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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06/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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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A CIDADE NO BRASIL
00:30A CIDADE NO BRASIL
01:00당시 국립영화촬영소에는 기러경화반과 예술영화반으로 된 두 개의 제작집단이 있었는데
01:09일진으로 기러경화반의 촬영가들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01:14그 후 우리 민군대의 재진격이 시작된 1950년 11월부터는 국립영화촬영소 안의 모든 촬영가들이 정군의 길에 나섰습니다.
01:30그때 그 제1진이 떠나던 당시 촬영가들이 일부는 새 민주조선 건설로 들끓는 우리 조국의 현실을 반영한 기러경화 새조선을 창작하느라고 멀리 출장지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01:4812월 26일 저녁 촬영가들이 그 첫 대화가 떠날 때는 아직 10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01:54그때 제1진으로 나간 정군 촬영가들은 전선 소부와 동부 그리고 중부 이렇게 세계방면으로 진출했습니다.
02:08군복을 입고 촬영 그대로 총장처럼 틀어진 정군 촬영가들은 일제히 높은 기동력과 연속적인 추격으로 원수들을 무찌르며
02:18지금까지 서울로 육방에 나가는 민경군 부대들을 따라 차를 달렸습니다.
02:35정군 촬영가 최순웅이 회상 중에서 대호가 개성을 지날 때 갑자기 아찰로운 비행기 소리가 들리더니
02:43두 대의 적 비행기가 기청사격을 보호됐다.
02:46극히 잘 속히 여겨려 화수원 속으로 피했다.
02:50밀보리밭 여기저기에 쓰러진 농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02:55멀리서 둔중한 폭역소리들도 계속 들려왔다.
02:59아, 전쟁이로구나.
03:01이 때야 처음으로 전쟁 상황이 느껴지면서 우리는 다시금 마음들을 가득했다.
03:16기세 충천한 인민군 부대들을 따라 총금 촬영가들은
03:20봉두천, 대성, 의정부의 연이은 해방전투들을 수록하고
03:24서울 해방전투에 뛰어들었습니다.
03:29위대한 수령님의 작전적 구상에 따라
03:32서울시민들과 문화재의 안전을 위해
03:35이른 새벽에 일제히 개시된 서울시가전.
03:41총군 촬영가들인 최순웅, 고인길전은
03:45진격하는 인민군 부대들의 선두에서 함께 달렸습니다.
03:48정군 촬영가, 고인길의 회상 중에서
03:52땅크부대 선두서 여대는
03:55항일투사 출신 여단장과 문화부 여단장 동지들이 있었는데
03:59그들은 우리에게 서대문 총무소를 깔아뭉개는 것을 찍으라고 서르지었다.
04:04우리는 노도와 같이 진격하며
04:08선두 땅크들이 서대문 총무소의 담돌을 드시고
04:12외국자들을 해방하는 교통적인 장면들을 찍었다.
04:15그때 우리는 찌차를 타고 달리면서도 찍고
04:19차에서 뛰어내려 인민군 전사들과 함께 달리면서도 찍었다.
04:22사실 전장에서의 촬영은
04:25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우리 정문 촬영가들에게 있어서
04:28매우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04:31땅크 여단장이었던 미국 동지와
04:34문화부 여단장이었던 안동수 동지는
04:37촬영가들의 신변을 위하여
04:40첫 땅크에 태워주지 않았습니다.
04:42그래서 우리 촬영가들은
04:46집차를 타고
04:49서울시가전에 급히 달려갔는데
04:52그만 한 발 늦어서
04:54인민군 형사들이
04:56공학을 뛰는 장면을 애쓰게도 촬영하지 못하였습니다.
04:59다만 공학길을 휘날리는 장면만을 촬영할 수가 있었습니다.
05:03이곳은 재수근 동물을 비롯한 종군 촬영가들이
05:08일생의 후예였습니다.
05:10김인도 동지는 전승 예순돌스를 만난
05:142013년 당시
05:16종군 촬영가들 중 마지막 생존자였다.
05:19그는 한 생을
05:22영광스러운 우리 당육사 수록자의 한 사람으로
05:25강높은 삶을 누리였다.
05:27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의 보도
05:3228일 11시 30분
05:35영웅적인민군대는
05:37반공격을 개시한지 단 3일 만에
05:39미제 침략자들의 식민지 통치로부터
05:42서울을 완전히 해방시켰다.
05:43대구 채수용 동지와 거인길 동지를 비롯한
06:02이청군 촬영가들은 대개가 서울시 같게 잘 알았습니다.
