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의 개혁 & 개방 입장에 불같이 화를 낸 김정일?!
경제관의 차이로 부자는 멀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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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매주 일요일 밤 10시 40분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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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아까 말했던 것처럼 그 밀크 사건이 별 타각이 없었다는 게 그게 맞는 말인가요?
00:06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00:09나중에 여러 가지 소문이 조총연을 통해서 흘러나온 거를 들었는데
00:13사실 조총연 내부에 김전남이 일본을 방문을 하면 전담하는 전임 일꾼 전임 담당자가 있어요.
00:21그날 나리타 공항에서 잡혔을 때도 나리타 공항은 주차장에서 둘이 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00:27그 와중에 그 난리가 난 거예요.
00:29그런데 너무 우연인 게 또 다른 조총연 담당자가 그 같은 날 다른 일 때문에 평양에 있었대요.
00:37그런데 김정일이 불같이 화를 내고 그 담당자를 불러냈대요.
00:42내 아들을 국제적인 망친을 줬고 장난감 취급하냐 이렇게 그 사람한테 엄청나게 화를 내고
00:49다음날 그 사람은 북한에서 쫓겨났고 그 조총연 일꾼은 평생 두 번 다시 북한 못 들어갔다고 합니다.
00:56화 엄청 났습니다.
00:57그러니까 여권을 제대로 줬었어야죠.
01:01그 위조된 여권.
01:02사실 그 당시 북한이 다른 나라들 그러니까 일본을 비롯한 소방나라들하고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 않았습니다.
01:092001년이다 하게 되면 아직 그때까지만 해도 소방나라들하고 크게 외교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01:16그러니까 위조 여권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이 위조 여권은 또 통일전선부 산하에 3.14 연락소라는 곳이 있습니다.
01:23이 3.14 연락소가 기본적으로 이 위조문소를 만드는 부서거든요.
01:27국가기관이.
01:28그러니까 여기서 만들다 보니까 아무래도 김종일이 이걸 모를 리가 없거든요.
01:34그리고 또 김종남이 뿐 아니라 아들인 김금솔이 그다음에 그 와이프인 신종이 뒤에 있는 또 이 여자 한 분이 또 네 명이 멍땅 다 위조 여권을 가지고 가다가 잡히지 않았습니까.
01:49그러다 보니까 이게 뭐 국가적인 망신으로 됐다고 생각합니다.
01:53아니 이게 제가 아는 김종남 아들은 한솔이라고 김한솔이라고 알고 있는데
01:58근데 금솔은 또 김종남이 아무래도 여성 편혁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02:03그러다 보니 와이프가 네 명이 있었거든요.
02:05에? 이거 유존인가요?
02:08그래서 이제 저는 정식 결혼한 여자가 신종이거든요.
02:12이 신종이한테서 난 족자가 바로 김금솔입니다.
02:16여기서 나왔던 그 족자가 김금솔이고
02:19김금솔이보다 2년 위에인 김한솔은 김한솔은 사실 초배 아들이라고 하는 소자거든요.
02:28먼저 낳았지만 소자입니다.
02:31기본 북한은 일부일처제입니다.
02:33그러니까 법적으로는 일부일처제가 있거든요.
02:36근데 김종남이 같은 경우는 이거는 특이한 케이스니까 편안하게 이 여성하고 사랑을 나누고 또 저 여성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다.
02:45그러니까 김종남이만 할 수 있는 그런 행동이란 말이죠.
02:49이 사건은 조금 이상한 게 당시 위조 여권을 이용해서 일본에 들어온 북한의 고위층이 김종남이 처음은 아니었거든요.
03:04그렇죠.
03:05북한의 고위층들은 치료 어떠는 관광의 목적으로 위조 여권을 이용해서 왔다 갔다 했습니다.
03:10장성택 같은 경우에도 아예 위조 여권을 들고 와서 경제 시찰을 쫙 했었습니다.
