같은 히트곡이 쫙 쏟아져 나오잖아요.
17:17맞습니다. 1988년 신사동 그 사람이었죠.
17:1989년에는 마주치는 눈빛이 짝사랑
17:23또 그 다음에 잠깐만 제목만 들어 딱 아시죠.
17:27이게 1990년.
17:28했던 히트네.
17:29그쵸 또 92년에는 또 만났네 또 만났어 또 만났네.
17:35와 이건 내놓는 노래마다 메가히트를 하면서 그야말로
17:39트로트의 여왕 한국 가수계의 여왕으로 자리 잡습니다.
17:42이게 앨범 냈다 하면 손만 됐다 하면 터지는 거예요.
17:46근데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주현미 씨에게 일생일대에도 위기가 찾아왔다면서요.
17:51그렇습니다.
17:52일람 일여를 둔 주현미 씨.
17:541993년도에 정말 속상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17:57무대에도 서지 않고 육아에 전념을 했는데.
18:00그리고 그 다음엔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18:02주현미 씨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애시기가 힘들었다고 하거든요.
18:06그런데 정신적으로 더 힘들게 하는 이런 상황들이 펼쳐지게 된 겁니다.
18:11당시에 이 주현미 씨가 여러 가지 육아와 아버지의 세상 떠남 이 두 가지가 겹치면서 좀 야윈 모습으로 활동을 하다가 중단을 했어요.
18:22그런데 이게 불씨가 돼서 주현미 씨를 둘러싸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이 루머가 퍼져나가기 시작한 겁니다.
18:29당시에 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것이 바로 에이즈였는데요.
18:35당시 주현미 씨의 모습을 보고 어머 주현미 씨가 에이즈에 감염이 됐대.
18:41여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어머 가족 모두가 에이즈에 걸렸대.
18:45심지어 에이즈에 걸려 사망했대라는 말도 안 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루머들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진 겁니다.
18:53가족들까지 결국 이 루머에 얽혀 들자 주현미 씨가 남편과 함께 TV에 출연해서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서야 됐는데요.
19:00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아휴 안이 땡 굴뚝에 뭐 연기 나랴 이런 마음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서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었다고 해요.
19:08네.
19:09데뷔 40주년을 맞은 주현미 씨.
19:11앞으로도 우리에게 주옥 같은 노래 많이 많이 들려주세요.
19:15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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