06:06특히 채수용 동지는 키가 작고
06:09단단한 체벌을 가지고 촬영하였는데
06:13외놈들 밑에서 가죽은 천리와 류시를 받아가면서
06:17촬영기술을 배웠던 그는
06:20해방된 정국에서 진정한 민족의 용화를 창조하고 싶어
06:247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06:26위대한 수령의 품을 찾아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06:29그래서 세인 민주조선 건설에
06:32육사수록 열정을 맞춰가다가
06:34정문회의에 나섰던 것입니다.
06:36그래서 그들은
06:37서울해방 전투가 끝난 다음에는
06:40진짜를 타고
06:42서울시가를 총회무진하면서
06:44폐조하는 놈들이
06:45폐존상은 물론
06:47해방된 서울의 고리고리에서
06:49인민군대를 환영하는
06:51그런 식민들이
06:53열방적인 환원이고
06:55또 온 서울바닥에 청년학생들이
06:57다 도전하선듯한
06:59전선탄옥, 인민의 의미롭고
07:01도지개혁실지, 정치공작대원들의 눈부심하다
07:04또 평양에서 또한
07:07차별차의 서울역도차
07:09정말 포멍을 치는 고리와
07:11광전과 지폐장들의 모습을
07:13이용해 찍어놨습니다.
07:17한편 전선 동부와 서부에 진출했던
07:20우리의 전군 촬영가들은
07:22미군이 조선전선에 나타나기만 해도
07:25전선 상황이 순간이 달라질 것이라고
07:27시덥게 짓거리며
07:29일본에서 오산개선으로 긴급 출동했던
07:32스미스 선견대의 처절한 괴멸상과
07:35우리의 영영한 해병들이
07:37이제 중순양한 볼티모어를 격침시킨
07:40주문진 앞바다에서의 장쾌한 전투
07:43동진과 강릉을 비롯한
07:45서해안 지역에서의 전투실황들도
07:47하나 큰 흥분안고 수록했습니다.
08:00종군 촬영가들은 해방된 서울에 즉시
08:04국립영화촬영서 서울출장소를 내오고
08:07서울이 해방된 지 이틀만인 6월 30일에는
08:11첫 전시시보 제1호를 제작했습니다.
08:17미숙했지만
08:19싸우는 조선의 첫 역사기력영화였습니다.
08:24종군 촬영가들은 해방된 서울에서
08:27진보적 영화인들과 함께
08:29싸우는 조선의 첫 전시시보 제1호를 편집했습니다.
08:33그들은 뒤따라 나온 전선공작반 성원들과 함께
08:37전시시보 제작을 다그치면서
08:40완성된 필름들을 평양으로 올바냈습니다.
08:42그리고 서울시내 영화관들과 극장들에서
08:47전시시보와 함께 전쟁전 우리의 영화와
08:50기록영화들도 강범하게 상영했습니다.
08:53위대한 선생님께서는 최고 사령부 용사실에서
08:57그들이 올린 전시시보 제1호를 멈서 보았시고
08:59전시시보 제1호를 멈서 보았시고
09:02온매 만족이 하시면서
09:04남진한 우리 민군 부대들의 전투수과를
09:06논리 속여여
09:0715영화의 전투수 기능을 팩방을 높여한다고
09:10그리고
09:12정본 촬영가들의 취재활동을
09:14잘 보상해 주기에 대하여
09:16거듭 강조하셨습니다.
09:17감격과 격정으로 이어지는 역사 수록에
09:23드바쁜 나날이 흘러가던 7월 16일
09:27전선 사령부에 들렸던 최순웅 정군 촬영가는
09:31뜻밖에도 서울의 친이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을
09:34만나뵙게 됐습니다.
09:36해방된 저국의 영화제작사업을 지도하시면서
09:41나출 익히셨던 촬영가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신
09:45위대한 수령님께서는
09:47전군 촬영가들의 활동 정령을 일일이 물어주시고
09:50인민군대의 진격을 막아보겠다고
09:53한강다리와 철격까지 폭파시켜
09:55뒤늦게 도주하던 국방군놈들의 무리죽음을 낸
09:58미제의 악랄한 만행도 다 찍었다니
10:01정말 잘했다고 치하해 주셨습니다.
10:06김일성 장군님의 가르치신 대로
10:10지금 감격과 환희로 들끓던
10:13서울시의 모든 곳을 다 촬영하고 있다는
10:16그의 격정이 넘친 대답도 기쁨 속에 들어주시고
10:19동무들이 만든 전치시벌을 보았다고
10:22장하다고 하시며
10:24총군 촬영가 동무들은
10:26언제나 싸우는 인민군대와 함께 있어야 한다.
