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죽음을 맞이한 고용희!
아내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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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매주 일요일 밤 10시 40분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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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자 그럼 도대체 김정일은 2004년에 왜 일본 고이즈미 총리와의 두 번째 정상회담을 그렇게 빨리 끝냈을까 이게 지금 궁금하잖아요.
00:11고묘지 기자님이 그때 당시 북한의 정통한 관계자로부터 예상치 못한 이유를 듣게 됩니다.
00:21고미 기자님 그 이유가 뭐였죠?
00:22그 당시에 김정일이 전신이 없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와이프 고영희가 5월 24일에 사망했는데
00:33아 이거 5월 22일날 회장인데 조금 전에 조금 전에였어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나루자루를 다지면 무슨 관계가 있을 것 같다.
00:44그 저기 김정일의 표정이라든가 행동 말하는 그 모양새를 보면 전신 없는 것 같고 빨리 회단장 떠나고 싶어 한 것 같다.
00:56아 느낌이 벌써 뭐라고 말을 하고 끝냈답니까?
00:59그 갑자기 일어나가지고 다시 만나자고 그 한마디 하고 회단장은 떠났대요.
01:06아 외교적으로 굉장히 큰 결례인데 사실은.
01:08자세히 설명하지는 못했구나 또.
01:11어쨌든 김정일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하더라도 고영희라는 자신의 아내와 30여 년을 같이 산 거잖아요.
01:19아이를 무려 3시나 낳고 아무리 정상회담이라 할지라도 사실은 이 상황 속에서 과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겠느냐 하는 생각이 드는데
01:27그렇다면 당시에 고영희의 건강 상태는 어느 정도의 위급성을 띄고 있었던 겁니까?
01:34고미오지 기자님의 어떤 취재 내용을 보면 상세히 당시 고영희의 어떤 건강 상태에 대해서 나와 있습니다.
01:402004년 당시였잖아요. 고영희는 북한에 있지 않았습니다.
01:44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먼 이국당이 프랑스에서 생의 마지막 숨을 거뒀죠.
01:522004년으로부터 1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3년.
01:58그때는 고영희가 처음으로 유방암 진단을 받은 시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02:03그러니까 유방암과 관련돼서 10년을 암과 싸우는 투병 기간을 거쳤던 거죠.
02:10김정일이 고영희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잖아요.
02:13그래서 유럽의 곳곳에서 여러 병원에서 고영희를 치료받게 했었죠.
02:19마지막 순간에 고영희가 치료받던 곳이 프랑스.
02:23그때 고영희가 프랑스에서 숨을 거뒀는데 김정은이 엄마의 마지막 순간을 보지 못했던 거죠.
02:30그래서 아마 김정은을 연구하는 많은 연구에서는 김정은이 엄마의 마지막 순간을 못 지켰다라는 것에 대한 아버지에 대한 분노.
02:39이런 것들이 김정은의 어떤 기억 속에 자리 잡았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는 그 순간이죠.
02:44맞습니다. 이때 김정은은 이미 한 20살 정도 성인이 된 상황이었는데
02:49장기간 프랑스에서 투병을 하고 임종을 해야 되는 이런 상황이 왔는데도
02:55사실 가족 중에 누구도 가보지를 않았어요.
02:58이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영희를 내팽개쳤다 이런 의미는 아닌 것 같은데
03:03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03:06그래서 김정은 입장에서 보면 비극적인 상황이었을 텐데
03:09이 상황에 대한 그동안의 기록이나 이런 것들이 없었어요.
03:14왜냐하면 고영희가 북한의 퍼스트레이디, 사실상 퍼스트레이디였지만
03:19그 당시에 프랑스 병원에서 치료한다는 사실조차도 저희 기자들도 몰랐거든요.
03:242004년 5월 24일에 사망을 했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03:29석 달이 지나서 그것도 지금 현재 우리 국정원장인 이종석
03:34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장이 언론사 간부들하고 밥을 먹다가
03:40점심을 먹다가 이제 우연히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03:44고급관이 프랑스에서 베이징을 거쳐서 들어갔다.
03:48이렇게 되면서 이제 이게 뭐냐 해가지고 고영희가 취재가 된 거였거든요.
03:54어쨌든 이때의 투병 시절
03:57고영희의 사진을 공유지 기자께서 단독으로 입수했다고 합니다.
04:02와 그 당시
04:04바로 이 사진인데요.
04:06얼굴이 많이 좀 부어있고요.
04:09아까 그 자신 있던 아이들 데리고 여행 다니던 그런 모습과 달리
04:14좀 눈빛이 나오나 이런 데서 이제 힘들어하는
04:17병색이 완연하다 이렇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이런 모습입니다.
04:231993년에 이제 암에 걸렸지만은
04:26한때는 건강이 회복돼가지고 북한으로 돌아갈 정도가 됐답니다.
04:29그러다가 2000년 12월경에 도련 뇌경색 증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04:35그러니까 탈북자 어떤 분의 증언에 따르면은
04:38짜장면이니까 면을 막 먹다가 젓가락을 또 떨어뜨렸대요.
04:41얘가 이제 문제가 생겼다라는 거죠.
04:44그래서 다시 그때부터 고영희는 이제 북한과 프랑스, 유럽을 오가면서 치료를 받는 와중에
04:512003년에 유방암이 이제 재발을 해버린 겁니다.
04:55그래서 그 이후 이제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04:58임종 직전까지 프랑스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어야만 했죠.
05:02그래서 무엇을 도와주신 후에
05:03저는 오늘의 감상에 대한 감상에 대한 감상에 대해
05:04약속을 받는다.
05:05그래서 이렇게 해야 할 거에요.
05:06이렇게 해야 할 거에요.
05:07이렇게 해야 할 거에요.
05:07그래서 제가 만약에 간식을 보여주신다면
05:08이렇게 하면은
05:22모든 문이 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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