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조선왕조실록] 음력 8월 5일 (8월 29일)

  • 5년 전
■ 세종 2년 (1420) : 석 달에 한 번씩 시장물가를 개정하자는 호조의 건의를 수락
⇒ 3개월에 한번씩 시장물가를 고쳐 폭리를 취하는 상인이 생기지 않도록 했다

■ 세종 11년 (1429) : 논의 해충 구제를 위해 금 캐는 부역 중지를 건의하자 허락함

■ 세종 27년 (1445) : 밀매를 한 귀화 왜인들을 단죄하다

■ 세종 30년 (1448) : 수양과 안평대군이 궁금 옆에 불당을 설치
⇒ 왕비와 왕자들의 연이은 사망으로 세종의 마음이 울적해지자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이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궐 옆에 절을 지었다

■ 광해 11년 (1619) : 중국 사신이 칙서와 은 1만 냥을 가지고 와 왕이 모화관에서 영접
⇒ 중국 사신이 청나라와의 전쟁에 군대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는 황제의 칙서와 함께 은 1 만 냥을 가지고 왔다

■ 광해 13년 (1621) : 전염병이 도는 감옥에 지나치게 가두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건의를 허락
⇒ 죄수들이 옥에서 전염병으로 죽는 경우가 많자 부채 때문에 수감된 사람들을 석방하고 함부로 수감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 숙종 16년 (1690) : 이조참의가 벼슬을 파는 일을 상소하다

■ 정조 2년 (1778) : 제주목이 바친 청귤이 썩어 진상하지 않도록 하다

■ 정조 10년 (1786) : 새로 공명첩을 발행하지 말자고 건의하자 허락함
⇒ 공명첩 :명목상으로만 벼슬을 주던 임명장으로 일종의 매관매직

■ 고종 8년 (1871) : 사고의 포쇄를 10년에 한 번씩 하도록 하다
⇒ 사고에 보관된 책들이 상하지 않게 먼지를 털고 바람을 쐬는 것(포쇄)을 10년에 한 번씩 하기로 했는데 세종 때는 2년 마다 했다

■ 고종 19년 (1882) : 전국에 세운 척양비를 모두 뽑으라고 지시
⇒ 서양의 선진 기술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고 이미 외교관계를 맺는 등 여건이 바뀌었다며 전국의 모든 척화비를 없애도록 했다. 1871년 세워진 이후 11년 만에 없어지는 것이다

도움말 : 김덕수 (통일농수산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