10:30그래야 전투 장면들을 잘 찍어서
10:32인민군대의 영적 투쟁 모습을
10:35역사에 길이 남길 수 있고
10:37진격하는 인민군대와 인민들을 고무할 수 있다고
10:40절절히 교시하셨습니다.
10:42거기께서는 촬영가들에게 자신의 인사를 전해달라고
10:54몸조심하고 수고하라고
10:57성과를 바란다고 하시며
10:59떠나는 촬영가의 손을 굳게 잡아주셨습니다.
11:02싸우는 인민군대와 언제나 함께 있으나
11:11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새기고
11:15종군 촬영가들은
11:17그의 길로 남지나는 돌격 서열돌의 앞장으로 달려나갔습니다.
11:21폭우를 뚫고 그날 밤중으로 도하부대들을 따라잡은 그들은
11:27인민군 전사들의 간구한 금강 도하전투를 수록했습니다.
11:36볼터에 선 최종 방어선이라고 떠버리며
11:39인민군대의 진격을 막아버려고
11:42금강 철격까지 파귀하고 발악하는 미제와
11:45피의 결사전을 볼린 금강 야간 도하전투
11:51사방에서 물기둥이 솟고 총포탄이 비어도 쏟아졌지만
11:55이들은 조명탄의 불빛에 언뜻언뜻 수면이 밝아질 때마다
12:00인민군 용사들의 모습을 이렇게 남겼습니다.
12:06훗날 세계가 크나큰 감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은
12:10대전 지역의 대포위 작전
12:13모든 촬영가들이 대전해방전투 수록에 합세했을 때
12:17고인길조 촬영가들은
12:19몸소 전방에서 대전해방작전을 진두지휘하신
12:23김일성 장군님의 탁월한 전략적 구상을
12:26가장 생동하게 수록하기 위해서
12:28바로 대전시가의 동남쪽 테러를 차단하고
12:31완전 포위한을 형성할 인물을 기닌
12:34서울 제4보병사단 18연대를 전군했습니다.
12:37그때 우리는 척지법 쓰듯이 험한 산바로 타고 오르고
12:45골짜기를 가로지르면서
12:48론산에서부터 대전 동남부에 이르기까지
12:52하룻밤 사이에 120일을 달려서
12:56적들이 테러로 완전히 차단하였습니다.
12:59그때 우리 촬영가 동무들이 10년이나 늘어진
13:04우리 연대의 행군대회를 앞뒤로 왔다갔다 하면서
13:08촬영하는 것을 보았는데
13:10그들은 아마 우리보다 50년은 더 달렸을 겁니다.
13:13종군 촬영가들도 대전시가로 돌입하는
13:27인물군 전투원들과 함께 전투에 진입했습니다.
13:30이들은 촬영기를 총대만의 억석에 틀어주고
13:33총폭탄이 우박치단 전장을 종이 무진했습니다.
13:37저가 간의 총격전이 격렬한 마당에서
13:40인민군대 위에 파괴되어 내던져진 적당 그 안은
13:44그들에게 가장 훌륭한 전화가 됐습니다.
13:47땅크 시창으로도 찍고
13:50의류쿨을 방패삼아 찍기도 했습니다.
13:55지난 조기반 전쟁 시기 우리 종군 촬영가들이 있었던 촬영기는
13:59바로 이런 2선 소련체 촬영기 아이모였습니다.
14:02이 촬영기에는 뇌가필름을 30m 정도 장진할 수 있습니다.
14:06그렇기 때문에 이 뇌가필름을 장진하거나
14:10또 바꿀 때에는 꼭 검은색 주머니에 손을 여가지고
14:15이렇게 장진하게 되어 있습니다.
14:171초 동안에 24카트
14:190.5m 정도 찍힌다고 할 때
14:21장진한 필름 30m를 가지고 1분 동안 촬영할 수 있습니다.
14:251분 동안.
14:26그리고 이 아이모 촬영기는 필름을 장진했을 때는
14:306km 정도인데
14:32폐업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14:34이렇게.
14:38한 번 가면 퇴업을 가지고는 최대한 30초 동안 촬영할 수 있습니다.
14:4330초 동안.
14:44우리 나오린 인민군 병사에게 포로된 미 24사단 사단장 리인의 말로.
14:56그가 벗어던진 장성모도 우리 종군 촬영가들은 기어이 찾아내어 승리의 화폭으로 남겼습니다.
