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정식 개관하는 남영동 민주화운동 기념관이 누구보다 남다르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00:0640여 년 전 남영동에서 고문 피해를 입은 유동우 씨는 오늘 민주주의가 있기까지의 역사와 의미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00:14배민혁 기자가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00:19짙은 회색빛 벽돌과 족고긴 창문이 눈에 띄는 건물,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입니다.
00:257, 80년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있던 유동우 씨는 1981년 8월 예비군 훈련을 받다가 갑작스럽게 남영동으로 끌려왔습니다.
00:42유 씨는 평생을 노동자로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빨갱이로 몰렸습니다.
00:47노동자와 학생들이 연대해 흰군부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벌이려다 반국가단체로 조작된 항림사건의 당사자가 된 겁니다.
00:56눈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 채 대공분실에 끌려와 경찰에게 들은 첫 질문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01:02첫 번째 질문이 뭐냐, 너 공산주의자지. 공산주의자 아닌데요? 그랬더니 그럼 너 사회주의자야?
01:10이후 대공분실 5층 조사실에서 폭행과 고문이 이어지며 같은 질문이 반복됐는데 경찰이 원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01:19미리 딱 그렇게 그야말로 틀을 짜놓고 거기다 끼 맞춰서. 아니라 그러면 그냥 고문 들어오고 막 두들겨 패니까. 계속 그 싸움이에요.
01:32고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당했던 509호 조사실에는 당시 고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01:40몸을 움직일 수 없게 바닥이 고정된 의자, 물고문을 위한 욕조, 바깥세선과 차단된 좁은 창문까지 지금도 그때의 참혹함이 느껴집니다.
01:49허위 자백을 하지 않으면 3층 특별조사실로 끌고 갔는데 여기에도 사람을 구타하고 정기고문하기 위한 장치들이 남아있습니다.
01:58유 씨는 이런 대공분실에 불법 구금된 한 달 동안 고문으로 3번이나 병원에 실려갔고 몸과 정신이 피폐해졌습니다.
02:07세월이 흘러서도 피해자인 자신이 위축되는 게 싫었던 유 씨는 대공분실이 민주인권기념관으로 탈바꿈한 뒤 경비와 해설사로서 자신의 경험을 알려왔습니다.
02:18늘 공포의 대상이죠. 이쪽을 쳐다보기도 싫고. 왜 이게 이 건물만 내가 위축이 되고 위축이 되고 피해이 되고 왜 이래야 돼.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02:30이렇게 아픈 역사를 간직한 대공분실이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정식 개관했습니다.
02:36지난 2018년 실태조사를 통해 파악된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 피해자가 400명에 달하지만 아직 드러나지 않은 피해도 상당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
02:46유 씨는 이제 이곳이 민주주의를 억압한 국가폭력을 잊지 않고 계속 진실을 파헤치는 현장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02:54앞으로 그와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경각짐도 일깨우고 교원도 주고 대단히 중요한 장소가 될 수 있겠구나.
03:07YTN 배민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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