03:15그런 일들이 있는데 일본 정부라고 몰랐을까 정보부라고 몰랐을까 공연이라고 몰랐을까 다 알면서 욱이 나는 건데
03:23뭔가 이렇게 노출이 돼버린 거 아니겠어요.
03:26그렇죠.
03:27그래서 저는 뭔가 같이 믿지 않는가.
03:29어쩌면 정말 배후에 어떤 모종의 어떤 이유가 있어서 일부러 이렇게 노출한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03:37그렇죠.
03:37진중권 교수님이 방금 말씀하신 게 그 당시 많은 언론들이 의심하던 대목이에요.
03:43그러니까 이때가 해외에서 스위스에서 유학하던 고용이 소생의 자녀들이 다 2000년이 돼서 평양으로 돌아오거든요.
03:51이 시점이고 김종남이 이제 아버지의 눈밖에 서서히 나면서 너는 좀 자본주의물 먹은 것 같아 이러면서 밀려나는 이 시점에 고용이는 이제 이때쯤 완전히 야망을 자기 아이들로 대체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04:07주목했던 거는 이제 바로 고용이가 조총련 출신입니다.
04:14일본과 커넥션이 있었고 뭔가 닿을 수 있었고 고경택이 비록 몰락한 사업가라고는 하지만 과거에 조총련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목소리로 낼 수 있던 사람이니까
04:26고용이와 그 수화 세력들이 김종남을 완전히 낙마시키기 위해서 이 사건을 기획한 것이다.
04:35이런 얘기가 나왔었어요.
04:36그러니까 김종남 입장에서 나는 결정적으로 그 사건 때문에 그렇게 난 밀려나는 건 아니다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04:42김종남은 계속 해외를 떠돌고 있잖아요.
04:46그렇죠. 그 이전부터 계속 해외를 떠돌았죠.
04:49그러면 무엇이 아버지와 아들을 멀어지게 했을까?
04:52지금 이게 궁금하잖아요.
04:53김종남 생각은 도쿄 디즈랜드 사건이 결정적이지는 않다는 거죠.
04:58여기서 우리가 마카오 시크릿 코드 두 번째를 공개하겠습니다.
05:03알고 보니 아버지와 아들의 경제관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라는 겁니다.
05:09김종남이 고미요지 기자님과의 인터뷰에서도 이 대목을 선명하게 여러 차례 강조를 했는데
05:33이렇게 얘기했어요. 나는 북한이 중국식의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개혁 개방을 해야 살아날 수 있다고 보다라고 자신의 경제관이죠.
05:45소신은 밝힌 거예요. 거침없이.
05:46어릴 때 김종남이 스위스에서 유학생을 하지 않았습니까?
05:51그 스위스의 자본주의, 시장의 개방감 이런 것들을 김종남이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꼈던 거죠.
05:58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아버지였던 김종일에게 경제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직언을 한 겁니다.
06:05아버지 이게 너무 폐쇄적입니다. 개혁 개방해야 됩니다.
06:08라고 했을 때 김종일이 되뇌했다는 겁니다.
06:10김종일이 가장 금기시했던 단어가 바로 개혁 개방이었기 때문이죠.
06:15김종남이 이렇게 얘기했어요.
06:16제가 자본주의 청년으로 성장해서 북한에 돌아간 이후 그때부터 부친께서 저를 경계하신 것 같습니다.
06:25라며 아버지와 틀어진 근본적인 기저에는 제가 자본주의의 물이 들었다라는 판단을 김종일이 했다.
06:34그 이유는 경제관 때문이었다라는 대목이었죠.
06:36이게 사실 김종일 입장에서는 아들 가업 승계하라고 MBA 보내고 해외 유학 보내 놨더니
06:43열심히 공부하는 줄 알았는데 돌아와서 아버지 제가 사실 셰프가 되려고
06:48제가 독립영화를 찍기 위해서
06:51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가업 승계 구상과는 너무 다른 얘기를 하니까
06:56개혁 개방해야 됩니다.
06:58야 이거는 내가 못 참지 이렇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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