15:03이 장면들은 오늘도 역사의 화폭으로 그날의 승리상을 전하고 있습니다.
15:20이 화면들은 신흥호동지가 찍은 곳입니다.
15:24신흥호동지가 후에 조선기력광역촬영소 총장사업을 할 때
15:28그때 나날들에 대하여 자주 3세대 촬영가들에게 이야기해 주문했습니다.
15:34그 전사는 한날 1시에 군대에 나온 자기 고향 친구가 보라고 이글을 썼다고 합니다.
15:40우리놈들을 완전 퍼히 섬멸한 자랑이 얼마나 큰지
15:44정말 사기가 났다고 합니다.
15:46정말 소박한 말과 구리였지만
15:49거기엔 우리 인민군 전사들의 승리의 신심이 넘친 모습들이 다 비켜져 있어
15:54놓치지 않고 화면들이 담았다고 합니다.
15:58전군촬영가 신흥호
16:01전쟁 전기간 불타는 전선을 전군한 그는
16:06전후에도 기력영화촬영관
16:08조선기력과학영화촬영소 총장으로 사업하면서
16:12우리 당 역사 수록의 길에 한 생을 불같이 바쳤다.
16:17이 대전의 방 전투가 승리적으로 결속된 후
16:21위대한 수련님께서는 인민군 전사들에게
16:23감사 문과 축하 전부도 보내주셨고
16:27인민군 지휘관들과 함께 전군촬영가들의 공적도 높이 평가하시어
16:32그들이 군사 지원을 올려주셨습니다.
16:34그때 주촬영가들은 상위로부터 대위로
16:40조촬영가들은 중위로부터 상위로 승격되었습니다.
16:44그 다음 해인 1951년
16:48권군전인 이팔전을 맞으며
16:50주촬영가들은 다시 대위로부터 소자로 승격되었습니다.
16:54대구로, 지내로, 부산으로
17:00어버이 수련님의 크나큰 믿음에 거무되어
17:05제1선 부대들에서 내달린 종군촬영가들의 무비의 시승성에 의해서
17:08수원해방전투, 낙동강전선의 치열한 격전장들,
17:14류수 남해전선의 전투실확,
17:18전선 중부와 동부의 주요 도시해방전투 장면들도
17:22연이어 이렇게 역사에 남겨졌습니다.
17:25여기에 1951년 8월 8일부 노동순면에 실린 한 편의 기사가 있습니다.
17:43국제용화상에 빛나는 조선용화일꾼들의 투쟁.
17:47기사에는 전군촬영가들의 투쟁에 대해서 실었는데
17:50바로 이렇게 씌어져 있습니다.
17:53그들은 조개방전쟁이 개시되자
17:55모두 전선촬영관으로 출동하여
17:58일손전에서 카메라를 돌렸고
18:01때로는 직접 손에 수류탄을 들고
18:03조객에 육박했던 것이다.
18:06전장에서 전군촬영가들의 임무는
18:09물론 인민군 군인들의 전투 장면을
18:12훌륭히 촬영해서 역사기록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18:15그러나 우리 전군촬영가들은
18:17결코 촬영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18:18촬영을 하다가도
18:21때로는 쓰러진 전사들의 총을 쥐고
18:24그들을 대신해서
18:26원수들에게 복수의 총탄을 날렸으며
18:28수류탄을 들고
18:30인민군 전사들과 함께 싸우기도 했습니다.
18:34이 신문에서는
18:36최순웅, 황안조, 신웅호 등
18:39많은 전군촬영가들의 위원에 대해 소개했는데
18:42그 중에서도
18:44전군촬영가 홍일성 동지에 대해서는
18:45이렇게 썼습니다.
18:48홍일성 동무는
18:51소백산 전투에서 직접 수류탄을 가지고
18:53원수들과 싸웠으며
18:55낙동강 전투에서는 전어에 설치한 카메라가
18:58적의 포탄에 파괴되자
19:00두 개의 카메라를 하나로 조립하여
19:02촬영가 고인길 동무와 함께
19:04다시 전선으로 나갔다.
19:05그는 치열한 포항 전투에서는
19:09진격하여 들어오는 인민군대의 영영한 모습을 촬영하려고
19:13인민군대보다 앞질러 적진에 잠입하였다가
19:16적에게 포위되어
19:18이일간이나 바람에 뚫어진 감을 주워먹어 가며
19:21호희망을 뚫고 나온 사실이 있다.
