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이제 김대중 죽여도 시비할 놈 없다”…미국, 구명 나섰다-김대중 육성 회고록〈13〉

  • 10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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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육성 회고록 〈13〉
  ‘사형수 김대중’. 1980년 5·17 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한 전두환 신군부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조작해 나를 주범으로 엮었다. 그해 9월 1심인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이듬해 1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나는 죽음의 문턱에 섰다. 어두운 감방에 갇혀 사형의 공포에 떨었다. 당시 사형은 실제로 집행됐다. “살고 싶다”는 원초적 본능이 솟구쳤다. 그래도 ‘저들’에게 목숨을 구걸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느님 뜻대로 하소서.” 절망 속에 운명을 맡겼다. (※사형 집행은 97년 12월 30일을 마지막으로 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중단돼 현재에 이른다)
 
DJ 감형-전두환 방미 놓고 거래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기적이 일어났다. 사형 확정 1시간 뒤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우방 국가들과 본인의 탄원 및 국민 화합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감형을 의결했다.
 
윌리엄 글라이스틴 전 주한 미국대사(78년 7월~81년 6월 재임)가 훗날 전한 후일담이다. 허씨로 불리는 영관급 장교가 80년 11월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제 김대중을 죽여도 시비할 놈이 없다”며 기뻐했다. 이 소리에 글라이스틴 대사는 기겁하고 미국으로 날아갔다. 레이건 당선자 측이 깜짝 놀라며 지시했다.
 
“미국 정부가 진보에서 보수로 교체된다고 해서 외교·인권 정책까지 바뀐 건 아니다. 사형은 안 된다. 반체제 인사 김대중을 살려라.”
 
미국과 한국 정부는 나의 감형과 전두환의 방미를 놓고 ‘딜’을 했다. 81년 ...

기사 원문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83181?cloc=dailymotion