19:23그는 포항 전투에서 적들이 상륙하는 지점
19:27400m까지 접근하여
19:30조밭에 은폐하였다가
19:32적의 표식이 뚜렷한 수성 선박과
19:34적 부대에 존동하는 광경을 촬영하였으며
19:37적의 병력 장비를 정찰하는 임무까지
19:40완수하였다.
19:43신문은 그들의 빛나는 공헌에 대하여
19:46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19:481951년 4월과 5월에
19:50고용규, 류만춘, 최순웅, 홍일성 등
19:53다섯 명의 촬영가들에게 국기인장 제3급을
19:55박경원, 황한조, 신흥모, 홍윤골 등
20:00여덟 명의 촬영가들에게는
20:02군공메달을 수여했다는 소식도 실었습니다.
20:06전쟁의 존엄한 포화 속에서
20:09전시시보가 80여 편이나 제작되었다니
20:13정말 놀람을 구할 수 없습니다.
20:15우리 수령인께서는 이렇게 제작한
20:19전시시보들을 하나하나 봐주시면서
20:22정말 기중한 자리들이라고
20:25유료편식 묶고서
20:28기례영화라도 만들 때에 대한
20:30이런 기중한 가르침심을 주시고
20:32몸소 한편 한편 지도해 주셨습니다.
20:35전설이 멀어질수록
20:38하룻밤에도 수백일 달려온 핀림들은
20:41당시 평양시 하당 내에 있는
20:44국립영화 촬영소에서
20:47구날밤으로 현상돼서
20:50전시시보들과 함께
20:52기례영화들로 편집되었습니다.
20:53이렇게 제작된 전시시보와
20:59전시기록영화들은
21:01100여 편씩 복사되어
21:03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21:05무어주신 이덕용사대에 의하여
21:07싸우는 전선과 후방에서
21:09연일 상용되며
21:10인민들과 군인들의 투쟁을
21:12고무했습니다.
21:13이 영화 화면들에서
21:17병사들과 인민들은
21:19원수에 대한 증화를
21:21전백배로 가다듬었으며
21:23자기의 사명감을 자각했습니다.
21:25그리고
21:26그리고
21:27오늘엔 비록 시련이 있다 할지라도
21:30그 뒤엔 반드시
21:31승리가 있음을
21:32낙관했습니다.
21:33그때 정말 대단했습니다.
21:40전시시보용화, 기록영화,
21:44그 다음에 전쟁전 영화들을
21:46많이 돌렸습니다.
21:48특히 영화에서
21:50우리 수령님이
21:52건강하시고
21:54정력이 넘친 모습을 볼 때마다
21:56우리 군인들은 그저
21:57천백백배의 용기가 나오고
22:00신심이 넘쳐서
22:02매 전투마다 적들을
22:04무자비하게 소멸하곤 했습니다.
22:08우리 인민들이 오늘도 잊지 못하는
22:11피해락동감.
22:15그 가열처절한 전부들에서도
22:17우리의 총군촬영가들은
22:19언제나 인민군 용사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22:27우리 전문촬영가들은 낙동강의 불사주들과 함께
22:45피해 낙동강을 더하던
22:47그때 일을 자주 추워하곤 했습니다.
22:50촬영가들은 땜목을 타고 함께 도와하면서
22:54촬영을 하였는데
22:55땜목을 밀다가
22:57물속에서 다시
22:58솟구쳐 오르지 못하는
22:59전사들을 보면서
23:01촬영가들은 이를 악물고
23:03촬영기를 더욱 억세게 틀어잡고
23:06그 피해 결전을 수록했습니다.
23:09전쟁 노병 강동구의 회상 중에서
23:13촬영가를 온몸으로 맞고
23:15총을 써던 박동무가
23:17치솟는 물기둥과 함께
23:19물에 빠졌다.
23:21그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23:23그는 그냥 물살에 밀려갔다.
23:25파편에 맞은 것 같았다.
23:28그러나 나는 그를 구원할 수 없었다.
23:31빨리 촬영가를 실은 땜목을
23:33무사히 강디안으로 밀고 가야 했다.
23:36이것은 우리가 받은 임무였다.
23:39이렇게 수록된 한 카트 한 카트의 화면들이 그대로 살아
23:46오늘 우리 승리의 화폭이 됐습니다.
23:49승리의 그날까지 우리의 종군 촬영가들은
23:55언제나 싸우는 인민군 형사들과 생사를 같이 했습니다.
23:59피의 결전장을 수없이 넘어오면서도 그들은 승리를 굳게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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